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빙 빈센트(Loving Vincent, 2017)

영화가 시각적 실험에 천착할수록, 서사의 재미와 감동은 반감되기 마련이다. 그런데「러빙 빈센트」는 고흐의 화풍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겨 놓는, 그야말로 영화사적으로 유래 없이 야심찬 실험을 단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재미와 감동을 놓치지 않았다. ‘미술 영화’로 그 비교대상을 한정해 볼 때,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이 실패했던 바로 그 지점에서 성공을 거둔 것이다.

영화는 고흐의 사망 1년 후, 그 죽음에 얽힌 사연들을 되짚어 나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죽음의 비밀을 파해쳐 나가는 주인공이 마음씨 좋은 우체부 조셉 룰랭의 아들인 아르망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은 제작진의 가장 영리한 선택이다. 조셉 룰랭은 개신교 목사 프레데릭 살¹과 더불어 ‘아를 시대’의 고흐를 진정으로 이해해주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유이한 인물이다. 같이 살았던 고갱은 말할 것도 없고, 숙식을 제공해 준 지누 부인 조차도 고흐의 추방에 동조했었던 것을 보면, 끝까지 고흐의 다차원적인 면모를 바라보면서 이해하려고 한 사람은 조셉 룰랭과 프레데릭 살 목사, 둘 뿐이었던 것이다. 고흐는 룰랭 가족의 초대를 받아 같이 식사를 나누며 구성원 전체와 친하게 지냈고, 진심으로 그들을 사랑했다. 마치 가족의 일원처럼 함께 보낸 따뜻한 시간들 속에서 오늘날 너무나 유명해진 조셉의 초상화가 나왔고, 그 부인을 다룬 자장가 연작과 자녀들의 초상화까지 탄생할 수 있었다. 결국 조셉 룰랭의 아들로 주인공을 설정한 것은 가장 깊은 인연을 지닌 사람 중 하나이면서, 한 편으로는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은 것은 아니기에) 가장 사심 없이 고흐를 묵도할 수 있었던 사람을 선택한 것이다. 이처럼 고흐와 가깝고도 먼 존재인 아르망 룰랭은 헐리우드의 공식에 따라 그가 거부했던 운명, 즉 고흐의 비밀을 추적하는 그 과업을 숙명적으로 담당하게 되고 도리어 점차 빠져들기까지 한다. 그 과정에서 고흐에 대한 호불호가 없는 일반 관객들도 그의 심적 동요에 자연스럽게 동조할 수 있게 된다. 심지어 그가 잘 생기고, 싸움 잘하고, 여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커뮤니케이터라는 점까지 헐리우드의 주인공 공식에 부합한다.

고흐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고양된 감정과 단편적인 단서들에 얽매이지 않는 균형잡힌 시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미술사 시청각 교재’로서의 의미도 갖는다. 관객의 대부분은 고흐를 사랑하지만, 정작 그에 대해서 면밀한 읽기를 시도한 적은 없는 입문자들일 것이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광기에 싸인 비극적 천재 예술가라는 아우라를 형성한 어빙 스톤의 소설 「삶을 향한 열망(Lust for Life; 빈센트, 빈센트, 빈센트 반 고흐, 1934)」과 1956년 커크 더글러스 주연의 영화화(Lust for Life; 열정의 랩소디)는 현재 우리가 각자 그리고 있는 고흐의 이미지 대부분을 창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문학적/낭만적으로 해석된 고흐에 대한 이미지가 견고해 질수록 그의 실체에 다가가는데 있어서 견고한 장애물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한 사람을 깊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과 많은 대화를 나누어야 하지만, 그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그에 대한 이야기라도 최대한 많이 들어야 한다. 「러빙 빈센트」는 이브 탕기, 닥터 폴 가셰와 그의 딸, 아들린 라부 등 자칫 잊혀지기 쉬웠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균형있게 다루면서 고흐의 다차원적인 인격체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려고 노력했고, 그 증언들을 통해 관람객이 스스로 진실에 다가설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영화팬들 중에는 결론을 내주지 않는 영화에 대해서 불친절하다며 못마땅해하는 이들도 많지만, 적어도 그가 고흐팬이라면 이러한 구성을 이해하고 만족할 것이다.

제작진이 사실관계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고민과 연구를 거듭했는지는 매장면 마다 명백히 드러난다. 특히 고흐가 노란집 앞에서 고갱을 위해 새로 주문한 프로방스식 팔걸이 의자를 들어 보이며, 그 보기 드문 미소를 내뿜는 장면의 디테일은 놀라웠다. 고흐는 아를에서 예술가들의 공동체를 만들 기대에 부풀었고, 오랜 세월 가슴 속에 품고 있었던 정주 욕망이 곧 실현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고흐의 의자는 팔걸이가 없는 소박한 밀짚방석의자였으며, 고갱의 의자는 더욱 안락하고 품격 있는 프로방스식 팔걸이 의자였다. 노란집의 대조되는 두 의자는 고흐의 겸손한 자세와 공동체적 삶의 열망을 잘 드러내주는 오브제인데, 영화는 그 세부를 놓치지 않은 것이다. 고흐가 단순히 왼쪽 귓볼 일부를 자른 것이 아니라, 거의 전체를 잘랐다는 것이 버나뎃 머피에 의해 새롭게 밝혀지고 난 후, 잘라진 귀 장면을 사후에 수정했다는 대목에서는 연출자의 학자정신 마저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흐가 귀를 전해 준 여인(가비; 라셸)에 대해서는 버나뎃 머피의 새로운 발견이 적용되지 않고 통념에 따라 여전히 창녀로 묘사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고흐를 둘러싼 여러 인물들의 복합적인 관계와 고흐 자신의 정신병리학적 문제가 결부되어 극단적인 결과가 초래되었다. 고흐의 추방을 주도 내지는 동조했던 아를 주민들, 매몰차게 떠난 고갱, 심하게 괴롭혔던 르네 세크레탕, 경제적인 문제로 언쟁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태오 부부, 우발적으로 태오에 관한 진실을 전한 닥터 폴 가셰 등 단편적인 몇몇 장면에 매몰되어 누군가를 탓 할 수도 있겠지만, 보다 넓은 시각으로 한 발 떨어져서 보면 그저 각자의 사정이 있었을 뿐이다. 고흐에게는 그 사정들을 견딜 수 있는 내면의 힘이 바닥 나 있었을 뿐이다. 그 뿐이다. ‘누군가’에게서 원인을 찾기 보다는 다차원적인 맥락을 폭넓고 사심없이 이해하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일 것이다. 그것이 마르그리트 가셰가 고흐의 무덤에 올려 놓은 꽃의 의미일 것이다.

진부하겠지만, 이 영화의 표현적 성취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 배우들이 연기한 화면에 고흐의 임파스토를 끼얹은 화면은 그야말로 명화의 재탄생이며, 새로운 영상미학을 개척한 시도이다. 시시각각으로 덧칠되어 생동감을 갖는 인물의 형태와 움직임 뿐만 아니라, 배경에서도 조명과 들판의 풀 등 움직임이 필요한 장면은 은은한 붓질의 변화로 운동감이 표현되었다. 회상 장면에서는 고흐의 원색적 색감과 대조적인 은은한 흑백의 사실주의적 화법이 채택되었으며, 댓생을 연상케 하는 은은한 양감으로 아련한 기억이 갖는 정서를 자극하였다. 이러한 화면 구성은 고흐의 삶과 예술을 현전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단순히 고흐의 필체만을 인용한 것이 아니라, 실제 그의 명작들을 자연스럽게 녹여내어 서사를 진행하는 장면은 그 절묘함에 감탄이 나왔다. 닥터 폴 가셰의 등장과 밀밭에서 튀어 오르는 까마귀들의 날개짓은 매우 적절한 인용이었으며, 특히 고개 숙이고 절망하는 남자가 부검의 닥터 마제리로 변용하는 장면은 재치넘치는 연출자의 유머감각까지도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영화가 다 마치고 나서, 주요 등장인물들의 뒷 이야기들이 소개되고, 그동안 흑백의 화면 속에 회상으로만 존재하던 고흐가 어느덧 자화상 속 아름다운 색채를 회복하고 우리를 똑바로 바라본다. 이 장면은 흘러간 시간 속에 박제된 채 낭만적 천재 예술가로만 존재하던 그가 여전히 우리 가슴 속에서 또렷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음을, 우리와 함께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찡한 감동을 선사한다.

누가 볼 세라 눈가를 훔치며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영화에 참여한 100여명의 화가 중 단 한 사람이라도, 내 삶의 비천한 단편을 고흐의 필체로 남겨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1) Frédéric Salles: 고흐가 정신병원에서 외로움에 몸부림치던 당시, 그를 가장 많이 방문하고, 위로했고, 병원을 추천하기도 했던 아를 지역의 개신교 목사이다. 직장 문제로 부득이 이사를 가는 바람에 끝까지 고흐를 챙겨주지는 못했던 조셉 룰랭에 비하여 살 목사가 덜 유명한 이유는 아마도 고흐가 그를 그린 초상화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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