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Erich Fromm, The Art of Loving

솔직히 이 책의 제목이 ‘사랑의 기술’이 아니라 ‘애무의 기술’이었다면 훨씬 구미를 자극했으리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이런 천박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 때문에 프롬(Erich Fromm)은 이 책을 써야겠다고 느꼈을 것이다. 사랑은 단순히 어떤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도구도, 욕망을 달성하기 위한 포장도 아닌, 그 자체로 목적이다.

지금까지 인류는 어떤 형태로든 끝없이 사랑을 이어가면서도 사랑을 정의하는데 계속 실패해 왔는데, 이처럼 정의조차 할 수 없는 개념에 대하여 한 권 분량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는 점이 존경스럽다. 프롬이 이야기하는 사랑은 일반적으로 연상되는 성애나 형제애 차원을 넘어서 인간에 대한 태도로서 사랑이다.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할 줄 아는 힘의 실현이고 집중화이다. 사랑에 내포되어 있는 기본적 긍정은 본질적으로 인간 성질의 구현으로서 사랑하는 사람을 지향하고 있다. 한 사람에 대한 사랑에는 인간 자체에 대한 사랑이 내포되어 있다.”

84p

프롬이 주장하는 사랑의 본질을 담고 있는 이 문장이 사랑의 여러 유형중에서도 자기애에 속해 있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나는 사실 오래전부터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는 신조를 가슴 깊이 새기고, 또 공공연히 발설하기도 주저하지 않았는데, 사실상 이 말은 나 자신의 퇴행적 자아도취를 정당화하기 위한 포장에 가까웠다. 프롬은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이 그 밖의 모든 사람들을 대하는 마음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에 그 사랑이 진정으로 성숙한 것일 수 없다고 보는데, 그러한 잣대라면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사랑은 저열한 수준임이 분명하다. 그것은 주는 것 자체의 기쁨을 누리는 사랑이 아닌, 그저 나 자신의 고독을 면피하고, 결핍을 메꾸는데 혈안이 된 일종의 몸부림이었을 수 있다. 사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이미 스스로 진단했던 바였다. 이 진단만으로 사랑의 문제들이 개선되지는 않는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뿐이라는 현실이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사랑의 이론에서부터 동시대적인 실상, 그리고 다소 모호하게나마 실천까지를 다루고 있지만 성숙한 단계의 사랑에 도달하기 위하여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그 문제란 바로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한 존재, 그야말로 절대 악인 존재, 우리를 파괴하는 존재를 어떻게 사랑의 범주 안으로 포섭할 수 있을까하는 것이다. 인류를 지향하는 숭고한 사랑이 사회제도 안에서 삶을 이어나가기 위한 일상적 투쟁과 균형을 이룰 수 있다는 저자의 관점은 지지하지만, 그 사랑의 대상에 나 자신을 파괴하는 존재까지 포함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나를 인격적으로 성장시킬 것이라 믿었던 사랑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도리어 나 자신을 파멸시킬 수 있다면, 그 사랑이 퇴행적인 자기본위의 사랑보다 나을 것이 무언가.

“이기적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또한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도 못한다.”

86p

나는 확실히 이기적인 편이긴 하다. 그래서 지휘자로서 군생활도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내 이기심의 근원에는 생존본능이 자리 잡고 있다. 생존의 위기라고 할 정도로 열악하지는 않았지만, 내 나름대로는 스스로의 육체와 정신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해야만 하는 환경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프롬은 사랑의 장애물로서 이기심이 자아를 돌보는데 실패한 것을 보상받기 위한 노력으로 보며, 이 노력은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 말은 확실히 수긍할만한 구석이 있다. 애초에 결핍에서 출발한 과정이 충만으로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지 않은가.

결국은 회복과 성장이 과제로 남는다. 이기심을 진단해냈다고 해서 일시에 치료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나의 생존본능을 일깨운 이기심의 원천이 나의 외부에서 아직 제거되지 않은 채 활동하고 있고, 지금도 내 삶에 계속 개입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것과 무관하게 회복과 성장의 단계로 도약할 수 있겠는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나 자신 뿐이다.

“생활 전체, 사소하지만 중요한 온갖 행동은 신에 대한 지식에 바쳐지지만 올바른 사고에 의한 지식이 아니라 올바른 행위에 의한 지식에 바쳐진다.”

105p

수 백 권의 책을 달달 외우는 것보다 한 번의 실천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사랑이 이론이 아닌 실천이듯, 신에 대한 사랑도 결국은 실천으로 완성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종교인들은 차라리 경전을 읽고 설교를 들으며 자위하는 수준에서 그친다. 그만큼 실천은 어렵고도 중요하다.

최근 개신교가 정치와 결탁한 모양새를 보면 개탄을 금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장로’ 대통령을 몇몇 배출했지만 그들이 크리스천으로서 국민들에게 모범을 보였는가를 돌이켜보면 회의적인 결론만 남는다. 물론 그들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부분들은 이 사회 시스템의 총체적 난국 속에서 파생된 결과물일지 모르기에, 종교와 정치의 연계에 대하여 논하기에는 부적절한 주제이다.

내가 진정으로 혐오스러워하는 부분은 개신교가 우경화를 지지하면서 내세우는 근거인데, 그들은 공산주의가 기독교를 탄압하고 무참히 학살한 전례가 있으므로 북한의 화의는 위장평화이고 거기에 속아 넘어간다면 또 다시 전쟁의 화마 속에 개신교도들이 죽어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했던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을 그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궁금하고, 기독교 복음을 위하여 순교했던 수많은 영혼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알고 싶다. 그리고 교회 문 걸어 잠그고 ‘국가와 민족을 위한 특별새벽기도’만 드리고 앉아 있으면 그들이 늘 걱정한다고 떠드는 북한의 인권문제를 하나님이 알아서 해결해 주실 것이라 믿고 있는지 묻고 싶다. 그들이 생각하는 실천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광장에 나가 부르짖는 형태인지도 답해야 할 것이다. 바울은 그렇게 실천하지 않았다.

“성적 욕망은 대부분의 사람들 마음속에서 사랑이라는 관념과 짝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육체적으로 서로를 원할 때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기 쉽다.”

79p

이 문제는 헤어진 후 오랜만에 다시 연락한 ‘구남친(아주 드물게 구여친)’과 그에 응답한 옛연인의 만남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통상 ‘자니?’로 시작하는 그 연락은 ‘얼굴 한번 보자’ 내지는 ‘밥 한번 먹자’를 거쳐 뜨거운 하룻밤의 재회로 이어지는데, 대개는 그 끝이 좋지 않다. 쓰린 속을 부여잡고 일어난 그 아침에, 헝클어진 채 누워있는 상대방을 바라본다면, 그리움으로 포장되었던 그 절절했던 감정이 결국은 알량한 성욕이었음이 명백해지고, 그 확인을 통해 극도의 자기혐오가 야기되기 때문이다. 그 자기혐오를 더욱 강화하는 것은, 이별의 원인이었던 본질적인 문제가 지금에 와서도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는 때늦은 확신이다.

나는 사실 오래전부터 외로움이라는 단어가 성욕 그 자체를 에두른 말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성욕만 충족되면 외로움이 끝난다는 의미가 아니라, 외로움이라는 감정의 본질에 누군가와 살을 맞대고 싶은 욕망이 분리시킬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게 흡착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말이다. 이 책에서 프롬은 가부장적인 성적 열망 하나로 모든 감정과 심리를 설명하려드는 선배(프로이트)에게 여러 차례 반론을 제기하며, 그 밖의 다른 요인들로 눈을 돌리게 한다. 그럼에도 나는 외로움과 성욕의 긴밀한 관계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어쩌면 인간이 행동과 심리의 기저를 요인별로 분류할 수 있다는 믿음 자체가 너무나 순진한 희망이 아닐까. 누가 뭐래도 결국 사람은 경험한대로 믿는다. 그리고 믿고 싶은 대로 본다. 가끔 속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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