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1998년 10월 30일에 한림미술관과 이화여자대학교 기호학연구소가 공동개최했던 국제 심포지엄의 일부를 옮긴 것이다. 발표논문 네 편과 질의응답, 그리고 두 개의 작가론이 실렸다. IMF 구제금융의 충격파가 한창이었던 1998년 당시에 나는 중학교 1학년이었다. 중학교 입학 첫날 교실을 두리번거리다가 온풍기에 붙어 있던 ‘아나바다’ 스티커를 보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의 나는 짐승들이 우글거리던 남자 중학교에서 약육강식의 피라미드를 허덕이며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20년 후에 미술애호가가 되어 이 책을 집어 들게 됐다.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 속해 있던 한 권의 책과 2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비로소 만나게 됐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어떤 사건이 20년 후에 또 나를 불현듯 찾아오게 될까.
이 심포지엄을 개최했던 한림미술관은 1993년에 대전에서 처음 문을 열었다. 그때는 한림갤러리였다. 한림미술관이 된 것은 1997년에 사진 전문 미술관으로 탈바꿈하면서였다. 2012년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 대림미술관으로 다시 변경되었다. 공동개최기관인 이화여자대학교 기호학연구소는 지금도 이화인문과학원 산하에 있다. 그런데 이화인문과학원이 2007년에 공식 설립된 것을 보면, 책 출간 당시의 기호학연구소가 지금까지 이어진 것인지, 중간에 큰 변경이 있었던 것인지 알 수 없다. 책을 엮은이들이 사라지거나 모습을 바꿔도 책은 그대로 남아, 이 사람 저 사람 손에 돌고 돈다.
책에는 네 명의 연사가 등장한다. 먼저, 이브 미쇼(Yves Michaud)는 근현대 미술사를 되짚으며 몸의 의미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설명한다. 20세기의 몸은 산업화/기계화된 몸이었다. 19세기 산업혁명은 자연의 흐름에 맡겨졌던 몸을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와 연동시키기 시작했다. 생산 효율성에 부합하는 몸이 그리스 조각상의 신을 닮은 몸을 대체했다. 공장의 기계는 몸을 본따 만들어졌고, 다시 인간의 몸은 기계를 닮아갔다. 하지만 20세기 벽두부터 전쟁의 참사가 몸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파괴되고 절단된 몸이 대지를 뒤덮는 가운데 살아남은 자들 사이에서는 몸의 실존을 지키려는 절박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전쟁과 파괴로부터 몸을 지키게 해준 것은 견고한 방패가 아니라 산업화가 생산해낸 무수한 상품들이었다. 소비사회의 진전에 힘입어 80년대에는 파편이 된 몸, 주변으로 밀려난 몸, 대량생산 체제의 부품이자 상품 자체가 된 몸이 대두되었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서구에 몰려 있던 시선을 돌려 원시사회의 몸을 재발견하거나 제3의 성을 주류 역사/정치 담론에 포섭하기도 하였다. 비약적으로 성장한 영상, 사진, 통신기술은 충격적이고 생생한 몸을 눈앞에 재생해 주었다. 이어서 90년대의 몸은 성과 죽음이라는 금기시 된 모든 것을 통렬하게 담아내는 그릇이 되었다. 기계와 결합한 몸, 사이버 세상의 가상화된 몸, 유전공학기술로 조작되고 재탄생한 몸이 생명의 탄생과 순환이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예전에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영혼의 성격과 그의 실체에 대해 제기했던 거의 모든 문제들을 이제 우리는 몸에 대해 제기한다.”(41p)
지노 가오리(千野香織)는 오부수마사부로에마키(男衾三郎繪卷)를 분석하며, 권력의 이동이 도상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과정을 쉽고 흥미롭게 설명해주었다. 이 그림은 13세기 말의 두루마리 이야기 회화로, 두 형제의 상반된 취미와 성품을 대비시킨다. 형은 교토 출신의 아름다운 아내를 맞아 시와 음악을 즐기며 살아간다. 아우는 일본에서 가장 추한 여인을 아내로 맞았고, 무예를 숭상한다. 아우의 처를 묘사한 추녀 이미지는 노골적인 조롱거리로 소비되고 있는데, 이는 교토의 중하급 귀족계층이 신흥 무인세력의 성장에 두려움과 경멸을 느끼며 그들을 타자화한 방식을 보여준다. 무사들은 귀족적 풍취를 흉내 내더라도 어디까지나 무식한 족속일 뿐이라는 구별짓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무사들의 전투 장면에서 복식의 고증이 부정확하고, 영웅적 행위에 대한 찬미 보다는 무의미한 살육만 난무한 점도 교토 궁정귀족들의 편협한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일본 지배층은 전통적으로 강자를 남성에, 약자를 여성에 비유하며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시국에 따라 특정한 젠더 기호를 받아들이거나 거부해왔다. 이 젠더 기호의 선택과 반목에서 변하지 않는 전제가 하나 있는데, 남성은 남성성과 여성성 사이에서 유리한 것을 선택할 수 있는 반면, 여성에게는 오직 여성성만이 허락된다는 사실이다.
노먼 브라이슨(Norman Bryson)은 신디 셔먼(Cindy Sherman)과 모리무라 야스마사(森村泰昌)의 사례를 통해 신체에 대한 통념에 대항했던 방식들을 예증하였다. 몸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집요하고 불편해진만큼, 그에 대한 저항도 결코 아름다울 수만은 없다. 전통적으로 신체를 그 무엇보다도 사실적으로 재현할 수 있다고 여겨졌던 사진은 이제 역설적으로 몸의 부재를 증명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즉, “몸으로 회귀하는 현재의 미술은 역설적으로 몸의 사라짐을 보여”준다.(102p)

얼마 전 정년퇴임한 이화여자대학교의 윤난지 교수는 윌렘 드 쿠닝(Willem de Kooning)과 서세옥을 통해 모더니즘 회화는 결국 진취적이고 혁신적인 남성 아방가르드의 신체를 평면 화면에 옮긴 것이라는 논지를 펼쳤다. 뉴욕 화파를 이끌었던 ‘더 클럽(The Club)’은 오직 남성들에게만 허락된 커뮤니티였고, 그들은 공통적으로 그 어떤 신체도 재현하지 않았다. 그들은 신체의 강인하고 진취적인 움직임 자체를 비정형의 이미지로 투사하면서 스스로 작품이 되었다. 예외적으로 드 쿠닝만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꾸준히 신체를 재현해 나갔다. 그가 그렸던 기괴하고 공격적인 여성은 자신의 내면에서 발견한 여성적 자아에 대한 두려움과 욕망을 여과 없이 투사한 것이다(드 쿠닝이 여성에 대하여 느꼈던 양가적인 감정은 캐롤 던컨(Carol Duncan)이 구체적으로 설득력 있게 논증한 바 있다).

이후 저자는 수묵 추상으로 문인화 전통을 이어가려 했던 서세옥을 끌어들여 드 쿠닝과 비교하며 거기서 공통적으로 남성 주체상을 발견한다. 두 화가의 화풍과 시대적/지리적 배경이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완전히 배제된 남성 중심적 모더니티를 추구한다는 점은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 대목을 읽으며, 살아 있는 화가에 대하여 언급할 때 미술사가가 직면하는 난처함을 느끼게 된다. 드 쿠닝에 대해서는 온갖 사료들을 끌어와 신랄하게 쏟아내던 비판의 칼날이 서세옥에 대해서는 확연히 무뎌진다. 그 무뎌짐 탓에 여성 관람자로서 소외감을 느꼈다는 대목에 공감하기 어렵다. 글을 쓸 당시 서세옥은 저자와 같은 국가에서, 같은 언어를 쓰며 살아가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미술계에서 꽤나 중요한 입지를 지닌 상태였다. 그러한 근접성은 비평의 칼끝을 무디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 발표의 공식질의자인 이영욱 교수는 ‘심증’적으로는 저자의 논지가 이해되지만 ‘물증’은 없다고 적확하게 평가하였다.

이렇게 여러 저자의 글을 한 권의 책으로 엮으면 비교를 피할 수 없게 된다. 나에게는 지노 가오리의 글이 훌륭하게 느껴졌는데, 매우 쉽고 담백한 어조로 분석의 핵심을 명료하게 드러내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서구 사상가의 이름을 나열하면서 지적 궁핍함을 감추려는 다수의 비평들과는 달랐다. 가오리 교수의 새로운 연구들이 번역되어 나왔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검색해보니, 안타깝게도 2001년에 49세 나이로 돌아가셨단다. 사후에 유족들은 우리나라를 사랑했던 고인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소장도서 7천3백여권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참으로 훌륭하신 분들이 참으로 일찍도 가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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