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걸의 「비트겐슈타인 논고 해제」

철학을 완성하고, 이내 박살낸 후, 홀연히 사라졌던 불세출의 천재 비트겐슈타인은 두 권의 주옥같은 저작을 남겼다. 「논리철학논고(1922)」와 「철학적 탐구(1953)」이다. 각기 1, 2차 세계대전의 상흔을 겪은 후 세상에 나왔다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완전무결함을 자랑하는 두 저작은 이른바 형이상학뿐만 아니라 철학이라는 학문 자체마저도 종결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이들은 발에 치일지언정 실제로 그를 읽은 사람은 없다. 적어도 내 주위에는 없다.

나도 그런 이들 중 하나였기에 조중걸의 「비트겐슈타인 논고 해제」를 집어 들었다. 이 책은 독특하게도 비닐에 쌓여 있다. 만화책, 잡지, 신화 누드 화보집 같은 책들이나 비닐로 싸는 것인 줄 알았는데 자못 의아스러웠다. 비닐을 뜯어서 책을 열어 보자 이내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철학책이 아니라 수학책처럼 보였다. 상당히 많은 수학 기호와 산식들에 짐짓 두려움이 앞섰다. 아마도 비닐의 의도는 나 같은 ‘수포자’들이 지레 겁먹고 ‘비트겐슈타인포자’로 이어질까봐 염려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나 같은 ‘문돌이’에게도 수학 기호들이 어렵지는 않았다. 비트겐슈타인에게 수학은 그저 논리명제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그림(도구)에 지나지 않았고, 숫자와 기호 자체의 의미를 이해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상 그에게 숫자와 기호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논리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그림일 뿐이다.

이 책은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 원문을 보여주고, 그것을 번역한 후 해제하는 순서로 구성되었다. 이러한 친절한 영한대조식 구성은 초등학교 전과를 연상시킨다. 실제로 저자의 설명은 매우 꼼꼼해서 불친절하기로 소문난 비트겐슈타인의 언명들을 아주 단순한 예시와 예증으로 풀어준다. 비트겐슈타인을 만나는 첫걸음으로 손색없다.

이 책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은 나의 역량으로 불가능하거니와 원 저자인 비트겐슈타인의 의도와도 맞지 않다. 논리는 말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보이는 것이다. 논리가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의 밖에서 나에 대해서 말할 수는 없다.

그러니, 이 책에서 발견한 비트겐슈타인의, 혹은 조중걸에 의해 해석된 비트겐슈타인의 멋진 문장들을 곱씹는 것에서 그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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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이 참의 증표”

말에 군더더기가 많고 모호한 개념을 여러 표상으로 에워싸는 사람은 거짓을 말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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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함이라는 불모의 고원에 머물지 말라. 어리석음이라는 녹색의 계곡으로 내려오라.”

영리한 것처럼 보이는 형이상학적 모호함은 사실상 아무 것도 없는 무의 세계이다. 논리는 그 자체의 형식 속에서 스스로를 증명하거나, 세상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침묵하는 편이 논리에 더 가깝다. 그 백지는 더 많은 색을 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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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무엇인가 다른 가치들보다 상위에 놓인 본질 같은 것은 없다. 모든 논리명제는 더 이상 쪼개질 수 없는 최소 단위의 소립자와 같은 항진명제로 구성되어 있고, 이 최소 단위의 명제들은 동일한 위계를 지니며 서로 인과관계에 놓여 있지 않다. 그리고 그 자체로 무조건 참인 논리형식을 갖추고 있거나 세상 속에서 경험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사실의 문제일 뿐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마주치는 존재들은 우연히 그곳에 존재한다. 왜, 어떻게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고 질문의 주제조자 될 수 없다. 거기에 실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며, 그 어떤 상위의 본질, 이유, 형이상학적 개념도 그 실존보다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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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사물의 총체가 아니라 사실들의 총체이다.”

명제는 참 혹은 거짓으로 판명날 수 있는 언명이고, 세계 전체를 명제로 표현할 수 있다. 그 모든 명제들의 참과 거짓을 밝혀낸다면 세계는 온전히 이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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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사유를 위장한다.”

경험할 수 없는 것을 하나의 단어로 묶고, 그 단어를 서로 공유하고, 어느 순간 그 단어가 실재하는 것으로 믿게 되었던 과정이 전통적인 철학의 궤적이었다. 하나의 대상을 여러 단어로 부르는 것이 여러 사물을 하나의 단어로 부르는 것보다 낫다. 사실상 꽃, 개, 인간 등의 이름은 전혀 다른 존재들을 뭉뚱그려 놓은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개라는 이름으로 묶인 것들은 절대 동일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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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언어에 의한 우리 지성의 현혹에 대항하는 싸움이다.”

언어가 우리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린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참인지는 경험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다. 지성을 현혹하는 형이상학의 속임수를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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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관계에 대한 믿음이 미신이다.”

오늘 일어나는 인과관계가 내일도 일어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지구에서 일어나는 인과관계가 화성에서도 일어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뉴튼을 비롯한 근대 과학의 승리는 단일한 인과관계로 세상 모든 것들을 설명하려는 욕망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벌어지지 않은 인과관계에 대해서 알 수 없다. 오늘 발견한 인과관계가 내일도 변함없이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이 곧 미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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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지식에 대한 믿음이 곧 미신이다.”

같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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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율은 법칙이 아니라 단지 법칙의 형식일 뿐이다.”

인과관계는 법칙의 형식을 모방하고 있기 때문에 법칙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과학이 발견해낸 법칙들은 법칙이 아니라 우연이다. 그것들이 항진명제의 형식을 갖추고 있더라도 속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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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납의 과정은 우리 경험들에 들어맞는 가장 간단한 법칙을 참으로 받아들이는 데 있다.”

귀납을 통해 발견한 공통점들이 법칙으로 굳어지고 그것을 참으로 받아들인다. 감각적으로 경험한 사실들을 반복적으로 확증하면서 참으로 믿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 그렇게 받아들인 가짜 법칙에 속지 말아야 한다. 모두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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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업무는 사유를 선명하게 하고 그 경계를 분명히 그어주는 것이다.”

철학이 밥을 먹여주지는 않지만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고 범위를 확장시켜주는 것은 분명하다. 생각하는 힘의 끝판왕인 비트겐슈타인은 세 개의 세상을 보여주었다. (1) 말해질 수 있는 것, (2) 보여지는 것, (3) 침묵가운데 지나쳐야 하는 것. 말해질 수 있는 것은 뜻을 지닌 명제이다. 보여지는 것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그것이 왜 그렇게 보여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모든 것은 우연히 그렇게 존재한다. 침묵가운데 지나쳐야 하는 것은 뜻이 없는 말이나 경험할 수 없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렇게 경계를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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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언어의 한계가 나의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나의 경험이 곧 나의 세계이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이 나의 세계 속에 편입될 수는 없다. 너의 언어와 나의 언어는 다르기에 우리는 모두 영원히 소통하지 못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언어는 같은 논리 형식을 공유하고 있기에 소통이 불가능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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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는 교의의 집적이 아니라 거울에 맺힌 세계의 상이다.”

논리는 세계를 무심하게 보여준다. 세계는 그저 이유 없이 우연히 그곳에 존재하며 우리는 그것을 감각적으로 경험하여 언어와 명제로 풀어낸다. 경험할 수 없는 관념이나 형이상학적 가치들이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하면 논리라고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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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는 침묵 속에서 지나쳐야 한다.”

경험할 수 없는 것, 애시 당초 의미가 없는 명제에 대해서 철학이 할 일은 없다. 그냥 지나치는 것뿐.


 

책장을 덮으며, 이렇게 엄격한 언어를 강요했던 비트겐슈타인이 평소에 친구나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 어떠한 언어를 구사했는지 몹시 궁금해진다. 사랑, 진실, 열정을 절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던 걸까? 번역된 평전이 하나 있던데, 그것을 통해서라도 알아봐야겠다.

끝으로 이런 의문이 남는다. 경험과 실증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전부라면, 감각 자체를 속이고 왜곡하는 현상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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