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연의 「명화로 읽는 미술 재료 이야기: 템페라에서 아크릴까지」

미술재료사와 즉물성

재료로 읽는 미술사다. 미술사 전반을 아우르지는 않는다. 부제가 암시하듯 회화사에 집중한다. 미술이 물질의 한계를 벗어난 시점부터는 간단히 암시만 하고 마무리한다. 최근에 이소영의 책이 비슷한 주제를 다뤘던 적이 있는데, 이 책의 저자 홍세연은 미술재료학을 전공했던 사람이라 그보다는 더 깊게 들어간다. 구체적인 안료와 색깔 하나하나까지 세분하여 설명해 준다. 미술 전공자는 학교에서 이미 배웠을 내용이고, 비전공자라면 평생 딱히 알 필요가 없는 내용이다. 대중서로서는 불필요하게 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논의의 범위가 넓고 흥미로운 사례가 풍부한 책을 찾는다면 이소영의 책이 더 낫다.

3만 년 전 동굴 벽화부터 오늘날 합성 안료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화가들의 미적 열망은 새로운 재료와 기술을 찾아 끝없이 매진하도록 부추겼고, 그 기술은 전에 없던 새로운 표현을 가능케 했다. 열망이 기술을 이끌고, 기술이 새로운 아름다움을 창출하는 선순환 속에서 우리는 기술, 매체, 테크닉의 함수로 양식사를 읽어낼 수 있다. 개념주의 및 다원주의의 도래와 더불어 초연결, 초융합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기술의 폭발적인 혁신이 어떠한 양식사적 흐름으로 이어질지 현재로서는 가늠하기 어려우나, 근 미래에 대단히 흥미진진한 변화들이 미술계 곳곳에서 감지되리라는 것만은 단언할 수 있다.

회화 재료의 역사에 관한 풍부한 정보들을 담고 있는 책이지만, 나로서는 다양한 미술 재료의 특성을 암기할 까닭이 없으므로 하루 만에 대충 훑어보고 덮었다. 미술 재료사를 대략 훑어보는 과정에서 내내 떠오른 개념 하나를 꼽자면 ‘즉물성’이다. 즉물성은 오늘날 젊은(어린) 세대의 공통적 특성 하나를 정확하게 관통할 수 있는 개념이기도 하다. 이에 관하여 내 나름대로 정의를 해보자면, 즉물성이란 하나의 자극을 통해 즉각적으로 감각적 반응을 유도할 수 있는 성질이나 수준을 일컫는다. 즉물성의 세상에서는 관념적 매개가 필요 없다. 하나의 투입은 보이지 않는 모종의 과정을 거치겠지만, 그럼에도 즉시 하나의 산출로 치환된다. 여기서 산출이란 누군가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무언가가 아니라 가시적이고 손에 잡히는 구체적 대상이다. 보이지 않는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템페라에서 아크릴까지의 회화사는 점차 관념을 버리고 즉물성을 선택한 역사였다. 템페라를 제작하는 장인은 최적의 지지체(목판)를 고르는 일에서부터 이미 창작을 시작했다. 아니, 목판을 고르기 이전에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리는 일을 시작으로 잡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러한 경건한 마음이 없었다면 지난한 작업을 시작할 수도 없었을 터이니. 최적의 크기, 건조상태, 결, 견고함을 지닌 목판을 고르고 다섯 겹으로 젯소를 칠한다. 표면에 드로잉을 한 후 얇은 금박을 꼼꼼히 붙인다. 곱게 간 안료와 난황을 섞어 물감을 만들고, 세필로 채색한다. 칠한 면은 빠르게 건조되므로, 그에 맞추어 지체 없이 명암을 가다듬어야 한다. 표면이 마르면 바니시로 표면을 고정한다.

템페라의 장인은 감히 바라볼 수 없는 신성한 존재를 가시적 물질로 표상하는 일에 부여된 숭고한 사명감을 동력으로 삼아 지난한 제작 과정을 감내할 수 있었다. 종교의 시대가 끝나고 왕과 부르주아, 그리고 황금 지상주의의 시대가 열리며 화가의 시선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왔다. 눈앞에서 번뜩거리는 화려한 옷과 갑옷을 표현하기에 유화만큼 적절한 매체가 없었고, 크고 섬세하게 유화로 그려진 초상화를 여기저기 옮겨 걸기에 캔버스만큼 적절한 지지체가 없었다. 기차를 타고 교외로 나가 자연 풍경에 빠져들었던 인상주의자들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자연의 색을 놓치지 않으려 그때그때 필요한 색을 튜브에서 짜냈다. 이렇듯 회화사에서 새로운 재료의 탐색은 관념계에서 현상계로 시선을 돌리며 즉물성을 강화하려는 노력과 결부되어 있었다.

즉물성을 향한 인간의 욕망은 한순간도 꺾여본 적이 없다. 달리 말해, 즉물성을 보장하는 기술혁신이라면 절대로 도태되지 않는다. 나는 위에서 “디지털 기술의 폭발적인 혁신이 어떠한 양식사적 흐름으로 이어질지 현재로서는 가늠하기” 어려우리라 전망했는데, 딱 한 가지 방향만 예측하자면, 다음과 같다: 시각예술의 양식사적 변천은 즉물성을 계속 부추기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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