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rry E. Shiner, The Invention of Art
오늘의 눈으로 어제의 작품을 논하지 말라
“발전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해서 급진적 분열이 안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52p
우리가 미술관에서 마주하는 작품들은 입구에서부터 출구에 이르기까지, 미술사의 선형적 연표를 따라 배치된다. 구석기 시대의 조악한 토기에서 출발해 급진적인 퍼포먼스 영상으로 마무리되는 그 여정은 인류가 미에 눈을 뜨기 시작한 여명기로부터 오늘날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은 다원주의까지 촘촘하게 따라가는 장대한 예술의 승전보로 기록된다. 그 여정에 조토(Giotto di Bondone)의 제단화와 티치아노(Tiziano Vecelli)의 초상화, 그리고 앤디 워홀(Andy Warhol)의 실크 스크린이 나란히 놓인다. 비록 시대와 장소를 구별해 전시실을 달리하고, 간판과 캡션을 붙여 놓고, 카펫 색상 등 인테리어에 변화를 주더라도 미술사적 전시 양식이 정립된 18세기 후반 이후로 선형적 배치에는 변화가 없다. 그렇게 서로 이질적인 성격의 작품이 동일선상에 나란히 배치되면서 모든 오해가 시작된다. 그때의 예술 개념이나, 지금의 예술 개념이나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오해다. 물론 알타미라 동굴벽화로 시작해 종잡을 수 없는 동시대 미술로 맺는 미술사 교과서들도 그 오해에 상당 부분 일조한다.
서구로 논의를 한정할 때, 과거의 예술 개념은 지금과 달랐다. 현재의 순수예술 개념과 제도가 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중엽이며, 19세기에 이르러서야 순수예술에 대한 본격적인 지위 격상과 독자적 제도화가 옹립되었다. 창조적 천재들의 자율적이고, 낭만적이고, 자족적이고, 위대한 창작물로서 순수예술 개념이 등장하여 자리를 잡게 된 기간은 300년이 채 안 된다. 우리는 모두 이 시기에 태어났고, 또 이 시기에 태어난 선배들의 저작으로 가르침을 받았으므로, 이 시기를 초월하는 사고를 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역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이나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인물에 가까울수록 더욱 흥미롭게 느껴지는” 법이다(Jacob Burckhardt). 이러한 동시대성의 한계를 직시하면서, “모든 시대에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늘 되새겨야 한다(Heinrich Wölfflin).

마사초(Masaccio)의 프레스코 <성삼위일체(1426)>는 그저 원근법을 선구적으로 잘 구현해냈다고 해서 호들갑스럽게 치켜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많은 미술사 교과서가 이 작품을 고화질 총천연색 도판으로 정성스럽게 실어 보지만, 이 도판을 둘러싼 상찬들은 책장이 넘어감과 동시에 덧없는 말 잔치가 되어 휘발되어 버린다. 이 작품의 위대함을 알려면 산타 마리아 노벨라(Santa Maria Novella) 성당에 가서 어떤 벽에, 어떤 크기와 색감으로 그려져 있는지를 직접 봐야 한다. 지금 피렌체에 가서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여태껏 스마트폰과 UHD 영상에 절여진 모든 기억과 감각을 제거한 채, 중세 말 농부의 눈으로 봐야 한다. 해 뜨면 밭 갈고, 해지면 자고, 가뭄 들면 굶고, 군인이나 성주가 들이닥치면 수탈당하고, 전염병 돌면 영문도 모른 채 가족 한둘을 잃고, 전쟁 나면 아들이 징집되어 떠나고, 이런저런 고난에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성당 문에 들어섰던 그 농부의 눈으로 봐야 한다. 어두컴컴한데 향 연기만 매캐한 그 대성당 안에 어렴풋이 한 줄기 빛이 들어와 우연히 그 그림에 닿았을 때, 먹먹했던 그 벽을 뚫고 들어간 안쪽 공간에 선 성모와 눈이 마주친 순간을 상상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그런 눈은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때의 눈으로 보라는 말은 작품을 당시의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 작품을 놓아야 한다는 말이다. 현재의 예술 개념을 과거의 작품에 투사하는 것은 부적절한 해석과 신비화를 낳는 요인이 된다. 순수예술 개념이 많은 사람으로부터 지지를 얻고, 이 개념을 위한 독자적인 조직과 제도들이 생겨나기 전에, 인류가 만들어낸 모든 미적 산물들은 특정한 목적을 위한 하나의 부품이었다. 가장 위대한 화가들조차 자기 내면에서 자발적으로 솟아오르는 창작 욕구로 작품을 창조해 낸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작품은 후원자와 주문자의 의도에 맞춰 생산되었고, 일반적인 수공예품보다야 유일무이하고 고귀한 제품임이 틀림없었지만, 그럼에도 특정한 목적에 복무하는 구성물이라는 큰 틀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오늘날 전근대의 위대한 예술가들이 칭송받는 까닭은 그들이 오늘날과 같은 순수예술 개념을 당시에도 선구적으로 구현했기 때문이 아니라, 예술을 둘러싸고 현재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빼곡했던 규제의 압력을 뚫고 그 나름의 미적 창조성을 당대 규범 안에 적절히 녹여냈기 때문이다. 완전한 순응은 평범함과 다름없고, 완전한 저항은 소멸을 의미할진대, 그 양자의 긴장 속에서 혁신을 이뤄낸 소수의 예술가만이 훗날 대가로 일컬음을 얻는다. 교황의 압력과 미켈란젤로의 내면에서 솟구친 창조적 열망은 참으로 드라마틱한 대립이었겠으나, 그 파토스를 귀 자른 반 고흐의 그것과 비등한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93p).
사실 미술사나 미학을 조금만 열심히 공부해보면, 그러니까 일반적 입문서 서너 권 남짓 읽는 수준에서 한 걸음만 더 들어가 본 사람이라면, 현재와 등가인 순수예술 개념이 근대 이전에는 없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나 홍보 문구에서 표방하는 도발적인 척하는 제안들이 다소 식상하게 다가오고, 이처럼 당연한 명제 하나를 가지고 어떻게 이 두꺼운 분량의 책을 채워 나갔을까라는 의구심을 품게 된다. 무언가가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과 왜, 어떻게 당연하게 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능력인데, 저자인 래리 샤이너는 그런 능력이 진정 탁월한 사람이다. 2000년대 초에 출간된 이 책의 집필을 위해 1980년대부터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는 저자는 아마도 서구에서 출간된 예술의 개념과 분류에 관한 모든 문헌을 들춰봤으리라. 그의 연구는 어원에서부터 예술 및 기술의 위계에 관한 철학적 고찰이나 제도적 행정 문서까지 망라한다. 최상위 지식인 리더 집단에서 어떤 개념의 보편화를 위하여 무언가를 주장하더라도, 그 개념이 현실 세계에서 구속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실제 교육, 행정, 조직, 법규상의 실무적 변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저자는 단순히 예술 개념의 미학적 변천을 살펴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개념이 현실 세계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졌고, 어떤 제도적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순수예술 개념의 부상을 집중 조명한다. 순수예술의 독립적 개념화가 독립적 제도화를 이끌고, 제도화는 다시 개념의 위상 확대에 환류되는 복합적 피드백 루프를 규명한 것이다.
주장의 요지는 종교가 그 역할을 다한 1680년과 1830년 사이에 걸쳐 순수예술의 개념 정립과 지위 격상이 이루어졌다는 것이지만, 이 책은 그러한 새로운 개념의 대두 과정을 사회사적, 문화사적으로 치밀하게 살펴보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정작 저자가 본격적으로 조명하고자 하는 바는 순수예술의 지위 격상이 필연적으로 야기하게 되는 대립항에 대한 분리와 격하의 양상이다. 순수예술이 자족적, 자율적, 창조적 세계로 정립된다면, 그 범주에 속하지 못하는 수공예품이나 대량생산품은 어떻게 될까? 누군가 격상의 시류를 타게 된다면 다른 누군가는 가만히 있다가도 상대적으로 미끄러지기 마련이다. 순수예술 개념이 대두된 이후, 자율적 천재들의 영역에서 분리된 장인과 수공예품, 그리고 관조의 영역을 벗어난 평범하고 일상적 삶의 주제들은 예술의 성전 밖으로 내몰림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순수예술의 부상은 애초부터 근대화의 진전에 따른 사회 계층의 분리와 결부되어 있었다. 초기 근대적 미술관과 공연장에는 계층의 분리가 없었다. 하지만 산업 구조의 대대적인 변혁 속에 부의 집적이 가속화되고 직업 및 계층의 분화가 전개되면서 한 장소에서 모든 관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예술작품이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순수예술의 규범을 이해할 수 있는 교양인과 그렇지 못한 계층의 분리는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미학의 여명기에 칸트가 강조했던 ‘무관심적 관조’가 순수예술의 핵심 조건으로서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특정 계층의 무관심할 수 있는 특권이 전제되어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무나 어떤 대상 앞에서 무관심할 수는 없다. 지리멸렬한 먹고 사는 문제를 떠나 무관심함이라는 초연한 태도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특권을 표명하는 방식이다. 순수예술을 둘러싼 담론은 무관심을 선택할 수 있는 특권과 나란히 발전했고, 그러한 배경의 연장선상에서 ‘예술을 위한 예술’의 기치에 투신했던 모더니스트들이 한 시대를 풍미할 수 있었다.
순수예술의 분리와 승격을 놓고 저항의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호가스(William Hogarth)는 미의 형식과 정신적 측면에서 벗어나 일상적 쾌락을 강조하며 미학적 민주주의의 작은 씨앗을 심었다. 루소(Jean-Jacques Rousseau)는 순수예술을 즐기는 자세가 사회적 계급을 나누는 기호임을 직시하였고, 계층을 초월해 광장에서 즐기는 축제를 진정한 미의 전형으로 재정립하였다.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당대의 풍경을 형성한 평범한 사람들에 주목하며 노동의 가치를 선구적으로 상기시켰다. 하지만 이러한 선구자들의 미학적 재발견은 모더니즘을 향한 대세의 흐름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이어서 우리는 인상주의로부터 피카소, 마티스, 칸딘스키를 거쳐 뉴욕화파에 이르는 자율적 천재들의 서사를 목격하게 된다.
수공예나 일상적 삶으로부터 괴리된 무언가로서 순수예술의 부당한 신화화에 도전했던 움직임이 있었다. 뒤샹(Marcel Duchamp)은 순수예술 범주에 균열을 내려 일상적 사물을 미술관에 가져왔고, 다다 운동의 급진적 일부는 더 포괄적인 범주에서 예술 개념 자체를 파괴하는 반예술 기치를 들었다. 자기 몸을 작품으로 출품한 예술가들, 심지어 아무런 형상 없이 자기 머릿속에 들어 있는 개념만이 작품이라고 주장한 예술가들도 있었다. 이제는 지역사회의 공동체와 쑥덕거리는 온갖 시민운동스러운 행위들까지 예술의 범주에서 논하는 시대다. 하지만 예술 카테고리의 이분법에 일침을 놓으려는 그 어떤 강력한 저항조차도 그것이 일단 주류 미술사에 기록되고, 주류 전시관에 전시되고, 주류 비평가에 의해 비평되는 순간, 순식간에 순수예술의 강력한 자장에 포섭되고 만다. 그만큼 순수예술 개념을 잉태한 근대적 관념과 제도의 결탁은 강력하고도 유효하다. 200년 동안 굳어진 사고를 변혁적으로 깡그리 무너뜨리는 데 성공한 시도는 없었다는 말이다. 이렇게만 놓고 본다면, 예술의 범주 안에서 벌어지는 시도는 그 무엇이라도 결국 무용하며, 예술을 품고 있는 더 큰 상부의 구조를 건드리는 시도만이 유효할는지도 모르겠다. 반예술도 예술로 포섭되는 상황이라면 반세계만이 유일한 대안이 아닐까?
“‘우월한’ 쪽은 그대로 놔둔 채 처지는 쪽의 몇몇 ‘가치 있는’ 표본들을 동화시키는 것으로는 그런 양극성을 넘어서지 못한다. 수공예품 몇 점을 ‘순수예술의 조건에 맞춰 순수예술 안으로’ 흡수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기 때문이다.”
427p

저자는 학자로서 탄탄한 학술적 근거에 뿌리를 두면서도 여러 단락에 걸쳐 모더니즘과 결탁한 순수예술 관념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듬성듬성 숨겨놓았다(예: 429p). 그가 순수예술의 승격에 대항하는 저항적 움직임과 그 한계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한 것도 평가절하된 그 움직임에 정당한 의미를 되돌려주고, 순수예술 자장에 한없이 빨려 들어가는 흐름을 조금이라도 지연하면서 후속으로 연계될 수 있는 새로운 움직임을 부추기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런 저자에게도 자기만의 확실한 대안은 없다. 위대한 예술가와 평범한 장인, 고귀한 순수예술과 일상적 수공예로 계층화된 예술 개념의 양극성을 극복할 마땅한 대안은 현재로서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다. 유일한 대안을 큰 틀에서 논하자면, 그것은 결합이다. 양측의 다양성과 효용 가치를 고루 인정하면서 장점을 적절히 혼합해 나가자는 것이다. 한 사람의 학자로서 그 두루뭉술한 대안이나마 견지해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도가 개념적 흐름의 양상을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제대로 읽어 내 낱낱이 밝히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우리가 현재의 특수한 시각을 과거 모든 시대에 투사함으로써 빚어지는 오해와 부당한 신화화가 없을 터이니 말이다. 그 오해를 바로잡음으로써만 정확한 현상 진단이 가능하고, 그 진실한 토대 위에 새로운 대안적 미래를 얹을 수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저자는 이 책을 연구자들과 일반 대중(완전 일반 대중보다는 어느 정도 공부한 대중)에게 내놓음으로써 자기 역할을 다 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묻지 말게, 젊은 예술가여, 천재성이란 무엇인지를. 만약 그대가 천재성을 지녔다면 스스로 알 것이고, 지니지 못했다면 결코 알지 못할 테니.”
장자크 루소, 192p
“다원주의 사회에서는 예술이 공동의 제의 속에 자연스럽게 통합되는 일이 소규모의 신념 공동체 안에서나 완전히 가능할 뿐이다.”
279p
“예술의 길을 가로막는다면 부모도, 집도, 조국도 떠나야 한다.”
윌리엄 블레이크, 313p
“도덕적인 목적으로 예술 작업을 시도하는 사람은 그가 가진 것마저 빼앗기게 될 것이다.”
앨저논 스윈번, 34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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