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학술대회에 참석하는 당신이 반드시 알아야 할 다섯 가지

당신이 연구자로서 삶을 살아가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언젠가는 학술대회에 참석하게 될 것이다. 학술대회는 아직 완성본의 단계에 이르지 못한 연구를 발표함으로써 동료 연구자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매우 의미 있는 자리이다. 연구실에만 처박혀 작성된 논문은 겉보기에 그럴싸하지만, 제삼자의 객관적인 시각에서는 어딘가 의문스러운 구석이 있게 마련이다. 연구진 간에는 어느 정도 합의에 이른 상태더라도 연구진들은 어디까지나 ‘내 연구(=내 새끼)’를 보는 상황이므로 객관성이 흐려져 있다. 이렇게 잠정적으로 완성된 논문은 학술대회에서 발표하는 과정을 거쳐 일차적인 검증에 이르게 되고, 여기서 수렴된 의견을 토대로 조금 더 발전시킨다면 비로소 학술지에 정식으로 투고할 만한 수준으로 무르익게 된다.

학업 경로에 따라 차이는 있겠으나, 학술대회에 처음으로 참석하는 시점은 석사생 시절일 가능성이 크다. 첫 발표는 보통 석사 중반 이후부터나 졸업할 즈음에 경험하게 된다. 요즘에는 논문을 쓰지 않고 졸업하는 석사가 많다고는 들었으나, 그래도 석사 과정 중 한 번쯤은 발표나 적어도 참관이라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학술대회에 처음 참석하는 연구자라면 거기서 무엇을 하는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무엇을 얻고 돌아와야 하는지 몰라 막막할 것이다. 연구실 동료나 선배들이 친절히 가르쳐주면 좋으련만, 대체로는 물어봐도 ‘그냥 가서 잘 들으면 돼’, ‘가보면 알아’, ‘나도 그랬어’ 식의 추상적인 답변만 돌아올 것이다. 주변 맛집이나 알아보라고 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다들 자기 할 일도 바빠서 한 사람 한 사람 코칭해 줄 시간이 없다.

참관만 한다면 그냥 그렇게 막무가내로 경험해도 크게 상관은 없다. 그런데 학술대회 참관 경험도 거의 없는 상태에서 발표해야 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그때 상식적이고 암묵적인 학술대회의 행동양식을 따르지 않는다면 다른 참석자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온전히 누려야 할 소중한 학술적 기회들도 놓쳐버리게 되는 수가 있다.

18년간 학술대회를 다니며 느꼈던 바를 조언한다.

당신이 발표할 논문을 제출했다면, 학회 사무국에서는 유사한 주제의 논문 4~5개를 엮어 하나의 세션으로 구성해 놓았을 것이다. 시간표를 보면 세션 전체 시간을 알 수 있다. 그것을 세션 내 논문 편수로 나눠보면 당신의 발표 시간을 알 수 있다. 가령 100분짜리 세션에 논문이 4편 할당되어 있다면 당신에게 잠정적으로 25분이 주어진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몇 분에 맞추어 발표를 연습해야 하나? 정답은 20분이다. 5분은 어디로 갔나?

모든 학술대회 논문 발표는 토론 시간을 포함한다. 토론은 지정토론자에 의한 토론이 일반적이며, 참석자 전원에 의한 자유 토론도 있을 수 있고, 두 방식이 혼용될 수도 있다. 그래서 당신에게 할당된 시간에서 잠정적 토론 시간을 빼고 발표 시간을 구성한 후 거기에 맞추어 발표 연습을 해야 한다.

그런데 세션 운영을 총괄하는 좌장이 성향상 토론을 매우 중요시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발표자 개인당 ‘발표 15분 + 토론 10분’으로 통제할 수도 있다. 이 같은 시간 통제는 현장에 가야만 알 수 있다. 학술대회 전에 스케쥴표를 보고 좌장에게 메일을 보내 ‘저에게 발표시간 몇 분 주실 건가요?’라고 물어보지 않는 한 그렇다. 나는 당신이 그 정도 아방가르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위 문제의 모범답안은 다음과 같이 정정된다. 기본 20분 버전을 연습하고, 예비로 15분 버전도 연습한다. 이때 연습의 주안점은 풀 버전 20분을 숏 버전 15분으로 줄일 때 어떤 내용을 건너뛸지 미리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발표 시간 엄수를 첫 번째로 언급하는 이유는, 이것이 대단히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을 매번 목격하기 때문이다. 발표 시간이 지켜지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첫째, 시간에 맞춰 발표하는 연습 자체를 안 한다. 내용 전달 중심의 연습에 치중하느라 막상 타임워치를 눌러볼 생각조차 안 한다는 이야기다. 초보자는 몰라서 안 하고, 고수들은 오만해서 안 한다. 무언가를 말하다 보면 시간은 정말 순식간에 사라진다. 20분 안에 무언가를 말하려고 할 때, 서두만 열어도 5분이 사라진다. 단상에서 시간이 터무니 없이 짧다는 것을 깨달아 봤자 이미 늦었다.

둘째, 현장에서 벌어지는 변수를 고려하지 않는다. 무대에 서면 떨릴 수도 있고, 특정 단어가 생각나지 않을 수도 있고, 마이크나 화면이 말썽을 부려 지체될 수도 있는데, 그런 현장 변수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내가 연습한 대로만 그냥 달린다. 완전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꼴이다. 변수가 생겨서 발표 시간을 잡아먹혔다면, 내가 준비한 스크립트는 그만큼 즉석에서 줄여서 종료 시각에 차질이 없게 해야 한다.

셋째, 내 연구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한다. 내 자식은 내 눈에만 예쁘고, 내 연구는 내 눈에만 흥미로운데, 그런 객관화가 안 되어 남들도 흥미로울 거라고 지레짐작하니 설명이 길어진다. 가끔 ‘자, 이 표를 보세요, 이 부분이 정말 흥미로운데요….’라는 식으로 약을 파는 연구자들을 보게 되는데, 그런 경우 대체로 시간만 지연되고 별로 흥미롭지도 않다. 제발 빨리 넘어가자.

넷째, 내 연구를 과대평가한다는 얘기는 타인의 연구를 개떡같이 생각한다는 말과도 같다. 즉, 같은 세션에 포함된 연구자들을 배려하지 않으므로 앞에서 시간을 다 까먹는 것이다. 1~2번 연구자가 시간을 다 써먹으면 그 뒤에 3~4번 연구자는 분치기 초치기로 꾸역꾸역 발표하고, 그러다 보면 마지막 토론이 끝나기도 전에 다음 세션 참석자들이 강의실 뒷문으로 슬금슬금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러면 발표장은 아수라장이 되어 명함 교환도 못 한 채 우야무야 마무리되고 만다. 이 무슨 민폐인가? 발표 시간을 뺏긴 연구자는 호구인가? 그들도 정당한 학회비를 내고 먼 길 기차나 비행기를 타고 학회장에 온 것이다. 시간을 빼앗은 연구자는 단순히 시간만 가져간 것이 아니라 연구에 대한 의견을 들을 기회와 학술적 네트워크를 쌓을 기회를 빼앗은 것이다. 중대 절도가 아닐 수 없다.

시간을 지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에게 배정된 시간을 계산해서 최소 두 가지 시간 버전에 맞추어 발표 연습을 해야 한다. 내용에 시간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내용을 맞추는 것이다. 시간은 부동의 조건이다. 타임워치를 켜 놓고 스크립트를 달달 외워 보면 발표할 내용과 건너뛸 내용이 금세 드러난다. 그게 드러나지 않는다면 자기가 구성한 내용의 중요도조차 분별할 수 없다는 뜻이니 그 정도 역량 수준이라면 연구자의 길을 빨리 떠나는 것이 본인 신상에 좋다.

위에서 언급하였듯, 학술대회는 단순히 내 연구 결과를 우다다다 발표하고 출장뷔페를 욱여넣은 뒤 유유히 사라지는 곳이 아니라 학술적 네트워크를 쌓는 곳이다. 우연히 들은 연구결과가 내 현재 프로젝트와 연계되어 해답의 실마리를 줄 수도 있고, 반대로 내 연구가 누군가에게 엄청난 영감을 줄 수도 있다. 그런 인연을 만났다면 티타임이나 식사 시간을 통해 교류하게 되는데, 그때 명함이 없다면 격조 있는 인사와 소개에 애를 먹게 된다. 교수님들에게 클럽에서 번호 따 듯 스마트폰 내밀며 여기 전화번호 좀 찍어달라고 할 것인가?

대학원생이라 아직 명함이 없는데 어떻게 하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참에 찍어라. 당신이 앞으로 어느 사회 조직에 소속되든, 단 한 달이라도 그 소속 구성원으로서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명함을 찍는 것이 좋다. 그것조차 못하겠다면 포스트잇에라도 이름, 소속, 연락처를 잔뜩 써서 들고 가라.

간혹 ‘명함이 다 떨어졌네요’라며 멋쩍게 웃는 모습도 보게 된다. 웃을 때가 아니다. 군인이 탄창 하나만 들고 전쟁에 나간 꼴이다. 많은 연구자를 만나는 학술대회에 간다면, 적어도 명함 케이스 하나는 기본이고 별도 명함 뭉치를 보조 파우치나 필통에 챙겨 넣어야 한다.

학술대회 참석은 이 사회의 지성인으로서 학술적 커뮤니티의 당당한 일원이 되어 의견을 표명할 기회다. 발표를 듣고 의문이나 조언이 있다면 토론 시간에 손을 들고 의견을 표명하게 될 텐데, 두서없이 무턱대고 아무렇게나 지껄인다고 토론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발표자는 자기 신분, 소속, 이름을 투명하게 다 밝히고 연구 결과를 보고했다. 그렇다면 당신도 질문자로서 자기 소속과 이름을 밝히는 것이 기본 예의다. 이러한 공식석상의 기본 예의가 한국 사회에서 언제부터 무너졌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런 소개도 없이 무턱대고 질문만 틱틱 던져내는 꼴을 요즘 유난히 자주 보게 된다. 당신이 학술계 선배들의 그런 부끄러운 모습을 보게 되더라도, 그것이 표준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예의를 밥 말아 먹은 행동이다. 학술계에 첫발을 내딛는 당신이라도 원칙을 지킴으로써 학계에 신선한 자극을 불어넣기를 바란다. 손 들고 질의하기, 소속과 이름을 밝히기, ‘~~ 한 내용 잘 들었습니다.’와 같은 관례적 칭찬으로 시작하기 등은 불필요한 관행이 아니라 앞으로 영원히 금과옥조로 받들어져야 할 품격 있는 자세이다.

발표가 끝나고 나면 지정토론이나 참석자 자유 토론을 통해 이런저런 질의나 의견이 접수될 것이다. 그 자리에서 다 받아 적어야 한다. 답변 시간이 주어진다면 현장에서 적절하게 답변하되, 시간이 부족하므로 변명으로 일관하는 형식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질의자께서 주신 좋은 의견을 토대로 어떻게 발전시키겠다는 방향 위주로 짧게 답변하면 된다. 시간이 부족하거나 적절한 답변이 생각나지 않을 때는 다음에 다시 보충해서 답변하겠다고 하고 실제로 나중에 이메일을 통해 답변해 주는 것이 좋다. 대다수는 학회에서 오고 간 질의응답에 대해 현장을 벗어나면 모두 잊어버리므로, 그렇게 성심껏 차후에 진짜로 답변하는 연구자가 있다면 모두 주목해서 볼 것이다. 학술계 네트워크를 쌓는 좋은 방법이다.

질의응답 내용을 적어 두는 것은 연구의 발전 차원에서도 유용한데, 연구진 가운데 현장에 참석하지 못한 누군가에게 그 내용을 추후 정리해서 알려주면 거기서 새로운 발전적 아이디어가 나올 수도 있다. 시간과 돈을 들여 어렵게 참석한 학술대회이니만큼, 여기서 얻은 지적 실마리들을 어떻게든 유용하게 활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받아 적는 모습은 그 자체로 질의자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지정토론자든 현장 질의자든 깊이에 차이는 있겠지만 공식 석상에서 의견이나 질문의 토를 단다는 것은 나름 숙고의 시간을 거쳐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초등학생이 선생님한테 점심 언제 주냐고 묻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질문이 핵심을 관통해야 하고, 이것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유익해야 하고, 논점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하고, 연구의 발전에 도움이 되어야 함을 현장에 있는 모두가 이해하고 있으므로, 대게는 아무렇게나 질문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 질문에 대해 받아 적지도 않고 그냥 흘려보낸 후, ‘그런데 아까 뭐라고 질문하셨죠?’ 그렇게 반문하면 기분 좋겠는가?

학회장은 아무리 삐까번쩍한 컨벤션센터이나 특급호텔이라고 할지라도 변수가 있게 마련이다. 나에게 익숙한 연구실이나 세미나실과는 전혀 다른 공간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인터넷이 막혔다면? 폰트가 깨진다면? 무선 프리젠터가 고장났다면? 이러한 모든 변수는 주최 측의 책임이니 나는 아무런 준비 없이 덜렁덜렁 가도 내 책임은 모두 면죄해 줄 것이다? 절대 그렇지 않다. 발표자도 준비 부족에 대한 책임을 나눠 갖는 것이다. 문제가 발생했다고 해서 사라진 내 발표 시간을 뒤에다 추가로 붙여주는 일 따위는 없다. 세션이 끝나도 다음 세션이 연이어 시작되기 때문이다. 변수로 인해 시간을 빼앗긴 것 자체가 변수에 대응하지 않은 죗값을 치르는 셈이다.

발표 자료는 학회 측에 제출하고, 메일 사서함에 넣어 놓고, USB로도 이중 백업을 해두는 것이 좋다. 좌장 및 토론자용 발표자료 인쇄물을 들고 가면 더 좋다.

윈도우 기본 폰트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폰트를 썼다면 무조건 PDF로 저장해야 한다. PPT 애니메이션 효과를 써야 한다면, 애초에 특이한 폰트를 안 쓰는 것이 가장 좋다. 폰트까지 함께 저장하기 기능은 절대 믿지 마라.

동영상은 가급적 넣지 말고, URL 기반의 동영상이라면 더더욱 피해라. 무조건 동영상을 넣어야 한다면 그나마 GIF 움짤이 낫다.

발표자료는 최소 10분 전 현장에서 실제 구동해 보고 문제가 있다면 즉각 조치해야 한다.

전문 발표자로 거듭나고 싶다면 나만의 개인 무선 프리젠터 하나쯤은 반드시 구매해서 늘 들고 다니기를 추천한다. 손에 익어야 발표도 더 능숙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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