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타이틀인 “Summer Love”는 젊은 시절의 열정적이고 잊지 못할 아름다운 사랑을 상징하며,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들 역시 첫 사랑과 같이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고 하는데, 누구나 눈치 챌 수 있 듯, 이런 설명은 좀 억지스러운게 미덕이다. 그냥 송은아트큐브에서 선정되었던 작가들의 하이라이트 모음집이라고 보면 된다. 전시 포스터의 타이포그래피는 90년대 말 쯤에 남대문 시장에서 제법 팔렸을 법한 티셔츠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데, 그것이 젊은 시절의 열정적인 사랑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성공적인 디자인이다. 그러한 사랑은 대체로 온갖 과잉의 결정체이며, 유치찬란하고, 잔뜩 미화된채로 장기 기억 속에 저장되곤 하기 때문이다.
16명의 개성적인 동시대 작가들이 전면에 나섰기 때문에 이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비평적 언어를 내세우는 것은 폭압일 것이다. 그래서 인상적인 작품 몇 개만 논하기로 한다.
김서량의 <도시의 소리- 하나의 도시(2018)>는 어두컴컴한 방에 스피커를 빙 둘러 놓은 청각적 조형 작품이다. 의구심 속에 떨리는 손으로 검은 천막을 걷으면 어둠만이 공간을 메우고 있다.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내딛는 동안 위협적인 존재는 없는 것으로 판명되고 적응시는 공간의 한계를 서서히 드러낸다. 그동안 도시의 소음이 주변을 휘감는데 일정한 패턴을 찾으려는 노력은 부질없이 수포로 돌아간다. 작가는 9개의 스피커를 통해 아시아 9개 도시의 소음을 들려준다. 이 작품은 의미보다는 오히려 ‘의미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사실 사방에서 다채널로 유입되는 청각 신호 자체는 하나하나 분절적으로 식별하는 것이 불가능한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 작품의 제목을 통해, 그리고 출입구에서 뒤늦게 발견하게 되는 도시명들을 통해 비로소 이것이 여러 도시의 소음에 대한 공시적-청각적 실험이고, 공존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앎이 의미에 도달하는 과정은 시각 예술에서의 수많은 학습과 경험을 통해 어느덧 익숙해진 듯 하지만, 청각의 세계에서는 사정이 조금 달라진다. 인간이 가장 많이 의존하고 신뢰하는 시각을 버리는 순간, 의미와 맥락으로의 여정은 조금 더 복잡한 양상을 띄는 것이다. 감각이란 오차와 교정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한다.

민혜기의 <불확실성의 설계(2018)>는 실물 의자, 하나의 의자를 형성하는 과정을 담은 영상, 그리고 무수한 의자가 자유분방하게 날아다니는 영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견고하게 우뚝 선 의심할 수 없는 실재계의 존재, 그리고 그것의 시뮬라크르를 대조하며 실제와 가상, 과정과 산출에 대한 사유를 끄집어낸다. 의자가 날아다니는 영상은 스크린 자체가 크고 효과도 화려해서 오래 지켜보게 된다. 이 영상은 지진에 대해서 들은 이야기 하나를 상키시킨다. 지진이 주는 공포의 본질은 건물이 무너질까봐, 잔해에 깔릴까봐, 땅 속으로 꺼질까봐, 라는 등의 직접적인 위해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가장 심연에 자리잡은 믿음, 즉 나는 견고한 토대 위에 서 있다는 믿음이 최초로 부정당하는데서 오는 공포라고 한다. 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은 지각 차원에서 충분히 알고 있지만, 그것을 육체로 경험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이다. 어두운 진공 상태의 공간을 빠르게 유영하는 의자들은 그것에 지지해서 삶을 영위해야 하는 인간에게 전혀 경험하지도, 의심하지도 못했던 사물의 본질에 대한 회의를 일으킨다. 고정되어야 하는 것은 날아다니고, 날아다니고 싶은 인간의 영혼은 단단히 결속되어 있다. 이렇게 물질에 대한 기대와 믿음이 완전히 무너지는 순간은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 이 작품은 그러한 공포에 대비하기 위한 훈련(시뮬레이션)일지도 모른다.

지희킴의 <우울과 재치가 교차되는 지점(2013-2018)>은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는 필름 슬라이드의 찰칵거리는 소리 자체가 일개 요소를 이루고 있다. 80개의 필름이 빼곡히 장전된 슬라이드는 작가의 드로잉을 차례로 투사한다. 그 필체는 전형적인 미국 카툰과 닮았고, 내용은 재치발랄한 것에서부터 괴기스럽고 에로틱한 것까지 아우르고 있다. 대체로 작가의 성적/사회적 정체성에 대한 의문과 회의들을 담고 있는 것 같다. 디지털 일러스트레이션으로는 비교적 쉽게 구현 될 것 같은 이미지들을 손 끝으로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그려냈을 작가의 실존이 상기되고, 거기에 오래된 매체가 주는 향수가 더해지면서 한 동안 발길을 붙잡아둔다.
* 평을 쓸 생각이 없었기에 사진을 찍지 않았다. 하지만 평을 썼기에 사진을 퍼올 수밖에 없었다. 출처는 네오룩(www.neolook.com), 저작권은 캡션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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