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자유가 될 때: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 展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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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습기를 온 몸으로 흡수 한 것처럼 몸이 무거웠지만, 그래도 서울에서의 귀한 주말을 침대에서 헛되이 보낼 수는 없다는 절박함으로 길을 나섰다.

바쁘고 피곤해서 어떤 전시를 볼 것인지 진지하게 성찰하지 못했다. 매우 입문자스럽게 포털사이트에 “미술 전시”라는 얄궂은 검색어를 입력한 후 친절하게 떠먹여주는 리스트에서 내 마음을 잡아 끄는 것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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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초현실주의’라니, 이 얼마나 생경한 조합인가? 찬란했던 고대 미술의 원류,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시지각 세계를 표현했던 이집트의 후손들이 만들어낸 아방가르드적 세계가 어떤 모습인지 궁금증을 자아냈다. 어쩌면 내 마음속에, 고전고대 이후의 이집트 미술 ‘따위’가 어떤 미술사적 가치를 지닐리만무하다는 오만함이 자리잡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설마 이집트에도 초현실주의 운동이 있었단 말이야?’ 라는 불손한 식민주의자의 마음을 한켠에 품고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을 찾은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은 언제 찾아도 좋다. 인근 빌딩들의 바가지 주차요금만 배제한다면 참 좋다. 온갖 지리멸렬한 갈등으로 점철된 중심가 광장 바로 옆에서 예술, 전통, 자연,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단돈 3천원으로 양질의 전시와 궁궐 산책을 곁들일 수 있다는 점이 더 좋다.

게으른 토요일 정오에 찾은 덕수궁은 청아한 새소리와 빗물을 머금은 능소화로 소박하게 치장되어 있었다. 게릴라성 집중호우에 대한 두려움으로 관광객의 발길은 잦아든 상태였고, 비둘기와 참새들이 주인노릇을 하고 있었다. 대기에는 장마철 습도만큼이나 묵직한 여유가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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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은 사람이 없었다. 브로셔를 먼저 죽 읽어 보았다. 미술에 대한 현학적 접근은 예술에 대한 시야를 가리지만, 텍스트 집착을 숨길 수는 없다. 요약하자면, 이집트의 초현실주의도 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인한 인간성의 상실, 현실 세계로부터의 도피, 내면으로의 침전 등 태동 원인에 있어서는 유럽 미술계와 맥을 같이 하고 있었다. 또한 이집트 예술가들도 유럽 본토에서 앙드레 브르통을 중심으로 전개된 초현실주의 선언의 직접적인 영향 아래에 있었다. 앙드레 브르통과 직접적인 인연을 맺고 있던 조르주 헤네인은 젊은 예술가들을 규합하여 이집트만의 독특한 사회문화적 배경을 녹여낸 초현실주의 운동을 주도하였고, 자국의 예술적 지평 확대를 위하여 노력했다. 그러한 변화의 결과물들이 본 전시에 다수 출품되었다.

이번 전시에서 갖게된 첫번째 의문점은 ‘이 작품도 초현실주의?’ 라는 질문을 하게 하는 작품들이 다수 출품되었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사실주의적, 혹은 야수파적 거친 터치의 인물화로 보이며, 그것이 현실 세계의 엄밀한 재현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내면적 환상 또는 상상을 통해 재해석된 세계라고 보기에는 무리인 작품들이 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두번째 의문점은 지리적 특성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광야를 연상케하는 회색조, 카키 또는 황토빛의 둔탁한 색감이 전반적인 작품의 톤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색조의 비비드한 작품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보여주는 컨템포러리 이집트 미술이 마지막 세션에 일부 배치되었는데 거기서 발견한 파랑, 빨강, 노랑의 원색조가 고요했던 망막을 깨뜨리는 것 같았다. 그 정도로 작품들의 전반적인 톤은 회색조로 다운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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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하지는 않지만 이번 전시의 관련 보도에서 이 두 가지 의문점을 일부 해소하였다(관련 보도). 이집트에서 초록은 신성의 상징이라고 한다. 청록색으로 채색된 인물은 그 자체로 신성을 지닌 초현실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이런 생각도 해본다. 일찌기 미디어가 발달했던 유럽에서의 ‘초현실’은 결국 현실 세계에서 볼 수 없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므로, 시각적 충격의 역치 수준이 이집트에서의 그것보다 더 높지 않았을까? 우리가 살바도르 달리를 보며 충격적인 이미지로 느끼며 심리적으로 각인하는 자극 수준은 청록색의 인물을 바라보던 당대 이집트 관람객의 자극 수준과 비슷하지 않을까? (이런 추정도 식민주의자의 오만일지 모른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다수 그림 속에서 묘하게 이집트 고대 벽화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 인물의 자세들이 등장한다는 점도 언급하고 싶다. (물론 내 선입견 때문에 그렇게 지각하는 것 일 수도 있다.)

전시의 구성 면에서, 연대기적으로 구성된 세션 구획은 친절했다. 세션 내에서 다시 세부적인 연대기를 대형 판넬로 제시하고, 시기별로 중요한 사료들을 실물로 배치해 놓았는데, 현학적인 관람객의 지적 욕망을 적절히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좋은 콘텐츠였다. 사진을 못찍게 해서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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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문화와 내가 속하고 자란 문화의 어마어마한 물리적/심리적 거리 차이 때문일까. 안타깝게도 이번 전시는 내 마음에 큰 울림을 주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화가 중심으로 관람을 이어가고 싶으나, 인명 자체의 생경함으로 인하여 뇌신경망 안에서 거부반응이 일어났다.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새로운 미술세계를 슬쩍 넘겨다 보았다는 알량한 의미 정도를 애써 주머니에 꼬깃꼬깃 챙겨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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