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뷔페 展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선을 넘는, 선을 향한 충동

미술사를 통틀어도 베르나르 뷔페(Bernard Buffet)처럼 독보적인 시그니처를 보유하고 있는 화가는 드물다. 시커멓고 곧은 선이 강박적일만큼 수직으로 뻗어 있는 화면을 보자면, 뷔페는 어떤 대상을 그리기 위하여 선을 쓰는 것이 아니라, 선을 긋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지 못해서 대상을 잠시 빌리는 것 같다. 뷔페는 자기만의 선을 일관되게 깎고 연마한 끝에 누가 보더라도 그 제작자를 단박에 유추할 수 있을법한 멋진 작품들을 남겼다. 우리가 까만 수직선에서 대번에 그의 이름을 유추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한 예술가의 독보적인 창의성과 끈기를 암시한다. 한편으로 그만큼 일관된 표현을 경력 전반에 걸쳐 밀어붙였다는 점은 진부한 자기복제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한 예술가의 독특하고 일관된 표현은 ‘양날의 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개인의 고유성을 유지하면서도 자기혁신을 멈추지 않는 일군의 화가들은 그 양날의 칼을 자유자재로 주무르며 비로소 ‘대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들은 일관성과 혁신 사이의 절묘한 균형에 대하여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뷔페의 수준급 유화 92점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만 놓고 보자면, 그가 여느 대가들처럼 혁신에 성공했는지는 다소 의심스럽다. 1945년에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뷔페는 이미 4년 정도 흐른 초창기에 독특한 수직선을 발견했고, 1950년쯤 되면 이미 너무나 확고하게 그 양식을 확립하여 자신의 인격체와 등가로 교환해버릴 정도가 된다. 삶의 변곡점을 따라 그가 관심을 갖는 대상이 시시때때로 변화하기는 하나, 일관된 표현기법 자체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진다. 뷔페의 망막과 시신경을 거쳐 손끝에서 모습을 드러낸 세상은 그들 제각각이 어디서 왔던 간에 결국 수직수평의 검은 선으로 치환된다. 중간에 거친 임파스토를 실험하거나 블라맹크(Maurice de Vlaminck)를 연상케 하는 엽서풍의 풍경화를 시도하기도 하나, 이내 제자리로 돌아온다. 초창기 10년 동안의 우울하면서도 형이상학적인 정물화나 초상화를 빼고 나면, 이후의 그림들은 그의 삶이 끝날 때까지 거의 일관된 세계관을 공유하기 때문에 시기별로 마구 뒤섞어도 무관할 정도이다. 색채에 대한 관심의 수준에서 미미한 차이만이 남는다.

퐁투아즈(1976)

사실 선은 눈에 보이는 표층일 뿐이고, 그 선의 저의를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뷔페의 선이 진짜로 암시하는 것은 인간이 없는 세상이다. 뷔페의 그림 속 인간은 오직 세 종류뿐인데, 직선으로 치환된 인간, 음영만 남은 인간, 그리고 그가 진짜 인간으로 인정하는 유일하고도 진실한 인간이 그것이다. 각각의 유형을 자세히 살펴보자.

첫째 유형, 직선으로 치환된 인간은 사실상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데, 실제 인간의 몸에 직선이라고는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거울 앞에 알몸으로 1분만 서 있으면 그 사실을 금세 알 수 있다. 인간은 아파트나 자동차와는 달리 오직 곡선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존재이다. 우리는 아파트와 자동차에 둘러싸여서 태어나기 때문에 그 사실을 종종 잊어버린다. 뷔페가 직선으로 치환한 인간은 오직 선을 그리기 위하여 영감을 제공해 주는 존재일 뿐, 그들이 생동하는 생명체로서 숨쉬고, 밥을 먹고, 똥을 싸는지는 우리가 알 바 아니다.

닭을 들고 있는 여인(1947)

둘째 유형, 음영만 남은 인간은 뷔페의 도시 풍경화 속에서 볼 수 있다. 그의 풍경화에서 인간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초기 풍경화에서 인간은 실체 없는 그림자 내지 혼령의 흔적으로만 남아 있다. 그나마도 후기 풍경화에서는 완전히 배제 된다. 그가 풍경 속에서 매혹된 대상은 수직수평으로 구조화할 수 있는 건물, 교각, 선박, 수평선 따위이지 인간이 아니었다. 그의 그림에서 인간은 수직수평의 입방체가 제시하는 선의 미학을 가리는 예측불가한 훼방꾼에 지나지 않는다. 뷔페의 풍경화 속 인간 없는 정적인 구도는 시간이 멈춘 ‘선의 제국’으로서 유토피아에 다름 아니다.

파리의 노트르담(1960)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유형, 즉 뷔페가 진짜 인간이라고 인정하는 유일한 인간이 중요하다. 그는 자신의 아내이자 영원한 뮤즈였던 아나벨 뷔페(Annabel Buffet)를 그릴 때만 곡선을 사용했다. 그녀의 아몬드 같은 눈, 그리고 매끄러운 턱선을 보자. 특히 그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개방적인 까만 콧구멍을 보자. 뷔페는 그토록 야박하게 썼던 곡선을 오직 그녀에게만 허락했다. 이는 그녀를 살아 숨 쉬는 인간으로서 인정한다는 의미이고, 다시 말해 그녀가 존중할만한 유일한 인간이라는 의미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전시는 아나벨이 남편의 작품을 자랑스럽게 관객들에게 소개하는 컨셉으로 구성되었다. 전시장 곳곳에 그녀가 뷔페의 작품에 관해 남겼다는 서문과 비평 들이 걸려 있다. 그 글들을 읽을수록, ‘비평가는 지인의 작품을 비평해서는 안 된다’는 비평계의 오래된 금언이 떠오른다.

티셔츠를 입은 아나벨(1960) , * 非출품작

뷔페의 화면 안에 모여든 대상은 그것이 정물이든 인물이든 무엇 하나도 그들끼리 소통하려고 하지 않는다. 한 화면에 있되 서로 멀찍이 떨어져서 단절된 상황을 보여준다. 또한 뷔페의 초상화 속 인물들은 대부분 관람자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멍한 시선으로 먼데를 보고 있다. 이 모든 요소들은 세상과 소통하기 보다는 자신의 수직적 화면과만 소통하려했던 뷔페의 자의식을 보여준다. 뷔페가 자초한 이 외로움은 죽기 전까지 일관되게 그려졌던 올곧은 직선과 맞닿아 있다.

와인 한잔, 그리고 여인(1955)

이 대목에서 그의 독특한 예술여정을 이끌었던 이 직선이 도리어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주장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뷔페는 자신이 유일하게 곡선을 허락했던 여인인 아나벨과 행복한 노년을 맞이했고, 안락한 저택에서 그녀의 품에 안겨 조용히 숨을 거둘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아나벨 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갑작스러운 자살이었다. 그 비극의 직접적인 원인은 건강의 악화였는데, 정확히 말하면 파킨슨병의 악화로 인하여 더 이상 자신이 원하는 창작 활동을 원활히 이어갈 수 없다는 절망감 때문이었다. 근육의 강직에 의하여 손이 떨리고 제대로 가눌 수 없게 되는 파킨슨병은 손끝으로 화면을 창조하는 화가들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더군다나 강하고 곧은 선으로 대상의 본질에 다가가는 작업에 평생을 투신했던 뷔페에게 마음먹은 대로 선을 긋는 행위 자체를 가로막는 이 병이 얼마나 절망적이었을지는 짐작이 간다. 만약 그가 스스로에게 다른 창작의 방법을 허락할만한 여유가 있었다면 선택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쭉쭉 뻗은 그의 선을 보고 있자면, 미술사에서 가장 매력적인 선을 지닌 화가가 그 선의 마력을 거부하지 못해서 결국은 선을 넘고 말았다는 비약을 하게 된다.

모간(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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