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exa Wright, Monstrosity: The Human Monster in Visual Culture “괴물성은 사회적, 정치적 문제를 나타낼 필요성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개념이다.” 130p 눈에 보인다면 증거가 아니다. 인간은 언제부터 괴물을 묘사했나? 기이한 형체, 압도적인 힘, 오감으로 전해지는 불쾌함, 기묘한 혼종성, 위협적 존재감 등으로 버무려져 실존적 공포로 다가오는 존재가 괴물이라면, 인간이 괴물을 묘사하지 않은 시절은 없을 것이다. 인간이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Continue Reading →
스탕달의 「파르므의 수도원」
Marie-Henri Beyle (Stendhal), La Chartreuse de Parme 수도원에 갇힌 가능성 헌책방에서 작은 양장 소설 1, 2부가 나란히 꽂혀 있는 것을 보고 저절로 손이 갔다. 「파르므의 수도원」이라길래 비밀스러운 공간을 둘러싼 사랑과 음모에 관한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그 수도원은 작품 내내 등장하지도 않는다. 수도원은 주인공 파브리스 델 동고가 질곡의 세월을 모두 보내고 스스로 유배되어 생을 마감하게 되는 곳이다.... Continue Reading →
KBS 전국노래자랑 진천군편, 예심
레거시 미디어의 종말이 가까웠지만, 공영방송 KBS의 위상과 ‘전국노래자랑’의 브랜드 가치는 건재하다. 전국노래자랑의 시계는 최첨단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애써 거스르며 여전히 일요일 정오를 지배하고 있다. 이 왕좌가 언제까지 버텨줄지는 모른다. 최근 회차를 보니, 아니나 다를까 불안불안하다. 이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유튜브로 ‘맞춤형’ 트로트 영상을 보는 시대다. 이 프로그램이 완전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전에 나도 한 번쯤은 탑승해... Continue Reading →
은유의 「쓰기의 말들」
순천역 부근의 어느 책방에서 이 책을 발견했는데, 주르륵 훑어보자마자 저자와 나의 공통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일단은 나도 문장수집가다(11p). 태산 같은 통찰과 사유를 끌어낼 수 있는 단 한 문장의 힘을 알기에, 여기저기서 집착적으로 모아왔고, 이 개인적 공간에도 공개해 두었다. 이 홈페이지 유입의 일등공신이다. 방문자들이 여기서 퍼간 문장들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는 알 턱이 없지만, 그저 도움이 됐기를 바랄... Continue Reading →
박지나 개인전, 「동쪽에서 뜨는 달」 展 (디스위켄드룸)
1960년대 이후 동시대 미술은 개념주의 기치 아래 탈매체화를 향해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눈에 드러난 한낱 외형에 허비할 시간이 없다. 붓칠 하나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한 작가는 시대착오적인 장식가로 오해받기에 십상이다. 어떻게 보이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말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런데 중요한 건 개념이라고 호언장담하는 작가들에게 진짜로 묻고 싶은 것은, 당신의 그 개념이 외형을 모두 포기할 만큼... Continue Reading →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국립중앙박물관)
메타 경험과 복원 일찍부터 장대비가 퍼붓던 평일 오후였음에도 정말 많은 관람객이 전시장을 찾았다. 내셔널갤러리의 이름값은 톡톡히 하고 있었다. 바로 직전 합스부르크 전도 예년 같았으면 1년에 한 번 정도 할 법한 블록버스터급 서양미술 특별전이었는데, 그런 전시를 이례적으로 연속 편성한 셈이다. 그럼에도 다시금 흥행 사례를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순연되었던 전시들이 최근 몰리게 된 것인지, 아니면 국제미술계에서... Continue Reading →
최태훈 개인전, 「필드 field」 展 (갤러리 P21)
이면과 단면 경리단길의 수많은 카페와 레스토랑 사이에 P21이라고 적힌 흰 깃발이 나부낀다. 갤러리 P21은 P1과 P2라는 서로 이어지지 않는 독립된 두 공간을 아우른다. 코딱지만한 P1에는 친절한 관리자가 상주하고 있고, 무인으로 상시 운영되는 P2는 전시공간 자체가 P1보다 조금 더 크다. 예술과 무관한 전이지대로서 와인바 하나를 사이에 끼고 분리된 두 공간은 ‘따로 또 같이’라는 운영 전략을 취하고... Continue Reading →
움베르토 에코의 「제0호」
Umberto Eco, Numero Zero 그의 소설에 대한 첫 기억은 ‘좌절’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0년도 전에 「장미의 이름」을 읽다가 포기했기 때문이다. 핑계를 대자면 일단 어려운 이름이 너무 많았고, 초반의 전개는 너무 느렸으며, 고색창연한 문체도 까다로웠다. 더 정확하게는 인쇄본이 아닌, e북으로 그 작품을 읽으려 했던 오만함이 문제였다. 그것도 최초의 ‘아이패드 미니’로! 그 조악한 디스플레이로 에코를 맞이하려 했으니 얼마나 오만한가!... Continue Reading →
분노사회에서 살아남는 법
https://youtu.be/Ry6nll1E8X8 이제는 인정할 때가 되었다. 우리는 분노사회에 살고 있고, 우리의 이웃은 절대 선하지 않다. 아니, 그가 선한지 악한지 알 수가 없다. 나와 눈을 마주친 저 사람이 나처럼 선하고 적의 없는 마음이길 바라지만, 그렇게 믿고 싶지만, 정말 그러하다고 확신할 방법은 없다. 완벽한 불가지의 영역이다. 이 세상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고, 그렇다면 나 이외에... Continue Reading →
「롤리타」로 돌아보는 나, 그리고 “우리”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 Vladimir Nabokov(1955), Lolita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의 양심이란 아름다움을 즐긴 대가로 치르는 세금 같은 것” 450p “나에게 소설이란 심미적 희열을, 다시 말해서 예술(호기심, 감수성, 인정미, 황홀감 등)을 기준으로 삼는 특별한 심리상태에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는 느낌을 주는 경우에만 존재 의미가 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500p) 1. 들어가며 어떤 텍스트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대명사가 생성되었다면, 그 텍스트는... Continue Read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