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사상사의 칼날 같은 명언들

여러 책과 전시장에서 숱한 명언들을 보아 왔다. 명언은 단 한 문장으로 폐부에 파고드는 진리를 배달하는 것이다. 지식의 망망대해에서 안전하게 진리의 등대를 찾아올 수 있도록 인도하는 한 줄기 빛이다.

그렇게 심금을 울렸던 명언들을 정리하기로 했다. 출처와 시기까지 완벽하게 정리한다면, 나아가 대가들의 1차 자료에서 직접 발췌한다면 더더욱 좋겠지만 내게 그 정도의 시간과 열정은 없는 것 같다.

어떤 명언들이 나의 심금을 울렸을까? 아마 두 가지 유형일텐데, 첫째 유형은 내가 평소 암암리에 가지고 있던 생각이 너무나도 명확하게 적절한 문장으로 구현되었을때 느끼는 공감의 카타르시스다. 둘째 유형은 내가 가지고 있던 고민이나 문제점에 대해서 날카롭게 지적해줄때 약간의 수치를 동반하며 큰 깨달음을 주는 명언이다.

이 글은 지속적으로 갱신될 것이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 체계적으로 유형화 될 수도 있고, 나의 불필요한 단상들이 추가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에 이 진리들을 필요로 할지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서 공개한다.


진실은 종종 잘 다듬어진 문장을 위해서 희생된다.

케네스 클라크

미술이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

E. H. 곰브리치

예술가의 작품은 그 삶의 꽃이다.

모리스 드 블라맹크

“미는 진리이고, 진리는 미다.”

이것이 우리가 지상에서 알고 있는 전부이고, 우리가 알아야만 할 모든 것이다.

존 키츠

모든 보는 행위는 목적을 지닌 행위이며, 미술가의 목적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앙드레 말로

덧없이 사라지는 시간에서 잡힌 한 순간에 지속적이고 침착한 존재를 부여해 주는 일

존 컨스터블

모든 미술품은 교양 있는 인류 전체의 것이다.
미술품 소유는 그것을 보존하려는 사려 깊은 의무와 결합되어 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미술에 고유한 경향들, 학파들, 형식성들을 편협하게 선호하는 데서 벗어난 사람만이 미술의 본질을 순수하게 파악할 수 있다.

카를 프리드리히 폰 루모르

문서는 오직 문서 없이도 미술 작품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자들의 손에서만 가치가 있다.

조반니 모렐리

미술과 미술사학이 평행선을 달린다.

하인리히 뵐플린

나는 분명히 미술의 역사가 철학적 문제로 점철되어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아서 단토

과거는 풍요로운 미래를 위한 토대가 된다.
단 과거를 신비화하거나 낭만화하지 않았을 경우에만.

버나드 베런슨

모든 예술가에게는 시대의 각인이 찍혀 있다.
위대한 예술가는 그러한 각인이 가장 깊이 새겨져 있는 사람이다.

앙리 마티스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며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윌리엄 블레이크

예술 비평도 예술처럼 그것이 없는 삶보다 있는 삶에 더 풍성하고 아름다운 무언가를 제공해야 한다.
그 무언가란 무엇일까?

피터 슈젤달

나쁜 글의 뿌리는 두려움이다.

스티븐 킹

지옥으로 가는 길은 부사로 포장되어 있다.

스티븐 킹

비평의 목적은 대상에서 실제로 없는 것을 보는 것

오스카 와일드

작가의 말을 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말에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게 더 중요하다.

길다 윌리엄스

만능인이 된다는 것은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안다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야콥 부르크하르트

다른 사람을 감동시키려면 먼저 자신이 감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못하면 제 아무리 정교한 작품이라도 결코 생명력을 갖지 못한다.

장 프랑수아 밀레

다른 시대에는 다른 영감이 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셸링

모든 화가는 각자의 방식대로 회화의 역사를 요약한다.

질 들뢰즈

진실에 이르기 위해서는 인생에 한 번은 가능한 한 많은 의문을 던져야만 한다.

르네 데카르트

산과 물의 경이로움에서 그림은 자연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붓과 먹의 경이로움에서 자연은 그림에 미치지 못한다.

동기창(董其昌)

무엇을 그리고 싶은지 알려면 그리기 시작해야 한다.

파블로 피카소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비평은 편파적이고 열의에 차고 정치적이어야 한다.
즉 배타적이면서도 가장 넓은 시야를 열어주는 시각에서 씌여야 한다.

샤를 보들레르

사물을 보는 방법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믿고 있는 것에서 영향을 받는다.

존 버거

아마도 이 세상 어느 곳에서보다 가장 허튼 소리를 많이 듣는 것이 박물관에 있는 그림일 것이다.

에드몽, 쥘 드 공쿠르

위대한 창조자들은 사막 속에 솟는 기둥처럼 거친 고립 속에서 일어선다.

미셸 트루니에

진실로 위대한 예술은 아름다운 예술보다 훨씬 진실하고 위대하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즐거움은 절대로 신뢰할 만한 지표는 아니지만 가장 틀리지 않는 지표이다.

W. H. 오든

사랑에 의한 그릇된 재현은 최상의 수학적 재현보다 한층 진실에 가깝다.

존 러스킨

미술비평과 미술사는 일치한다.

리오넬로 벤투리

인간은 늘 보고 싶은 대로 세상을 봐 왔다.

하인리히 뵐플린

관찰자는 그가 관찰하는 내용에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

에른스트 곰브리치

표현력에 관한 전체 이론의 중심축은 ‘선택’이라는 개념이다.

스테판 울먼

컨텍스트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생산된 것이며, 어떤 컨텍스트에 속하는지는 해석자의 전략에 의해 결정된다.

조나단 쿨러

작가는 집필 순간에만 작가로 존재한다.
내가 나라고 말하는 순간에만 나로서 존재하는 것과 같다.

롤랑 바르트

어떤 시인, 어떤 분야의 예술가도 혼자서는 완전한 의미를 나타내지 못한다.

T. S. 엘리엇

의미의 탐구, 즉 해석에는 사실상 한계가 없으며, 그것은 개별 주체의 알고자 하는 욕망이 약화될 때에만 종결될 수 있다.

스티븐 반

예술가는 예술 작품의 근원이고 예술 작품은 예술가의 근원이다.

마틴 하이데거

모든 사회적 관계의 형태를 위하여, 혹은 모든 정치적 실천의 유형을 위하여 설명을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이론적 담론은 없다.

메리 켈리

어디에서 어떻게 아름다움이 즐거움을 주는지 모든 사람은 알고 있다.

존 러스킨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비평이 존재한다는 것은 미학사에서 가장 오래된 속임수이다.

아멜리아 존스

나는 당연히 받아들여지는 어떤 것의 표현 속에 숨어 있는 이데올로기적인 오용을 찾아내기를 원한다.

롤랑 바르트

예술가는 어떤 과정의 창안자이지만 그 결과를 제어하지는 못한다.

마리아 페르난데스

일관성은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들의 마지막 도피처다.

오스카 와일드

예술작품은 명확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너무 명확하다면, 예술 감각이 결여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마르크 샤갈

모든 이가 자신이 책임져야 할 잘못을 시대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살루스티우스

‘최종적’이라는 단어는 역사학자들의 사전에서는 지워야 할 단어이다.

알렉산더 데만트

역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이나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인물에 가까울수록 더욱 흥미롭게 느껴지는데 사실 흥미를 느끼는 것은 우리뿐이다.

야콥 부르크하르트

한 권의 책만 읽은 사람을 조심하라.

토마스 아퀴나스

나는 역사에서, 그리고 인생에서 오류가 진실만큼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만큼 나이 먹었습니다.

에르빈 파노프스키

예술은 자연이 완결짓지 못한 것을 완성한다.

아리스토텔레스

행복한 시기는 백지장과도 같다.

헤겔

예술작품이 하나의 완전한 전체라는 관념은 엄격히 말해서 언제나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다.

아르놀트 하우저

인생에서 참되고 좋은 유일한 것, 그것은 예술

귀스타브 플로베르

인간이라는 꽃에 대한 나의 끊임없는 연구는 얼마나 큰 기쁨인가!

오귀스트 로댕

가만히 앉아서 ‘걸작을 만들 때까지는 아무것도 노출하지 않을 거야’라는 식의 자세는 절대 안됩니다.

존 발데사리

예전 작품을 팔고 싶으면 새로운 작품을 만들라.

존 발데사리

무언가의 가운데 선다는 것이 어떤 것의 중심이 될 수 없다.

질 들뢰즈

시간이 날 때마다 나는 앉아서 일을 한다. 조각은 농사와 같다. 그냥 계속 꾸준히 하면 상당한 양을 해낼 수가 있다.

루스 아사와

미술의 경향들을 나무랄 수는 없는 법이다. 나무랄 수 있는 것은 오직 미술작품들뿐이다.

클레멘트 그린버그

오늘날의 미술에 관해 쓰여지는 대부분의 글들은 적절히 말해 비평보다는 저널리즘에 속한다.

클레멘트 그린버그

지적이라고 해서 그 미술가가 자신이 하고 있는 것 또는 자신이 정말 하고자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사실이 보증되지는 않는다.

클레멘트 그린버그

미래의 까막눈은 글자를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사진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라즐로 모호이너지

너무나 명백한 것을 쓸데없는 엉뚱한 설명으로 핵심을 흐려 놓는 데서 신비화는 비롯된다.

존 버거

역사에 로마의 찬미가 아닌 것이 있는가?

페트라르카

당신이 미술작품에 대해 글을 쓰는 이유는 그것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로버트 로젠블럼

비평한다는 것은 비평하는 사람에게 유익한 일이다.

테리 바렛

미술의 세계란 넓은 대화의 장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그 대화의 일원이 되고 싶어 한다.

리처드 로스

비평은 인간 존재의 자각이며, 몸의 지능이다.

조애너 프루

비평의 직무는 논증을 해내는 것이지 판결을 내리는 것이 아니다.

앤디 그런버그

죽음을 각오한 듯이 글을 쓰라.
이와 동시에, 오로지 말기 환자로 구성된 청중을 위해 쓰고 있다고 가정하라.
바로 그것이야말로 궁극적으로 지켜야할 계명이다.

애니 딜라드

비평은 미술 토론의 끝이라기보다는 시작을 뜻한다.

테리 바렛

토대가 잘 다져진 믿음의 토대에는 토대가 없는 믿음이 놓여 있다.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비판은 모든 합리적인 사유의 생명줄이다.

칼 포퍼

검증할 수 없는 존재론적 원리를 따르고 싶은 욕구와 검증할 수 있지만 검증되지 않은 경험적 가설에 의지하는 안주 사이의 차이는 주목해야 한다.

장하석

끝을 보려는 작가의 욕망은 진실에는 치명적인 것이 된다. 결말은 모든 것을 통일시킨다. 통일성은 다른 방법으로 세워져야 한다. 

존 버거

오늘날 거의 모든 부분에서 진보라고 하는 것은 과거에는 모두 터무니없는 것들이었다.

루이지 바르치니

예술 내적으로든, 예술과 전체의 관계에 있어서든 예술에 관한 그 어떤 것도, 예술이 존재할 권리조차도 더 이상 자명하지 않다는 점이 자명해졌다.

테오도르 아도르노

예술은 아름답지만 엄청난 수고를 요한다.

칼 발렌틴

예술비평은 언제나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이고자 하는가?’라는 질문을 겨냥한다. 

게오르크 W. 베르트람

예술이라는 하나의 사건이 있다면 언제나 여기에는 하나의 성찰이, 예술을 둘러싼 논쟁이 동반된다.

게오르크 W. 베르트람

예술철학을 낳는 것은 철학이 아니라 예술이다.

게오르크 W. 베르트람

앎은 한정되어 있지만 무지에는 끝이 없다.

토마스 헉슬리

축제 없는 인생은 여관이 없는 긴 여정과 같다.

데모크리토스

토론에서 정말로 필요한 것은 논지의 완벽함이지 그 논지가 지니는 권위의 무게가 아니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민주주의는 시끄럽다.

도널드 럼스펠트

미술가는 대중의 취향의 수준을 높이려고 노력해야지, 자신의 취향을 설익고 빈곤한 수준으로 떨어뜨려서는 안 된다.

디에고 리베라

한 그림에 두 개의 다른 관점이 공존할 때 더욱 생동감이 넘친다.

폴 세잔

우리의 세계 지각이란 현실에 부합되는 환상이다.

크리스 프리스

시지각은 세상을 보여주는 단순한 유리창이 아니라 사실상 뇌의 창조물이다.

에릭 캔델

이데올로기로서의 모든 표상은 본래의 가치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어떤 ‘혐의’가 있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데이비드 서머스

그림에 대해서 기술하는 것은 그림을 재현하기 보다는 그림에 대한 사유를 재현하는 것이다.

마이클 박산달

서사는 바로 인간의 역사로부터 시작했고, 서사 없이는 사람들이 존재하지도 못한다.

롤랑 바르트

모든 회화는 몸의 회화이다.

제임스 엘킨스

양식은 엄격하게 논리적인 방식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그리고 양식은 완벽하게 구분되는 특정 집단들로 체계적으로 분류되는 일에 저항한다.

마이어 샤피로

미술품을 수집하여 본래 용도의 무효화를 선언하는 것보다 미술품의 무용성을 주장하기 더 쉬운 방법은 없다. 미술품을 사회적 목적과 구별하지 않은 채 옮겨 놓고는 사회는 그것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런 일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앙투안 크리스조스톰 카트르메르 드 캥시

무에서는 어떠한 것도 얻지 못한다.

앵그르

이상하고 비합리적인 대중은 화가로부터 가능한 최고의 독창성을 요구하지만, 그들은 화가가 다른 모든 이들을 닮지 않는다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고갱

미술사에서 미술이라는 경기의 규칙은 전통을 제외하고는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전통은 미술품이 무수히 많은 배치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데이비드 캐리어

개별 회화를 하나의 자족적 대상이라고 말하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있는 관행이다.

데이비드 캐리어

현대 미술관 안에서 화려하게 고립되어 있는 그 대상은 미술사학자의 서사 속에서 기술된, 더 큰 전체의 한 파편일 뿐이다.

데이비드 캐리어

하나의 미술품을 미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이 다른 방식으로 바라본다는 것을 결코 배제하지는 않는다.

데이비드 캐리어

미술사가의 임무는 구조주의와 유미주의의 양쪽 모두의 관심사를 정당하게 다루는 것이다.

데이비드 캐리어

현대 생활의 가장 심층적인 문제는, 압도적인 사회의 힘과 대면해서 개인의 실존이 갖는 개별성과 자율성을 보존하려는 욕구로부터 나온다.

게오르그 짐멜

돌은 지속성에 대한 헛된 인식, 생명에의 거짓 확신을 준다.

루이스 멈포드

몸의 재현이 표면에 부상하는 방식이야말로 시각 이미지와 오브제를 제작하고 지켜보는 우리 욕망의 배후에 자리한 가장 기초적인 동인이다.

아멜리아 존스

내가 몸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내가 대상으로서 보일 수 있으며, 반대로 내가 주체로 보일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다고 말하는 방식이다.

모리스 메를로-퐁티

몸과 예술 작품은 앎의 불가능성을 드러낸다.

아멜리아 존스

우리는 몸의 재현을 만들거나 바라보는데, 왜냐하면 어떤 층위에서 우리는 존재의 깊이를 간직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아멜리아 존스

우리는 미가 선이나 정의와 충돌할 때조차도 이 개념에 대한 사랑을 멈출 수가 없다. 그러한 충돌 앞에서 일종의 자기혐오를 느낄 때조차도 말이다.

이반 캐스켈

모더니즘은 아름다움의 추방을 이끄는 플라톤적 두려움의 최근 사례일 따름이다.

이반 캐스켈

미는 오로지 하나의 유형만 가지고 있다. 그러나 추는 무수히 많은 유형을 가지고 있다.

빅토르 위고

미와 추, 양자는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의미들을 분절한다.

니나 아탄소글로우-칼미에르

예술가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조형 형태 그대로 복사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리처드 마이어

현실은 변화하므로, 현실을 재현하기 위해서 재현의 방식 또한 변화해야 한다.

베르톨 브레히트

미술 작품의 교환 가치는 수프 깡통 같은 것의 가격보다 주가의 등락과 훨씬 더 가깝고 비슷하다.

마이클 카터

박물관학적 공간에서는 오직 ‘환영’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어떤 ‘환영’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도널드 프레지오시

가장 폭넓은 의미에서 미술은 바로 서구 지배권의 세계 공통어 자체이다.

도널드 프레지오시

미술을 넘어서는 길을 생각하는 일은 인간을 넘어서서 생각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도널드 프레지오시

작품들은 필연적이지만 한결같지 않다.

크레이그 클뤼나스

비평가로 행동하는 것은 정체성의 안정성을 의심하는 것이며, 추론과 결말에 질문을 던지면서 연구 대상을 향해 역설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리처드 시프

저자/제작자는 매체를 사용함으로써, 매체 그 자체를 변화시킨다.

리처드 시프

취미는 계층을 구분하고, 구분한 자를 구분시킨다.

피에르 부르디외

예술 작품의 가치는 보는 이에 달려있다. 작품은 관객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영적인 힘보다 더 큰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다.

아스거 욘

만일 어느 누구이건 어렵다는 이유로 자신 속으로 깊이 내려갈 의향이 없다면, 그는 피상적인 글만을 쓸 것이다.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모든 위대한 예술에는 야생 동물이 있다. 길들여진 채로 말이다.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전통은 사람이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자신의 조상을 선택할 수 없듯이 말이다. 그것은 우리가 원할 때 집어 들 수 있는 한 가닥 실이 아니다. 전통을 갖고 싶은데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불행하게 사랑에 빠진 사람과 같다.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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