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롤랜즈의 「철학자와 달리기: 중년의 철학자가 달리면서 깨달은 인생의 지혜와 성찰」

Mark Rowlands, Running with the Pack

“달리기는 기억하는 방법이다. 정신이 기억할 수 없는 것을 육체가 기억하는 방식이다.” 62p

“달리기는 사유가 들어오는 열린 공간이다.” 90p

 

이번 달에 하프마라톤을 나가기 위해 7월 말부터 지금까지 틈틈이 훈련하고 있다. 뛰다 보면 느끼는 것들이 있다. 막막했던 것도 막상 하다 보면 금방 는다, 세상에는 밤낮으로 열심히 운동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심폐지구력을 늘리는 것보다 국소적 신체 부위들의 불편감을 해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달리기는 지루한 과정이고 뭔가 생각할 주제를 요구한다, 등등

다른 사람들은 달리는 동안 무엇을 주로 생각하는지 궁금한 마음에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중년의 철학자가 뛰게 된 과정, 그리고 뛰면서 느낀 바를 담담하게 회고했다. 뭔가 대단한 사유가 펼쳐질 것 같은 기대감을 심어 주기 위해 ‘철학자’라는 신분을 전면에 내걸었지만, 아주 깊은 사유나 철학적 배경지식까지 깊숙이 들어가지는 않는다.

요약하자면,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적 행위는 인생에서 부차적일 뿐이라는 것이다. 저자도 키우던 늑대와 개의 힘을 빼놓을 목적으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달리기의 심장박동에 서서히 녹아들게 되었고, 이제는 달리는 행위 그 자체가 삶의 목적이자 놀이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달리는 과정을 통해 평소에 도달할 수 없었던 사유의 지점들에 닿게 되었고, 자발적 즐거움으로서 달리기의 가치를 인식하게 되었다. 인생에서 달리기의 위상 변화가 시사하는 바는, 짧은 인생 동안 궁극적 목적의 수단이 되는 부차적 가치들에 연연하지 말고, 그 자체가 행복이자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있는 대상에 온전히 집중하며 그것을 사랑하는 시간들로 인생을 채우라는 것이다.

좋은 말이다. 왜 아니겠는가. 일이든, 돈이든, 지위든, 명예든 더 행복한 삶을 향한 여정에서 필요한 수단들에 불과하다. 순간순간에는 그것이 전부인 양 집착하며 아등바등 목을 매지만, 한 걸음만 떨어져서 보면 다 잘먹고 잘살자고 하는 일에 불과하다. 그것이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어차피 한정된 자원의 한계 속에서 막대한 자원을 타고나지 못한 우리 같은 평범한 대중은 치고받고 경쟁하며 한낱 수단들에 목을 맬 수밖에 없겠지만, 그럼에도 잠시 숨을 고르며 더 큰 목적성을 생각할 시간을 가져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사유의 깊이 면에서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아등바등하더라도, 왜 그래야 하는지, 그것 외에 대안은 없는지, 이러한 현실이 누구의 탓인지 정도는 스스로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일순간의 회피적 쾌락도 인생의 목적이 되지 못한다. 진짜 행복은 그 행위 자체를 놀이처럼 즐기며 몰입한 순간에 얻어지는 것이지, 일순간의 괴로움과 번뇌를 잊기 위해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회피적 쾌락 추구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단기적 쾌락 추구 과정에서 어느 한쪽 귀퉁이에 저당 잡아 놓은 고민과 번뇌는 분명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더 큰 눈덩이가 되어 삶 전체를 집어삼킨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쇼츠의 파도에 몸을 맡긴 사람들이 그 콘텐츠를 정말 즐겨서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 시간의 고통을 잊게 해줄 시각적 환각제가 필요할 뿐인데, 거대 플랫폼 기업의 알고리즘이 그 요구에 적절히 응하고 있을 뿐이다. 문제가 있다면 회피하지 말고 직시하면서 방도를 찾아야 한다. 답은 이미 내 안에 있다. 달리기가 직접적으로 그 답을 암시하지는 않으나, 달리기로 촉진하는 독특한 신체 리듬과 강제적 지루함은 내 안의 답을 의식의 수면 위로 끌어 올리는 여러 기폭제 중 하나 정도는 될 수 있다.

골자는 충분히 이해했으나, 저자가 자전적으로 밝힌 달리기 동기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늑대와 개들이 집을 다 부숴 놓을까 봐 달리기 시작했다는 데… 애초에 왜 감당도 안 될 늑대를 집에 들이셨나요? 베스트셀러였던 전작 <철학자와 늑대> 출간을 애초부터 염두에 두었던 것은 아닌가요? 언젠가 그가 한국에서 개최하는 마라톤에 출전하게 된다면, 나도 거기 출전해 한 번 물어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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