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사상사의 칼날 같은 명언들

여러 책과 전시장에서 숱한 명언들을 보아 왔다. 명언은 단 한 문장으로 폐부에 파고드는 진리를 배달하는 것이다. 지식의 망망대해에서 안전하게 진리의 등대를 찾아올 수 있도록 인도하는 한 줄기 빛이다.

그렇게 심금을 울렸던 명언들을 정리하기로 했다. 출처와 시기까지 완벽하게 정리한다면, 나아가 대가들의 1차 자료에서 직접 발췌한다면 더더욱 좋겠지만 내게 그 정도의 시간과 열정은 없는 것 같다.

어떤 명언들이 나의 심금을 울렸을까? 아마 두 가지 유형일텐데, 첫째 유형은 내가 평소 암암리에 가지고 있던 생각이 너무나도 명확하게 적절한 문장으로 구현되었을때 느끼는 공감의 카타르시스다. 둘째 유형은 내가 가지고 있던 고민이나 문제점에 대해서 날카롭게 지적해줄때 약간의 수치를 동반하며 큰 깨달음을 주는 명언이다.

이 글은 지속적으로 갱신될 것이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 체계적으로 유형화 될 수도 있고, 나의 불필요한 단상들이 추가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에 이 진리들을 필요로 할지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서 공개한다.


진실은 종종 잘 다듬어진 문장을 위해서 희생된다.

케네스 클라크

미술이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

E. H. 곰브리치

예술가의 작품은 그 삶의 꽃이다.

모리스 드 블라맹크

“미는 진리이고, 진리는 미다.”

이것이 우리가 지상에서 알고 있는 전부이고, 우리가 알아야만 할 모든 것이다.

존 키츠

모든 보는 행위는 목적을 지닌 행위이며, 미술가의 목적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앙드레 말로

덧없이 사라지는 시간에서 잡힌 한 순간에 지속적이고 침착한 존재를 부여해 주는 일

존 컨스터블

모든 미술품은 교양 있는 인류 전체의 것이다.
미술품 소유는 그것을 보존하려는 사려 깊은 의무와 결합되어 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미술에 고유한 경향들, 학파들, 형식성들을 편협하게 선호하는 데서 벗어난 사람만이 미술의 본질을 순수하게 파악할 수 있다.

카를 프리드리히 폰 루모르

문서는 오직 문서 없이도 미술 작품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자들의 손에서만 가치가 있다.

조반니 모렐리

미술과 미술사학이 평행선을 달린다.

하인리히 뵐플린

나는 분명히 미술의 역사가 철학적 문제로 점철되어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아서 단토

과거는 풍요로운 미래를 위한 토대가 된다.
단 과거를 신비화하거나 낭만화하지 않았을 경우에만.

버나드 베런슨

모든 예술가에게는 시대의 각인이 찍혀 있다.
위대한 예술가는 그러한 각인이 가장 깊이 새겨져 있는 사람이다.

앙리 마티스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며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윌리엄 블레이크

예술 비평도 예술처럼 그것이 없는 삶보다 있는 삶에 더 풍성하고 아름다운 무언가를 제공해야 한다.
그 무언가란 무엇일까?

피터 슈젤달

나쁜 글의 뿌리는 두려움이다.

스티븐 킹

지옥으로 가는 길은 부사로 포장되어 있다.

스티븐 킹

비평의 목적은 대상에서 실제로 없는 것을 보는 것

오스카 와일드

작가의 말을 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말에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게 더 중요하다.

길다 윌리엄스

만능인이 된다는 것은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안다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야콥 부르크하르트

다른 사람을 감동시키려면 먼저 자신이 감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못하면 제 아무리 정교한 작품이라도 결코 생명력을 갖지 못한다.

장 프랑수아 밀레

다른 시대에는 다른 영감이 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셸링

모든 화가는 각자의 방식대로 회화의 역사를 요약한다.

질 들뢰즈

진실에 이르기 위해서는 인생에 한 번은 가능한 한 많은 의문을 던져야만 한다.

르네 데카르트

산과 물의 경이로움에서 그림은 자연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붓과 먹의 경이로움에서 자연은 그림에 미치지 못한다.

동기창(董其昌)

무엇을 그리고 싶은지 알려면 그리기 시작해야 한다.

파블로 피카소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비평은 편파적이고 열의에 차고 정치적이어야 한다.
즉 배타적이면서도 가장 넓은 시야를 열어주는 시각에서 씌여야 한다.

샤를 보들레르

사물을 보는 방법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믿고 있는 것에서 영향을 받는다.

존 버거

아마도 이 세상 어느 곳에서보다 가장 허튼 소리를 많이 듣는 것이 박물관에 있는 그림일 것이다.

에드몽, 쥘 드 공쿠르

위대한 창조자들은 사막 속에 솟는 기둥처럼 거친 고립 속에서 일어선다.

미셸 트루니에

진실로 위대한 예술은 아름다운 예술보다 훨씬 진실하고 위대하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즐거움은 절대로 신뢰할 만한 지표는 아니지만 가장 틀리지 않는 지표이다.

W. H. 오든

사랑에 의한 그릇된 재현은 최상의 수학적 재현보다 한층 진실에 가깝다.

존 러스킨

미술비평과 미술사는 일치한다.

리오넬로 벤투리

인간은 늘 보고 싶은 대로 세상을 봐 왔다.

하인리히 뵐플린

관찰자는 그가 관찰하는 내용에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

에른스트 곰브리치

표현력에 관한 전체 이론의 중심축은 ‘선택’이라는 개념이다.

스테판 울먼

컨텍스트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생산된 것이며, 어떤 컨텍스트에 속하는지는 해석자의 전략에 의해 결정된다.

조나단 쿨러

작가는 집필 순간에만 작가로 존재한다.
내가 나라고 말하는 순간에만 나로서 존재하는 것과 같다.

롤랑 바르트

어떤 시인, 어떤 분야의 예술가도 혼자서는 완전한 의미를 나타내지 못한다.

T. S. 엘리엇

의미의 탐구, 즉 해석에는 사실상 한계가 없으며, 그것은 개별 주체의 알고자 하는 욕망이 약화될 때에만 종결될 수 있다.

스티븐 반

예술가는 예술 작품의 근원이고 예술 작품은 예술가의 근원이다.

마틴 하이데거

모든 사회적 관계의 형태를 위하여, 혹은 모든 정치적 실천의 유형을 위하여 설명을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이론적 담론은 없다.

메리 켈리

어디에서 어떻게 아름다움이 즐거움을 주는지 모든 사람은 알고 있다.

존 러스킨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비평이 존재한다는 것은 미학사에서 가장 오래된 속임수이다.

아멜리아 존스

나는 당연히 받아들여지는 어떤 것의 표현 속에 숨어 있는 이데올로기적인 오용을 찾아내기를 원한다.

롤랑 바르트

예술가는 어떤 과정의 창안자이지만 그 결과를 제어하지는 못한다.

마리아 페르난데스

일관성은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들의 마지막 도피처다.

오스카 와일드

예술작품은 명확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너무 명확하다면, 예술 감각이 결여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마르크 샤갈

모든 이가 자신이 책임져야 할 잘못을 시대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살루스티우스

‘최종적’이라는 단어는 역사학자들의 사전에서는 지워야 할 단어이다.

알렉산더 데만트

역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이나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인물에 가까울수록 더욱 흥미롭게 느껴지는데 사실 흥미를 느끼는 것은 우리뿐이다.

야콥 부르크하르트

한 권의 책만 읽은 사람을 조심하라.

토마스 아퀴나스

나는 역사에서, 그리고 인생에서 오류가 진실만큼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만큼 나이 먹었습니다.

에르빈 파노프스키

예술은 자연이 완결짓지 못한 것을 완성한다.

아리스토텔레스

행복한 시기는 백지장과도 같다.

헤겔

예술작품이 하나의 완전한 전체라는 관념은 엄격히 말해서 언제나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다.

아르놀트 하우저

인생에서 참되고 좋은 유일한 것, 그것은 예술

귀스타브 플로베르

인간이라는 꽃에 대한 나의 끊임없는 연구는 얼마나 큰 기쁨인가!

오귀스트 로댕

가만히 앉아서 ‘걸작을 만들 때까지는 아무것도 노출하지 않을 거야’라는 식의 자세는 절대 안됩니다.

존 발데사리

예전 작품을 팔고 싶으면 새로운 작품을 만들라.

존 발데사리

무언가의 가운데 선다는 것이 어떤 것의 중심이 될 수 없다.

질 들뢰즈

시간이 날 때마다 나는 앉아서 일을 한다. 조각은 농사와 같다. 그냥 계속 꾸준히 하면 상당한 양을 해낼 수가 있다.

루스 아사와

미술의 경향들을 나무랄 수는 없는 법이다. 나무랄 수 있는 것은 오직 미술작품들뿐이다.

클레멘트 그린버그

오늘날의 미술에 관해 쓰여지는 대부분의 글들은 적절히 말해 비평보다는 저널리즘에 속한다.

클레멘트 그린버그

지적이라고 해서 그 미술가가 자신이 하고 있는 것 또는 자신이 정말 하고자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사실이 보증되지는 않는다.

클레멘트 그린버그

미래의 까막눈은 글자를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사진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라즐로 모호이너지

너무나 명백한 것을 쓸데없는 엉뚱한 설명으로 핵심을 흐려 놓는 데서 신비화는 비롯된다.

존 버거

역사에 로마의 찬미가 아닌 것이 있는가?

페트라르카

당신이 미술작품에 대해 글을 쓰는 이유는 그것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로버트 로젠블럼

비평한다는 것은 비평하는 사람에게 유익한 일이다.

테리 바렛

미술의 세계란 넓은 대화의 장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그 대화의 일원이 되고 싶어 한다.

리처드 로스

비평은 인간 존재의 자각이며, 몸의 지능이다.

조애너 프루

비평의 직무는 논증을 해내는 것이지 판결을 내리는 것이 아니다.

앤디 그런버그

죽음을 각오한 듯이 글을 쓰라.
이와 동시에, 오로지 말기 환자로 구성된 청중을 위해 쓰고 있다고 가정하라.
바로 그것이야말로 궁극적으로 지켜야할 계명이다.

애니 딜라드

비평은 미술 토론의 끝이라기보다는 시작을 뜻한다.

테리 바렛

토대가 잘 다져진 믿음의 토대에는 토대가 없는 믿음이 놓여 있다.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비판은 모든 합리적인 사유의 생명줄이다.

칼 포퍼

검증할 수 없는 존재론적 원리를 따르고 싶은 욕구와 검증할 수 있지만 검증되지 않은 경험적 가설에 의지하는 안주 사이의 차이는 주목해야 한다.

장하석

끝을 보려는 작가의 욕망은 진실에는 치명적인 것이 된다. 결말은 모든 것을 통일시킨다. 통일성은 다른 방법으로 세워져야 한다. 

존 버거

오늘날 거의 모든 부분에서 진보라고 하는 것은 과거에는 모두 터무니없는 것들이었다.

루이지 바르치니

예술 내적으로든, 예술과 전체의 관계에 있어서든 예술에 관한 그 어떤 것도, 예술이 존재할 권리조차도 더 이상 자명하지 않다는 점이 자명해졌다.

테오도르 아도르노

예술은 아름답지만 엄청난 수고를 요한다.

칼 발렌틴

예술비평은 언제나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이고자 하는가?’라는 질문을 겨냥한다. 

게오르크 W. 베르트람

예술이라는 하나의 사건이 있다면 언제나 여기에는 하나의 성찰이, 예술을 둘러싼 논쟁이 동반된다.

게오르크 W. 베르트람

예술철학을 낳는 것은 철학이 아니라 예술이다.

게오르크 W. 베르트람

앎은 한정되어 있지만 무지에는 끝이 없다.

토마스 헉슬리

축제 없는 인생은 여관이 없는 긴 여정과 같다.

데모크리토스

토론에서 정말로 필요한 것은 논지의 완벽함이지 그 논지가 지니는 권위의 무게가 아니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민주주의는 시끄럽다.

도널드 럼스펠트

미술가는 대중의 취향의 수준을 높이려고 노력해야지, 자신의 취향을 설익고 빈곤한 수준으로 떨어뜨려서는 안 된다.

디에고 리베라

한 그림에 두 개의 다른 관점이 공존할 때 더욱 생동감이 넘친다.

폴 세잔

우리의 세계 지각이란 현실에 부합되는 환상이다.

크리스 프리스

시지각은 세상을 보여주는 단순한 유리창이 아니라 사실상 뇌의 창조물이다.

에릭 캔델

이데올로기로서의 모든 표상은 본래의 가치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어떤 ‘혐의’가 있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데이비드 서머스

그림에 대해서 기술하는 것은 그림을 재현하기 보다는 그림에 대한 사유를 재현하는 것이다.

마이클 박산달

서사는 바로 인간의 역사로부터 시작했고, 서사 없이는 사람들이 존재하지도 못한다.

롤랑 바르트

모든 회화는 몸의 회화이다.

제임스 엘킨스

양식은 엄격하게 논리적인 방식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그리고 양식은 완벽하게 구분되는 특정 집단들로 체계적으로 분류되는 일에 저항한다.

마이어 샤피로

미술품을 수집하여 본래 용도의 무효화를 선언하는 것보다 미술품의 무용성을 주장하기 더 쉬운 방법은 없다. 미술품을 사회적 목적과 구별하지 않은 채 옮겨 놓고는 사회는 그것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런 일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앙투안 크리스조스톰 카트르메르 드 캥시

무에서는 어떠한 것도 얻지 못한다.

앵그르

이상하고 비합리적인 대중은 화가로부터 가능한 최고의 독창성을 요구하지만, 그들은 화가가 다른 모든 이들을 닮지 않는다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고갱

미술사에서 미술이라는 경기의 규칙은 전통을 제외하고는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전통은 미술품이 무수히 많은 배치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데이비드 캐리어

개별 회화를 하나의 자족적 대상이라고 말하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있는 관행이다.

데이비드 캐리어

현대 미술관 안에서 화려하게 고립되어 있는 그 대상은 미술사학자의 서사 속에서 기술된, 더 큰 전체의 한 파편일 뿐이다.

데이비드 캐리어

하나의 미술품을 미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이 다른 방식으로 바라본다는 것을 결코 배제하지는 않는다.

데이비드 캐리어

미술사가의 임무는 구조주의와 유미주의의 양쪽 모두의 관심사를 정당하게 다루는 것이다.

데이비드 캐리어

현대 생활의 가장 심층적인 문제는, 압도적인 사회의 힘과 대면해서 개인의 실존이 갖는 개별성과 자율성을 보존하려는 욕구로부터 나온다.

게오르그 짐멜

돌은 지속성에 대한 헛된 인식, 생명에의 거짓 확신을 준다.

루이스 멈포드

몸의 재현이 표면에 부상하는 방식이야말로 시각 이미지와 오브제를 제작하고 지켜보는 우리 욕망의 배후에 자리한 가장 기초적인 동인이다.

아멜리아 존스

내가 몸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내가 대상으로서 보일 수 있으며, 반대로 내가 주체로 보일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다고 말하는 방식이다.

모리스 메를로-퐁티

몸과 예술 작품은 앎의 불가능성을 드러낸다.

아멜리아 존스

우리는 몸의 재현을 만들거나 바라보는데, 왜냐하면 어떤 층위에서 우리는 존재의 깊이를 간직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아멜리아 존스

우리는 미가 선이나 정의와 충돌할 때조차도 이 개념에 대한 사랑을 멈출 수가 없다. 그러한 충돌 앞에서 일종의 자기혐오를 느낄 때조차도 말이다.

이반 캐스켈

모더니즘은 아름다움의 추방을 이끄는 플라톤적 두려움의 최근 사례일 따름이다.

이반 캐스켈

미는 오로지 하나의 유형만 가지고 있다. 그러나 추는 무수히 많은 유형을 가지고 있다.

빅토르 위고

미와 추, 양자는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의미들을 분절한다.

니나 아탄소글로우-칼미에르

예술가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조형 형태 그대로 복사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리처드 마이어

현실은 변화하므로, 현실을 재현하기 위해서 재현의 방식 또한 변화해야 한다.

베르톨 브레히트

미술 작품의 교환 가치는 수프 깡통 같은 것의 가격보다 주가의 등락과 훨씬 더 가깝고 비슷하다.

마이클 카터

박물관학적 공간에서는 오직 ‘환영’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어떤 ‘환영’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도널드 프레지오시

가장 폭넓은 의미에서 미술은 바로 서구 지배권의 세계 공통어 자체이다.

도널드 프레지오시

미술을 넘어서는 길을 생각하는 일은 인간을 넘어서서 생각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도널드 프레지오시

작품들은 필연적이지만 한결같지 않다.

크레이그 클뤼나스

비평가로 행동하는 것은 정체성의 안정성을 의심하는 것이며, 추론과 결말에 질문을 던지면서 연구 대상을 향해 역설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리처드 시프

저자/제작자는 매체를 사용함으로써, 매체 그 자체를 변화시킨다.

리처드 시프

취미는 계층을 구분하고, 구분한 자를 구분시킨다.

피에르 부르디외

예술 작품의 가치는 보는 이에 달려있다. 작품은 관객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영적인 힘보다 더 큰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다.

아스거 욘

만일 어느 누구이건 어렵다는 이유로 자신 속으로 깊이 내려갈 의향이 없다면, 그는 피상적인 글만을 쓸 것이다.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모든 위대한 예술에는 야생 동물이 있다. 길들여진 채로 말이다.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전통은 사람이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자신의 조상을 선택할 수 없듯이 말이다. 그것은 우리가 원할 때 집어 들 수 있는 한 가닥 실이 아니다. 전통을 갖고 싶은데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불행하게 사랑에 빠진 사람과 같다.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큐레이터들은 우리가 없을 때 작품들이 서로 나누고 있을지도 모르는 대화에 매료된다.

테리 스미스

억압과 조작을 벗어난 해방을 향한, 부드럽고 완곡하지만 변함없는 끈기는 강력한 정신이며, 오늘날 매우 필요하다.

테리 스미스

집단행동, 군중, 인류, 모든 사람 등등은 고대의 관념이 아니다. 그것들은 현대적인 관념이고 정확히 그것들이 가장 위험에 처한 듯 보이는 순간에 등장한다.

테리 스미스

동시대성의 복합성으로부터 비롯된 작품은 스스로를 종료할 수 없다. 그것은 스스로를 열린 상태로 놔두어야 한다. 앞으로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든 간에.

테리 스미스

정체성은 부여된 동일시의 문제일 경우가 너무도 잦다.

테리 스미스

1970년경 이후로, 시각 예술에 관한 한 어떤 경향도 당대의 지배적 양식이 될 정도에 값할 만큼의 두각을 나타낸 바가 없다.

테리 스미스

미술관이 되거나, 현대적이 될 순 있지만, 둘 다 될 순 없다.

커트루드 스타인

신체는 그 중심에 있고, 힘의 흐름에 필수적이며, 이러한 힘들을 드러내는 데 있어 특권적 위치에 있으면서 또한 전체 인간집단이 지는 구조적 부채의 표본인데, 이 부채는 우리가 선택의 여지없이 계승하고 결코 완전히 내려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

아킬레 음벰베

영감은 가만히 기다리면 오는 것이 아니라 실행하고 있는 도중에 오는 것입니다.

앙리 마티스

이제 예술가처럼 집중해서 다듬어낸 나의 의지력이, 나의 연약한 팔다리와 지쳐 버린 허파를 지탱해 줄 것입니다. 해내겠습니다.

체 게바라

나는 그림으로 그리고 싶지 않은 것을 사진으로 찍고, 사진으로 찍을 수 없는 것들을 그린다.

만 레이

사진은 바라보는 행위에서 나오는, 특정한 순간과 그 영원함을 잡아내는 자발적 충동이다.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영원의 반대는 덧없음이 아니라 잊혀짐이다.

존 버거

물질은 인간이 하는 활동들의 필수 조건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 활동들의 성격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배한다.

테리 이글턴

미술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려 하고 원리상으로도 미술은 모든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영역이다.

우도 쿨터만

예술이란 당신이 예속을 안 받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그런 어떤 것

마샬 맥루한

미술관은 말로 설명하지 않는 중개 체계입니다.

요하네스 클라더스

어떤 방식으로든 미술은 사람들을 생각하게 하고 그들 자신의 상황들을 깨닫게 하도록 ‘사용 되어야’ 합니다.

장 레링

예술이란 예술에서 당신이 기대하는 것으로부터의 변화이다. 오늘의 비평은 내일의 클리셰다.

세스 시겔라우브

큐레이터는 미술이 주는 즐거움에, 미술의 강력한 힘에, 미술의 파괴에 사람들의 눈을 열리게 하는 이들이다.

앤 다르농쿠르

우리는 쇼윈도를 들여다보는 것에 의해 변화에의 적응성과 사회에의 순응성을 테스트 받고 또 유도된 자기투영능력을 시험당한다.

장 보드리야르

아름다운 작품은 미덕 없이도 살아남는다. 아름다움 없이 미덕만 있는 작품은 그러지 못한다.

데이브 히키

내용보다 아름다움(혹은 아름다움을 내용으로서)을 선택하는 것은 언제나 반란 행위이다.

데이브 히키

한 사회가 몇몇 이미지들이 확정적으로 유해하다는 가정을 잠자코 받아들이면, 그 순간 그 사회는 어떤 이미지라도 유해한 것으로 규정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데이브 히키

미술시장의 신비는 매우 유용한 돈을 주고 별로 유용하지 않은 미술품을 소유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데이브 히키

안전이 행복의 우위에 서며 언제나 정부가 이긴다. 여기서 희생되는 것은 언제나 아름다움이다.

데이브 히키

치료기관이 수명을 다하는 것은 자금이 부족해서이지 의미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우리야말로 의미가 부족하면, 또한 기쁨이 부족하면 죽는다.

데이브 히키

이미지의 효용은 비평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어야지 비평의 결과일 수 없으며, 비평의 주체여야지 비평의 객체일 수 없습니다.

데이브 히키

아름다움은 행복을 추구하는 습관적인 방식만큼이나 종류가 많다.

샤를 보들레르

인생이 절대로 한 번의 긴 오르가슴이 아님을 안 이상,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뜻밖의 기쁨이다.

존 애쉬베리

아무런 입장도 갖지 않은 주체란 있을 수 없으며, 따라서 무입장적인 이해란 것도 있을 수 없다.

리차드 팔머

진정한 혁명가는 사랑이라는 위대한 감성에 의해 인도된다.

체 게바라

모든 진실된 인간은 다른 사람의 뺨이 자신의 뺨에 닿는 것을 느껴야 한다.

체 게바라

예술은 우리를 지적 고찰로 초대하는 바, 그것은 예술을 다시 창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술이 무엇인지를 철학적으로 인식하기 위해서이다.

G. W. F. 헤겔

다원주의적 미술계는 다원주의적 미술비평을 요구한다.

아서 단토

순응은 모든 것이 허용되는 미술계에서 생존의 열쇠이다.

아서 단토

모든 시대에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인리히 뵐플린

아마추어들은 현대 미술관보다는 고전 미술관을 더 많이 간다.

이브 미쇼

현대 미술의 해석학은 즉각적인 이해의 부재로부터 탄생하고, 그것을 메운다.

이브 미쇼

예술이란, 우리가 예술이라고 명명하는 모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란 자명하지가 않다.

티에리 드 뒤브

예술의 유토피아는 의사소통적, 민주적, 개화적인 유토피아이다.

이브 미쇼

미학적 공동체는 실제로는 하나의 대치이다.

이브 미쇼

소위 말하는 현대 예술의 위기는 예술에 대해 생각하는 바의 위기이고, 그의 기능에 대해 생각하는 바의 위기이다.

이브 미쇼

사회주의와 도덕적 교육은 인간 기획의 두 극으로 나타난다.

이브 미쇼

정확함이 진실은 아니다.

앙리 마티스

상상력만이 나에게 무엇이 될 수 있는가를 말해준다.

앙드레 브르통

한 사람의 예술가는 자기 이외의 어느 누구에게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는 다가올 몇 세기에 걸친 시대에 오직 자신의 작품만을 헌정한다. 그는 자기 자신만의 보증인일 뿐이다. 그는 후사 없이 죽는다. 그는 자기 자신의 왕이자 사제이며 신이었다

샤를 보들레르

당신이 결국 알게 되는 것은 당신이 가진 것은 당신 자신뿐이라는 것이다. 당신의 자아는 당신의 내부에서 수천의 빛줄기를 발하는 태양이다. 그 나머지는 아무것도 없다.

파블로 피카소

수단은 계산되어야 하지만 효과는 계산될 수 없는데, 효과는 인간 감성의 모든 무한한 영역에 작용하기 때문이다.

허버트 리드

현대 회화의 국가적 경계선들을 설정하기란 불가능하다.

허버트 리드

그들은 내가 자기들과 같은 견해일 때에만 내게 말할 권리를 준다.

미셸 푸코

지식인이란 모든 권력에게 있어서 ‘더러운 종족’에 속한다.

미셸 푸코

자신의 합리성을 선택하려고 하는 것이 문제다. 오히려 합리성의 근거를 물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근거가 결코 과학적으로 구성된 객관성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미셸 푸코

실증주의적 관점에서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 반대편에서는 지배를 의미할 뿐이다.

미셸 푸코

광기에 대한 지식은 결코 이 세계에 확신을 주지 못하며 오로지 그 광기의 작품들만이 이 세계를 설명해 줄 뿐이다.

미셸 푸코

나는 역사를 죽인 것이 아니라 철학자들의 역사를 죽인 것이다. 그렇다. 나는 정말로 그것을 죽이고 싶다.

미셸 푸코

내가 누구인지 묻지 말고, 나에게 언제나 똑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기를 강요하지 말라. 그것은 호적 관리의 도덕일 뿐이다. 그 도덕은 우리의 서류를 지배한다. 그러나 글을 쓸 때만은 우리를 제발 좀 자유롭게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다.

미셸 푸코

철학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사유에 대한 비판작업, 바로 그것이 아닐까?

미셸 푸코

진리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자를 경계하라.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는 대체로 많은 사람을 저와 함께 죽게 하거나, 때로는 저보다 먼저, 때로는 저 대신 죽게 하는 법이다.

움베르트 에코

역사만이 우리에게 역사를 제거해 줄 수 있다.

피에르 부르디외

아름다움은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서 끝나는가? 아름다움이 끝나는 지점에서 예술가는 시작한다.

존 케이지 135

한때 사진은 현실을 해석하는 기능이 있었던 듯한데, 지금은 이것들이 현실을 삼켜버린 것 같다.

더글러스 크림프 403

재현이란 중립적이지 않고, 중립적일 수도 없다. 그것은 우리 문화에서 권력의 행위이며, 실로 권력의 근거를 부여하는 행위이다.

크레이그 오웬스 404

모두를 위한 문화란 모토는 오늘날 대체로 오직 자격 있는 부분공중만이 심미적이고 문화적인 부가가치를 지닌 삶을 누리기 위해 특출나고 배타적인 여가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의미한다.

우베 레비츠키

지배를 보장하는 가장 조용하고도 효율적인 방법은 대중의 의식으로부터 바람직하지 않은 주제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우베 레비츠키

문화의 소비는 현실을 극복하는 수단이 아니라, 현실을 망각하게 하는 것이다.

우베 레비츠키

자아를 잃어버리거나 속이지 않고 상대방과 교류하며 변화하라.

에두아르 글리상

전시라는 개념은 이곳이 우리가 서로 함께 사는 세상이라는 것이며 배열, 연대, 접속, 말없는 제스처를 할 수 있고,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이러한 미장센을 통해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전시하는 것은 투쟁을 위한 우군을 찾는 것이다.

에두아르 마네

전시는 항상 게임의 새로운 규칙을 발명해야 한다.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미술관은 하나의 진실이며, 이 진실은 탐구할 가치가 있는 많은 진실들로 둘러싸여 있다.

마르셀 브로타에스

큐레이터의 업무가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기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와 대중 사이의 중재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화학에서와 같이, 역사에서도 촉매는 사라진다.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우리가 살펴봐야 할 것의 한도를 다시 주목하고 확대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누가 보는지, 그들이 어떻게 하는지, 새로운 종류의 상대주의적/수사적 메타 서사 생산을 통해 무엇이 정당화되는지 의문을 가져야 한다.

폴 오닐

예술이라는 ‘단어’는 점차 명사가 아니라 동사가 되어간다.

로버트 배리(1969년)

비엔날레는 동시대 미술계의 상위 계급을 위한, 그리고 예술가와 큐레이터를 위한 비준 도구다. 즉 미술계 내에서 일반적 트렌드를 더욱 확고하게 서열화하는 것이다.

폴 오닐

큐레이터의 모든 매개는 의심스럽다. 그는 관객으로부터 권력을 빼앗으려는 의도로 관객 인식을 교묘하게 조정하며 예술 작품과 관객 사이에 있는 누군가다.

보리스 그로이스

글로벌화된 문화 영역은 글로벌 자본주의와 다를 게 없으며 사실 종종 이를 모방한다.

폴 오닐

최종 목적지, 즉 절대적 진리를 가정하지 않는 태도야말로 과학이 성스러운 탐색에 걸맞은 방법론이 되어주는 이유다.

앤 드루얀

사람들의 마음은 무력이 아니라 사랑과 이상으로만 정복할 수 있다.

바뤼흐 스피노자

놀라운 그림은 맛있는 요리와 같은 것으로 맛 볼 수는 있지만 설명할 수는 없다.

모리스 드 블라맹크

진지함이야말로 예술계에서 가장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통화다.

그레이슨 페리

예술, 그것은 진지한 업종이다.

그레이슨 페리

어쩌면 예술을 통해 가장 많은 것을 얻는 사람은 바로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일 것

그레이슨 페리

보헤미안이자 좌파로서 예술에 대한 지식을 뽐내는 이들은 도시 생태계에서 여전히 높은 통화가치를 지닌다.

그레이슨 페리

모든 예술가는 자기에게 먹이를 주는 손을 물어야 한다. (…) 단, 너무 세게 물진 말고.

백남준

젊은 예술가나 디자이너는 자신에게 생기는 모든 기회를 붙잡아야 한다.

그레이슨 페리

공동체라는 이 말 자체부터 나는 구역질 난다.

자크 데리다

논문의 실존이 본질에 선행하네. 미리 구상된 계획 없이 논문을 일단 쓰는 것부터 시작할 것을 권하네. 논문이 진행됨에 따라 자네는 자네의 논문이 지금 어디까지 진행되어 있고, 또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알게 될 걸세.

모리스 드 강디약(자크 데리다에게)

미래는 유령들의 것이며, 기술에 의해 유령들의 힘은 굉장히 커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크 데리다

나는 신중하라는 조언을 듣지 않습니다. 나는 그것을 진실의 충동이라 부릅니다. 진실은 말해져야 합니다.

자크 데리다

만일 비밀에 대한 권리를 갖지 못한다면 전체주의의 공간에 있는 것입니다.

자크 데리다

모든 흔적은 본질적으로 유언적입니다.

자크 데리다

철학한다는 것, 그것은 죽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자크 데리다

재능은 연습이라는 말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린다.

스티븐 킹

책을 읽을 시간이 없는 사람을 글을 쓸 시간도 없는 사람이다.

스티븐 킹

가장 바람직한 글쓰기는 영감이 가득한 일종의 놀이이다.

스티븐 킹

자기가 사랑하는 것들을 죽이는 일보다 남이 사랑하는 것들을 죽이는 일이 훨씬 더 쉬운 법이다.

스티븐 킹

인생은 예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스티븐 킹

감탄과 이해의 재능, 그것은 평범한 인간이 위대한 시인의 형제가 될 수 있는 기능이다.

오노레 드 발자크

철학은 정치에 대해서는 과학을 표상하며 과학에 대해서는 정치를 표상한다.

루이 알튀세르

철학이란 ‘최종 심급에서는’ 이론의 계급투쟁이다.

루이 알튀세르

모든 이데올로기적 장치는 억압장치를 갖는다.

루이 알튀세르

세잔느는 무엇 때문에 생트-빅투와르 산을 매순간 그렸겠는가? 그것은 매순간 빛이 하나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루이 알튀세르

언어를 뒤흔드는 것, 그것은 정치적인 문제이자 하나의 정치적인 선택이며, 우리가 처해 있는 밤에서 마침내 벗어나기 위해 진정 변화시키고 변혁해야 하는 그런 정치적 실천의 형태라는 것이다.

루이 알튀세르

모든 철학은 그 심연에 있어서는 정치적이다.

루이 알튀세르

이론상으로 미술관은 모든 방문객의 정신적인 함양을 위해 헌정된 공적인 공간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권위 있고, 강력한 이데올로기의 엔진이다.

캐롤 던컨

미술계는 의도적으로 구성된 음모 집단이 아니다. 그곳에는 자신들이 무언가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믿음으로 활동하는 개인들이 있을 뿐이다.

캐롤 던컨

작가들은 자신들이 주목받기 위해 경쟁해야만 하고, 자신들의 작업이 다른 작가들 작업과의 관계 속에서 평가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중략) 작가로서 자본주의에 살고, 자본주의에도 불구하고 산다. 그것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리고 그것에 대해 충분히 의식적이든 그렇지 않든, 살아남으려면 자신의 작업을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의 관계 속에서 생각하는 것을 배워야만 한다.

캐롤 던컨

예술가의 비밀을 캐다 보면 우리는 탐정 소설에 빠지듯 그 일에 빠지고 만다. 그 비밀은 불가해한 우주처럼, 해답을 주지 않는 수수께끼 같다.

서머싯 몸(달과 6펜스 中)

세계를 보는 방식은 저마다 그 세계와의 어떤 관계를 암시하며, 모든 관계는 행동을 암시한다.

존 버거

예술 작품은 우리의 창조력을 정지 상태로 담아놓은 결정체이며, 그것은 나중에 살아 있는 에너지로 다시 바꿔서 쓸 수 있다.

막스 라파엘

정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언제나 해결되지 않은 모순들을 떠안는 일이다.

조지 오웰

진정한 독창성이란 추구하거나, 이를테면 서명해서 얻어지는 게 결코 아니다. 그보다는 무언가, 어둠 속에서 만져지다가 머뭇머뭇하는 질문으로 되돌아오는 것에 깃든 특질이다.

존 버거

단 한 사람의 삶을 이해하려면 세계를 통째로 삼켜야 한다.

살만 루슈디

세계는 지성보다 오래되었다.

모리스 메를로퐁티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최소의 인간 단위는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이다.

토니 쿠슈너

여러 ‘-주의’의 역사로 미술사를 서술할 경우에 작가의 삶 중 가장 흥미로운 지점, 특히 외설적이거나 비극적인 사건이 부각되며, 이를 통해 한 개인이 실제로 행한 사회적 정치적 참여를 향한 투쟁은 그저 낭만적인 시각으로 기록될 뿐이다.

팸 미첨 & 줄리 셸던

자아는 우리가 거대한 심연, 우연히 발 딛고 서게 된 거대한 바닥과 마주치는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 존재한다.

로버트 스미스슨

아마도 인간 정신은 그저 우주에서 가장 복잡한 물질 덩어리일지 모른다.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

나는 욕망이 테크놀로지를 부추긴다고 생각한다. 최초의 인간적인 로봇을 생각해 보자. 사람들은 음료수를 나르는 로봇을 위해 돈을 지불하지는 않을 것이다.

마이크 샌즈

가치 있는 예술작품을 남긴 이들은 모두 선동가였다.

디에고 리베라

몸은 금세기의 새로운 예술 매체다.

마사 윌슨

몸은 모든 경계지은 체계를 표출해 주는 모델이다. 몸의 경계는 불안정하거나 위협받는 모든 경계를 밖으로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메리 더글러스

나는 미술이 미술관에 엉덩이를 걸치고 있는 것보다 더 의미 있는 무언가가 되기를 원한다.

클래스 올덴버그

신화의 기능은 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변형시키는 것이다.

롤랑 바르트

신화는 지칭하면서 통고하고, 이해시키면서 강요한다.

롤랑 바르트

압제자는 메타 언어활동의 독점권을 갖는다.

롤랑 바르트

신화의 목적은 바로 세계를 고정시키는 것이다.

롤랑 바르트

고백된 약간의 악은 감춰진 많은 악을 인정하지 않아도 되도록 해준다.

롤랑 바르트

인간의 행동들은 순수한 동태복수이며 오직 그것이어야만 하기 때문에, 양식이란 이상적 세계를 반격이라는 직접적 메커니즘들로 축소시키는 정신의 이러한 선택적 반응이다.

롤랑 바르트

고통받는 육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은 나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만큼이나 격렬한 것이다. 수세기 동안 기독교 예술은 지옥의 묘사를 통해서 이 두 가지 기본적인 욕망을 모두 충족시켰다.

수잔 손택

피사체가 우리에게 더 친숙할수록, 사진작가는 훨씬 더 신중해지는 법이다.

수잔 손택

위대한 역사적 사건을 매우 꼼꼼히 보존하려는 행위와 자신이 지닌 무기로 적들의 위치를 정확히 몇 초, 몇 미터 단위까지 추적해 그들을 섬멸하려는 행위는 모두 똑같은 사고방식에서 수행된다.

에른스트 윙거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을 다른 어떤 사람의 고통에 견주는 것을 참지 못하는 법이다.

수잔 손택

부디 다같이 슬퍼하자. 그러나 다같이 바보가 되지는 말자.

수잔 손택

일반적으로 미술가란 심미적 오브제를 만드는 사람이었지만, 이제 그들은 기획자, 교육자, 코디네이터이자 행정관료이다.

권미원

공동체의 사회적 가치들이 이제 더욱 중요하다. 사무 노동자들이 점심시간에 뭘 할거냐가 내가 나의 자기표현의 한계를 밀고 나가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

스콧 버튼

나는 현실에 순응하거나 공모하는 미술에는 흥미가 없다.

리차드 세라

처음부터 권위를 가진 사람들만이 무언가를 위임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말하자면 위임이라는 행위는 그 자체가 권위의 행위인 것이다.

권미원

결실을 얻기 위해서 관료주의에 의존하는 미술 작업(말하자면, 공동체 기반 미술을 포함한, 제도적으로 승인된 공공미술)은 너무 잘 길들여져 있어 어떤 논쟁적인 힘도 갖지 못한다. 결국 작업들은 오직 위계와 합리적 질서를 재확인하는 굴종의 행위가 된다.

Critical Art Ensemble

진정한 공동성이란 없다. 공동의 존재도 없다. 그러나 공동 내의 존재(being in common)는 있다. (중략) 질문해야 할 것은 공동체의 존재가 아니라 존재의 공동체(community of being)여야 한다.

장 뤽 낭시

장소에 묶인 정체성을 탐구하는 것은 교환, 이동, 소통의 공간적 장애가 줄어들고 있는 세계에서 덜 중요하기보다는 더 중요하게 되었다.

데이비드 하비

어떤 신앙 전통도 군사적으로 막강한 제국의 후원이 없었다면 ‘세계 종교’가 되지 못했을 것이며, 모든 전통은 어쩔 수 없이 제국의 이데올로기를 개발하게 된다.

카렌 암스트롱

우리는 평화를 갈망하는 폭력적인 마음을 지닌 결함 있는 생물이다.

카렌 암스트롱

종교가 정책에 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정치가 신학을 형성할 수도 있다.

카렌 암스트롱

민족주의는, 특히 긴장과 감정이 고조된 상태에서는, 쉽게 유사 종교적 열정으로 넘어간다.

카렌 암스트롱

가장 인도주의적 전통이라 해도,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국가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인다면 이상은 실행에 옮길 수 없다.

카렌 암스트롱

미술시장이 글로벌 자본주의의 진전에 수반된 착취와 격차 위에 구축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오자키 테츠야

저 수없이 많은 미술관이라는 것은, 대대로 내려오는 예술 작품의 무덤과 같다.

테오도르 아도르노

작품이 미니멀해질수록 설명은 맥시멈이 된다.

힐튼 크레이머

화가에게 미학이란, 새에게 있어서의 조류학과 같다.

바넷 뉴먼

현대미술이란 어딘가 외딴 상아탑에 칩거하는 세속과 무관한 영역이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신자유주의의 소란 속으로 직접 뛰어드는 것이다.

히토 슈타이얼

레디메이드를 앞에 두고, 관중 쪽이 작가보다 늦는다는 점을 제외하면, 작가는 관중과 다른 위치에 있지 않다.

티에리 드 뒤브

예술가는 이상적인 예술 생산자에서, 이상적인 예술 감상자로 변모했다.

보리스 그로이스

텍스트란, 무수히 많은 문화의 중심에서 온 인용의 직물이다.

롤랑 바르트

설치미술은 특정 오브제나 회화를 감상자의 시선에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시선 자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보리스 그로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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