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런스(Silence, 2016)

이 영화의 시놉시스를 접했을 때는 그 유명한 <미션(The Mission, 1986)>과의 상관관계를 고찰해야 할 것 같았지만, 실제로 보고 나니 ‘칸의 여왕’을 탄생시킨 <밀양(2007)>이 더 많이 생각난다. 가장 중요한 순간,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던 그 순간에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공통점 때문이다. <밀양>에서 하나님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기 보다는 오히려 묵살하고, 배신한다. 기대했던 방향과 철저하게 다른 방향으로 주인공의 고통을 상기시키고 무력감을 안겨준다. 침묵보다 더욱 적극적인 형태로 고통을 주는 것이다. 반면 <사일런스>에서는 그 제목을 충실히 따라 침묵한다. 중간중간에 하나님의 목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정작 필요로 했던 순간에서는 들리지 않으며, 들렸던 그 목소리마저 하나님의 목소리인지 그저 로드리게스의 내면의 목소리일 뿐인 것인지 분간할 수 없다.

영화가 실제로 침묵(음소거)을 사용하는 방식은 기법적인 측면에서 흥미롭다. 처절한 고통과 갈등의 순간에 음향을 배제하면 오히려 시각적 메시지는 더욱 강하게 부각되면서 수용자의 마음을 때린다. 그리고 음소거가 다시 해제되면 잊혀졌던 청각의 중요성이 상기된다. 결국 영화라는 매체는 시청각을 모두 활용하는 종합예술이기에 하나를 배제하면 집중과 강조의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주제의식을 보다 명확하게 상기시키는 이러한 기법이 몰입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적절하게 사용되었다.

주인공 로드리게스 신부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스스로를 그리스도와 대응시킨다. 유다에게 배신당한 그리스도, 피눈물을 흘리며 십자가의 숙명 앞에 고뇌했던 그리스도, 하지만 인류의 구원을 위해 기꺼이 그 십자가를 감당해야 했던 그리스도. 로드리게스는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의 마지막 순간들과 유사한 지점들을 발견하고, 심지어 개울가에 비친 자신의 상에 그리스도를 투영한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어떻게 대처했을까? 이 벼랑 끝에서 그 분이라면 무엇을 선택했을까? 답 없는 질문 속에서 절망하지만, 배교자 페레이라는 스스로를 그리스도에 견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라고 말한다. 신앙을 갖는 것 자체가 죽음을 의미하는 그 땅의 크리스쳔들은 그런 투영 조차 불가능한 얕고도 맹목적인 신앙을 품고 순교하기 때문에…

나는 예전부터 극한의 상황 속에서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인물의 이야기에 끌렸다. 우리는 해방 직후, 어떤 선택이 내 목숨을 지켜줄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리고 그 선택이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어느 한 진영을 선택해야만 했던 사람들의 후손이다. 심지어 한 밤 중에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서 좌인지 우인지 묻고, 자신들과 다른 진영일 경우 여지 없이 죽창으로 처형하거나, 알몸으로 동네를 돌리며 고문하던 시대도 있었다고 한다. 그 이전에는 반일과 항일 사이에서 선택해야 했던 사람들이 있다. 자신과 가족의 목숨을 건 선택 끝에 누군가는 만주 벌판에서 이름 없이 떨다 사라져야 했고, 누군가는 민족의 반역자라는 칭호를 받으면서도 가옥과 토지를 지켜내 후손에게 물려주었다. 나는 이런 선택의 순간에 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 읽으며 “과연 나라면 이 상황에서 무엇을 선택했을까?”를 자문했다. 애석하게도 그 때마다 내면의 목소리는 썩 바람직하지 않은 결론을 도출했다.

정신이 육체의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 차마 상상할 수 없는 육체의 고통 속에서도 숭고한 정신을 꺾지 않았던 그 존재의 원천은 무엇일까?

영화 <사일런스>는 꽤 오랜 시간동안 내가 잊고 지냈던 바로 그 화두를 정말 오랜만에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나의 내면의 목소리는 이번에도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답변을 내놓는다.

+

앤드류 가필드가 최근작 두 작품에서 맡은 두 인물이 묘하게 겹쳐진다는 점이 흥미롭다. <핵소 고지(Hacksaw Ridge, 2016)>와 <사일런스>, 두 작품의 주인공 모두 종교적 신념이 강하고, 세상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원칙을 고수한다. 그리고 절체절명의 순간에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들리지 않는다. <핵소 고지>에서의 “I can’t hear you”는 <사일런스>의 주제와 너무도 정확히 부합한다. (소오름) 결국 정답은 스스로 찾는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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