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키 크론 애머로즈의 「예술가의 글쓰기: 시각 예술가를 위한 작문 가이드」

글을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것을 타인에게 내어 놓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시각적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사람들에게 작품을 언어의 형태로 변환하라거나 최소한 변론이라도 해보라고 강요하는 일은 거의 폭력에 가깝다. 하지만 때로는 그 폭력에 당당히 맞서야 한다. 해내야만 한다. 예술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삶이며, 삶은 나와 타자의 소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중추가 언어이기 때문이다. 예술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후원을 받거나 작품을 팔아야 하며, 하다 못해 작품을 보게끔이라도 만들어야 한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이 사랑스러운 분홍책은 예술가로서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친절한 누나처럼 알려주고 있다. 이 누나는 예술가라는 자의식에 강하게 매몰되어서, 혹은 글을 쓰는 행위 자체에 막연한 두려움을 느껴서 좀처럼 쓰려고 하지 않는 예술가들을 어르고 달래며 한 단계씩 성장할 수 있도록 독려한다. 예술가의 글쓰기에 관한 정감어린 조언과 실용적인 연습법을 240페이지의 소책자에 담았는데, 영한대조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시골교회에 비치된 먼지 덮힌 성경책에서나 볼 것 같은 영한대조를 실로 오랜만에 본다. 글쓰기법을 외국작가에게 배운다는 것에 대한 독자들의 잠재적 우려가 있을 수는 있으나, 그것을 상쇄해주기 위해서 영한대조를 선택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번역한 분량 자체로는 120쪽 밖에 안나오니, 그래도 최소한의 매출 외형을 갖출 수 있을 만한 설득력 있는 단가를 맞추기 위해서, 즉 분량 뻥튀기를 위해서 영한대조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독자들에게 모국어로도 읽고, 원어로도 한번 더 읽는 즐거움이 생기기는 했다. 하지만 번역가에게는 엄청난 부담이었으리라. 인구 수 대비 토익 고득점자 비중이 가장 높은 대한민국 아닌가. 그런 똑똑한 독자들을 대상으로 원어와 번역본을 나란히 제시해야 하니, 한 문장 한 문장이 얼마나 고민되었을꼬.

책의 장은 ‘작가의 말 쓰기’와 ‘경력지원서 & 판매용 소개서 쓰기’로 구분되어 있지만, 가르침의 정수는 작가의 말 쓰기에 거의 모두 담겨있다.

시각적으로 이미 표현된 바를 모두 말로 옮길 필요는 없다! 우리의 목표는 관객이 작품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가까이 들여다볼 만한 이유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들이 제대로 볼 수 있도록 도와주자. – 27p

작가의 말, 관객과 작품 사이에 다리가 되는 말들을 간명하게 정리한 것. – 39p

도널드 프레지오시(Donald Preziosi)는 미술사를 ‘볼 수 있는 것을 읽을 수 있는 것으로 만드는 일’이라고 정의하였는데, 미술가가 미술사의 핵심 주체라는 것이 자명하다면, 작품의 언어화에 미술가도 적극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는 예술가의 의도가 작품의 모든 것을 대변하지 않으며, 진정한 작품의 의미와 가치는 작가, 작품, 관객, 그리고 그 모두를 둘러싼 세상이 협력하여 만들어간다는 새로운 지평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작품에 대하여 매력적으로 부연한 작가들의 언어는 우리를 감동시키며,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비키 크론 애머로즈(Vicki Krohn Amorose)의 이 책을 비롯하여 좋은 글쓰기(아트라이팅) 책들이 생각보다 시중에 많이 나와 있다. 이런 책들이 더 널리 읽히면 좋겠다. 더 많은 예술가들이 글쓰기에 관심을 갖기 바란다. 그들이 작품에 대한 매력적인 이야기를 더욱 아름답게 표상하는 방법들을 익히고, 우리에게 ‘또 하나의 작품’을 더 많이 남겨 주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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