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즈마 히로키의 「약한 연결: 검색어를 찾는 여행」

누가 몰라서 못합니까?

미디어는 인간이 생각하는 방식을 넘어 뇌의 인지 구조 자체를 바꾼다. 인간의 신경기전은 언어, 문자, 라디오, TV,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대대적으로 변화했다. 이 변화는 한 사람의 생애에 여러 차례 나타날 수가 없고, 한 번 나타나더라도 대단히 점진적이므로 체감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 변화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유선전화로 친구 집에 전화해서 친구 부모님께 아무개 좀 바꿔 달라고 부탁했던 세대는 밥상머리에서 친구들 서너 명과 동시다발적으로 ‘페메’를 주고받는 자녀를 절대 이해할 수 없다. 두 세대의 뇌 구조 자체가 다르다.

나는 나 자신을 아날로그 세대와 디지털 세대 사이의 과도기적 세대로 규정한다. 초등학교 때는 유선전화로 친구집에 전화했고, 중학교 때 처음으로 이메일 주소를 만들었으며, 대학교 때 네이버 카페에 접속해 조별과제를 수행했고, 직장에 들어가서 카톡을 깔았다. 삼성전자가 TV 광고로 “DigitALL”, “돼지털”이라는 언어유희를 앞세우며 대대적인 디지털화를 부르짖을 때,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언젠가 세상이 뒤집힐지도 모른다는 암시는 분명히 받았다. 디지털 기술에는 대체로 능숙하지만, 그것을 접한 때는 뇌가 어느 정도 굳어진 후였다. 나의 신경망은 아직 0 혹은 1로 완전히 치환되지 않았다. 그게 정말 다행스럽다고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구글이나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대해 조금만 찾아 읽어봐도 아날로그에 조금이라도 발을 걸치고 살아야 하는 이유가 분명해진다. 오늘날 알고리즘 기술은 최대의 접속시간을 보장하기 위하여 플로우(flow)를 조장하는 데에 혈안이다. 플로우란 하이퍼링크를 타고 끝없이 이어지는 몰입의 감각이다. 플로우에 진입한 유저는 자아를 상실한 채 미디어의 흐름에 완전히 몸을 맡기고 시공간을 초월해 더 깊은 몰입으로 빠져든다. 더 깊은 플로우는 더 많은 접속시간을 보장하고 더 많은 구매의사결정으로 이어진다.

술자리에서나 온라인에서나 누군가를 오래 붙잡아 두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계속 동의하고 공감해주는 것이다. 인터넷은 우리에게 계속 공감을 표하며, 이것도 원하지 않냐고 추천한다. 넷플릭스가 성공한 비결 중 하나는 도플갱어 전략이다. 서비스 초기에 넷플릭스는 “당신은 어떤 영화를 좋아하나요?”라고 물어보고, 그 작품과 비슷한 작품을 추천해 주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실적이 좋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한다고 표명한 작품에는 막상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전략을 바꿨다. 유저가 선택한 작품과 유사한 작품이 아니라, 유사한 작품을 선택한 다른 유저가 실제로 본 작품들을 추천해 주기 시작했다. 특정한 유저의 도플갱어를 찾고, 그 도플갱어의 선택을 추천했더니 더 효과적으로 클릭을 유도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이렇게 쉽게 읽힌다. 일단 한번 읽히기 시작하면,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범주를 좀처럼 벗어나기 힘들다. 그렇게 편향은 가속화된다.

동조는 달콤하고 반론은 괴롭다. 반론에 노출되고 싶어서 인터넷에 접속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접속하는 이유는 비슷한 생각에 노출되면서 스스로 세상과 연결되었다는 감정을 느끼기 위함이다. 특정 커뮤니티에 반복적으로 접속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비슷한 가치관을 공유한다. 공통의 인식에서 빗겨 난 사람들을 애초에 무수한 비난의 화살을 맞고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인터넷이 정보의 바다라지만, 특정 커뮤니티만 반복적으로 접속하는 사람들에게는 광활한 바다가 펼쳐지지 않는다. 그들에게 인터넷은 여러 해류가 뒤얽히는 바다가 아니라 한 방향으로만 강하게 휘몰아치는 협곡이다.


가까운 주변의 인맥, 동질한 성향의 커뮤니티, 통계적으로 예측 가능한 행동패턴과 같은 ‘강한 연결’에서 벗어나 ‘약한 연결’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주제다. 저자가 제안하는 약한 연결의 해법은 여행, 더 구체적으로는 관광이다. 관광은 무책임하게 쓱 둘러보고 돌아오는 행위다. 관광을 통해 육체를 새로운 환경에 내던져 놓고 보면, 새로운 자극과 우연한 변수들이 개입되면서 검색어가 확장된다. 육체를 옮겨 발견한 새로운 검색어는 구글이 예측해서 던져준 연관검색어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기존의 일상적 세계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던 다층적이고 풍부한 지식으로 들어가는 열쇠가 된다. 거기에 도달해야만 세계관이 확장될 수 있다.


지방으로 이사 온 지 2년 남짓 되어 간다. 이 기간에 코로나까지 겹쳐져 ‘약한 연결’이 점점 어려워져 가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출퇴근 길에 보이는 풍경이 놀랍게도 동질적이다. 지역이 나날이 발전하고는 있지만, 행인 자체가 절대적으로 적으므로 거리 풍경에서 느껴지는 변화는 미미하다. 못 보던 가게라도 하나 개업하면 유난히 눈에 띄고 관심이 간다. 그 정도로 자극이 적다.

서울에서 살 때는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퇴근길에 충동적으로 쇼핑몰을 둘러본다던가, 극장에 들러 영화를 본다던가, 한 정거장 일찍 내려서 걸어서 집에 가며 사람들을 관찰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약한 연결을 환기할 기회가 많았다. 여유가 생기면 계획에도 없이 관심 가던 분야의 동호회를 찾아 불쑥 출석해 보기도 했고, 그러한 소소한 시도들이 소중한 인연이나 기회로 이어지기도 했다. 지방으로 와서는 그런 기회가 확실히 줄어들었다.

약한 연결의 중요성을 몰라서 시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약한 연결의 기본적인 전제조건은 돈, 시간, 건강이다. 현대적 삶의 조건에서 이 셋 중 하나라도 부족하다면 약한 연결은 실현하기 어렵다. 인터넷 세상 속 강한 연결에만 내몰린 사람들이 어떠한 여건에 처해 있는지 가만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모든 취미가 온라인 세상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은 대체로 돈과 시간이 없다. 게임, 유튜브, 넷플릭스, 커뮤니티, SNS 등 온라인 활동은 돈이 거의 들지 않고, 시간 활용 면에서도 자유롭다. 건강에 다소간 문제가 있어도 온라인 활동에는 별로 영향이 없다. 반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건강한 사람들은 온라인 세계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는다. 그들은 스포츠카를 타고 클럽을 찾거나 진짜 필드에 나가 골프를 친다. 우동을 먹으러 일본에 가고, 킹크랩을 먹으러 블라디보스톡에 간다. 돈, 시간, 건강의 조건이 충족된 이들은 이처럼 약한 연결의 가능성에도 더 많이 노출되어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한 일상을 SNS에 공유하지 않으므로 우리로서는 그저 그러리라고 추측할 뿐이다. 요컨대, 약한 연결을 활성화하려면, 다양한 시도에서 예측되는 불확실성을 상쇄할 여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 책에서는 약한 연결을 위한 사회경제적 조건은 언급되지 않는다. 만약 저자에게 묻더라도 자신의 조건 안에서 최대한의 약한 연결을 활성화하면 된다고 말할 것 같다.

내가 스스로 일본 사상가의 짧막한 에세이를 찾아 읽을 가능성은 없다. 동거인께서 강력히 추천해서 읽었다. 어찌 보면 강한 연결에서 비롯된 약한 연결이다. 그분은 나에게 약한 연결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 책을 읽더니, 그간의 패턴이나 사회적 기대에 얽매이지 말고 진짜로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하라며, 직장을 때려치우고 빈곤층으로 내몰리더라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나는 내가 약한 연결을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그런 의견을 들으니 좀 충격이었다. 그간 알게 모르게 사회적 조건들을 핑계 삼아 숨죽이고 살긴 한 모양이다. 슬슬 날개를 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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