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나 개인전, 「동쪽에서 뜨는 달」 展 (디스위켄드룸)

1960년대 이후 동시대 미술은 개념주의 기치 아래 탈매체화를 향해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눈에 드러난 한낱 외형에 허비할 시간이 없다. 붓칠 하나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한 작가는 시대착오적인 장식가로 오해받기에 십상이다. 어떻게 보이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말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런데 중요한 건 개념이라고 호언장담하는 작가들에게 진짜로 묻고 싶은 것은, 당신의 그 개념이 외형을 모두 포기할 만큼... Continue Reading →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국립중앙박물관)

메타 경험과 복원 일찍부터 장대비가 퍼붓던 평일 오후였음에도 정말 많은 관람객이 전시장을 찾았다. 내셔널갤러리의 이름값은 톡톡히 하고 있었다. 바로 직전 합스부르크 전도 예년 같았으면 1년에 한 번 정도 할 법한 블록버스터급 서양미술 특별전이었는데, 그런 전시를 이례적으로 연속 편성한 셈이다. 그럼에도 다시금 흥행 사례를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순연되었던 전시들이 최근 몰리게 된 것인지, 아니면 국제미술계에서... Continue Reading →

최태훈 개인전, 「필드 field」 展 (갤러리 P21)

이면과 단면 경리단길의 수많은 카페와 레스토랑 사이에 P21이라고 적힌 흰 깃발이 나부낀다. 갤러리 P21은 P1과 P2라는 서로 이어지지 않는 독립된 두 공간을 아우른다. 코딱지만한 P1에는 친절한 관리자가 상주하고 있고, 무인으로 상시 운영되는 P2는 전시공간 자체가 P1보다 조금 더 크다. 예술과 무관한 전이지대로서 와인바 하나를 사이에 끼고 분리된 두 공간은 ‘따로 또 같이’라는 운영 전략을 취하고... Continue Reading →

움베르토 에코의 「제0호」

Umberto Eco, Numero Zero 그의 소설에 대한 첫 기억은 ‘좌절’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0년도 전에 「장미의 이름」을 읽다가 포기했기 때문이다. 핑계를 대자면 일단 어려운 이름이 너무 많았고, 초반의 전개는 너무 느렸으며, 고색창연한 문체도 까다로웠다. 더 정확하게는 인쇄본이 아닌, e북으로 그 작품을 읽으려 했던 오만함이 문제였다. 그것도 최초의 ‘아이패드 미니’로! 그 조악한 디스플레이로 에코를 맞이하려 했으니 얼마나 오만한가!... Continue Reading →

분노사회에서 살아남는 법

https://youtu.be/Ry6nll1E8X8 이제는 인정할 때가 되었다. 우리는 분노사회에 살고 있고, 우리의 이웃은 절대 선하지 않다. 아니, 그가 선한지 악한지 알 수가 없다. 나와 눈을 마주친 저 사람이 나처럼 선하고 적의 없는 마음이길 바라지만, 그렇게 믿고 싶지만, 정말 그러하다고 확신할 방법은 없다. 완벽한 불가지의 영역이다. 이 세상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고, 그렇다면 나 이외에... Continue Reading →

「롤리타」로 돌아보는 나, 그리고 “우리”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 Vladimir Nabokov(1955), Lolita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의 양심이란 아름다움을 즐긴 대가로 치르는 세금 같은 것” 450p “나에게 소설이란 심미적 희열을, 다시 말해서 예술(호기심, 감수성, 인정미, 황홀감 등)을 기준으로 삼는 특별한 심리상태에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는 느낌을 주는 경우에만 존재 의미가 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500p) 1. 들어가며 어떤 텍스트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대명사가 생성되었다면, 그 텍스트는... Continue Reading →

김영희의 「한국 구전서사의 부친살해」

이야기란 단순한 심심풀이 땅콩이 아니다. 모든 이야기에는 화자의 의도, 나아가 그 화자가 몸을 담고 있는 어떤 시공간의 각인이 아로새겨져 있다. 오랫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 구전서사도 마찬가지다. 바르트의 표현에 따르면 일종의 메타 언어활동, 혹은 신화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런 이야기는 그 시대의 권력이 무엇을 중요시했는지, 어떠한 삶의 양태들을 강요했는지, 그리고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란 어디인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Continue Reading →

오자키 테츠야의 「현대미술이란 무엇인가」

이런 비슷한 제목의 책이 전에도 있었다. 테리 스미스(Terry Smith)의 「컨템포러리 아트란 무엇인가」. 꽤 많이 팔린 책이기도 하다. 표지 디자인도 은근히 비슷하다. 노린 것 같다. 제목도 사실상 같다. ‘현대미술’이나 ‘컨템포러리 아트’나 일반적인 용례상 같은 시기와 대상을 가리킨다. 다른 점이 있다면, 테리 스미스는 좀 더 이론적으로 고찰하는 편이고, 오자키 테츠야는 현장 중심의 접근에 가깝다. 그런데 현장 중심의... Continue Reading →

캐서린 스푸너의 「다크컬처」

Catherine Spooner, Contemporary Gothic 오늘날의 유령은 어디에? 헌책방의 진정한 의미는 책값의 절약 같은 단편적인 효과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보다는 의외성의 미학이라고 보는 편이 옳다. 쿰쿰한 서고가 천장까지 닿아 있고, 누리끼리한 책들은 책장에서 미어져 나와 복도까지 장악한다. 사람의 공간에 책을 둔 것이 아니라 책의 공간에 사람이 제멋대로 침입해 굽이굽이 유랑하는 맛이다. 책들은 못내 겨우 사람 하나 비집고... Continue Reading →

김상근의 「삶이 축제가 된다면: 여행자를 위한 인문학」

김상근 교수의 ‘여행자를 위한 인문학’ 시리즈 두 번째 편이다. 첫 번째는 로마였고, 이번에는 베네치아, 세 번째는 역시 피렌체다. 이번 편만 제목 짓는 방식이 좀 다르다. 도시명이 표제에서 빠졌다. 이런 식이라면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할 때 다소 손해를 보겠는걸? “축제”라는 단어 자체를 그대로 “베네치아”와 등치시켰다고도 볼 수 있겠다. 구성은 전작과 같다. 장소 하나를 정해 놓고, 거기에 얽혀... Continue Read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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