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푸코의 「말과 사물」

Michel Foucault, Les mots et les choses: Une archéologie des sciences humaines // The Order of Things: An Archaeology of the Human Sciences

알아야 바꾸지

내가 감히 이 작품에 한 자라도 덧붙일 수나 있을까. 덧붙인다고 한들 뭐라도 달라질까. 전 세계 인문사회학계를 통틀어 가장 많이 인용되는 저자에 관해, 심지어 그 저자의 가장 유명한 작품에 이제와서 뭐라도 덧붙이는 말은 진정 덧없다. 방구석에서 나 홀로 이 한 권을 꾸역꾸역 읽어 넘기고 어쭙잖은 깨달음에 도달해 신나게 떠들어본들 진정 그것이 전에 없던 새로운 통찰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푸코의 주석이 담론의 강을 이뤄 제방 너머까지 찰랑거리는데 거기 스포이트로 한 방울 똑 떨어뜨리는 격이다. 학술연구정보서비스(RISS)에서 제목에 “푸코”가 들어가는 국내 논문은 학위논문이 169건, 학술논문이 514건이다(2024.3.11. 기준). 본문에 “푸코”가 한 번이라도 들어가는 국내·외 논문은 몇 편일까. 구글 스칼라를 기준으로는 1,345,537번 인용되었다고 하는데 아마 실제로는 이 수치의 100배가 넘을 것이다.

그의 나이 40에 이 한 권의 책으로 단박에 서구 철학계의 중심에 섰다. 1989년에 이미 100만 부를 넘게 팔았다. 사람들은 이 책을 여름 휴가 필독서로 수영복과 함께 챙겼고, 읽든 안 읽든 일단 허리춤에 끼고 카페에 들어가 테이블 위에 넌지시 올려 두기도 했다(디디에 에리봉, 279p). 누구나 쉽게 알아먹을 수 있도록 친절한 예시, 삽화, 도표로 채운 대중서도 아닌, 그야말로 사유의 정점에 있는 책으로서는 대단히 이례적이었다. 오롯이 박학과 논리와 문장력만으로 묵직하게 밀어붙인 푸코는 이 책이 학계의 고수들 사이에서만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를 기대했기에 이런 반응에 다소 당황했다. 하지만 쏟아지는 관심이 싫지만은 않았던 모양이다. 이런저런 방식으로 쇄도하는 모든 비판에 대해 나름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변호했던 것을 보면.

지금의 나와 비슷한 나이에 이런 야심찬 기획을 내놓았다는 것이 놀랍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딱 그 정도 나이대의 혈기와 무모함이 적절히 부추기지 않았다면 아무리 그 유명한 푸코라 한들 이런 작업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박학과 통찰은 정점에 다다랐으되, 아직 학계의 문법에는 찌들지 않은, 촘촘한 사회적 네트워크에도 짓눌리지 않은, 그러면서도 세상에 자기 이름 한 번 굵직하게 새겨보고 싶다는 야심에 사로잡힌, 딱 그 나이대의 사상가만이 닿을 수 있는 지평이 아닌가 싶다.

자신은 그 당시에 살아 본 적도 없으면서 아득히 지나쳐온 한 시대의 에피스테메를 그려본다는 것, 단순히 그리는 차원을 넘어 그것이 형성된 조건과 과정들을 촘촘히 살펴본다는 것, 그리고 그 에피스테메 아래 형성된 학문과 실천들이 현실정치와 개별적 육체에 환류된 결과를 그려본다는 것─, 이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아니, 에피스테메를 그리는 일 자체는 차라리 누구라도 할 수 있다. 자기만의 고고학적 그림을 세상에 내놓는 일, 그로부터 사상계를 뒤집을만한 엄청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일, 그리고 그 과정을 넘어 시대의 이정표가 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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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게 요약해 보면, 푸코는 16세기, 고전주의 시대, 그리고 19세기로 크게 세 시기를 나눠 에피스테메의 변천을 고고학적으로 추적했다. 아니, 시대를 나눠 놓고 에피스테메를 그린 것이 아니라, 에피스테메를 추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분절점이 솟아올랐다. 16세기는 재현의 시대다. 말, 표상, 실재가 닮음을 근거로 연결됐다. 닮음을 찾고 인정하기 위해서는 마법과 박학이 필요했다. “세계는 해독해야 할 기호로 뒤덮여 있고, 닮음과 친화력을 드러내는 기호 자체는 단지 유사성의 형태일 뿐이다(66p).” 이때 생물학에는 실험과 관찰을 통해 얻은 지식과 신화처럼 구전되어 온 담론이 한 장에 융합되어 있었고, 그것이 당연했다. 이들을 서로 분리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다.

17세기 고전주의 시대로 넘어오면서부터 유사성에 입각한 재현은 본격적으로 의심받는다. 유사성이 득실거리게 되자 유사성 자체가 실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새삼스러운 사실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17세기의 과학은 데카르트적 합리주의의 기세 속에 차이를 찾는 노력으로 변화한다. 이제는 질서의 과학이 대두되었고, 순서와 서열을 매기기 위한 차이의 조사가 핵심이 되었다. “16세기의 해석이 본질적으로 유사성의 인식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기호에 의한 정돈으로 인해 모든 경험적 지식은 동일성과 차이에 관한 지식이 된다(101p).”

언뜻 유사해 보이는 대상 사이에서 어떻게든 차이를 발견하고, 각각을 명명해서 차이의 도표에 바람직해 보이는 자리를 잡아주는 것이 고전주의 시대의 관건이었다. 이때 명명의 힘을 갖는 명사는 고전주의 시대 일반 문법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한다. “일단 사물의 이름이 말해지면, 사물의 이름에 이르렀거나 사물의 이름에 도달하기 위해 가로지른 언어 전체는 사물의 이름에 흡수되어 사라진다(185p).” 따라서 고전주의 시대는 명명 강박의 시대라고도 볼 수 있다. “명사는 담론의 결말이다(186p).”

르네상스에서 고전주의 시대로 넘어가면서 생물학에서 눈에 띄는 변화는 풍부한 신화와 이야기가 배제된 것이다(198p). 이제는 오직 눈에 보이는 것, 손으로 만져지는 것만이 중요해졌다. 온갖 이야기가 펼쳐지고 연극이 상연됐던 무대의 시대가 무미건조한 도표와 목록의 시대로 바뀌었다. 본문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던 신화와 담론은 주석으로 내쫓겼고, 이후 100년쯤 더 흐르면 아예 주석에서도 지워져 문학이라는 새로운 무대를 찾아야만 한다. 이처럼 담론이 내쫓긴 자리에는 분류와 명명만이 남았고, 이것이 고전주의 시대의 새로운 에피스테메가 되었다(201p).

이러한 변화를 가져온 다양한 요인들이 있었지만, 생물학에서는 현미경의 역할이 컸다. 식물의 구성요소 하나하나를 따로 떼어 내어 그 크기, 형태, 양, 배치 등을 세세히 관찰하고 언어로 기록할 수 있게 되자 굳이 애써서 개체를 해부할 필요가 없어졌고, 가시적 특징과 드러난 요철들만을 중심으로 분류법을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 “고전주의 시대의 지식에서 개체에 대한 경험적 인식은 모든 가능한 차이의 연속적이고 가지런하고 보편적인 도표에 의거해서만 획득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218p).” 이때 개체의 차이는 정적인 상이다. 16세기에 개체의 특징을 주로 묘사하던 행동이었음을 고려하면 큰 차이다. 자연은 연속적이지만 도표와 명명에 의한 고전주의의 기획은 자의적이며 분절적이다. “자연을 지식에 제공하는 것은 명칭의 격자이며, 이 격자는 언어가 온전히 스며든 자연만을 가시적이게 만든다(239p).”

연속적 대상에 이름을 불러 구분한 순간, 이제 자연을 보는 눈은 과거와 같을 수 없다. 특정한 시대의 에피스테메는 지각과 행동의 범위를 규정하기 때문이다. “선험적 여건은 어느 특정한 시대에 가능한 지시의 영역을 경험에 맞추어 마름질하고 경험에 모습을 드러내는 대상의 존재 방식을 규정하고 일상의 시선에 이론의 역량을 부여하고 진실한 것으로 인정된 담론을 사물에 관해 행할 수 있는 조건을 확정하는 것이다(236p).” 여기서 알 수 있듯, 최소한 이 책의 범위에서 에피스테메는 단순히 특정 시기, 특정 문화권 중 하나에 걸쳐 넓게 퍼진 인식 정도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다. 광범위한 하나의 문화권이 특정 시기에 공유하는 에피스테메라고 할만한 것이라면, 그것은 당대 핵심적 지식에 관한 생성, 파급, 축적의 조건을 결정할만한 것이다.

만약 당대 생물학에 관여하는 에피스테메라면, 그것은 정치경제학에도 일관되게 적용된다. 16세기에 화폐의 가치는 그 물질을 구성하는 희소성 있는 금속의 양을 기준으로 책정되었다. 이때 화폐는 부를 재현하는 물질이면서 동시에 금속성의 상품이었다. 자원 개발의 범주가 국지적 경계를 넘나들면서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금속의 양이 많아지자 화폐의 가치는 하락했고, 안정적 교환가치를 더는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현실은 그와 달랐지만, 당대의 상상 속에서, 세상을 둘러싼 모든 사물과 금속성 화폐가 완벽한 쌍을 이루고 있을 것으로 전제되었다. 이러한 상상적 체계라면 사물과 화폐가 쌍을 이룬 장부에 관한 지식이 어딘가 존재해야 했지만, 그 지식의 실체 자체는 세상에 명확하게 드러난 적이 없다. 부의 원리를 대략이나마 눈치챈 소수의 상인만이 자본의 논리를 독점하면서 부의 최정점에 도달했다(254p).

17세기 중상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금속의 함량이 아닌, 그 화폐에 표기된 교환가치가 본격적으로 대두되었다. 이때 새로운 화폐는 상징성으로서 물질의 가치를 재현하는 기호였다. “모든 부는 화폐로 환산될 수 있고, 따라서 유통되기 시작한다. 동일한 방식으로 어떤 자연물이건 특징을 부여받을 수 있었고 분류의 대상이 될 수 있었으며, 모든 개체는 명명될 수 있었고, 분명한 언어로 말해질 수 있었으며, 모든 재현은 의미할 수 있었고, 동일성과 차이의 체계에 포함되어 인식될 수 있었다(256p).” 이 말은 푸코가 자기만의 언어로 정리한 고전주의 에피스테메의 정수다.

이처럼 먹고 사는 문제에 관한 중상주의, 생물의 분류를 다루는 자연사, 인간이 생각하고 표현하는 방식에 관한 일반 문법은 유사한 에피스테메에 얽매여 있었다. 하지만 변화의 속도는 세 영역에서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자연사와 일반 문법은 우연과 필연이 교차하며 급변하는 시점이 있었지만, 중상주의는 실물 경제 및 정치 제도와 맞물려 있었으므로 그 변화 속도가 상대적으로 더뎠다(263p). 따라서 부의 분석에서는 생물학, 문법과 달리 시간에 따른 가치의 변동이 매우 중요한 지표로 작용할 수 있다. 즉, 화폐가 사물의 부를 재현하는 기호로서 지닌 역량이 언제, 어떻게, 왜 변했는가를 파악하는 일은 현실정치 권력의 변화와 맞물리고, 보통 시민들의 생계 문제와도 결부되며, 나아가 권력이 개인의 신체에 개입하는 힘과도 연결된다.

고전주의적 사유는 경험적으로 존재를 규정하고, 명명하고, 의미를 파생시키고, 단절 없이 재현하는 과정을 통해 발전했다(297p). 신으로부터 우연히 주어진 운명을 벗어나 관찰과 명명의 주체가 되면서 인식론과 철학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경험적 지식이 촘촘하게 쌓이는 와중에 그 반대급부로 경험의 빈틈에 대한 잠재울 수 없는 우려가 지면의 표층을 뚫고 서서히 짙은 안개를 내뿜기 시작했다. 재현할 수 없는 사물들, 관찰할 수 없는 유기체의 구조들, 갈라놓을 수 없는 연속성들, 등가의 논리가 통용되지 않는 거래들, 그 밖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비롭고 우연한 사건들은 완벽해 보였던 명명의 격자에 스멀스멀 구멍을 냈다. 이 지점에서 근대의 사유가 시작되었다. “문헌학, 생물학, 정치경제학은 일반 문법, 자연사, 부의 분석이 이전에 차지한 자리에서가 아니라, 이 지식들이 존재하지 않는 바로 거기에서, 이 지식들이 공백으로 남겨 놓은 공간에서, 이 지식들의 주요한 이론적 선분들을 갈라놓고 존재론적 연속의 웅성거림으로 가득 찬 깊은 틈에서 생겨난다(298p).”

고전주의 시대까지 모든 것은 그저 재현일 뿐이었다. “재현은 언어, 개체, 자연, 그리고 필요 자체의 존재 방식을 좌우하는 것”이었다(300p). 하지만 재현의 규칙에 균열이 생기고 의심이 시작된 순간 재현의 성채는 빠르게 침식됐다. 그 자리를 인간의 의지, 정신, 노력, 욕구 따위가 대체하기 시작했다. 외형을 향하던, 동일성과 차이를 식별하던 시선이 이제는 대상의 안으로 파고들었다. 이제 외형이 아닌, 그것을 필연적 결과물로 만든 내부의 유기적 구조와 연속성이 더 중요해졌다. 실증, 경험성, 그리고 역사의 시대가 도래했다.

부에 관한 성찰에서 거래의 본질을 추적하다 보니 그 뿌리에서 모든 생산활동의 불가결한 존재, 만들고 팔고 사고 소모하는 존재, 바로 인간의 노동력이 떠올랐다. 노동력을 최대로 확보하고 유지하는 실증적 관점의 정치경제학이 주류로 떠오르면서 관념에 대한 사유들은 그저 그런 심리학으로 쪼그라들어 조용한 연구실로 숨어들었다(318p). 노동은 모든 생산의 근간이다. 인간은 죽지 않기 위해 노동하고, 이 지점에서 경제학이 인간학으로 나간다(358p).

유기적 구조의 본질에 주목하는 사유는 생물학에서 가장 명확히 드러났다. 생물의 본질을 설명하고 분류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외형적 특징이 아니라 그것을 이끌어 낸 보이지 않는 내부의 유기적 구조였다. “특징은 가시적인 것 자체에 대한 가시적인 것의 관계에 의해 확정되지 않으며, 기능이 제어와 결정이라는 중요한 역할을 맡는 복잡한 위계적 조직의 가시적 끝자락일 뿐이다(322p).” 특징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기능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유기적 구조를 생각한다는 것은 가시적인 것을 비가시적인 것과 연결한다는 의미였고, 이러한 관념의 구조 아래서 말과 존재물의 오랜 친화력도 해체되었다(325p). 문법에서 중요한 것은 불변하는 어근, 즉 모든 언어의 뿌리가 아니라 발음과 낱말들의 상호 관계이며, 낱말이 배합, 변형, 굴절한 과정과 체계였다. 재현의 외피에서 말과 사물의 연결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그 재현의 이면인 심연으로 들어가야 했다(336p). “재현되는 것의 존재 자체는 이제 곧 재현 자체의 바깥으로 떨어지게 된다(337p).”

실증적 세계와 이면의 근본 원리에 대한 고찰은 단박에 서로를 압제하지 못하며, 나선형을 그리며 상호 증폭됐다. 선험적인 무언가에 대한 전제에 기반한 형이상학과 관찰만을 전부로 여기는 실증주의는 서로가 서로에 힘입어 세를 키우며 서구 사상적 흐름의 두 축으로 자리를 잡았다(344p). 근대가 열어젖힌 이 두 가지 사유의 장은 비판론과 함께 삼각형을 이루며 서구 사상사의 요체를 이루고 있다.

분류하기가 더는 불가능해지는 순간에 근대가 열렸다(418p). 그리고 그 중심에서 니체가 등장해 말하고 질문하는 주체인 인간, 초인, 니체 자신을 지목했다. 재현과 기성 언어의 균열 속에 새로운 언어의 가능성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는 바로 그 지점에서 푸코는 니체를 소환하고, 연이어 불현듯 저자이자 주체인 “나”로 등장해 “새로운 형태의 사유를 향해 결정적으로 도약”해야 하는 숙제가 자신에게 주어졌음을 암시한다(422p). 그리고 (우리 같은) “읽을 줄 모르는 이들”은 니체의 후계자이자 그를 넘어설 차세대 슈퍼스타인 자신의 큰 뜻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며 넌지시 깔아뭉갠다. 우리는 거기에 적절한 반론을 찾을 수 없다.

고전주의가 무너진 자리에 인간학이 들어섰다. “인간은 지식의 조물주가 고작 200년 전에 손수 만들어 낸 아주 최근의 피조물이다(424p).” 고전주의 에피스테메에서도 인간과 자연은 재현을 매개로 상보적 관계를 맺었고, 인간은 중요한 성찰의 주제였다. 하지만 인간이 완전한 지식의 주체로 부상했던 것은 아니었다(426p). 고전주의 언어는 재현과 도표 만들기, 투명하게 드러내기에 집중하므로 인간의 복잡성을 분석하는 인간학의 가능성을 떠올리지 못했다. 르네상스나 합리주의 체제 아래서도 인간은 충분히 특권적인 위치였으나, 진정한 의미에서 사유의 대상이 된 것은 근대로부터다(437p). “자연사가 생물학으로, 부의 분석이 경제학으로, 특히 언어에 관한 성찰이 문헌학으로 바뀌고 존재와 재현의 공통의 장소인 고전주의적 담론이 사라질 때, 이와 같은 고고학적 변동의 깊은 동향 속에서, 인간은 지식의 대상인 동시에 인식의 주체라는 모순적인 입장을 띠고 출현한다(429p).” 이 책을 다 지우고 나면 이 문장만 남을 것이다.

인간학의 시대에 주목한 인간의 첫 번째 본질은 유한성이다. 인간은 태어나 경험하고 죽는다는 것이다. 경험이 재현의 영역에 있을 때 무한성을 전제로 성찰할 수 있었고, 또 반드시 무한성이 전제되어야 했지만, 경험이 재현과 분리된 순간 유한성은 불가결해졌다(435p). 인간의 유한성이 철학의 토대가 된 순간 형이상학은 끝났다. 인간은 유한한데, 언어의 기원은 아득히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고, 어떤 기원을 발견하더라도 그 기원조차 과거 시간의 침전물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453p). 기원을 찾는 여정은 우리가 기원을 찾을 수는 없다는 사실만을 끊임없이 일깨운다. 인간의 유한성과 언어의 존재를 연결해서 성찰해야 한다는 불가능한 과업이 우리에게 주어졌고, 이 양립 불가능성을 언젠가는 극복해야만 한다(464p).

인간에게 기원은 최초의 첫 새벽이 아니다. 우리는 첫 새벽에 의해 형성된 오늘날의 구조 안에서만 사유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선험성의 굴레에서 느껴지는 무력감에서 벗어나 인간을 주체로 세우려면, 모든 인간의 경험을 실증적으로 연구해야 했다. 그것이 인간학의 토대였다. 이러한 인간학은 “칸트로부터 우리에게 이르기까지 철학적 사유를 지배하고 이끈 기본적인 경향”이다(468p). 인간은 무엇을 알 수 있나?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나? 인간은 무엇을 희망할 수 있나?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들이 경험적-선험적 이중화에 사로잡힌 인간의 본질을 파고드는 질문이었다면, 그리고 이 질문들이 지금까지의 성찰을 이끌어 왔다면, 그러나 지금까지 인간학의 기획이 선험성과 경험성 사이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제자리만 맴돌았다면, 새로운 사유는 이 네 가지 질문 자체를 허물어뜨리는 것이 되어야 한다. 새로운 철학을 위해서는 인간학의 주제였던 인간을 사라지게 하고 그 공백에서 새로운 사유를 시작해야 한다. 오직 인간만이 시점이자 종점이라는 신화를 버려야 한다.

근대 에피스테메의 삼면체는 진짜 과학인 수학과 물리학, 르네상스로부터 이어진 실증적 성찰인 언어학·생물학·경제학, 그리고 철학이다(474p). 인문과학은 이러한 삼면체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삼면체의 경계와 균열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인문과학이 이렇게 절묘하게 곳곳에 침습해 있어서 사유는 늘상 인문과학으로 굴러떨어질 우려가 있는데, 이것이 어찌 보면 사유의 가장 큰 위기다. 인문과학은 세계의 중심이 아닌 인간을, 그럴싸해 보이는 억지 논리로 마치 세계의 중심인 것처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인문과학은 사이비 과학이 아니다. 사이비 과학도 과학의 일종이지만 인문과학은 애초에 과학이 아니므로 사이비 과학이라고도 할 수 없다. 인문과학이 과학이 아니라는 점은 실증성에 집착한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그것이 과학이었다면 실증성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과학은 실증성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과학의 대상이 아니다. 인간이 초월적인 존재라서, 대단히 복잡해서, 환원할 수 없는 대상이라서가 분석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 인간은 그저 실증적으로 파악될 수밖에 없는 존재일 뿐이다. 인문과학은 자기 논리를 세우기 위해 과학에서 차용된 실증적 모델을 요긴하게 써먹으면서 과학의 칭호를 덧입었고, 인간을 주제로 내세우는 과정에서 인간이 과학의 대상처럼 보이는 착시와 신화화를 불러일으켰다.

인문과학이 달성한 가장 큰 성취는 비정상을 연구의 주제로 부상시켰다는 것이다(492p). 프로이트와 그 후계자들이 보여주었듯, 비정상과 무의식에 주목하고 그 베일을 벗기는 것은 인문과학의 본령이다. 특히, 민족학과 정신분석학은 인간의 유한성에 실증적으로 접근하면서 인간의 에피스테메를 드러나게 하는 것이므로 무의식의 과학이라고 볼 수 있다(515p). 그런 의미에서 민족학과 정신분석학은 인문과학의 일부가 아닌, 모든 인문과학 영역에 걸쳐지고 내재하는 토대이다.

언어는 사유의 출발점이자 가장 유력한 도구다. 언어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일은 모든 사유를 집어삼킨다. 오늘날 언어를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 문학은 유독 유한성과 실증성에 천착한다(521p). 우리는 유한성의 공간에서 사유한다. 인간은 신을 죽였고, 그 빈자리를 차지했지만, 그 사실에서 이미 알 수 있는 진리는 언젠가 인간도 무언가에 의해 죽거나 대체되리라는 유한성이다. 근대 이후의 사유는 150년 전에 재현의 균열 속에서 인간을 발견했지만, 이 에피스테메가 사라지는 순간, 인간도 함께 사라질 것이다. 그곳이 사유의 새로운 지평이다. 그 순간은 논리적 인과관계나 필연적 궤적이 아닌 우연한 사건과 함께 도래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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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뜨거웠던 구조주의 논쟁의 한복판에서 출판된 이 책은 마치 구조주의의 교본처럼 보였다. 푸코는 구조주의자인가? 특정한 사유가 가능하게 하는 구조를 강조하는 입장이 구조주의라면, 푸코는 구조주의자로 보인다. 그리고 이 책이 구조주의의 정수로 느껴진다면, 그 느낌은 상당수 상식 있는 독자에게 (칸트적 관점에서) 보편적이리라 추정할 수 있다. 푸코는 기존의 견고했던 질서에 균열을 내는 새로운 경험이나 사유가 있고, 그 과정이나 조건을 밝히는 것이 이 연구의 목표라고 했다(16p). 어떤 시대의 여러 사유 속에 숨겨진 동일성의 근거와 선험적 여건을 밝히겠다고 했다(21p). 언어는 어떤 조건에서 지식의 대상이 되는가? 고전주의 시공간의 어떤 한계에서 특정한 인식론이 전개되었는가(188p)? 이러한 질문들은 당대 사회의 구조와 조건을 밝히겠다는 것이다. 그 조건을 에피스테메라고 할 때, 하나의 문화와 하나의 시기에 하나의 에피스테메가 식별될 수 있다. 이것은 당대 모든 지식의 가능 조건을 결정한다(247p).

에피스테메를 밝혀내는 지식의 고고학은 일반적인 역사학과 달리 특정한 인물의 내력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추적하지 않는다. 다만 특정한 시대에 어떠한 인식들이 가능했던 조건을 따질 뿐이다(291p). 또한, 고고학은 결론짓지 않는다. 그저 치밀하게 추적할 따름이다(307p). “지식의 역사는 시간 속에서 형성된 조건과 선험적 여건의 견지에서만 서술될 수 있을 뿐이다(299-300p).” 고고학은 과학으로 규정할 수 없는 형상들, 즉 실증적 근거는 있지만 과학은 아닌 모호한 지점의 형상들이 에피스테메에 뿌리 내리는 방식을 보여준다(499p). 그러면서 이 형상들이 과학과 어떻게 근본적으로 다른가를 증명한다.

상술했듯, 지나간 시대의 에피스테메를 밝힌다는 것은 개인이 해낼 수 없을 정도의 야심찬 과업으로 보인다. 푸코는 그 과업을 약간의 야심과 박학으로 그럴싸하게 해냈고, 돌이켜보면 사상사 전반에 걸쳐 가장 설득력 있는 지식의 고고학자였다. 이 책이 논쟁의 중심에 선 순간, 푸코는 자기 야심이 어느 정도 달성되었음을 느꼈고, 다소간 성취감도 맛봤다. 그래서 본인을 새로운 구조주의 수장으로 옹립하려는 목소리들에 경계하면서도 일단은 호의적으로 받아들였다. 시대의 조건을 알아야 그 안에서 개인이나 집단이 해야 할 일도 알 수 있고, 그다음 행동으로도 나아갈 수 있다는 그의 신념은 진심이었다. “나는 경제적·정치적·이데올로기적 구조들이 기능하는 엄격한 이론분석의 방식이 정치적 행동에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적 행동이란 구조들을 다루는 방식이며, 결국 구조를 바꾸고 뒤흔들어 그것을 완전히 변형시키는 방법이기 때문이다(에리봉, 300-301p).”라고 말한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다. “나는 구조주의가 모든 정치적 행동에 반드시 필요한 분석적 도구를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에리봉, 301p).”라는 말도 선각자적 구조주의자로서 자기 자신을 중심에 옹립한다는 전제하에서 이해할 수 있다.

늘 그렇듯 대중은 저자를 알고 싶어 하나, 정작 그의 깊은 속내까지는 관심 없다. 견고한 구조를 강조하는 말은 그 구조를 벗어날 수 없음을, 그래서 의지의 발현이나 혁명은 불가능함을 강조하는 말로 들렸다. 이렇게 반동적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이 책에서 언급된 니체 관련 대목들과 푸코의 삶의 궤적을 간과했다. 초기에 저자는 특유의 여유 있는 언변으로 비판자들을 따돌렸다. 하지만 비난이 쌓이고 쌓여 구조주의라는 말 자체를 둘러싼 거대한 오해의 성채가 구축된 순간, 홀로 그 성채에 돌진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때부터, 그러니까 1969년쯤부터 푸코는 구조주의자라는 틀에서 자신을 빼주기를 강력하게 요청한다. 그러한 요청에는 아마도 어떠한 이론적 틀에도 묶이고 싶지 않은 천재들 특유의 자의식도 어느 정도 발동했으리라고 본다.

푸코가 구조주의자인지 아닌지는 사실 사상적 흐름을 놓고 볼 때 중대 사안도 아니며, 그 스스로 어떠한 정체성을 내세웠는지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어느 날 갑자기 환생한 카미유 피사로가 미술사 책을 뒤적거리더니 자신을 인상주의자 목록에서 빼달라고 한들, 우리가 들어줄 이유도 없고, 그래야 할 필요성도 없다. 떠나간 사람은 역사에 대한 권리를 가질 수 없다. 다만 기억해야 할 것은 정치적 행동을 위해 구조를 알고, 그것을 다뤄야 한다는 그의 메시지이며, 실제로 그 메시지를 몸소 실천했던 어떤 인물의 발자취이다.


“내가 누구인지 묻지 말고, 나에게 언제나 똑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기를 강요하지 말라. 그것은 호적 관리의 도덕일 뿐이다. 그 도덕은 우리의 서류를 지배한다. 그러나 글을 쓸 때만은 우리를 제발 좀 자유롭게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다.”

“나의 모든 책들은 자그마한 연장통이다. 사람들이 권력 제도를 단락시키거나 그 가치를 떨어뜨리거나 혹은 완전히 분쇄하기 위해서는 이 연장통의 뚜껑을 열고 마치 드라이버나 펜치를 찾듯이 거기서 어떤 문구, 어떤 관념, 어떤 분석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중략) 나에게는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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