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의 「천년의 수업: 나와 세상의 경계를 허무는 9가지 질문」

토대를 극복하기 위하여

가끔 출퇴근 시간에 만원 지하철에서 마주한 사람들을 물끄러미 쳐다보곤 한다. 저마다 목적지는 다르지만, 무표정하게 휴대전화 화면만을 주시하고 있다는 점은 놀라울 정도로 동질적이다. 성별도, 연령도, 직업도, 가치관도 천양지차인 사람들이 이토록 좁은 공간에, 이토록 비슷한 모습으로 소환되어 있다는 사실이 초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들은 대체로 이른 아침에 생계나 학업을 위해 감기는 눈을 억지로 비벼가며 안락한 집을 떠나 험난한 여정에 오른 것이다. 뉴스, 드라마, 뮤직비디오, 유머게시물, 쇼핑몰 등 구체적인 콘텐츠가 무엇이건 간에 사람들이 그 순간 소비하고 있는 것은 그 콘텐츠 자체가 아닌, 현실로부터의 도피처로 보인다. 지금 출근이나 등굣길에 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망각하기 위해 주의를 끌만한 시각적 자극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이건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사색이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시대는 깊게 생각하고 길게 말하는 것을 거부한다. 단순히 구성원 몇몇이 개인적으로 거부하는 차원을 넘어서,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침묵을 강요하기 위한 다양한 전략들이 횡행하고 있다. 조금만 내면 깊은 곳의 감정을 이야기하면 몸서리와 함께 ‘오글거린다’는 알러지 반응이 돌아온다. 조금만 전후 맥락의 살을 붙여 이야기하면 ‘TMT(Too Much Talker)’라는 프레임이 덧입혀진다. 조금만 대세와 다른 관점의 질문을 던지려면 ‘진지충’이나 심지어 ‘X선비’라는 멸칭까지 각오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특별한 패러다임이 필요할 정도로 급진적인 정보혁명이 한계를 모르는 자본주의의 팽창과 맞물리면서, 모든 가치판단 기준은 빠르고 즉각적이고 효율적인 것으로 수렴하고 있다. 68혁명 이래, 혹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이래, 이러한 경향은 한 번도 후퇴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인류는 한때 살아남기와 사색 말고는 딱히 할 것도 없었지만, 이제는 살아남기를 위해 자연스레 사색을 포기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세파가 아무리 우리를 도구화의 벼랑 끝으로 내몰더라도, 그것을 핑계 삼아 제대로 숙고하는 것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다. 비록 원치 않았던 생生일지라도 그것이 이미 시작된 이상, 우리는 주체적 인간으로 바로 서기 위한 여정을 멈춰서는 안 된다. 그 여정은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하는 끝없는 과정으로 완성된다.

김헌은 「천년의 수업」에서 우리가 질문의 본질로 되돌아가야 하는 이유를 구체적이고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이 시대에 우리가 고전과 철학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거기에 인류가 수천년 동안 쉼 없이 답을 구했던 질문들이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이 가치 있다고 입을 모은 것, 그래서 오랫동안 전승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것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우리는 인생의 온갖 장애물에 부딪힐 때, 나보다 앞서서 그 장애물을 뛰어넘은 누군가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는데, 고전 속에는 이미 인생의 모든 변수에 적용할 수 있을 만큼의 지혜들이 응축되어 있다. 저자가 주로 예시로 든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는 진보를 위해 도전을 멈추지 않은 영웅의 서사는 물론, 그 영웅에 응전한 전통적 가치관도 만날 수 있다. 승리를 위한 배신과 암투 속에서도 서로를 신뢰하고 힘을 합쳐 문제를 해결해간 사례도 볼 수 있다. 이처럼 많은 의문에 적용할 수 있는 답이 이미 주어져 있다. 가장 좋은 깨달음은 어떤 문제에 직접 부딪혀 몸으로 체감하는 것이지만, 고전 속 지혜는 그러한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도 적절한 답에 이르도록 인도해 줄 수 있다. 만사를 새롭게 보고 질문을 던질 용기와 답을 찾을 끈기만 있다면 충분하다.

저자는 자아성찰로부터 사회적 관계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다양한 문제들에 걸쳐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지고, 인문학 고전과 철학에서 답을 찾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내게 가장 와닿았던 대목은 서양 신화 속 친부살해의 전통을 단순히 세대 간의 갈등에 머무르는 것으로 보지 않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진보의 원동력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관점이었다. 오이디푸스나 크로노스의 신화에서 알 수 있듯, 야심찬 신화 속 주인공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끝내 아버지를 죽임으로써 현격한 성취에 도달했다. 친부살해의 극적인 드라마 속에서 주인공의 갈등, 고뇌, 그리고 인내가 응축되었으며, 그 총체적인 훈련과정이 개인의 인격적 성숙과 새로운 사회의 도래라는 긍정적 결과로 이어졌다. 실제였다면 패륜적이고 끔찍했을 하나의 사건을 신화적 메타포로 치환함으로써 세대 간 갈등이라는 병폐는 완곡하게 조절되었고, 도전과 응전의 역사를 긍정하는 사상적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신화는 특정한 지역 구성원들이 보편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정신문화의 근간이 된다. 그러한 점에서 친부살해의 신화는 서구 문명이 지금까지 과학기술, 예술, 경제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달성한 찬란한 성과의 원동력을 조금이나마 설명해 줄 수 있다. 프로이트가 친부살해를 일종의 통과의례이자 문명의 원천으로 설명한 것도 이러한 까닭에서다.

우리나라에도 친부살해의 신화가 있을까? 관련 주제를 연구한 김영희의 「한국 구전서사의 부친살해」에 따르면, 우리 신화에서 친부살해의 사례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이나 신라에 불법을 설파한 아도는 오히려 부친이 없이 태어나, 부친을 탐색하면서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을 밟는다. 부친이 달성한 성취의 신화를 덧입고, 그 연장선에서 자아의 발전을 모색했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서양 신화와는 정반대로, 부친이 자녀를 살해하는 ‘친자살해’의 사례가 종종 확인된다. 시부모가 실수로 손자를 삶아 먹으려 죽였는데, 며느리가 그것을 알고도 슬픔을 삭힌 채 시부모를 감싸고 효를 실천했다는 다소 섬찟한 구전설화가 대표적이다. ‘아기장수설화’도 자식살해 신화의 예시로 꼽을 수 있다. 평민 집안에서 아들이 태어났는데, 태어나자마자 비범한 장수여서 부모가 화를 두려워해 직접 죽였고, 부활하려는 시도도 관군에 들켜서 실패로 돌아가 결국 다시 죽었다는 내용이다. 이처럼 한국의 전통 서사에서는 굳건한 경로효친사상을 매개로 기성체제의 안정적 유지와 세대 간의 전승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이 세대교체와 변혁을 골자로 하는 친부살해 신화의 긍정적 가능성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자신을 형성한 토대를 전면적으로 회의하고, 그 위에 진일보를 위한 새로운 도전의 씨앗을 심어야 한다는 신화 속 교훈은 지금껏 내 삶을 지탱해온 소신과도 맞물린다. 나는 가난과 폭력에 수시로 노출된 환경에서 나고 자라면서 타고난 배경, 특히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내 의지나 능력과 무관한 독립적이고 외생적인 요인임을 배웠다. 또한, 그 배경이 한 개인의 삶 전체에 걸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도 실감했다. 가부장제, 경로효친사상, 가족중심주의, 그리고 화목한 가정이라는 신화와 같이 일반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지는 통념과 교훈들이 나에게는 쉽사리 적용되지 않거나, 나를 옥죄는 족쇄로만 느껴져 숱한 고민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보통 사람들과 같은 거리를 가더라도 곱절 이상의 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열악한 배경을 핑곗거리 삼아 안주하기보다는 나 자신의 능력으로 극복하고 성장할 수 있는 지점들을 찾아 노력하는 편이 낫다는 것을 깨달았다. 노력하고 고민한 시간은 두텁게 쌓이고 쌓여 쉽게 흔들리지 않을 단단한 내공으로 돌아왔다.

그간의 내 삶은 토대를 극복하는 시간으로 대부분 채워졌다. 이제 앞으로의 시간은 속도를 조금 늦춰 나만의 견실한 옥토와 열린 울타리를 가꾸는 일에 사용하고 싶다. 그리고 훗날 거기서 누군가 쌓아 올릴 더 크고 아름다운 성城을 기다리고 싶다.

이 글은 진천군립도서관에서 주최한 '「2021 진천의 책」 전국 글쓰기 공모전'에 투고되었으며, 장려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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