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헤밍의 「아마존: 정복과 착취, 경외와 공존의 5백 년」

John Hemming, Tree of Rivers: The Story of the Amazon

이제부터라도 자연 앞에 겸손해야 한다.

책을 꺼내 든 순간부터 엄청난 분노에 사로잡힌 채 읽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예상은 옳았다. 한갓 돈과 명예를 좇아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기어들어 와 평온하게 살던 사람들을 짓밟고, 가치를 따질 수조차 없는 엄청난 생물자원을 고갈시킨 그 천인공노할 범죄 앞에 분노치 않기란 불가능하다. 수 세기 동안 이어져 지금까지 상흔을 남기고 있는 그 유구한 수탈의 역사를 현시점에서 어떻게 정죄할 수 있을까? 경계 밖으로의 탐험과 지식의 축적으로 대변되는 서구 계몽주의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비난해야 할까?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기독교 세계관 전체를 혐오해야 할까? 고무를 기반으로 성장한 산업혁명과 기술진보의 모든 달콤한 열매를 이제 와서 무위로 돌릴 수 있을까? 이 지점까지 생각하면 오늘날 공범이 아닌 사람이 없을 정도다.

대항해의 시대 이전, 각 대륙에 정착해 살던 모든 민족은 각자 환경에 적응하면서 나름의 생존 기술을 발달시켜 왔다. 그들은 현재 발 딛고 있는 터전 위에서 현재를 즐기면서 대를 이어갈 만한 최적의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동의 자유와 함께 대륙 간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각자에게 당연했던 것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되었다. 열대 우림에서 체계적 벌목이란 불가능한 것이었고, 그 땅에서 인간은 자연이 허락하는 만큼만 취하면서 이동해야 했다. 그러한 상식은 이베리아반도에서 털북숭이들이 밀고 들어오는 순간 일대 변혁을 겪게 된다. 도끼, 칼, 창, 총, 마체테 등 무쇠로 만든 도구는 인간이 마음먹은 대로 자연의 형태를 변화시킬 수 있음을, 그리고 그것을 갖지 못한 어떤 부족이라도 손쉽게 ‘사냥’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강력한 힘은 그만큼 강력한 유혹이었고, 그것을 손에 쥔 순간, 그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을 얻기 위해 인디오들은 빗장을 열었다. 빗장 사이로 새어 들어오기 시작한 탐욕의 물줄기는 도무지 잦아들지 않았고, 이내 절대다수의 인디오들을 집어삼켜 인질, 포로, 노예로 만들었다.

가장 먼저 숨이 턱 막히는 무력감은 과연 이베리아반도의 정복자들에게만 화살을 던지면 충분한가라는 점이다. 그들은 역사에 기록된 범위 안에서는 인디오들의 땅에 처음으로 들어간 외부인이고, 그 선점효과에 따라 독점적으로 엄청난 악행을 저질렀으며, 그에 상응하는 엄청난 과실을 따 먹었다. 그들이 그 땅을 밟은 것은 계몽주의와 제국주의와 기독교 복음주의가 한데 결합해 탐험과 정복의 움직임이 발아하는 가운데 필연과 우연이 겹쳐 발생한 사건이지만, 그들이 아니더라도 당대 누군가는 그즈음에 거기 도달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그들이 당대 어떠한 민족에 비춰보아도 탐욕스럽고 호전적인 것은 분명하나, 그들이 아닌 다른 세력이 그곳에 먼저 닿았다고 하더라도 기술 및 가치관의 엄청난 격차에 따른 충돌과 불가역적 변화는 피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들이 아니고 다른 누군가였다면 더 나은 상황이 펼쳐졌을까? 거기에 대해 확답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본다.

정복자들의 당도 시간이 달라졌더라도 큰 변화는 없었을 것이다. 정복자들이 실제보다 3~4백 년쯤 뒤에 그곳에 당도했다고 하더라도 두 문명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충격과 파괴는 기록된 바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덜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서구 기술문명은 아마존이 없었어도 계속 발전했겠지만, 아마존 인디오들의 삶은 그 시간 동안 크게 달라지는 바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디오에게 진보의 능력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들은 주어진 환경에 적응했고 만족했기 때문에 그것을 변화시킬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일용할 양식과 사랑하는 가족과 행복한 삶이 있고, 이보다 나은 삶의 형태를 학습한 바가 없는데 왜 변화를 추구해야 하나? 자연이 양질의 식량을 지금과 같은 형태로 앞으로도 공급하리라는 확신이 있다면, 그리고 인접 부족의 위협이 있더라도 그들의 전력이 가공할 만큼 비대칭적으로 급증하지 않으리라고 예상한다면 지금 삶의 형태를 변혁적으로 진보시킬 이유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누구라도 언젠가는 벌였을 파괴에 대한 무력감에서 기인한 것이지, 정복자들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것이 아니다. 지정학적으로나 민족학적으로나 그럴 리는 없지만, 만약 우리 민족이 아마존을 처음 밟은 외부인이라면 그 정도 유린은 절대 일어날 수가 없다. 포교와 계몽을 빌미로 인디오들을 노예로 삼는 우리 민족은 상상할 수가 없다. 우리라면 아마존에서 수경 작물 재배나 민물고기 양식에 성공을 거두는 최초의 민족이 되는 것을 상상하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 좋은 이웃을 만나는 것은 생존권이 달린 중요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운에 내맡겨진다는 점이 참으로 얄궂다.

책은 아마존을 중심으로 남미 권역의 역사와 현재를 다루지만, 인디오들은 그들의 역사를 활자로 기록하지 않았기에, 여기서 역사란 침략자들의 기록에서부터 출발한다. 시작부터 숨이 턱턱 막히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침략자들은 무기와 귀금속으로 유혹하며 원주민들을 차례로 회유했다. 오랜 세월 이어진 부족 간 갈등에 개입하면서 한쪽의 편을 들고 싸움을 부추겼다. 이 과정에서 끝까지 말을 듣지 않는 부족은 별다른 이유 없이 본보기 용으로 때리거나 죽이면서 굴종시켰다. 기록자들은 인디오들을 목가적 환경에서 자족하며 살아가는 ‘고귀한 야만인’이나 개종해야 할 미개인으로만 바라봤다. 제국주의 국가 간 식민지 영토 분쟁이 발생하면 교황은 지구 전체의 임대업자라도 되는 양 남미 대륙에 임의의 경계선을 긋고 영토를 나눠 줬다. 모험가들은 엘도라도의 환상을 품고 오지로 여행을 떠났지만, 그 무모한 여정에서 노를 젓고, 짐을 들고, 식량을 구하는 것은 인디오 노예들이었다. 끝없는 욕망이 분출하는 가운데 끝없이 희생되는 것은 무고한 자들이었다.

부당한 압제는 언제나 반란을 불렀지만, 대규모 군대와 최신형 무기가 동원되고 나면 결국 봉기는 진압되기 마련이었다. 영화 「아바타」 속 나비족의 승리는 말 그대로 영화적 상상력에 불과하다. 심지어 그 영화에서조차 승전보에 가려진 갈등의 씨앗이 다음 편의 전쟁을 위해 결말부에 다시금 심기지 않던가? 핍박, 전복, 진압이라는 연쇄적 과정이 500여 년간 되풀이된 셈이다. 그 과정에서 흘린 피가 드넓은 아마존으로 흘러들었다.

정복자들의 가장 큰 실수는 너무 많은 인디오를 죽인 것이다. 노예로 부리다가, 강간에 저항하니까, 고무 채취 할당량을 못 채워서, 개종하지 않아서, 원정길에 식량이 부족해서, 말을 안 들어서 본보기로 죽였다. 그도 아니면 의도치 않게 전염병과 성병을 퍼뜨려서 죽였다. 그렇게 다 죽고 황폐화되니 이제는 가용 인력도, 시장도 없게 되었다. 그제야 자연이 회복력을 보이게 되나 싶었지만, 이내 그 노동력의 빈자리는 멀리 아프리카에서 실어 온 흑인 노예로 대체되었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죽어 나간 이름 모를 인디오들을 어디서 어떻게 기리고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두 번째 실수는 아마존을 이해하지 않고 자기들이 원래 하던 것을 그곳에서도 똑같이 하려 했던 것이다. 기업가들은 사탕수수, 목화, 담배, 카카오 등을 재배하려 했지만, 그곳의 토양 특징과 병충해를 이해하지 못해서 실패했다. 목축업도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아시아에서 공수한 품종으로 겨우 성공을 거두었다. 산타렝(Santarém)에 정착하려 했던 미국 남부연맹 지지자 300여 명은 참담한 실패 후에 돌아가야 했다. 19세기에 고무 운송용 철도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숱하게 사업 자체가 어그러졌고, 당초 계획 대비 축소된 구간만 설치되었으며, 인부들만 숱하게 죽어 나갔다. 자동차 왕국을 건설한 포드(Henry Ford)는 역사에 길이 남을 대규모 고무 플랜테이션을 건설하려 했지만, 현장답사도 하지 않았을 정도로 현지 사정에 어두웠던 탓에 천문학적인 사기를 당해 폐허만 남기게 되었다. “식민지인들과 이주민들은 질병과 총, 압제로 원주민 부족들을 대량으로 살상해왔지만 정작 ‘자연의 힘에 대적’하고 그 충만한 숲과 강에서 생존을 이어나가는 데는 한심할 정도로 무능력하다(442-443p).”

너무 많은 피를 흘렸고, 너무 많은 생물자원을 잃었다. 고기와 기름을 위해 거의 멸종에 다다른 민물 거북이 사례는 후일을 내다보지 못하는 인류의 아둔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제부터라도 자연 앞에 겸손해야 한다. 무고하게 피해를 당한 주민들을 위한 터전을 제공하고 부당한 개발 행위로 발생한 수익을 재분배해야 한다. 열대 우림을 지키는 자들을 경제적으로 보상하는 시스템이 없다면 환경 파괴는 막을 수 없다. 나아가 역사 전체를 거슬러 풍요로운 아마존의 강과 열대 우림에 생채기를 낸 과정과 주체를 분석해 지속가능성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누가 더 많은 역할을 맡아야 하는지를 명확히 가려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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