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점에 따라 스포일러가 있다고 볼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 똥에 망토를 입혀놓아도 재미있는 히어로 영화가 나올 것 같았던 마블이 이번에는 아주 오랜만에 실패했다. 마블표 영화에 의례 기대하기 마련인 살아 숨쉬는 영웅들의 인간적인 매력과 견고한 캐릭터들의 협연에서 나오는 화학작용을 찾아보기 힘들다. 주인공에게 동화되어 응원하고 싶지만, 아버지의 과오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하며 '정치적 올바름'을 내세우는 그에게... Continue Reading →
앤 셰퍼드의 「미학개론: 예술 철학 입문(2001)」
미술사의 변두리를 어슬렁거리다가 이제는 더 깊은 본질로 들어가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학개론」이라는 야심만만한 제목과는 달리 10,000원이라는 겸손한 가격표를 달고 있는 이 소책자는 외관상 지하철역 자판기에서 팔던 싸구려 유머집 또는 명언집 따위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내용은 충실한 편이다. 위대한 사상가들의 꽁무니만 쫒으면서 논문 제목과 듣도 보도 못한 학술적 개념들만 나열하기에 급급한 책이 아니다. 미학의 핵심 개념들로... Continue Reading →
내셔널지오그래픽 특별展 – Photo Ark: 동물들을 위한 방주 (전쟁기념관 특별전시실)
사진작가 조엘 사토리(Joel Sartore)가 각 국의 동물 보호 기관을 돌아다니며 찍은 '희귀동물 증명사진'들이 출품되었다. 이 사진들을 증명사진이라고 지칭할 수 있는 첫 번째 이유는, 이 동물들이 아직은 이 지구 상 어딘가에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작업의 명시적 의도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형식면에서, 출품된 대부분의 사진이 렌즈와 눈을 맞춘 동물들의 정적인 순간을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Continue Reading →
리처드 플래너건의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출2014, 역2017)」
사람은 참으로 잔인한 면이 있다. 육체적/정신적 한계에 봉착한 누군가의 모습을 보는 것을 힘들어 하면서도 내심 즐긴다.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극한상황에 대한 대리체험 욕구라고 하기에는 좀 더 고약하다. 아마 이 고통을 겪는 것이 지금의 내가 아니라는 안도감이 주는 희열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가 얼마나 안락한 삶을 살고 있는지, 타인의 고통을 통해 재인식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전쟁을 다룬 영화나... Continue Reading →
임두빈의 「미술비평이란 무엇인가(1996)」
나는 비평가를 동경한다. 타자가 창조한 미의 세계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함의를 붙잡아 언어로 표상하는 능력에 경탄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리게 한다. 무엇보다도, 예술에 대하여 열렬히 이야기하는 사람은 얼마나 섹시한가. 비평사, 비평론에 대한 관심으로 이 책을 들었다. 오래된 책이지만 입문서로서 충실한 면모가 있어 보였다. 사실 초반부에서는 반드시 다 읽고 혹평을 남기겠노라고 다짐했었다.... Continue Reading →
이광래의 「미술과 문학의 파타피지컬리즘: 욕망하는 미술, 유혹하는 문학(2017)」
미술과 철학을 통시적/공시적으로 아우르는 「미술철학사」를 내놓았던 이광래 교수가 쉬지도 않고 1년 만에 다시 들고 나온 책이다. 전작이 3권, 총 2,656페이지의 어마어마한 양을 과시했던 것을 감안하면 624페이지의 이 책은 차라리 겸손해 보인다. 하지만 그 물리적 존재감은 전작에 비하여 결코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파타피지컬리즘'이라는 생소한 이름표를 달고 더욱 위압적으로 우리를 내려다 본다. 파타피지컬리즘은 알프레드 자리의 pataphysique에서 따온... Continue Reading →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기이한 세계(The Curious World of Hieronymus Bosch, 2016)
탈정형의 욕망이 발작 수준에 이르는 신인상주의 이후를 논외로 하면, 히에로니무스 보쉬는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파격적, 진보적, 급진적, 내면적 양식을 선보였던 화가이다. 단순한 자연의 모사에서 벗어나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서 길어올린 욕망과 상상력의 창조물들은 거의 비견할 대상이 없을 정도이다. 엘 그레코의 뒤틀린 메너리즘적 판타지가 겨우 보쉬의 턱 밑에 다다를 수 있는 정도일까. 물론 보쉬가 보여준 세계가 까마득한... Continue Reading →
신여성 도착하다 展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사회적 취약 계층의 삶은 그 민족이 시련을 겪을 때 더더욱 취약해지기 마련이다. 조선의 왜곡된 유교적 가부장제의 속박에서 겨우 벗어나는가 싶었던 우리네 여성의 삶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으로 대변되는 혹독한 근현대사의 비극을 겪으며 더더욱 참담한 낭떠러지로 내몰려야 했다. 자기 육신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 역사의 풍파 속에서도 강인한 여성들은 부당한 가부장제에 순응하면서 아이를 양육하고, 억척 같이 살림을 꾸려 나가며... Continue Reading →
코코(Coco, 2017)
공교롭게도 사후세계를 다루고 있는 두 작품이 동시에 극장에 내걸려 서로 수위를 다투고 있다. 디즈니 픽사의 <코코>와 웹툰이 원작인 <신과 함께: 죄와 벌, 2017>가 동시에 큰 사랑을 받고 있는 현 상황은 그저 우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 보면, 사후세계에 대한 대중의 보편적이면서도 지대한 관심이 빚어낸 순간일수도 있다. 죽음, 그 이후에 대해서 알고 싶은 욕구는... Continue Reading →
알렉산더 지라드: 디자이너의 세계展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알렉산더 지라드의 부모님이 어떤 직업을 가지셨는지는 검색을 해도 도통 나오지 않는다. 추측컨데, 유년 시절에 유럽으로 이주하였고, 영국왕립건축학교를 졸업하였고, 뉴욕에서 개인 디자인 사무실을 차린 때가 고작 25살인 것을 보면, 아마도 금수저일 가능성이 높다. 이번 전시는 금수저 디자이너가 재능과 성실함을 겸비하면 어떤 성과들이 나올 수 있는지 잘 보여주었다. 그는 전자제품, 가구, 텍스타일은 물론, 예쁘다는 것 외에는 쓰잘데기... Continue Read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