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성에 대한 근원을 추적하는 책이다. 언제부터 속도에 대한 묘사가 생겨났을까? 직선, 나선, 쌍, 연속과 같은 개념은 어떻게 발전했을까? 지금은 너무나 당연해서 의구심을 갖기 힘든 이러한 개념들의 숨겨진 이야기들은 늘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중고책방에서 만난 이 책이 그러한 호기심을 해결해 줄 것으로 기대했다. 결과적으로 소재도 좋고, 포괄하는 범위도 넓고, 자료도 빵빵한 책인데 더럽게 재미 없다는 것이... Continue Reading →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
그때의 나, 지금의 나 출장을 떠나며 10년 만에 다시 하루키를 꺼내들었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그럴만한 시기이다. 처음 이 책을 읽었던 20대의 나는 세상과 사람을 너무 몰랐다. 작품 서두(12p)에 나오는 말처럼, 모든 생각들이 빙빙 돌아 결국 나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그런 시기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나 자신에 대한 사유의 정도가 지금보다 훨씬 심했다. 나 이외의 모든 타자는 마치... Continue Reading →
로버트 해리스의 「콘클라베(Conclave): 신의 선택을 받은 자」
거룩한 성의를 걸친 종교계의 흑막을 열어 젖히는 이야기는 늘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특히 로마 가톨릭은 지난 2000년 간 박해의 상징으로, 시대의 율법으로, 구습의 망령으로, 혹은 평화의 또 다른 이름으로 적절하게 옷을 갈아입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찬란한 역사를 이어가고 있기에, 그 내막에 대한 궁금증도 더불어 커져간다. 종교는 필연적으로 어느 정도의 신비를 동반하며 그 생명을 유지하기... Continue Reading →
이충렬의 「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2011)」
처음에 목차를 훑어보니 여러 역사적 사실들을 두서 없이 짜깁기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산만하고 가벼운 책일 것 같았다. 대체로 '그림으로 읽는 어쩌구저쩌구' 류의 책이 안겨줬던 실망감이 늘 그런 것이었다. 화려한 그림으로 시선을 끌고 흥미를 자아내지만, 이야기에는 깊이가 없고, 작품 해석에서도 한계를 드러내며 역사와 그림,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는 우를 범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그간 교육적인(≒고리타분한) 책을... Continue Reading →
촘스키와 푸코, 인간의 본성을 말하다(The Chomsky-Foucault Debate: On Human Nature)
언어, 구조, 역사 등 사상 전반을 아우르는 폭넓은 연구에도 불구하고 정작 대중에게는 사회/정치적 메시지들로 더 강한 인상을 남긴 두 지식인이 TV 토론에 나섰다. 1971년 11월에 한 네덜란드 방송사의 주최로 진행된 토론회는 폰스 엘더르스(Fons Elders)가 사회를 맡았고, 촘스키(Noam Chomsky)는 영어로, 푸코(Michel Foucault)는 프랑스어로 답했다. 이 책은 그 토론회의 전체 녹취록을 담고 있으며, 그것만으로는 독립된 출판물로서 적정... Continue Reading →
세라 손튼의 「걸작의 뒷모습(Seven Days in the Art World)」
내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누구에게나 동경하는 세계가 있을 것이다. 그 세계는 바라만 봐도 가슴이 떨리고, 나 자신이 일원이 된다는 상상만으로도 전율이 이는 그런 곳이다. 내게 첫번째 동경의 무대는 뮤지컬이었고, 이어서 패션 비즈니스가, 지금은 미술계가 그런 곳이다. 첫번째 동경의 무대에 대해서는 지금처럼 글도 열심히 쓰고, 영세 기획사의 서포터즈 활동도 했었다. 최근까지도 뮤지컬 동호회에서 노래를 불렀었다. 하지만... Continue Reading →
제이 에멀링의 「20세기 현대예술이론」
작고, 예쁘고, 새빨간 핸드북에 현대 미술이론의 정수를 담았다. 물론 엄밀히 '미술이론'은 아니다. 미술을 위해서 탄생한 것들이 아님에도 미술계에서 주로 차용하는 이론들이다. 구성면에서는, 이론별로 풀어가지 않고 사람 중심으로 풀어간다. 이는 저자가 아직은 이론과 사상에 있어서 '작가성'을 견고하게 인정하고 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작가의 죽음'은 작품 분석에서 중요한 관점이지만 비평이론에 있어서 만큼은 작가의 장례식이 도대체 언제쯤 열리게 될지... Continue Reading →
문범강의 「평양미술: 조선화 너는 누구냐(2018)」
◐ 알 림 ◑ 본 서평의 저자는 대한민국 육군 장교 출신으로, 확고한 국가관 및 안보관이 검증되었습니다. 또한 현존하는 가장 이상적인 국가 체제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적극 지지합니다. 가. 사회주의 리얼리즘 근현대 미술사 논의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배제할 수는 없다. 19세기말의 데카당과 양차 대전을 겪으면서 인류(≒서구)의 타락을 목도한 예술가들은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그것에 대응하였는데, 첫째는 견고한 이성적... Continue Reading →
존 버거의 「본다는 것의 의미」
시각 문화 전반에 걸쳐 깊은 통찰을 보여주는 존 버거(John Berger)의 에세이 모음집이다. 총 세 개의 장에 걸쳐 23편의 글이 실렸다. 19세기 산업사회를 거치면서 인간과 동물의 관계가 어떻게 변해 왔는지 고찰한 첫번째 에세이는 단독으로 한 장을 차지하고 있다('왜 동물들을 구경하는가?'). 자연과 단절되고 심지어 그것을 도구화하는 인간의 모습은 저자에게 깊은 상처를 준 주제이며, 아마도 그가 산 속으로... Continue Reading →
존 버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
존 버거(John Berger)는 케네스 클라크(Sir. Kenneth Clark)와 마찬가지로 BBC 프로그램을 통해 미술사 담론을 대중화시켰다. 하지만 클라크가 예술과 문명의 관계에 관한 아카데미즘을 대중의 눈 높이로 매끈하게 고쳐 놓았던 것과 달리, 존 버거는 아예 미술을 이해하는 틀 자체를 전면 수정할 것을 촉구했다. 그 비장한 선언서가 「다른 방식으로 보기(Ways of Seeing, 1972)」이다. "우리가 사물을 보는 방식은 우리가 알고... Continue Read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