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 그 위대한 고통: ‘20세기 현대미술의 혁명가들’ 展 (a.k.a. 야수파 걸작전)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색채와 사족의 향연

전시 제목이 이렇게 터무니 없이 긴 것이 이미 사족의 향연을 예고하고 있다. 최근 미술관에서 작품 보다 텍스트에 압도 당하는 경험이 한두번은 아닌지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이번에는 정말 해도해도 너무했다. 작품이 하나 이상 걸린 화가가 줄잡아 20명은 넘을 터인데, 한 사람도 빼먹지 않고 깨알 같은 신상정보가 붙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 신상정보의 수준은 교육 및 성장배경, 인맥, 예술적 성향, 주목할만한 에피소드 등을 아우르는 얄팍한 개요로서, 한 사람당 A4용지 반 페이지는 족히 넘길만한 분량이다. 사실 이러한 대략적인 정보들의 나열은 각 화가들의 개성과 특징을 구체화시켜주는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기 보다는 관람자에게 한 순간의 지적 안도감을 선사하고 이내 휘발되어 버릴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화가들의 신상정보가 차고 넘치는데서 그치지 않는다. 시대적/지역적 배경과 미술사조의 원리를 설명하는 단순화된 도식들이 각 세션마다 서두를 장식하고, 현대미술 혁명의 주체들로 상정된 파리 화단의 예술가, 비평가, 화상 들이 남긴 주옥같은 명언들은 시도때도 없이 캔버스 위를 가로지른다.

이러한 구성은 우리네 미술소비 양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뒷 맛이 씁쓸하다. 뒤늦은 각성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우리의 문화예술 교육은 제한된 시간 동안 다섯 개의 보기 중에서 단 하나의 정답을 고르는 입시위주 교육제도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또한 그 제도의 기저에 놓인 우리의 근대화 과정은 서구사회의 철지난 이성중심적 합리주의를 충분히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을만큼 여유롭지 못했다. 어느 정도 동질한 제도의 틀 안에서 성장한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보편적인 믿음은 문화예술 향유의 저변에 깊숙히 뿌리를 내리고 있고, 이번 전시는 그 믿음을 철저히 공략한다.

“끝을 보려는 작가의 욕망은 진실에는 치명적인 것이 된다. 결말은 모든 것을 통일시킨다. 통일성은 다른 방법으로 세워져야 한다.”는 존 버거(John Berger)의 말은 단순히 하나의 텍스트뿐만 아니라 모든 전시에도 훌륭한 귀감이 될 수 있다. 19세기 중반에 등장한 카메라가 미술가들의 당면과제였던 사실적인 재현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내면의 표현으로 눈을 돌리게 한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수없이 논증된 바와 같이, 인상주의의 태동과 발전의 기저에는 급속한 산업화 및 도시화, 봉건귀족의 몰락과 부르주아의 대두, 제국주의적 부의 집적, 교통통신의 발달, 휴대용 화구의 발명 등 무수한 선행요인들의 입체적인 상호작용이 있었다. 카메라의 발명이라는 단일 변수를 사이에 두고 인상주의가 야수파로 넘어가는 단순화된 도식은 학창시절에 국사나 세계사 참고서의 핵심요약 코너에서 많이 보던 장면이다. 이러한 단순화는 다른 변수들에 대한 탐색을 어렵게 만든다.

가장 압권은 야수파 세션의 관문에 놓여 있던 노란벽이었다. 거기에는 “안녕하세요. 나는 야수파 화가 앙리 마티스라고 해요….”로 시작하는 친절한 배경설명이 붙어 있다. 이 대목에서 슬퍼지는 까닭은 단순히 우리를 초등학생 단체관람의 인솔교사로 취급해서가 아니다. 예술의 현장에서 모든 관람객이 교육 및 계도의 대상으로 치부되는 현상에 그 누구의 비판의식도 제대로 작용하지 못할 정도로 이 땅의 문화예술 저변이 얕다는 것을 재확인시키기 때문이다.

결국 이 전시장을 가득 메운 온갖 잡다구리한 설명들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급격히 불어닥친 현대미술 혁명의 중심에 파리 화단을 위치시키기 위하여 존재한다. 마티스와 피카소를 중심으로 일련의 ‘유럽-남성-아방가르드’들이 추구한 모더니즘의 계보를 고정불변의 신화로 아로새긴다. 한 사람의 컬렉션에서 비롯된 균질한 내러티브는 급기야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옹립되어 다른 방향에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전혀 남겨두지 않는다. 그들의 성취를 인정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나, 그것이 전부라는 섣부른 신념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같은 시대에 다른 민족, 인종, 젠더, 계급이 써내려간 미술사를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는 이런 전시가 ‘현대미술의 혁명가들’이라는 준엄한 타이틀을 독점 할수록, 미술사가와 비평가들이 앞으로 맡아야 할 책임은 더 크고 무거워진다.

사실 출품된 작품들만 놓고 보면, 근래에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었던 어떠한 서양미술 컬렉션 보다 뛰어났다. 쿠르베, 마티스, 앙드레 드랭, 브라크, 블라맹크 등 간판급 대가에서부터 알베르 마르케, 키스 반 동겐, 모리스 마리노 등 그간 좀처럼 조명되지 못했던 화가들의 가치를 재발견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만 하다. 게다가 대중 전시에서는 좀처럼 부각되지 않았던 후원자, 수집가, 화상의 기여가 독자적으로 조명된 부분도 의미 있었다. 하지만 전시 자체를 하나의 ‘인물 미술사 열전’으로 만들려는 친절강박증은 출품된 작품들을 하나의 미술사 도판이나 교보재 정도로 격하시켰다. 그들이 지닌 복합적인 매력이나 소통의 매개체로서 가치는 아직 수장고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특히 마티스의 <모자를 쓴 여인(1905)>이나, 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인들(1907)> 같이 내러티브에 반드시 필요하나 원본을 가져오지 못한 작품들은 프린팅을 대신 걸어 놓고 마치 정식 출품작 중 하나인냥 정성스럽게 캡션까지 달아 놓았는데, 이러한 구성적 키치가 출품된 나머지 원본들의 가치마저도 격하시키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누구는 너무나 위대하니까 가짜라도 정성스럽게 걸어 놓지만, 누구는 덜 위대하니까 원본이라도 비교적 쉽게 가져올 수 있다는 인식이 문제가 된다. 나아가 어느 원본들은 ‘위대한 가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그릇된 위계 의식도 문제다.

이런 식으로 계속 논의를 이어가다가는 끝도 없으므로 이쯤에서 그친다. 여름방학을 목전에 둔 상업주의가 선택할 수 있는 최적의 대안이었다고 생각하자. 광화문, 세종대왕,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교보문고가 연계되는 교육과 견학의 매카에 자리 잡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의 입지도 고려하자. 적자를 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러니 그림이나 보자.

귀스타브 쿠르베(1866), 노루가 있는 쥐라의 눈 쌓인 풍경

쿠르베(Jean-Désiré Gustave Courbet)다운, 전혀 미화되지 않은 풍경 속의 자연스러운 한 순간이다. 눈 덮힌 언덕의 거친 질감과 사슴의 섬세한 윤곽이 절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사슴은 가운데에서 아래로, 그리고 왼쪽으로 치우쳐 있어 적절한 긴장감을 준다. 나는 이 그림이 풍경과 동물을 조화시키는 방식이 동양화의 그것과 닮았다는 점에서 흥미를 느꼈다. 동양화에서 자연을 묘사할 때, 기암괴석과 울창한 나무의 압도적인 힘과 그것에 동화된 아주 연약한 인물이나 동물을 대비시키는 구도를 흔히 볼 수 있다. 이러한 구성에서 우리는 자연의 무한한 힘과 그것에 순응하며 사는 소박한 삶의 가치를 깨닫는다. 쿠르베가 쥐라에서 발견한 사슴도 그러한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다.

알베르 마르케(1906), 그랑 오귀스탱 부두에서 바라본 센 강

알베르 마르케(Albert Marquet)의 기하학적으로 도식화된 풍경과 회색빛은 산업사회의 우울함과 소외감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평면적인 거리에서 검은 그림자만 남은 인간의 형상이 특별한 목적지도 없이 배회하는데, 여기서는 어떠한 상호작용도 단절된 것 같다. 그 가운데서도 빨간 옷을 입은 한 여인만이 화가의 마지막 남은 위트를 증명한다.

키스 반 동겐(1905-1906), 물랭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전시에서 키스 반 동겐(Kees van Dongen)은 인물값하는 향락적인 인물로 묘사되었다. 그의 무도회 그림은 인상주의자들이 자주 다루었던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표현 방식이 상이하다. 르누아르가 그렸던 무도회가 도회적인 부르주아들의 낭만적인 유희의 순간이었다면, 키스 반 동겐의 무도회는 욕망으로 가득찬 속물들의 거래 현장이다. 인물들의 과장된 몸짓과 표정은 비산하는 조명의 화려함과 맞물려 마치 독일 표현주의를 예견하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좌측 커플의 남자는 대중의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오른팔을 뻗어 궁극적인 목적지로 곧장 향하고 있는데, 빈 태생의 표현주의자 오스카어 코코슈카(Oskar Kokoschka)가 주로 손을 통해 인물의 내면을 표현했던 것을 떠올려 본다면, 이 유난히 길고 흉측한 손이 예사롭지 않다. 한때 유행했던 ‘나쁜손’이라는 말을 쉽게 넘겨선 안 될 것이, 사실 손은 욕망의 실천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증표이다.

모리스 마리노(1906), 집안

화가보다는 유리 공예가로 명성을 쌓은 모리스 마리노(Maurice Marinot)는 다른 야수파 화가들과 달리 투명하고 온화한 색감을 선보였다. 그가 본 풍경들은 다양한 색채의 덩어리들이 둥실둥실 떠다니는 꿈 속에서의 한 장면으로 묘사되었다. 다양한 매체로 작업하는 예술가의 여러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감각을 언급할 때 마리노의 이름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 같다.

라울 뒤피(1925), 애스컷의 경마장

라울 뒤피(Raoul Dufy)는 색채 보다 선의 유희에 천착했다는 점에서 다른 야수파 화가들과 구별된다. <애스컷의 경마장>은 이번 전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인데, 가로로 넓게 조망한 경마장의 풍경 속에서 부르주아와 기수들이 한데 어우러져 도심 외곽의 한가로운 정경을 연출한다. 인물과 말을 둘러싼 빠르고 거친 선은 색채를 옥죄면서도 가볍게 놓아주는 리듬감으로 가득하다.

로제 드 라 프레네(1910-1911), 정면의 서 있는 누드

로제 드 라 프레네(Roger de la Fresnaye)의 누드는 사실주의에서 입체주의로 가는 초기 단계의 인물상을 보여준다. 둥근 형태와 명암을 기하학적으로 도식화하는 방식은 꼼꼼한 관찰과 훈련의 산물이다.

그 밖에도 샤를 뒤프렌(Charles Dufresne)과 프란치스코 보레(Francisco Bores)의 그림이 신선했다.

그래도 작품만 놓고 보면 이번 전시의 최후 승자는 마티스도, 피카소도 아닌 앙드레 드랭(André Derain)이다. <빅 벤>이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별도의 공간을 확보하고 있는 것은 물론, 전시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도 드랭이었다. 역시 개인 컬렉션에서 비롯된 전시는 컬렉터와 예술가의 인연에 대하여 조명하지 않을 수 없다. 피에르 레비와 가장 가까웠던 드랭의 작품은 야수파 혁명의 초기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입체적으로 조망되었다.

앙드레 드랭(1947), 아미엥

드랭이 말년에 고전주의로 회귀한 작품들은 정적이고 정제된 형태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가 청년기에 일궜던 성취와 연관지어 생각해 본다면, 모든 것을 이루고 나서 한계에 다다랐다고 느껴지는 순간, 다시 원점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열망이 어느 정도는 작용했을 것이다. 우리는 피카소의 궤적에서도 비슷한 열망을 발견할 수 있다.

앙드레 드랭(1935), 두 여인의 누드와 정물

드랭이 차용한 모티브는 다분히 고전적이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즉흥적이고 빠른 선들을 지난하게 쌓아 올리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방식에서 견고하고 사실적인 형태라는 고전주의적 가치에 현대미술 특유의 거친 질감을 결합한 구조가 엿보인다.

앙드레 드랭(1950), 검은 바탕의 과일, 테이블이 있는 정물

백미는 <검은 바탕의 과일, 테이블이 있는 정물>이었는데, 어두움을 뚫고 빛을 발산하는 과일의 광택감이 단순하면서도 명징하게 묘사되었다. 과일과 유리접시를 스쳐가는 섬광은 고작 서너번의 하얀 붓질로 암시만 되었을 뿐이지만 누구라도 거기에 놓인 모든 물체들에 당장 손을 뻗어 금새 흐트러뜨릴 수 있을 것만 같다. 조토(Giotto di Bondone)가 백지 위에 그저 원을 하나 그려서 교황의 마음을 사로잡았듯, 대가는 마음만 먹으면 가장 최소의 노력으로도 최대의 표현적 성취를 거둘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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