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메르와 음악(Vermeer and Music: The Art of Love and Leisure, 2013)

메가박스에서 ‘스크린 뮤지엄’이라는 제목으로 수입하고 있는 ‘Exhibition on Screen’ 시리즈 중 하나로, 2013년 6월 26일부터 9월 8일까지 영국 내셔널갤러리에서 열렸던 특별전을 촬영한 다큐멘터리이다. 본 편은 메가박스에서 공개하는 다섯 편에서 제외되어 있다.

다른 ‘Exhibition on Screen’ 시리즈와 달리, 진행자가 전면에 나서서 인터뷰와 작품 소개를 이끌고 가는 형식이 독특하다. 영국 태생의 미술사학자이자 방송인인 Tim Marlow가 진행자를 맡아 이번 특별전의 기획자는 물론 베르메르 관련 연구자, 소설가, 고전음악전문가 등을 폭넓게 만나며 시청자들이 궁금해 할 만한 것들을 대신 물어봐준다. 이미 질문자가 이미 어느 정도 답을 알고 있으며, 모범답안을 정해 놓고서 질문하고, 그 기대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답변을 내놓는 전문가들의 뻔뻔함과 태연함이 이 영상물에서 의외의 흥미 포인트가 될 수도 있다.

시종 지적인 건조함으로 일관하는 영상 속에서, 언뜻 비치는 기획자의 눈물은 예상치 못한 뭉클함을 시청자에게 전이시킨다. 이번 특별전을 위해 <도1: 기타 연주자(Guitar Player, 1672)>를 캔우드 하우스(Kenwood House; Iveagh Bequest)에서 어렵게 임대해오는데 성공한 기획자는 이 작품을 기존 내셔널갤러리 소장품인 <도2: 버지널 앞에 서 있는 젊은 여인(A Young Woman Standing at a Virginal, c.1672)> 과 <도3: 버지널 앞에 앉아 있는 젊은 여인(A Young Woman Seated at a Virginal, c.1672)> 사이에 배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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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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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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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3>

특별전 제목인 ‘베르메르와 음악’에 맞추어 시청각에 걸쳐 고른 감동과 지식을 전해 주려는 미술관과 본 영상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내셔널갤러리는 17세기 네덜란드 회화 작품 중 음악을 소재로 하고 있는 여러 명작들을 선별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작품들에 등장하는 기타, 하프시코드, 류트, 버지널 등 고전 악기들을 회화 작품들과 함께 일종의 오브제로서 전시하여 실물이 주는 존재감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도왔다. 또한 특별한 이벤트로서 제한적으로 진행했겠지만, 고전음악원(Academy of Ancient Music) 연주자들과의 협업을 통해 평소에 접하기 힘든 당대 음악을 갤러리에서 직접 시연해 보임으로써 플랑드르 화가들이 매료되었던 바로 그 소리를 원음 그대로 생생하게 전달해 주었다. 다큐멘터리에서도 특정 작품을 비추면서 해당 작품의 소재가 되었던 악기로 연주된 음악이 BGM으로 흘러나와 상상으로만 가능했던 청각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주었다. 이처럼 시청각적 매체의 총체적 활용에 힘입어 대가들이 살았던 그 시대를 조금이나마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

음악을 소재로 한 17세기의 많은 회화들이 성적인 코드를 암시하고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협연하는 남녀, 연주에 몰입한 여인을 바라보는 남자, 동참을 유도하는 듯 관람객을 응시하는 여인의 눈빛 등 당대 실내 초상화에서 자주 발견되는 도상들은 음악과 남녀의 성이 유기적으로 긴밀한 상관관계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얀 스텐의 그림(<도4: A Young Woman playing a Harpsichord to a Young Man, 1659>)에서 소년이 들고 있는 기타의 윤곽이 여성의 육체를 연상케하며, 전경의 남녀가 이내 성적인 행위로 이어질 것을 암시한다.

<도4>

음악은 이성으로 팽배한 정적을 깨고, 심장 박동을 부추기며, 내면에 가두어 둔 욕망을 일으켜 세운다. 그래서 음악을 창조하는 사람, 즉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은 그 자체로 섹시하다. 오늘날 어두운 클럽에서 쿵쾅대는 비트에 자신의 벅찬 심장박동을 동기화시키는 젊은이들도 17세기 네덜란드 초상화 속 연주자들과 다르지 않다. 그들은 음악을 매개로 연대하고, 협연하고, 내밀한 욕망을 배설한다. 즉, 음악을 통해 아폴론의 이성으로 가득찬 세상에 디오니소스의 광기를 소환하며 기울어진 세상의 균형을 맞추는데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네덜란드 실내 초상화 속 인물들과 음악이라는 교집합을 토대로 400여년의 시간을 거슬러 연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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