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 전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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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만에 전주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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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된 시간 동안 전주에 머무른다면, 진부하겠지만 결국 또 한옥마을일 수 밖에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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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마을의 초입에서 마주친 이 녀석은 관광객이 요구하는 원주민의 미덕을 고루 갖추고 있다. 저 새초롬한 포즈와 표정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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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도 느꼈는데, 한옥마을은 의외로 길고양이가 많은 곳이다.

어떤 장소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들에게 기생해서 살아가는 고양이도 자연스레 많아지나보다.

만약 인류가 어떤 질병에 의해 갑작스럽게 멸종한다면 도시의 고양이들도 멸종할까?

아마 그건 아닐게다.

분명 몇몇은 생존경쟁에서 불가피하게 탈락하겠지만, 결국 녀석들은 어떻게든 적응하고 살아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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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마을에서 백구도 만났다. 시골개 특유의 붙임성으로 여행자를 반긴다. 연탄을 옮기는 아저씨들과 함께, 이 녀석은 여기가 생활인들의 공간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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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차가웠지만 하늘이 청명해서 걷기는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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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일부터 4일에 이르는 밤 동안 슈퍼문이 떴다고 한다. 정작 이 슈퍼문은 구름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전주에서 그 전조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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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전 안에 있는 어진박물관에 다녀왔다.

상설전시로 태조의 어진을 모사한 작품들이 주제를 이루고 있고, 그 외 임금들의 어진도 6점이 전시되어 있다.

태조의 어진을 신성시하면서 그 이동 과정을 고문서는 물론 닥종이 모형으로 정교하게 모사해 놓은 것이 흥미를 자아낸다. 태조의 어진이 한양에서 자신의 출생지인 전주로 이동하는 과정에 꼬박 7박 8일이 걸렸으며, 악대를 포함한 기나긴 행렬 속에 최상의 인력, 말, 가마, 식량 등의 자원이 요구되었다. 어진을 보호하는 고급스러운 보관함과 그것을 운반하는 견고한 가마는 제사장이 아닌 사람이 만질 경우 목숨 마저 날아가버릴 정도로 강력한 터부의 힘을 지닌 유대민족의 성궤를 연상케한다.

이미지가 지니고 있는 힘을 숭상하는 정도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뚜렷하게 강화되며, 이러한 경향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대상의 재현이 대상의 실존과 명확하게 결부되어 있다는 관념은 이미지가 과도하게 범람하는 오늘에 이르러 완전하게 파괴되었다. 재현의 아우라를 제거하기 위하여 모네, 피카소, 뒤샹, 폴락, 백남준 등 수 많은 예술가들이 분투하여 얻어낸 성과이다. 이 분투와 성과 앞에서 그들이 얻은 전리품이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어쨋든 우리는 교과서에서 그들의 이름을 볼 수 있다.

결국 재현의 아우라를 파괴하는 것은 문명의 조건이다. 재현을 숭상하다 못해, 재현에 위해를 가하면 수용소에 끌려가는 나라를 우리는 아직도 지척에 두고 그러한 문명의 조건을 실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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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진박물관 한 귀퉁이에서는 <전주 정신 특별전 – 꽃심의 도시 전주>라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고작 세 면이 전부인, 도시 박람회의 홍보 부스 같은 관료제 냄새가 물씬 풍기는 전시이지만, 전주 정신을 ‘꽃심’으로 정의하고 관련 구성 개념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칭찬을 보내고 싶다. 왠지 억울하지만 ‘전주=꽃심’이라는 섣부른 프레임에 동의해버린 것이다… ‘의정부=부대찌개’ 보다야 훨씬 낫지 않은가.

초겨울 전주에서”에 대한 답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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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초딩때라 기억이 하나도 안나는 것이 함정 ㅠ
        제가 그곳에 살 땐 “전주정신이 꽃심이다”라는 말은 못들었던 것같아요.

        작년 말에 미술사에 관심을 처음갖게 되었을 때 궁금했던 점은 “동양화와 서양화는 왜 인물을 그리는데, 재현하는 방식이 다를까?”였어요. 서양화가 컨트롤 씨 컨트롤 브이에 좀 더 가깝다면 동양화는 좀 다르게 보였거든요.

        서양화가 똑같이 재현하는데 방점이 있었다면 동양화는 인물의 기운생동을 화폭에 담고자했다고 하네요.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힘을 숭상하는 정도가 과거에 갈수록 또렷하다-이점에선 라스코 동굴벽화도 생각나네요. ㅎ 원시인들이 주술적인 이유로 사용했다는 전제하에서요.

        순수한 호기심으로 구체적인 예시를 질문드리고싶은데 주말 오후에 또 작문하실까봐… ㅠ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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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ㅋㅋ 거기 출신이시군요. 구체적인 예시야 수도 없죠. 아이콘으로 작동하는 중세의 성모자상과 아름다운 육신을 입은 르네상스의 성모자상만 비교해봐도 알 수 있는거죠.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신성성과 아우라의 파괴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결코 끝나지 않은 싸움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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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금은 그곳보다 이곳에 훨씬 더 아는 사람이 많아요.ㅋㅋ 제가 거기 살 땐 한옥마을붐도 없었을걸요? 제가 대딩되니 붐이 일던데 …

            길이가 지난번처럼 길었으면 민폐끼치는 기분이 들었을거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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