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미술여행] 4일차 – 산타 루치아 역, 산타 마리아 디 나자레트 성당, 그리고 피렌체로

2018. 9. 28.

베네치아에서 4일 간의 짧은 일정을 마치고 피렌체로 넘어가는 날이다. 베네치아 예술의 향기를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일정이었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후회는 없었다.

베네치아 산타 루치아 역(Stazione di Venezia Santa Lucia)에서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Firenze S. M. Novella)으로 가는 기차는 이미 한국에서 예매를 해 둔 상태였다. 에어비앤비 체크아웃이 10시였기에 서둘러야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서둘러도 너무 서둘렀다. 짐 정리를 마치고 정든 숙소를 나서니 이제 겨우 7시였다.

16시 기차를 타기까지 도대체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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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정녕, 이 아름다운 도시를 뒤로 하고 떠나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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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칼치 다리(Ponte degli Scalzi)에 서서 산 시메온 피콜로(Chiesa di San Simeone Piccolo) 교회의 영롱한 청록색 돔과 오른쪽의 기차역 광장을 바라보며, 베네치아와의 이별을 실감했다.

나의 여행습성 중 하나는 이동하는 날에는 다른 일정을 잡지 않는 것이다. 일단은 내가 그 이동시간을 지키지 못할까봐 두렵다. 다른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짐도 어딘가 맡겨야 하고, 이동경로와 교통편의 운행시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데, 낯선 곳에서 그런 계획을 빡빡하게 세운다는 것 자체가 불안하다. 그래서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더라도 이동하는 날에는 이동 그 자체에만 집중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 날은 그런 습성을 감안하더라도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 하지만 습성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우직하게 기차 시간을 기다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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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기차역으로 가서 무거운 캐리어부터 맡겼다. 6유로면 5시간 동안 가방을 맡길 수 있고, 시간이 초과될 경우 초과된 시간만큼 추가금을 받는다(홈페이지). 가방을 맡기는 곳은 서비스 시설 구역이 아닌 탑승 구역에 있기 때문에 오른쪽 끝 플랫폼에서 찾아야 한다. 기차역 앞 광장의 기념품 가게에서도 가방을 맡아 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여기는 기차역보다 더 비싸다. 아무래도 신뢰도 면에서도 기차역 쪽이 더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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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경찰의 눈치를 보며 기차역의 아름다운 선들을 사진으로 남기고 베네치아에서의 마지막 아침식사를 즐기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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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시간은 남아 돌기 때문에 코스티투치오네 다리(Ponte della Costituzione)를 건너 가서 피스타치오 페스트리와 라떼 마끼아또를 여유 있게 즐겼다. 이곳에 와서는 현장의 정취를 느끼는데 집중한터라 책을 거의 읽지 않았었는데, 아침을 먹고 오랜만에 책도 느긋하게 읽었다. 이탈리아의 시민들이 출근에 앞서 허겁지겁 페스트리를 집어드는 곳에서 홀로 여유 있게 앉아 프랑스 사상가의 책을 읽고 있는 한국인으로서 생경한 기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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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걷다가 파파도폴리(Giardini Papadopoli) 공원에 들어갔다. 매우 작은, 그야말로 동네 공원이다. 2~3분이면 끝에서 끝까지 걸어갈 수 있을 법한 숲길이 몇 개 나 있고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터가 하나 있다. 남동쪽 입구에는 19세기의 과학자이자 정치가인 피에트로 팔레오카파(Pietro Paleocapa)의 동상이 있는데, 베네치아에서의 여러 건설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지휘한 공로를 인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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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청년기 때부터 베네치아수자원도로건설회사(Venetian Engineers of Water and Streets Corp)에서 근무하며 철도, 터널, 수로 건설에 기여했으며, 1940년부터는 베네치아의 인프라 건설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아 각종 대형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지휘하였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공원에 있는 그의 동상은 손가락이 훼손된 상태여서 약간 을씨년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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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쨋든 작고 소담한 공원이라서 관광객을 피해 나무에 스치는 바람소리를 듣고 싶은 사람이라면 잠시 머물러도 좋을 것 같다.

다시 역 광장 쪽으로 걸어 가다가, 역에 바로 인접한 성당 하나가 보여서 안으로 들어갔다. 스칼치 교회(Chiesa degli Scalzi)라고도 불리는 산타 마리아 디 나자레트(Chiesa di Santa Maria di Nazareth) 성당이다. 스칼치(Scalzi)는 맨발을 의미하는데, 이 교회가 맨발의 카르멜회(Discalced Carmelites) 소속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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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베네치아 바로크 건축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 발데사레 롱게나(Baldassarre Longhena)가 맡았고, 17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공사는 1680년에 종료되었다. 후기 바로크 양식으로 완성된 파사드 공사는 1672년부터 1680년까지 진행되었다.

내부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은 쟘바티스타 티에폴로(Giambattista Tiepolo)의 프레스코이다. 티에폴로는 1727년부터 1743년까지 여기서 일하며 다양한 프레스코를 남겼지만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에 다수가 파괴되었고, 남은 것은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으로 옮겼다. 그래서 지금 성당 안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그래도 이 교회는 여전히 티에폴로를 주요 홍보 포인트로 삼고 있는 것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기타 내부 장식은 과장되지 않은, 절제된 바로크적 뒤틀림을 보여준다.

베네치아에서의 마지막 성당 방문을 마치고도 기차 시간은 아직도 멀었다. 또 다시 기차역 주변을 정처 없이 걷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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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인 척 동네에서 서성거리는 갈매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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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인척 고공에서 모든 것을 관조하는 갈매기와도 작별인사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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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역 한 켠에 또 멍하니 앉아 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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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역 카페테리아의 야외 좌석에서 샐러드로 점심을 때웠다. 실은 샌드위치가 없어서 샐러드를 시킨 것이었는데, 좋은 선택이었다.  빵쪼가리 안에 들어 있는 것을 제외하면, 사실상 베네치아에 온 후 처음으로 섭취하는 식이섬유나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도 시간이 남아 역 플랫폼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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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피렌체행 기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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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를 빠져나올 때 창으로 서서히 사라져가는 도시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마치 환상의 세계에서 현실로 넘어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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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에서 틀어주는 영상 콘텐츠 중에 ‘몰랑이’도 있었는데, 국산 캐릭터를 여기서 만나니 반가웠다. 문화산업에 있어서 캐릭터의 힘은 정말 중요하다. 캐릭터에게는 세대와 국경을 가볍게 뛰어 넘는 힘이 있다.

2시간을 내달려, 황량한 도시와 고즈넉한 들녘을 지나 드디어 메디치의 도시, 피렌체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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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티 궁(Palazzo Pitti) 맞은 편, 아티스트의 스튜디오 한 켠에 마련된 작은 방에 여장을 풀고, 인근의 코인 빨래방에서 밀린 빨래도 마쳤다.

이제 피렌체의 예술을 즐길 준비는 끝났다.


  1. 일부 도판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진은 저자가 직접 촬영한 것이며, 장비는 Sony RX10 MK3이다.
  2. 작가 및 장소에 대한 객관적 사실들은 위키피디아를 참고하였다.
  3. 딱히 대단한 컨텐츠는 없지만, 그럼에도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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