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롤랜즈의 「철학자와 달리기: 중년의 철학자가 달리면서 깨달은 인생의 지혜와 성찰」

Mark Rowlands, Running with the Pack “달리기는 기억하는 방법이다. 정신이 기억할 수 없는 것을 육체가 기억하는 방식이다.” 62p “달리기는 사유가 들어오는 열린 공간이다.” 90p   이번 달에 하프마라톤을 나가기 위해 7월 말부터 지금까지 틈틈이 훈련하고 있다. 뛰다 보면 느끼는 것들이 있다. 막막했던 것도 막상 하다 보면 금방 는다, 세상에는 밤낮으로 열심히 운동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심폐지구력을 늘리는 것보다 국소적 신체 부위들의... Continue Reading →

조새미의 「뮤지엄 게이트」

감상적 여행기의 한계 저자가 나름 전공한 연구자이길래 박물관학이나 큐레토리얼에 관한 연구서인 줄 알고 무턱대고 집어 든 내 잘못이다. 연구서가 아닌 여행기다. 저자 본인이 체류했던 미국, 영국, 일본 등지의 뮤지엄들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으로 가득한 책이다. 감상적 여행기라는 정체성은 각 챕터의 서두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뮤지엄의 대표작 한 점이 저자에게 친군하게 말을 거는 식으로 시작하는데,... Continue Reading →

분노사회에서 살아남는 법

https://youtu.be/Ry6nll1E8X8 이제는 인정할 때가 되었다. 우리는 분노사회에 살고 있고, 우리의 이웃은 절대 선하지 않다. 아니, 그가 선한지 악한지 알 수가 없다. 나와 눈을 마주친 저 사람이 나처럼 선하고 적의 없는 마음이길 바라지만, 그렇게 믿고 싶지만, 정말 그러하다고 확신할 방법은 없다. 완벽한 불가지의 영역이다. 이 세상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고, 그렇다면 나 이외에... Continue Reading →

[에세이] 기호와 호흡: 이채은의 2022년 회화

다양성이 시대적 화두가 된 세상에서, 그것을 거스르려는 조그마한 움직임일지라도 조리돌림을 각오해야 한다. ‘민주주의=절대선’이라는 제국주의적으로 강요된 등식에 다양성이 무비판적으로 침습되면서 단순한 의견이나 취향의 표명마저도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자연스럽게 비평의 영토까지 침범한다.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비평은 편파적이고 열의에 차고 정치적이어야 한다.”[1]는 것이 기존의 패러다임이었다면, 이제는 “모든 것에 좋은 이유가 하나 이상은 있을 것이다. 고로 무슨... Continue Reading →

[에세이] 혼돈에서 사후생으로: 양은영의 2022년 회화

예술가는 자신의 눈으로 본 세상을 작품의 형태로 투사한다. 그 작품은 미술계, 혹은 그 울타리 밖 더 넓은 세상의 한 가운데에 놓여 소통의 가능성을 만들어 낸다. 작품이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는 그 소통이 성공할지, 혹은 실패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많은 예술가가 그 성공의 여부에 관심이 없다는 듯 짐짓 초연한 표정으로 작업실을 지키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소통의 가능성이 완전히... Continue Reading →

손택, 키이우, 이태원 : 타인의 고통

“부디 다 같이 슬퍼하자. 그러나 다 같이 바보가 되지는 말자.”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Susan Sontag(2003), Regarding the Pain of Others 무더위 속에서 이 책을 읽고 이제야 글로 정리한다. 진작 썼어야 하는 데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어느덧 낙엽이 쌓인다. 먹고 살기 위한 글에 쫓기다 보면 사적으로 쓰는 글도 일처럼 느껴진다. 미뤄뒀던 글감이 어떤... Continue Reading →

린다 노클린의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

Linda Nochlin(1971), Why Have There been No Great Women Artists? 가리키는 곳을 보지 말고 그 손가락을 분질러라 「아트뉴스」 紙 1971년 1월호에 실렸던 에세이다. 미술사와 미술비평을 조금이라도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글이다. 그만큼 많이 인용된다. 만약 본인이 미술사를 공부했는데도 린다 노클린(Linda Nochlin)이라는 이름이 생소하다면 자신의 식견이 68혁명 이전 어딘가, 심지어 반 고흐의 노란집 어느... Continue Reading →

아즈마 히로키의 「약한 연결: 검색어를 찾는 여행」

누가 몰라서 못합니까? 미디어는 인간이 생각하는 방식을 넘어 뇌의 인지 구조 자체를 바꾼다. 인간의 신경기전은 언어, 문자, 라디오, TV,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대대적으로 변화했다. 이 변화는 한 사람의 생애에 여러 차례 나타날 수가 없고, 한 번 나타나더라도 대단히 점진적이므로 체감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 변화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유선전화로 친구 집에 전화해서 친구 부모님께 아무개... Continue Reading →

[에세이] 전시장의 토르소: 비평적 전시문화를 위하여

"시간이 흐르고 초기의 매력이 점점 약해지다보면 언젠가는 아예 새로 태어나야 하는 때가 온다. 한때 아름다웠던 것이 모두 떨어져나가고 작품 그 자체만 남아 폐허의 형태로 서 있게 되는 때다."1) "진짜 귀중품들은 아주 꼼꼼한 탐사를 통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모든 과거의 연관관계로부터 벗어난 상들이 일종의 귀중한 물건들로─수집가의 갤러리에 있는 파편 혹은 토르소─ 나타나는 곳은 현재 우리의 성찰이... Continue Reading →

데이브 히키의 「보이지 않는 용: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데이브 히키의 전복적 시선」

Dave Hickey, The Invisible Dragon 아름다움은 죄가 없다. "아름다운 작품은 미덕 없이도 살아남는다. 아름다움 없이 미덕만 있는 작품은 그러지 못한다." 155p 1. 앵? 반 고흐? ㅎㅎㅎ^^;; 얼마 전 한 작가의 개인전 오프닝을 관람하고 뒷풀이에 참석했다. 아무래도 작가들이 모이면 작품과 작업 이야기가 오가게 마련이다. 대화가 이어지다가 ‘예술가들이 좋아하는 예술가’라는 흥미로운 주제에 이르러 모두가 ‘빵터지는’ 순간이 있었다.... Continue Read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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