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책을 쓰기 위해서는 적어도 세 가지 자질이 필요하다. 의미 없어 보이는 이미지에서 무한한 사유를 끄집어 낼 수 있는 섬세한 눈, 역사/철학/종교에 대한 방대한 지식, 생각나는 무슨 말이건 내뱉을 수 있는 용기. 여기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용기일지도 모르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섬세한 눈과 지식을 가지고 있더라도 떠오른 생각이나 주장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전혀 별개의 일이기 때문이다.... Continue Reading →
김겸의 「시간을 복원하는 남자」
올해 나의 미술사 공부에서 ‘복원’은 가장 관심을 끈 키워드였다. 지난 가을 베네치아 여행에서 스쿠올라 디 산 로코(The Scuola grande di San Rocco)에 방문했을 때 틴토레토의 작품을 전시 현장에서 복원하는 과정을 지켜본 적이 있다. 틴토레토 탄생 5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의 일환이었다. 피렌체의 산타 크로체 성당(Basilica di Santa Croce)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미켈란젤로의 이름으로(In the Name of Michelangelo)’라는... Continue Reading →
하선규의 「서양 미학사의 거장들: 감성과 예술을 향한 사유의 시선」
개별 사상가들의 핵심을 추려 모은 책들이 시중에 깔려 있다. 나도 원전을 읽을 용기는 없기 때문에 그런 책들을 많이 읽어 봤지만 사실상 만족했던 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유의 세계란 깊고도 넓은데다가 여러 추상적 관념들이 다층적으로 뒤얽혀있는지라, 요점만 모아 놓으면 온전한 맥락에서 괴리되기 십상이다. 게다가 니체 이후로 넘어오면 글의 ‘내용’이 아닌 ‘형식’으로 어떤 진리를 체감하게끔 의도한... Continue Reading →
이소영의 「화가는 무엇으로 그리는가: 미술의 역사를 바꾼 위대한 도구들」
나는 이소영의 전작인 「실험실의 명화」도 흥미롭게 읽었었다. 그때는 미술사적 지식이 너무나 일천했던 3년 전이었다. 미술과 과학의 접점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시절이어서 그 책이 큰 도움이 되었다. 당시 다른 관련 도서들도 추가로 참고하여 ‘예술과 과학’이라는 주제로 회사와 동호회에서 세미나를 했었다. 이번 책 「화가는 무엇으로 그리는가」는 재료로 보는 미술사라는 주제에 관심이 있어서 집어 들었는데 알고 보니 같은... Continue Reading →
김영애의 「갤러리스트」
우리는 위대한 화가들의 뒤에 숨겨진 후원자의 이야기들을 알고 있다. 미켈란젤로를 업어 키운 ‘위대한 자’ 로렌초 데 메디치와 반항아 카라바조를 변함없이 후원했던 델 몬테 추기경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왕이든 귀족이든 교황이든 각각의 후원자들은 화가를 통해 자신의 시각적 이상을 실현하며, 자신의 권력과 부를 정당화해왔다. 한 점의 유화를 그리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과 값비싼 재료를 아낌없이 투자해야 한다. 따라서 미술시장이라는... Continue Reading →
존 버거의 「G」
정말 이해하기 어려워서 자괴감마저 드는 소설이다. ‘콜라주 소설’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앞뒤 문단이 서로 분절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하나의 이야기를 하다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다른 이야기로 급속히 선회한다. 두 개의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짧은 문단 단위로 계속 병치되기도 한다. 인물들이 망상에 빠져들기도 하는데, 문맥상 필요도 없는 그러한 망상을 왜 그렇게 정성스럽게 묘사하는지 의문이다. 혹여 나중에... Continue Reading →
캐롤 던컨의 「미술관이라는 환상: 문명화의 의례와 권력의 공간」
원제는 「Civilizing Rituals: Inside Public Art Museums」이다. 날로 허약해지는 우리나라의 출판시장을 고려할 때 딱딱한 학술서처럼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적어도 ‘환상’이라는 단어는 쓰면 안됐다. 이 단어를 쓰면 실체가 없는 허상을 보여주려는 의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미술관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의례, 서열, 권력, 젠더는 허상일지 모르지만, 그것이 실제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허상이 아니다. 우리에게 그 작동... Continue Reading →
최열, 홍지석의 「미술사 입문자를 위한 대화」
미술사가는 질문하는 학자여야 하지 단죄하는 판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118 고도로 전문화된 학문 영역 중에서도 미술사는 그나마 일반 대중들에게 관심이 높은 영역에 속하고, 소위 ‘대중서’의 형태로 가장 활발하게 출판이 이루어지는 분야이다. 그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이러한 참신한 시도가 나타났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미술사 입문자를 위한 대화」는 선후배 미술사가가 미술사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실천하는지에 대하여 나눈 대화를 엮어낸... Continue Reading →
장하석의 「온도계의 철학: 측정 그리고 과학의 진보」
토대가 잘 다져진 믿음의 토대에는 토대가 없는 믿음이 놓여 있다.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우리는 너무나 자명한 사실들이 어떻게 진리로 굳어진 것인지를 잘 알지 못한다. 진리가 진리인 이유나 궤적에 대하여 알려고 하지 않고 그래서 의심할 생각도 하지 못한다. 경험의 영역에서 우리가 믿고 있는 대부분의 진리들은 한때는 분명 철학자였을 과학자들의 헌신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많은 진리의 영역들이... Continue Reading →
테리 바렛의 「미술비평: 그림 읽는 즐거움(Criticizing Art)」
당신이 미술작품에 대해 글을 쓰는 이유는 그것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 로버트 로젠블럼 비평한다는 것은 비평하는 사람에게 유익한 일이다. 58p 한 동안 탐독했던 주제인 미술비평으로 오랜만에 다시 돌아왔다. 예나 지금이나 비평가에 대한 나의 선망은 여전하고, 모든 사람이 비평가가 되어야 한다는 신념 또한 유효하다. 하지만 최근에는 다소 바빴던 관계로 동시대 갤러리에서 한참이나 떨어져 지냈으며, 그에 따라 안... Continue Read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