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받고 놀랐던 점은 1988년에 초판을 발간한 후, 이듬해인 1989년에 2판이 나왔으며, 그 2판의 8쇄가 나온 것이 2017년 1월이라는 사실이다. 1쇄를 천 부씩 찍었다면, 2판을 기준으로는 약 28년 동안 8천 부 가량이 팔렸다는 것인데, 아주 긴 기간동안 적은 부수 라도 꾸준히 찍어 왔다는 것이다. 이는 이 책이 스테디셀러로서의 자격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Continue Reading →
롤랑 르 몰레의 「조르조 바사리: 메디치가의 연출가(출1995, 역2006)」
"미술이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라는 E. H. 곰브리치의 말을 가장 명확하게 뒷받침하고 있는 문헌이 바사리의 「미술가 열전」일 것이다. 바사리 본인은 미술사라는 학문 영역에서 시조격의 위상을 바란적 없지만, 개별 미술가의 삶과 작품을 통해서 미술의 역사를 조망한다는 관점은 그를 통해 최초의 미술사 방법론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1550년 초판에서 정점, 쇠퇴, 부활이라는 미술 발전의... Continue Reading →
앤 셰퍼드의 「미학개론: 예술 철학 입문(2001)」
미술사의 변두리를 어슬렁거리다가 이제는 더 깊은 본질로 들어가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학개론」이라는 야심만만한 제목과는 달리 10,000원이라는 겸손한 가격표를 달고 있는 이 소책자는 외관상 지하철역 자판기에서 팔던 싸구려 유머집 또는 명언집 따위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내용은 충실한 편이다. 위대한 사상가들의 꽁무니만 쫒으면서 논문 제목과 듣도 보도 못한 학술적 개념들만 나열하기에 급급한 책이 아니다. 미학의 핵심 개념들로... Continue Reading →
리처드 플래너건의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출2014, 역2017)」
사람은 참으로 잔인한 면이 있다. 육체적/정신적 한계에 봉착한 누군가의 모습을 보는 것을 힘들어 하면서도 내심 즐긴다.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극한상황에 대한 대리체험 욕구라고 하기에는 좀 더 고약하다. 아마 이 고통을 겪는 것이 지금의 내가 아니라는 안도감이 주는 희열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가 얼마나 안락한 삶을 살고 있는지, 타인의 고통을 통해 재인식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전쟁을 다룬 영화나... Continue Reading →
임두빈의 「미술비평이란 무엇인가(1996)」
나는 비평가를 동경한다. 타자가 창조한 미의 세계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함의를 붙잡아 언어로 표상하는 능력에 경탄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리게 한다. 무엇보다도, 예술에 대하여 열렬히 이야기하는 사람은 얼마나 섹시한가. 비평사, 비평론에 대한 관심으로 이 책을 들었다. 오래된 책이지만 입문서로서 충실한 면모가 있어 보였다. 사실 초반부에서는 반드시 다 읽고 혹평을 남기겠노라고 다짐했었다.... Continue Reading →
이광래의 「미술과 문학의 파타피지컬리즘: 욕망하는 미술, 유혹하는 문학(2017)」
미술과 철학을 통시적/공시적으로 아우르는 「미술철학사」를 내놓았던 이광래 교수가 쉬지도 않고 1년 만에 다시 들고 나온 책이다. 전작이 3권, 총 2,656페이지의 어마어마한 양을 과시했던 것을 감안하면 624페이지의 이 책은 차라리 겸손해 보인다. 하지만 그 물리적 존재감은 전작에 비하여 결코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파타피지컬리즘'이라는 생소한 이름표를 달고 더욱 위압적으로 우리를 내려다 본다. 파타피지컬리즘은 알프레드 자리의 pataphysique에서 따온... Continue Reading →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출1985, 역2002)」
대학교때 까지는 소설을 많이 읽었다. 주로 집어 들던 소설들은 전쟁, 민주화 운동 등 급박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목숨이 경각에 달린 인물들의 고뇌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런 책을 읽으면서 '나라면 이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까?'라는 식으로 성찰을 하다가 이내 '그래도 지금은 평화로운 시대여서 참 다행이야'라는 막연하고 비겁한 결론으로 귀착하곤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지적인 읽기에 비하여 감성적 읽기를... Continue Reading →
실반 바넷의 「미술품 분석과 서술의 기초(2006)」
미술에 대해서 잘 쓰고 싶은 마음에 길다 윌리엄스의 「현대미술 글쓰기」를 읽었는데, 그 책의 후미에 있는 '감수의 글'에서 이번 책, 「미술품 분석과 서술의 기초」를 알게 되었다. 「현대미술 글쓰기」의 감수자는 그 동안 실반 바넷의 책에서 다루지 못했던 부분을 길다 윌리엄스가 적절하게 보완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부분적으로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 길다 윌리엄스는 실반 바넷의 책에서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을 과감하게 도려내고,... Continue Reading →
버나뎃 머피의 「반 고흐의 귀: 미스터리를 풀기 위한 7년의 여정(2017)」
수많은 '반 고흐 미디어'들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그의 본질을 제대로 보고 있기는 한 것일까? 오늘날 엽서, 책, 영화, 뮤지컬, 우산, 휴대폰케이스, 올드팝으로 승화된 고흐는 그야말로 낭만의 아이콘, 그 자체이다. 현대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 개인에게 헌정된 미술관으로는 유일한 세계 10대 미술관을 보유한 화가(방문객 수 기준), 가장 많은 미디어가 다루고 있는 화가, 가장 비싼 화가 등의 수식어로... Continue Reading →
김보현의 「데리다 입문: 서구 사상체계를 뒤흔든 데리다 사유의 이해(2011)」
인류 사상사에 크나큰 족적을 남긴 한 인물에 대해서 고작 '입문서'를 통해 알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오만한 태도도 없다. 아무리 심혈을 기울인다고 하더라도 번역은 오역을 낳고, 압축은 참 의미를 뭉개기 마련이다. 맥락에서 괴리된 진리는 레이저프린터로 인쇄한 잭슨 폴락과 같다. 그렇기에 그 어떤 고난이 예상되더라도, 쉽게 풀어 쓴 입문서 보다는 가급적 해당 사상가의 원문 전체를 번역한... Continue Read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