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mond Morris, The Naked Woman: A Study of the Female Body
폭력적 신체 훼손은 문화가 될 수 없다
동물학자이자 초현실주의 화가이자 불세출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데스몬드 모리스(Desmond Morris)가 인간의 신체 각 부를 흥미롭게 해부해 2004년 출간한 대중서다.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신체를 22개 장으로 구분하여 각 부의 진화 원리를 살펴보고, 그 외양을 꾸미는 방식이 얼마나 다채롭고 변화무쌍했는지를 폭넓게 고찰했다. 제목이 암시하듯, 인간 중에서도 특히 여성에 집중했다. 대표작인 「털 없는 원숭이(The Naked Ape, 1967)」와 「보디워칭(Bodywatching, 1985)」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남성 부분을 덜어내고 여성에 집중된 새로운 작품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저자는 본인이 여성이라는 존재를 사랑하고 숭배하기 때문에 개정판 작업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여성에만 집중한 새로운 책을 쓰게 되었다고 말하지만, 여성에 집중한다는 저자의 선언에 부합하기 위해 억지로 짜맞춘 기술이 적지 않게 등장해 진정한 의미에서 여성에게만 헌정하는 책인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을 남긴다. 예를 들어 신체 각 부의 미묘한 동작들이 어떠한 사회적 의미를 내포하는가를 다루는 많은 대목에서, 특정한 신체 행동이 지니는 의미들이 여성에게만 한정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불필요하게 주체로서 여성을 강조한다. “여성 반군 지도자가 주먹을 꽉 쥔 채 팔을 치켜드는 동작은 혁명 세력의 힘을 보여주는 강렬한 신호다(230p).”, “어떤 여자가 팔자 눈썹을 얼마나 쉽게 혹은 어렵게 만들 수 있느냐에 따라서 그 여자가 과거에 얼마나 많은 불행을 겪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89p).”와 같은 표현이 반복될 때마다 제목에 부합하는 문장으로 지면을 채워 나가기 위해 저자가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물론 유방, 골반, 성기와 같이 남성과 뚜렷이 구별되는 신체적 특성이나 손톱 꾸미기, 머리 기르기, 작은 발 선호 등 여성에게 주로 관찰되는 사회문화적 기호들도 풍부하게 다뤄지므로 여성 신체에 대한 저자의 고찰이 빈약하다고 지적하기는 어렵다. 다만, 양성 모두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신체 기호로서의 특징들까지 풍성하게 다룸에 따라 여성의 신비와 미스터리에 온전히 집중하려는 독자의 기대치에 어긋나게 되는 면은 분명히 존재한다.
더 최근작인 「포즈의 예술사(Postures: Body Language in Art, 2019)」를 읽을 때도 느꼈지만, 저자의 전공인 동물학 영역에서 탁월성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거기에 더해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잡학 상식의 수준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참고로, 이 책에서 저자명은 ‘데즈먼드 모리스’로 표기). 책에서 소개된 몇 가지 흥미로운 고찰들을 모아보면,
- 금발 선호 현상은 더 어리고 가늘고 부드럽고 풍만하다는 점을 과시하고자 하는 욕망을 반영한다(73p).
- 오스트리아의 어느 시골 지역에서는 여자가 춤을 출 때 겨드랑이에 사과 한 조각을 끼워 땀으로 재워 두었다가 마음에 드는 남자 파트너에게 그것을 건네어 먹게 하는 충격적인 전통이 있다(222p). 이러한 전통은 겨드랑이 페로몬의 성적 중요성을 보여준다.
- 약지에 결혼반지를 끼는 이유는 그것이 다른 손가락에 비해 비독립적이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246p). 약지가 혼인 언약의 증표로 사용된다는 것은 ‘당신을 나의 비독립적 존재로 결속하겠다.’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 여자의 가슴이 수유에 불리하게 커진 이유는 성적 의미에서 찾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263p). 인간은 직립 보행 과정에서 신체 정면에 엉덩이를 대체할 만한 성적 기호가 필요하게 되었다.
- 20세기 초 미국의 코르셋 반대 운동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세력 중 하나는 군수업체들이었다(279p). 그들에게는 코르셋에 들어가는 가느다란 금속대조차도 재료 낭비로 보였다.
- ‘키스 마이 애스(kiss my ass)’가 지니는 모욕적 의미는 중세인들의 마녀사냥 과정에서 유래되었다(381p). 중세인들은 엉덩이가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신체적 특징이라고 생각했고, 반면 악마들에게는 엉덩이가 있어야 할 자리에 또 다른 얼굴이 있다고 믿었다. 악마의 엉덩이 자리에 있는 또 다른 얼굴에 키스하는 마녀들의 의식에 관한 상상력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며 모욕적 표현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런 기상천외한 잡학과 유래들로만 채워졌다면 그저 유쾌한 독서로 기억되었겠지만, 마냥 그럴 수만은 없었다. 머리카락 등 신체 일부의 노출을 금하는 규범에서부터 신앙, 전통, 미용 등 온갖 명분으로 행해지는 기괴한 신체 훼손 풍습까지 여성의 신체를 옥죄는 문화들이 여전히 산재하기 때문이다. 천 년 이상 이어졌던 중국의 전족과 여전히 곳곳에서 폭넓게 자행되고 있는 할례 의식은 차마 믿고 싶지 않은 인류의 비극이다.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욕망과 그것을 통해 짝짓기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싶은 욕망 자체는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내재한 것이므로 자연스럽고 존중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건강과 삶의 질을 파괴하는 신체의 변용을 강제할 권리는 당사자가 아닌 그 누구에게도 위임될 수 없다. 여성의 특정 신체 부위가 남성의 성적 욕망을 자극할 잠재적 위험성이 있다는 이유로, 여성의 성적 자유와 신체적 쾌락의 추구가 방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로, 심지어 여성을 단순히 남성의 종속적 개체로서 손쉽게 관리하려는 목적으로 당사자 의사에 반하여 행해지는 그 어떤 신체 억압 및 훼손 행위에 대해서도 우리는 단호히 반대 목소리를 내야 하며, 여전히 피해가 이어지고 있는 민족과 연대하여 실효적인 중단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물론 이 지점에서 당사자 의사의 주관성과 측정 불가능성이 고개를 든다. 특정 문화적 행태가 장기간에 걸쳐 특정 문화권에 고착되면, 그것을 행하는 개별 주체의 의사가 사회적 억압에 따른 부당한 압력의 결과인지, 진정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 의사인지 분별하기 어려워진다. 가령 바쁜 출근 준비 시간에 아침 식사도 거르고 화장에 열중하는 어느 여성의 노력이 자발적 미용의 욕망에서 기인한 것인지, 사회적 시선의 압력에 의해 부당하게 유도된 행위인지는 불가지의 영역에 놓인다. 그것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당사자의 진솔한 진술과 더불어 개인적 성향 및 조직문화 등 다양한 연관 변수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쇠고리로 목이 길어진 미얀마 파다웅 족 여인의 신체 변용은 현대인의 화장보다 훨씬 장기간에 걸친 고난도의 치장 행위이면서 건강 훼손의 위험성도 동반하지만, 여기서도 개인의 의사를 외부인이 함부로 평가하기 어려운 애매성이 존재한다. 목 늘이기 치장의 최초 기원은 취약한 목을 맹수나 적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실용적 목적에서 출발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나, 장기간에 걸쳐 세대를 초월하여 전수되는 과정에서 그것이 유래와 무관하게 미의 기준이나 사회적 기호로 완전히 뿌리를 내렸다면,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그것을 이어가려는 개인의 노력을 단순히 외부자의 시선에서 부당한 사회적 억압이라고만 해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목을 늘임으로써 개인이 집단 내에서 누릴 수 있는 사회적 보상을 우리가 그에 상응하는 다른 보상 체계로 대리보충해 줄 수 있지 않는 한, 우리는 그저 그 사안에 대해 침묵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당사자 의사의 측정 불가능성이나 문화적 상대성과 같은 온갖 그럴싸한 사유를 다 동원한다고 해도 여성 할례 관행은 보편적 천부인권의 선을 아득히 넘는다. 국제 원조, 캠페인, 무역장벽 등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이와 같은 야만을 지금 당장 중단해야 한다. 노벨평화상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런 일에 헌신하는 사람이나 단체에 주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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