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국립미술관 테이트 명작전─NUDE(소마미술관)

올 상반기 최고 기대 전시가 ‘모리스 드 블라맹크 展’이었다면, 하반기 최고 기대 전시는 ‘테이트 명작전’이었다. 비록 테이트 미술관의 무수히 많은 근현대 명작 중에서 극히 일부분일 뿐이겠지만, 한국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거장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즐길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주제가 “누드”라니. “누드”라니. 더 이상의 설명은 사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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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 아니 누군가의 알몸을 보고 싶은 욕구는 그 원천을 유추하는 것 조차 무의미할 정도로 인간의 본원적인 욕망, 그 자체이다. 물론 누드 중에는 보고 싶지 않은 흉물스러운 것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눈쌀을 찌뿌리며(물론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찌뿌린 것이 아니다) 그 누드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다.

누구나 누드를 보고 싶어 하지만 문명화된 맥락 속에서 누드는 그리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최초의 인류인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누드의 수치를 자각한 이후, 주도면밀한 권력의 억압 기제는 누드가 허용되는 시공간적 맥락을 극도로 정교하게 통제해 왔다.

미술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누드는 오직 신화와 성서 속 네러티브를 전면에 앞세워야만 후원자 및 주문자에게 용인을 받을 수 있었다. 여기서 용인은 안료와 빵을 구할 재원, 그리고 종교재판에 대한 면죄부를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 누드를 표현할 수 있는 네러티브의 원천 자체가 무한정한 것은 아니었으므로, 하와, 밧세바, 수산나, 유디트 등과 같은 ‘누드 전문 모티브’는 우려먹을대로 우려먹은 사골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어떻게든 억지로라도 스토리텔링을 완성하면 누드를 그리고 감상할 수 있었으나, 육욕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는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누드는 귀족, 왕족, 부르주아의 침실 뒤편 은밀한 장막 뒤로 여전히 감추어져 있었다.

마네가 1863년 낙선전에 <풀밭 위의 점심식사>를 출품한 이후 누드의 지위는 바뀌었다. 이제 누드는 구태의연한 인과관계 없이 당당히 라벨을 달고 홀로 설 수 있게 되었고, 찬양과 분노를 동시에 애워싸고 무대의 정중앙에 오르게 되었다. 르누아르의 빨갛고 통통한 육체, 드가의 마리오네뜨 같은 민첩한 육체, 보나르의 촉촉한 육체, 피카소의 갈가리 분해된 육체, 마티스의 일그러진 총천연색 육체에 이르기까지 누드는 미술사의 변곡점을 이끌어낸 동력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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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展을 보기에는 더 없이 좋은 청명한 가을 날씨였다. 이 날씨는 누드전을 찾는 관객에게 오해를 품지 않게 해준다. 모처럼 맞은 기나긴 연휴의 정점에서 자연과 문화를 느끼기 위해 손에 손잡고 나선 가족과 연인들에 뒤섞여 소마미술관에 입장했다. 전시는 역사적 누드, 사적인 누드, 모더니즘 누드, 사실주의와 초현실주의 누드, 표현주의 누드, 에로틱 누드, 몸의 정치학, 연약한 몸 등 8개의 세션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각 세션을 구성하는 작품들은 절대 풍부하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억지로 짜맞춘 느낌은 들지 않을 정도의 개연성은 갖추고 있었다.

인상적인 작품 몇 가지를 소개하면,

1. 허버트 드레이퍼 – 이카루스를 위한 애도(1898)

폭이 182.9cm로 왠만한 운동선수 키와 비슷한 대형 작품이며, 이번 전시 브로셔의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일단 크기에서 사람을 압도하는 웅장함과 노랑, 주황, 갈색의 낭만주의적 색체는 이카루스의 무모한 도전에 대한 냉소 보다는 안타까운 공감의 정서를 유도하고 있다.

그의 날개는 신화와는 달리 밀랍과 거리가 먼 독수리의 그것을 연상시키며, 좌상단에서 우하단으로, 즉 하강의 방향으로 시선을 유도한다. 그러한 까닭에 추락한 존재의 아름답고 처연한 죽음에 자연스럽게 애도하게 한다.

애도하는 세 명의 님프는 한 명의 모델에서 비롯된 형상으로 보이며, 특히 석양을 등지고 있는 두 명의 님프의 머리카락으로 비치는 황금빛 햇살이 실제 역광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미녀를 보는 듯 손에 잡힐 것 같은 생생한 빛으로 묘사되었다.

2. 프레데릭 레이튼 – 프시케의 목욕(1890)

전형적인 고전주의적 누드이다. 여인의 도자기 같은 매끄러운 피부와 신전을 연상케 하는 단순화된 배경은 여체의 아름다움을 더욱 신화적인 숭고함으로 보완한다.

특이한 점은 이 작품을 감싸고 있던 액자가 16세기에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아마 이 작품의 주문자는 기존에 이 액자가 감싸고 있던 오래된 작품을 처분하고 액자와 어울리는 새로운 작품을 원했을 것이다. 노련한 레이튼은 이 액자의 이오니아식 주두를 눈여겨 보고 그 주두가 작품 속에서 반복되면서 안정적으로 어우러지는 구도를 연상했을 것이다. 대가의 감각은 캔버스 표면과 액자의 공통적인 디자인 요소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종합적인 아름다움을 성공적으로 구현하였다.

3. 크리스토퍼 네빈슨 – 몽파르나스 스튜디오(1926)

어둑한 스튜디오에 커튼을 젖히자 한 여인의 뱀처럼 날렵한 누드가 눈에 들어온다. 나는 사람이 아닌 듯, 그 누드를 전지적인 시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방에는 예술적 창작의 흔적들이 난잡한 생활의 흔적과 어우러져 자연스럽고도 친숙한 풍경을 만들고 있다. 그 많은 사물 가운데서 여인이 교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한 마리 검은 고양이 뿐이다. 고양이는 여인의 마음을 알까? 그 외로움을 알까? 이해하는 듯 경멸하는 듯 고양이의 노란색 동공은 조여졌다가 이내 풀어진다. 그 망막에 비친 여인의 형상은 처절할 정도로 아름답고 고독하다.

창 밖의 도시는 여전하다. 늘 차갑고 뾰족하다. 도시는 브라크와 피카소가 설계한 듯 제멋대로 해체되었고, 조르조 데 키리코가 감수한 듯 불합리하다. 하지만 여인은 그 도시의 불합리함에 매혹되어 있다. 연기처럼 불안정한 그녀를 캔버스에 안착시켜줄 화가가 먹고, 마시고, 자고, 부대끼는 공간이어서일까? 그녀의 불비한 육체에서 비너스를 발견했던 섬세한 시선과 부드럽고 촉촉한 손가락을 가진 한 남자와 짜릿한 성애를 나누었던 그 공간을 품고 있어서일까? 째깍째깍. 이제 곧 그가 돌아올 시간이다.

4. 루시안 프로이드 – 헝겊 뭉치 옆에 선 여인(1956)

그의 작품을 한국에서 볼 기회는 정말 드물다. 아마도 고흐나 피카소 보다 보기 힘든 화가일 것이다. 생존화가 최고 경매액 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던 그의 미술사적 업적은 단순히 그의 조부가 만들어 준 아우라의 잔재가 아니다. 그가 평범한 사람들을 꿰뚫어보는 시선은 분명 날카롭다. 영혼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는 수식어는 구태의연하지만 그에게는 그 외의 다른 어구가 떠오르지 않는다. 상처입기 쉬운 영혼들에 대한 적나라한 탐구는 기묘한 불안감을 자극하지만 나도 저런 시선으로 봐주는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율배반적인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비록 한 점에 불과했지만 이번 기회에 프로이드의 진품 유화를 처음 본 것이다. 살결을 묘사하는 터치는 예상했던 것 보다 더 강렬했다. 제롬이나 앵그르의 매끄러운 살결보다 저런 난삽한 살결이 더 실제 같은 생동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실제 인간이 얼마나 불완전한 존재인지, 우리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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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조르조 데 키리코, 스탠리 스팬서 같은 대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어서 좋은 기회였다. 특히 터너와 호크니의 습작 스케치들은 “아니, 그들이 이런 이미지에도 관심을 가졌단 말이야?”라는 의외성의 탄식을 내뱉게 했다. 낭만주의적 풍경화로만 기억되는 터너의 아카데믹한 누드 스케치들을 보면서 미술사 교과서로만 화가들을 이해하려는 태도가 얼마나 단편적이고 위험한 것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삶은 복잡하고 욕망은 더더욱 복잡하다. 스스로 조차 정의하지 못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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