장바티스트 앙드레아의 「그녀를 지키다」

Jean-Baptiste Andrea, Veiller sur elle

더 가치 있는 일을 하거나, 더 가치 있게 죽거나

미술사에서 회자되는 전설에 따르면 미켈란젤로처럼 위대한 조각가들의 창작이란 돌을 깎아내는 행위와는 거리가 멀다. 형상은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고, 조각가는 바로 그 형상을 발견해 끄집어낼 뿐이다. 이러한 진술은 위대한 조각가의 전기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일종의 전설이자 신화다. 여기서 강조하는 바는 오직 위대한 조각가만이 무의미해 보이는 돌무더기 속에서 진짜 아름다움의 가능성을 발견해 내고 그것을 아무런 망설임 없이 세상에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단순하게 보면 어느 왜소증 조각가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을 다룬 이 소설도 그러한 신화의 연장선상에 서 있다.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이 어른에서 저 어른으로 팔려 다니고, 어두운 뒷골목을 전전하며 서서히 자신의 재능을 증명해 이탈리아에서 손꼽히는 귀족 가문의 전속 예술가가 된 미켈란젤로 ‘미모’ 비탈리아니는 조각가로서 경력의 끝자락에 다다라서야 비로소 자신이 평생 찾아 헤맨 그 궁극의 형상을 돌 속에서 끄집어낸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그것은 투시력이 발동한 결과였다. 그전에도 훌륭한 솜씨와 파격적인 연출로 당대 귀족과 권력자들의 관심을 사로잡았고, 주문이 폭주했었지만, 인생 전부를 건 마지막 작품은 그저 훌륭한 작품 그 이상이었다. 그것은 보는 순간 전율을, 애욕과 분노를, 호기심과 현기증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변혁적인 작품이었다. 천 년 동안 반복된 피에타상의 상투적인 구도를 완전히 뒤엎으면서 같은 이름을 공유하는 위대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와 나란히 놓일만한 작품이었다.

소설은 현재와 과거를 교차한다. 현재에는 팔순을 넘겨 죽음을 앞둔 주인공 미모와 그가 남긴 수수께끼의 피에타가 있다. 과거는 미모가 일인칭으로 들려주는 파란만장한 인생의 회고록이고, 이 내용이 사실상 소설의 대부분 분량을 차지한다. 현재는 그 사이사이 잊을만하면 간혹 모습을 드러내며 미모의 마지막 작품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미모의 회고는 진정 죽음을 앞둔 팔순 노인의 회고답다. 무슨 말인가 하면, 논리적이거나, 짜임새 있거나, 서사적 완결성을 갖추고 있지 않다. 시간의 흐름에는 듬성듬성 구멍이 났으나, 강조할 만한 사안에 대해서는 아주 사소한 색깔이나 냄새까지도 세세하게 묘사한다. 내용상 크게 의미 없어 보이는 피렌체와 로마에서의 방황 시절에 대해서는 스쳐 가는 단역들까지 꼼꼼하게 묘사되어 있으나, 정작 길었던 수감 시절은 단 몇 줄의 설명에 그친다. 이야기란 두서없는 사고의 흐름을 따라 파편적으로 튀는 법이다. 인간의 삶 자체가 균질하지 않고 예측 불가하므로 미모의 두서없는 회고는 삶의 본질을 싣고 피에트라달바와 피렌체와 로마를 넘나든다.

미모의 성장, 변화, 그리고 소멸의 중심에는 비올라 오르시니가 있다. 피에트라달바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토착 귀족 가문의 하나뿐인 귀한 딸에게는 봉건적 세계관에 의해 태어나기 전부터 정해진 역할이 있었다. 귀엽고, 사랑스럽고, 상냥해야 하고, 교양 있되 남자들보다는 똑똑하지 않아야 하고, 성장해 집을 떠날 때는 다른 지역의 명문가 자제와 혼인을 통해 집안의 경제적·정치적 영토를 확장해 주어야 한다. 그것이 비올라에게 정해진 운명이었다. 하지만 당찬 소녀는 자신을 옭아맨 역할놀이를 거부했다. 옷과 장신구보다는 책을 사랑했고, 중력의 속박을 넘어 하늘을 날고 싶었다. 어리석은 산자보다는 큰 꿈을 품었던 망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왜소증 공방 견습생, 그리고 모지리 쌍둥이 형제들과 의기투합하며 날개를 펼쳤다. 한번 읽은 모든 것을 기억하는 그녀의 타고난 지성과 시대를 앞선 혜안은 축복이자 저주였다. 아무도 못 보는 것을 볼 수 있었지만, 꿈을 펼치기에 세상은 터무니없이 더디게 쫓아왔다. 세상과 가족은 그녀가 날개를 펼치려는 순간마다 기어이 뒷덜미를 잡고 꿇어앉혔다.

비올라는 경계를 허무는 인물이다. 삶과 죽음, 정상과 비정상, 남성과 여성, 곰과 인간, 빈자와 귀족을 넘나들며 다리를 놓는다. 미지를 두려움으로, 명확함을 선으로 인식하는 세상에서 경계를 뛰어넘거나 허무는 행위는 죄악으로 간주된다. 비올라는 시대의 혁명가였고, 미모는 그녀를 중심으로 세상과 연결됨으로써 그 혁명에 간접적으로 공모했다. 미모는 비올라를 통해 성공의 기반을 닦았지만, 한편으로 비올라의 혁명에 완전히 올라타지 못함으로 인해 자괴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파시즘이 정점에 다다른 순간, 미모는 모든 것을 버리고 비올라의 편에 서기로 했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파국을 돌이킬 수 없었다. 파국을 불러온 것은 파시즘이나 야합이 아니라 생뚱맞게도 가공할 만한 자연재해였다. 인간의 악이든 자연의 섭리든 파국은 어떤 형태로든 들이닥치고야 만다. 최선을 다하지 않은 자들은 파국의 그날에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된다.

비올라가 언젠가 불멸의 피에타가 되리라는 사실은 작품의 초반부터 분명히 암시되고 있다. 하지만 평범한 독자라면 피에타가 두 명의 인물로 구성된 형상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 그리고 비올라가 그 둘 중 누구라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고려하기가 쉽지 않다. 피에타라는 유구한 전통을 지닌 도상의 역사와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일수록 다른 가능성을 떠올리기가 어렵다. 나도 그러한 평범한 독자 중 하나였다. 그래서 작가가 의도한 반전은 적어도 나에게는 제대로 먹혀들어 갔다. 대지진의 파편 속에 벌거벗은 채 발견된 납작한 가슴의 비올라, 황망한 마음에 초록색 커튼으로 대충 감싸안은 그 가벼운 육체가 미모에게 예수의 도상과 겹쳐 보였다는 흐름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당시 미모의 마음속 한구석에는 언젠가 피에타를 완성해야 한다는 부채감과 그 피에타를 위한 가장 완벽한 대리석을 확보해 두었다는 안도감이 한데 뒤엉켜 있었던 터라 더욱 그렇다. 자신이 닿을 수 있는 가장 낮은 곳과 가장 높은 곳의 경계를 넘나들며 혁명을 꿈꾸었고, 나아가 보통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선구자가 되겠다는 꿈에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던 비올라를 생각하면 미모가 곧바로 피에타에 착수했던 열정은 더욱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왜 비올라의 최후가 굳이 천재지변 탓이어야 했을까? 언젠가 천재지변이 닥치리라는 것은 진도를 측정하는 기준을 만들어 낸 역사적 인물의 이름이 뜬금없이 반복될 때부터 예견되었다. 공교롭게도 대지진은 비올라를 둘러싼 음모와 적의가 가장 정점에 도달한 그 밤에 찾아왔다. 비올라가 당시 준비하던 혁명은 그전까지 시도했던 자잘한 일탈적 행위들(가령 지붕에서 떨어지며 날려고 시도하거나 남편으로부터 도망쳐 미국으로 건너가려 했던 일)에 비하면 훨씬 가치 있고 파급효과가 다분한 것이었다. 강한 추진력에 상응하는 강한 저항력이 예상됐고, 종교와 파시즘과 자본까지 결합된 반동 연합체의 음모가 무르익던 순간이었는데 그 모든 첨예한 갈등의 무대가 대지진으로 한순간에 먼지가 되어 버렸다. 이로써 비올라는 십자가형을 면했고, 대신에 로마 병정들과 함께 일순간 매장된 모양새가 되었다. 개인 대 세력 간의 성스러운 싸움이 그 모두를 아울러 깡그리 몰살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식 파국으로 끝을 맺었다.

작가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이 선택 탓에 비올라의 죽음은 위대한 혁명가의 숭고한 희생이 아닌 개죽음에 가까운 무언가가 되었다. 작가는 비올라가 예수와 완전히 등치되는 공식을 따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즉, 비올라의 삶, 의지, 형상 가운데 예수를 은연중에 떠올릴 만한 암시는 남기되, 완전히 등치되지는 않아야 종교적으로 상투적인 해석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다고 믿은 듯하다. 비올라를 신성성의 영역까지 들어 올리지는 않으면서도 인간의 힘을 초월한 강한 힘에 의해서만 멈춰 세울 수 있는 존재로는 그려내야 하니 불가피하게 대지진이라는 장치를 꺼내 든 것이다. 혁명하는 개인과 억압하는 세력이라는 상투성의 구도를 회피하면서도 숭고한 희생양임에는 틀림없다는 점은 드러내고자 한 작가의 고뇌는 이해할 만하다. 그럼에도 그 파국이 너무 급작스럽고 희생의 의미를 퇴색시킨다는 점은 분명히 밝히고 싶다. 비올라가 삶 전체를 바친 싸움이 성공 지향적인 왜소증 예술가 한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키고, 어느 시골 수도원 깊은 곳에 유폐된 불멸의 예술 작품 하나를 탄생시키는 수준의 열매만 맺는 데 그쳤다면, 우리가 620쪽을 끝까지 따라간 보람이란 무엇일까? 1946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성 의원 21명이 당선된 것이 비올라의 유훈이라도 되는 양 에필로그 성격의 612쪽에 적혀 있지만, 따지고 보면 그것은 비올라와 같은 시대적 굴레에 묶인 유사한 혁신의 일면들일지라도 정작 비올라 개인과는 아무런 직접적 인연을 맺지 않은 사건 아닌가? 비올라는 더 가치 있는 일을 하거나, 적어도 더 가치 있게 죽어야 했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미모와 비올라가 벌인 가장 큰 일탈이었던 미국 도피 시도 사건이다. 미국으로 건너가는 여객선을 타기 전 피렌체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며 두 사람은 동상이몽에 빠졌다. 한 사람은 지나가 버린 방탕한 시간에 대한 회한에 잠기면서 지리멸렬한 현실을 다시금 붙잡았고, 다른 한 사람은 다가올 여정에 대한 두려움과 설렘에 빠져들었다. 비올라는 미모가 자신과 함께 미국으로 떠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때의 체념은 첫 비행에서 추락했을 때의 그것보다 훨씬 큰 것이었다. 비올라의 회복탄력성은 그때 거의 다 소진되어 버렸다. 미모가 그때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비올라와 함께 대서양을 건넜더라면 어땠을까? 비올라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성장하는 새로운 기회의 땅에서, 귀족이나 교황 따위는 없는 신대륙에서 오래 품어온 꿈을 펼칠 수 있었을까? 그곳도 모두에게 열린 유토피아일 수는 없고, 왜소증 예술가와 무일푼 여성이 할 수 있는 일도 거의 없으므로 대지진이 아니더라도 또 다른 유형의 파국이 기다리고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경험해 보지 못한 삶은 회한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미켈란젤로 미모 비탈리아니가 사크라 수도원에서 40년간 허드렛일을 하며 문득문득 떠올린 생의 가장 큰 회한이 바로 그것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


No Day But Today에서 더 알아보기

구독을 신청하면 최신 게시물을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

댓글 남기기

워드프레스닷컴에서 웹사이트 또는 블로그 만들기

위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