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오펀스(Orphans,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고아는 부모가 없는 아이다. 연약하기 짝이 없는 아이에게 부모가 없다는 것은 철저한 고독, 굶주림, 역경을 의미하며, 심지어는 죽음의 그림자와도 늘 손을 잡고 다닌다는 것을 의미한다. 태어난지 3시간만에 뛰어다니는 노루와는 달리, 영장류로서의 인간은 가련할 정도로 나약한 신체를 지닌채 세상과 조우하며, 그로 인해 몸과 마음의 발달에 있어서 부모에게 의존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고아의 삶이란 제3자들이 올리버 트위스트 속의 낭만적이기까지 한 ‘고난 속 희망’을 떠올리며 수이 입에 올릴 수 있는 주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 ‘오펀스(Orphans)’는 그 제목이 시사하듯 고아의 삶을 이야기한다. 연극은 사연 많은 세 남자ㅡ피에 가까운 일을 하는 부유한 중년 신사 헤롤드, 하루살이 처럼 살아가는 거리의 사내 트릿, 조금 모자라지만 순수하고 따뜻한 필립ㅡ가 형제, 그리고 납치범과 인질이라는 기묘한 인연으로 얽혀 함께 살아가면서 겪는 갈등과 성장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극은 이타심에 대한 사유를 이끌어 낸다. 고아라는 것 말고는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세 사람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려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 의도들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듯 하다. 헤롤드가 필립에게 보여준 더 넓고 새로운 세상을 제외하면.

진정한 의미의 이타심은 배려의 대상이 되는 타자의 시선에서 출발해야 한다. 내가 주고 싶은 것이 아니라 상대가 받고 싶은 것, 그리고 궁극적으로 행복해 할 만한 것을 주어야 한다. 트릿은 동생 필립을 위해서 생과 사의 경계를 오가는 거리의 삶으로 자신을 내몰아야만 했다고 강변하지만 필립이 원하는 것은 안전함과 안락함이 아니라 더 넓은 세상, 그리고 자아의 발견이었다. 헤롤드는 트릿에게 부와 신사도를 선물했지만 그가 원하는 것은 인정과 격려였다. 엇갈린 선물과 기대 속에 누군가는 좌절하고 분노했다.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고 갈등하는, 가족 아닌 가족이 되어 버린 세 남자의 기대와 좌절은 가족이라는 존엄하고도 애증어린 이름 앞에 너무나도 쉽게 상처 받는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어떻게 교류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일깨움을 준다.

작품의 서사는 신선했고, 캐릭터의 조화도 훌륭했다. 특히 조명을 사용하는 방식은 시대와 감정, 분위기를 탁월하게 드러내주었다. 하지만 감정의 몰입을 방해하는 작위적인 설정과 연기력의 한계는 존재하였다. 특히 가장 격정적이고도 폭 넓은 감정을 묘사해야 하는 트릿의 고충은 이해하나, 그의 감정 변화에 공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가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들은 구태의연하고 단선적이며, 심지어 소품을 아끼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이는 형태여서 관람객의 몰입을 방해한다. 그 문제가 각본, 연출, 연기 중 정확히 무엇에서 기인한 것인지 파악할 수 없었다는 점은 나의 한계였다.

극장을 나서며, 어쩌면 우리 모두는 고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존재할리 만무한 절대자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늘 목말라 하면서도 삶이라는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불비한 육신으로 세상에 홀로 맞서는 자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깨를 주물러주며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내줄 누군가가 있기에 우리 생의 전쟁은 그나마 치뤄볼만한 것이 되는지 모른다.

연극 오펀스(Orphans, 대학로 아트원씨어터)”에 대한 답글 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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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지막 문단에사 사회생활을 하는 생활인으로서의 고단함이 느껴지는 한편, 트릿의 감정표현이 “구태의연했다~” 이부분은 연극을 직접봐야 알 것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순수하게 어떤 표현을 했고. 어떤 연기를 했길래 그런 판단이 나왔는지 궁금해서요 ㅎㅎㅎㅎ

    4문단에서 말하는 “이타심”의 개념에 대해서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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