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lem-Jan Verlinden, The Van Gogh Sisters
시시콜콜한 반 고흐 가족史가 다시금 도달한 결론은,
남프랑스 지방의 아를(Arles)은 오늘날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한 화가로 인해 역사적 장소가 되었다. 그의 예술이 거기서 엄청난 도약을 이루기는 했으나, 그가 거기서 머문 기간은 고작 1년 남짓에 불과하다. 그런데 거기서 빈센트(Vincent van Gogh)가 관계 맺은 사람이나 작품 속 모델로 등장했던 사람들이 누구인지 찾겠다며 고문서를 뒤져 당대 온 마을 사람들을 DB로 구축해 분석했던 연구가 등장해 충격을 안긴 적이 있었다. 그 연구, 버나뎃 머피(Bernadette Murphy)의 「반 고흐의 귀」가 한국에 출판된 지 5년이 되어가는 시점에 이번에는 빈센트의 가족사를 들여다보겠다며 세 누이의 삶을 파헤치는 연구가 등장했다.
나는 「반 고흐의 귀」 읽고 나서 화가의 삶을 스쳐 간 아주 사소한 인물들까지 마치 위인처럼 연구되는 상황에 아래와 같이 느낌표까지 박아가며 놀라움을 표명한 바가 있다.
“그저 아를에서 식당이나 카페를 운영하던 사람들, 심지어 지나가던 목동이나 관련 인물의 사촌들까지도 생몰연도가 표시되는 대목에서는 저자의 정보 수집 성과에 대한 감탄과 존경이 절로 일어난다. 이 사람들은 고흐가 1년도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거주한 그 지역에 그저 공존했다는 이유만으로도 마치 위인의 반열에 오른 듯 영원히 역사에 남게 된 것이다!”
빈센트가 생폴(Saint-Paul-de-Mausole) 정신병원에 입원한 1년만 집중적으로 분석한 마틴 베일리(Martin Bailey)의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를 읽고서도 비슷한 놀라움을 느꼈지만, 그때는 회의적인 느낌이 더 강해졌다.
“어떠한 연유이건 고흐와 1년 동안 같은 공간에서 생활한 사람들이니, 그들에 대해서 시시콜콜한 정보들을 최대한 많이 캐내면 미술사적으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런 막연한 스토킹이 부당한 신화화만 부추기고 작품을 오히려 베일에 가리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실 위 두 연구의 전제대로라면, 빈센트의 누이들은 위대한 화가와 관계 맺은 그 누구보다 더 위대한 역사의 성전에 안치되어야 할 것이다. 누이들이 작품에 얼마나 공감했으며 영향을 미쳤는지와는 별개로 적어도 그들은 같은 DNA를 공유했고, 인격 형성에 중요한 성장기를 함께 보냈으며, 이후로도 숱한 서신을 주고받았음이 분명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빈센트의 누이들만 다룬 연구가 별도의 단행본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씁쓸함으로 남는 까닭은 이 끝 모를 신화화와 스토킹의 연쇄 고리가 어디까지 길게 늘어질지 알 수 없기 때문일 터다. 고흐 연구자들은 지금쯤 아마 골머리를 썩일 것 같다. 화가의 모든 인적 네트워크가 수면 위로 전부 부상하고 나면 이제는 무엇을 파먹고 살 것인가? 「반 고흐의 조카들」을 집필해야 할까? (이 책에서 밝혀졌듯 조카 중 빈센트와 대면 했던 이는 없다.)
화가의 여동생들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할아버지 세대로부터 조카 세대까지 내밀한 가족사를 들여다보는 관음증적 재미에 초점을 맞추었다. 제목에 부합하게 주제를 좁혀 집필하려다 보니 빈센트의 분량을 최대한 억누르려는 의도는 분명 전해진다. 빈센트를 다룬 책들의 홍수 속에 차별점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 빌럼 얀 페를린던(Willem-Jan Verlinden)의 선택은 ‘유명한 것으로 유명한’ 빈센트를 덜어내는 대신 반 고흐 가족들의 시시콜콜함으로 승부를 보는 것이다. 그 시시콜콜함 탓에 이 책을 읽다 보면 이런 질문이 절로 튀어나온다. 빈센트의 엄마가 무슨 책을 읽고 영감을 받아 정원을 꾸몄는지까지 알아야 하나(37p, 심지어 그 책의 이미지까지 도판으로 실려 있다)? 누이들이 다녔던 학교 내에 비치된 기물들의 목록까지 알아야 하나(45p)? 동생 빌이 여름휴가로 떠난 어느 해변 숙소 주인장의 진짜 직업까지 알아야 하나(134p)? 동생 리스의 직장 내 부적절한 관계까지 알아야 하나(165p, 이건 알아야 하는 문제이긴 하다. 그 상대가 리스의 남편이 되고, 또 그 관계에서 나온 첫 번째 자녀가 빈센트의 숨겨진 조카 중 한 명으로 밝혀지므로)?

누이는 안나, 리스, 빌 등 셋이다. 장녀 안나(Anna Cornelia van Gogh)는 한 때 빈센트와 친했고 영국까지 긴 여정을 함께하기도 했으나, 그의 작품 세계를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빈센트가 사후 엄청난 명성을 얻고 나서, 지인을 통해 작품의 의미에 대한 설명을 듣고서야 비로소 그 의미를 조금 이해하는 정도였다. 안나는 개신교 목사 집안의 장녀로서 전통적 가치에 충실한 삶을 추구했던 듯 보이고, 그 영향으로 두 딸도 개신교 목사의 사모가 되었다. 그녀가 인식하는 전통적 미의 규범에서 바라볼 때 빈센트의 작품과 사상은 시대를 너무 앞서가는 것이 아니었나 추정할 수 있다. 빈센트가 안나에게 전한 편지들은 거의 남아 있는 것이 없지만, 둘의 서신은 거의 집안 구성원이나 경제 상황 등 현실적 문제들을 다룬 내용이었고, 예술이나 사상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차녀 리스(Elisabeth Huberta van Gogh)는 태생부터 문학도였고, 만년에 시인으로도 명성을 날렸다. 다만, 독립적인 시인으로서 재능은 그렇게 뛰어난 편이라고 보기 어려웠고, 초기 명성에는 빈센트의 누이 중 하나라는 점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추정된다. 빈센트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난 후 각 지역에서 그를 기리는 행사를 개최했는데, 리스는 가족 구성원 중 그나마 대중에 알려진 작가였으므로 자연스럽게 반 고흐 가문을 대표하는 인물이 되어 그 행사들에 참석하고 축사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중의 전면에 나섰다. 또한, 빈센트에 대한 회고록을 두 차례나 발표하기도 하였는데, 기록이 아닌 기억에만 의존한 책이라 다분히 미화되고 윤색된 내용이기도 했고, 연구자들에게는 많은 혼란을 가져오기도 했다. 이 책의 출판을 계기로 테오(Theo van Gogh)의 상속자인 요(Johanna van Gogh-Bonger)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리스는 요가 발표하는 빈센트 관련 기록들에 가족사의 어두운 측면들이 적나라하게 포함되는 것에 분노했다.
삼녀 빌(Willemina Jacoba van Gogh)은 빈센트와 비슷한 점이 많았고, 빈센트도 누이 중 그녀를 가장 아꼈다. 그녀도 빈센트처럼 문학을 사랑했고, 그림을 잘 그렸다. 책에는 빈센트의 스케치를 빌이 모작한 작품이 소개되는데, 빌의 실력이 예사롭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빈센트는 테오와 빌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만 자신이 사랑한 문학 작품들을 추천했다. 또 빌의 일상과 여행에 늘 관심을 기울였고, 특별히 아끼는 작품들은 테오를 통해 선물로 보냈다. 목사관에서 함께 살며 작업하던 시절에 빌은 빈센트가 가장 선호했던, 섭외하기 쉬운 모델이기도 했다.
빈센트의 이러한 특별한 애정에는 자신과 같은 유형의 인간을 바라보는 공감과 애잔함이 뒤섞여 있었다. 둘은 거의 비슷한 정서적 문제를 안고 있었고, 서로에게만큼은 그 사실을 숨김없이 터놓고 지냈다. 평소에는 점잖았지만, 가끔 머릿속이 뒤죽박죽되어 공황 상태에 빠지곤 했고, 심각한 경우 공격성과 폭력성이 표출되거나 발작으로 이어졌다. 빈센트 본인이 이러한 문제를 먼저 겪었고, 또 스스로 해결하고자 부단히 노력했으므로, 사랑하는 여동생도 그런 문제를 겪고 있음을 외면할 수 없었다. 거기다 예술에 대한 열정과 재능, 사회의 낮은 곳을 바라보는 섬세한 공감의 마음씨, 체제 전복적 사고방식과 사회참여에의 열망, 그리고 그 모두를 승화하는 종교적 열정까지, 두 사람은 빼닮은 구석이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빌은 빈센트에게 또 다른 ‘나’였다. 둘의 정신적 문제는 한 사람에게 자기 파괴로, 또 한 사람에게 사회와의 영원한 격리로 나타났지만, 그들은 끝까지 치열하게 투쟁하며 나름의 흔적을 남겼다. 빌에게 여성이라는 태생적 굴레가 지워지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빈센트에게 테오가 그렇게 했듯 영원한 동반자이자 후원자가 있었더라면 빌의 이름은 병원 마당 묘비석에 차갑게 기록된 것 이상으로 기억되었으리라.

반 고흐 가족사를 돌이켜 보며, 빈센트가 겪었던 정신적 문제에 유전적 요인이 있었음이 다시 한번 분명해진다. 질환의 주된 유전 계보는 모계 쪽 형질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어머니 안나(Anna Cornelia van Gogh-Carbentus)의 자매 중 정신질환자가 있었고, 그녀의 아버지도 정신 질환 이력이 있었다. 어머니 안나는 빈센트에게 예술적 재능을 물려준 훌륭한 화가이자 정원사이기도 했다. 빈센트와 막내 코르(Cornelis van Gogh)는 둘 다 발작에 시달리다 권총으로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빌은 생의 절반을 정신병원에서 보내며 세상에서 잊혀갔다.
빈센트의 번뜩이는 영감을 경청했고, 모델도 되어 줬던 삼녀 빌을 제외하면, 빈센트의 누이들이 불멸의 작품들에 미친 영향은 미미하다. 이제는 모두가 인정하듯, 지금 빈센트의 명성을 만든 것은 테오와 요, 그리고 그 부부의 아들이자 빈센트의 대자인 조카 빈센트이다. 그들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빈센트에게 무한한 지지와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이 작품들이 언젠가 빛을 보게 되리라는 점을 분명히 알았다. 거기다 파리 미술계의 방대한 인적 네트워크를 동원할 수 있었고, 시장 환경의 변화를 읽는 안목이 있었으며, 자료를 관리하거나 공개하는 방법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무엇보다 테오 사후에도 흔들림 없이 빈센트의 방대한 유산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며 역사화 작업에 착수했던 요의 안목은 그저 놀랍다. 가족이든 어떤 공동체든 간에 거기서 글을 쓰는 사람만이 역사를 집필하는 권력을 갖게 된다. 그 권력이 적절한 사람에게 주어졌기에 빈센트는 기어이 빛을 볼 수 있었다.
“빈센트 형이 얼마나 위대한 예술가였는지를 사람들이 알아야 할 텐데. 이 말은 위대한 인간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해. 언젠가 사람들은 이를 깨닫게 될 거고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형의 죽음을 애석하게 생각하겠지. 그 자신은 죽음을 바랐지만 말이다. 누워 있는 형의 곁에서 나아지도록 노력해 보자고, 이 절망을 다시 이겨내 보자고 했을 때 형은 말했어. “고통은 영원할 거야.” 난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렸어(224p).”
테오는 형의 마지막 순간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의 진단은 정확했다. 빈센트가 세상을 떠나자마자 세상은 그를 그리워하기 시작했고, 경제적 곤란에 처한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빈센트의 흔적에 기대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빈센트의 유산은 가장 아꼈던 여동생의 병원비로도 살뜰하게 쓰였다. 한때 모두가 그를 가문의 걱정거리로 여겼지만, 정작 가문의 걱정을 해결해 준 것은 이 세상에 없는 빈센트였다.
리스에 따르면, 빈센트는 아버지와 테오의 금전적 도움을 받은 것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아 했으며, 그것은 언젠가 성공하리라는 점을 스스로 믿었기 때문이란다. 물론 100%의 진실은 아니다. 빈센트는 테오의 도움에 항상 고마워했다. 특히 조카가 태어나고 테오 가정에 경제적 문제가 불거지자, 자신에 대한 지원이 테오 가정에 불화의 씨앗이 될까 노심초사했고, 그 감정이 결국 최후의 발작에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리스의 해석에도 일말의 진실은 있는데, 빈센트가 자기 작품을 믿지 않았다면 단기간에 그 정도 창작의 열정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시시콜콜한 반 고흐 가족사를 경유하여 다시금 도달하게 되는 결론은, 미술사에서 빈센트 반 고흐만큼이나 언젠가 도래할 미적 이상향─예술이 자기 자신을 구원하면서 동시에 세상 모두가 그 세계에 공감해 주리라는 궁극의 비전─만을 바라보며 현재의 자신을 온전히 불사른 예술가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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