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에로니무스 보쉬의 기이한 세계(The Curious World of Hieronymus Bosch, 2016)

탈정형의 욕망이 발작 수준에 이르는 신인상주의 이후를 논외로 하면, 히에로니무스 보쉬는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파격적, 진보적, 급진적, 내면적 양식을 선보였던 화가이다. 단순한 자연의 모사에서 벗어나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서 길어올린 욕망과 상상력의 창조물들은 거의 비견할 대상이 없을 정도이다. 엘 그레코의 뒤틀린 메너리즘적 판타지가 겨우 보쉬의 턱 밑에 다다를 수 있는 정도일까.

물론 보쉬가 보여준 세계가 까마득한 후배인 칸딘스키나 파울 클레의 화면만큼 탈정형의 끝까지 다다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살았던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가 여전히 기독교 정신과 스콜라 철학, 그리고 한편으로 고대로 회귀하려는 인문주의의 틀 안에서 단 1센티미터도 움직이지 못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의 작품들이 그 맥락에서 돌연 튀어나온 것 자체가 기적처럼 느껴진다. 아니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이 그런 환상의 세계 속 동식물과 제의를 발상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기적이다.

인간은 아는대로 보고, 보는대로 알게된다. 우리가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모든 것은 보고 들은 것, 즉 경험의 총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크 데리다가 상호텍스트성의 위험성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하는 까닭은 우리가 경험을 통해 알고 믿는 것들의 근원에 대해서 아예 새롭게 검토해보자는 취지였다. 우리가 본대로 알게 되는 것이 자명한데, 본 것이 애초에 그릇된 진실이나 가정이면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데 보쉬는 그러한 우려에서 빗겨난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는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한 것들을 창조했다. 그는 상호텍스트들의 향연에서 거의 단독자나 마찬가지로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 보쉬가 ‘보지 않은 것을 그렸다’는 말은 물론 육체의 눈으로 보는 것에만 국한된 언설이다. 보쉬도 보기는 했다. 마음의 눈으로 내면의 존재들을 보고 캔버스에 그대로 투사한 것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어쩌면 참으로 당연스러워보이는 예술적 발상이지만, 그것을 가장 먼저 시도했기에, 그리고 그 시도가 탁월한 성취로 마무리되었기에, 보쉬는 오늘날 그 어떤 미술사 교과서에서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 대가가 되었다.


여기까지가 상영시간을 기다리며 극장 로비에 홀로 앉아 기대감을 추스리며 작성한 감상문의 서두이다. 영상을 보고 나서 이 서두와, 영상에서 새롭게 밝혀진 진실들을 엮어나갈 작정이었다. 그러한 야심찬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영상에서 새롭게 밝혀진 진실들이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영상에서는 보쉬의 선구적 창조력을 찬양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다. 그의 삶과 정신세계에 대해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지식들이 공개되기를 기대했으나 그렇지는 않았다. 보쉬의 고향에서 열린, 서거 500주년 행사의 하이라이트격인 전시를 다루었음에도 새로운 사실들이 그다지 드러나지 않은 것을 보면, 아마 지금이 모든 시대를 통틀어 인류가 그에 대해서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상태인가 보다.

영상이 담고 있는 전시는 네덜란드의 덴 보쉬(Den Bosch)에 있는 노르트브라반츠(Noordbrandants) 박물관에서 2016년 2월 13일부터 5월 8일까지 열렸다. 덴 보쉬는 지명에서 알 수 있듯 보쉬의 고향이다. <히에로니무스 보쉬: 천재의 비전(Jheronimus Bosch – Vision of Genius)>이라는 제목의 이 특별전은 보쉬의 최대 회고전이면서도, 해당 박물관이 단 한 점의 보쉬 작품도 소장하지 않은 상태로 개최되었다는 점에서 독특한 의의가 있다. 노르트브라반츠 박물관은 이 전시를 위해 전 세계 유수의 박물관에 접촉하여 보쉬의 작품들을 임대하기 시작했고, 결국 현존하는 그의 유화 작품 24점 중 17점을, 소묘 작품 20점 중 19점을 전시하는데 성공했다. 보쉬의 작품이 희소성이 높은 만큼, 아무리 전시의 의미가 큰 것이라 할 지라도 각 박물관에서 작품들을 내주는데에는 주저함이 있었을 것이다. 노르트브라반츠 측은 임대한 작품들을 단순히 전시하는데 그치지 않고, 철저한 연구와 복원을 거쳐 발굴되는 새로운 지식들을 이자로 붙여 되돌려주기로 약속 했다. 그 결과 미술사적으로 전무후무한 보쉬의 회고전이 열릴 수 있었고, 전 세계에서 날아온 42만 1,700명의 관람객이 그의 환상적인 예술 세계를 한 자리에서 감상하는 값진 기회를 얻었다.

다큐멘터리에 대한 큰 기대에도 불구하고, 앞 부분에서는 졸고 말았다. 찬양 일변도의 나레이션에서 특별한 감흥을 느끼지 못했고, 이미 알고 있는 사실들이 지나치게 반복되었다. 그가 창조한 세계에 대한 자세한 해석, 개인적 삶과 심리적 특성, 그리고 작품과 삶의 상관관계 등이 조명되지 않을까 기대 했지만 그런 내용은 없었다. 아마 그에 대한 사료들이 정말 정말 없나보다.

BoschTheCrucifixionOfStJulia
The Crucifixion of St Julia, 1504

「성녀 율리아의 순교(1504)」 삼면화의 좌우측에 두 명의 봉헌자가 각각 그려졌었다가 지금은 새로운 그림으로 덮였다는 정도가 새롭게 밝혀진 사실이다. 왜 수정되었는지는 역시나 그저 추측할 뿐이다. 아마 봉헌자가 불명예스러운 일에 연루되었거나,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아 접수를 거절했을지도 모른다.

보수적이며 사회 풍습의 개혁을 꿈꾸었던 성모 마리아 형제회의 일원이었던 보쉬는 대중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는 기괴한 그림을 통해 그 어떤 언어보다도 강력하고 직관적인 방식으로 대중에게 교훈을 전달하려 했다. 방종, 음란, 나태, 사치 등 교회가 앞장서 비난하는 세태의 일면들을 보다 강력하게 꼬집기 위하여 충격요법을 선택한 것이다. 그 이면에는 그의 독창적인 상상 속 세계를 만방에 과시하면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명성을 얻고자 했던 의욕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한 교훈적인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으면 그의 기괴한 그림들이 수용될 수 있을 만한 세상이 아니었을태니 말이다. 결국 그는 탁월한 상상력과 기예를 시대가 요구하는 미적 가치로 포장할 줄 아는 선구자였다.

비록 조금 졸고, 실망하긴 했지만 그렇게 무가치한 시간은 아니었다. 대형 스크린으로 보쉬의 그림을 미세하게 파고 들어가듯 살펴볼 수 있었다는 것 만으로도 의의가 있었다.

보쉬는 우리 심리의 어두운 면을 보여 주는 능력을 지닌 미술가이다.

– 앙토냉 아르토(Antonin Artaud), <잔혹극>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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