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프레지오시(편저)의 「꼭 읽어야 할 예술이론과 비평 40선」

통상 “꼭 읽어야 할” 같은 어구는 꼭 읽어야 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것을 강조해주는 마케팅적 수사일 가능성이 높지만 이번만큼은 다르다. 정말 꼭 읽어야 한다.

미술사 혹은 미술비평이라는 광활한 관념의 사막을 횡단해야 하는데, 그 여정에서 단 한 장의 지도만이 허락되었다면 이 책을 손에 들어야 한다. 미술사의 서막이 올라간 16세기에서부터 가장 최신의 첨예한 논쟁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해체된 고전에서부터 핏기가 뚝뚝 떨어지는 동시대적 전장에 이르기까지 미술사의 거의 모든 주제를 아우르는 40편의 옥고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주제별로 대표적인 대가와 신예의 글들을 단순히 모아 놓기만 했다면, 이런 책은 여느 미술사학과 교수의 연구실 귀퉁이에서 먼지 쌓인채 발견될만한 모음집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엮은이인 도널드 프레지오시의 탁월한 심미안과 사려깊은 주제별 서문에 힘입어, 이 책은 단순한 앤솔로지 이상의 가치를 획득했다.

이 책에 대한 서평은 여기까지 남길 수 밖에 없다. 이는 비틀즈의 베스트 앨범에 딱히 뭐라 덧붙일 말이 없는 것과도 같은 이유이다. 그냥 책의 낱장을 따라 뚝뚝 떨어지는 대가들의 정수를 그대로 넙죽 받아 마시고 음미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다만 각 문헌별로 중요해 보이는 개념들을 기록한 학습노트를 첨부한다. 부당하게 번역된 것도 모자라 맥락에서 거칠게 잘라져 나오기까지 한 이 문장들이 누군가의 시선을 끌었다고 한들, 일말의 지적인 가치 따위를 창출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도 그저 이 지식들을 소유하고 싶은 속절 없는 욕망으로 적어 둔다. 내 공간에 적어 놓는다고 해서 내 지식으로 치환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지만, 슬프게도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발악이다. 또 한편으로 이 기록은 720쪽(1.4kg)에 달하는 지난하고 힘든 ‘읽기’, 그 자체의 동력을 마련하기 위한 처절한 자가발전이기도 하다.

오독은 전적으로 나의 탓이다. 부디 중요한 레포트를 써야할 때 이 기록을 참고하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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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프레지오시 – 미술사, 볼 수 있는 것을 읽을 수 있는 것으로 만드는 일

미술사는 그 시대의 정신과 역사적 사실들을 반영하고 있다는 전제로 체계적으로 정리되고 집요하게 연구되었다. 미술사 연구는 그 대상이 되는 작품들이 역사적 흔적이라는 전제하에 시작되고 오늘날까지 미술관학과 연계되며 발전해왔다. 역사가들은 원하는 결론을 어느 정도 상정해 놓고 자의적으로 인물과 사건들을 분류하고 배치하기도 하는데, 미술 작품들은 그 의도에 있어서도 중요한 증거로 활용되었다.

1. 역사로서의 미술

지오르지오 바사리 – 화가, 조각가, 건축가의 생애

위대하고 아름다운 양식을 발견하기 위한 선배 화가들의 노력들이 최종적으로 미켈란젤로까지 이르렀다. 아름다운 양식이란 실재(자연)를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묘사하면서도 생동감과 색채를 잃지 않고, 대상의 영혼까지 담아내는 것이다. 라파엘 이전에는 어느 한 쪽으로 위대한 화가들이 있었지만 그 모두를 포괄하는 자는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미켈란젤로에 이르러 소묘, 건축, 조각 모두에서 정점에 다다른 신적 존재를 만나게 된다.

요한 요하임 빙켈만 – 그리스 미술 모방론

고대를 모방하라, 그 고귀한 단순성과 고요한 위대성을. (그런데 온화하고 청명한 기후만 있으면 예술의 성지가 탄생하나…?)

☞ 그를 위한 변명: 지금보면 무척 허무맹랑하겠지만, 미술사의 흐름을 인명 없이, 보편적 원칙을 발견해 나가며 수립하려고 했던 그 선도적 입장은 매우 탁월했으며 설득력있었고, 그랬기에 미술사라는 과학이 출범되었다는 점은 마땅히 높이 평가해야 한다.

휘트니 데이비스 – 분열된 빙켈만: 미술사의 종말 애도하기

빙켈만의 동성애적 기질을 고대사의 객관적 이상으로 치환해 놓은 것이 그리스 모방론일 수 있다. 마음껏 동성애를 즐길 수 있었던 고대 그리스에 대한 동경이 당대의 그리스인으로서 빙켈만을 만든 것이다. 독자는 미술사가가 역사라는 이름으로 객관화해 놓음으로써 내적 영역(욕망)에서 상실해 버리는 것이 무엇인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그 상실들은 미술사 서술의 원동력이 된다. 미술사가의 욕망과 상실감이 투영된 역사 속에서는 왜곡이 따르기 쉽다. 주관적 상실과 객관적 관찰의 균형잡힌 조화가 미술사 서술의 성공을 가져올 것이다.

마이클 박산달 – 의도의 유형들

언어는 그림을 완벽하게 묘사하지 못한다. 그저 일반화시킬 뿐이다. 언어로 그림을 묘사하는 것(직접) 보다는 그림에 대한 생각을 묘사하는 것(간접)이 더 효과적이다. 묘사적 단어의 유형에는 그림의 원인, 비교, 효과가 있다. 시각매체의 활용가능성이 달라짐에 따라 미술을 표현하는 언어양상도 달라졌다.

2. 미학

임마누엘 칸트 – 판단력 비판

판단력은 지성과 이성을 매개한다. 취미 판단은 논리적인 것이 아니라 미감적이고 주관적인 것이다. 미적 판단은 대상의 실존과는 관계가 없다. 쾌는 주관적 감각에서 만족을 의미한다. 도덕적으로 좋은 것은 최고의 관심을 수반하는 것이다. 좋은(선한) 것에 대한 판단들만이 보편성을 갖는다. 아름다운 것에서의 취미의 만족만이 유일하게 이해 관심이 없는 자유로운 만족이다. 즉, 미적인 것이란 일체의 관심 없는 만족의 대상이다.

나의 미적 만족에 의거하여 다른 모든 사람들의 미적 만족도 전제할 수 있다. 하지만 미에 관해서는 일반적인 규칙들이 있을 뿐, 보편적인 규칙들은 없다. 반면, 쾌적한 것은 사람마다 각자 고유한 취미로 판단한다. 주관적 합목적성의 순전한 형식만이 만족을 형성할 수 있으며 취미판단의 근거가 된다. 취미판단은 주관적이지만 공동체적 공통감을 전제로 객관적인 원리와 같은 보편적 동의를 요구할 수 있다. 개념 없이 필연적인 만족의 대상으로서 인식되는 것은 아름답다.

헤겔 – 예술 철학

예술의 목적은 절대적 이념을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진리를 위한 내용과 예술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신은 기독교의 신과 비교할 때 긍정적인 방식으로 인식의 추상에 이르지 못했다. 예술미와 같은 이념은 형이상학적인 엄밀한 이념이 아니라 실재성으로 형상화되어 나아가게 하는 이념이다. 이념과 그 배열의 세 가지 관계를 고려해 보면, 첫번째는 상징적 형식, 두번째는 고전적 형식, 세번째는 낭만적 형식이다. 자기 성찰의 내적 세계는 낭만적 영역의 내용이며, 이는 외적인 것보다 더 우월하다. 이념과 형상의 관계에 관한 세 가지 형식 단계는 결국 이념의 성취와 초월을 위한 노력으로 구성된다.

데이비드 노먼 로도윅 – 불순한 미메시스, 혹은 미적인 것의 목적

미학의 역사는 재현적 실천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으로 부터 철학으로의 체계적 도피로서 전개되었다. 18, 19세기 미학의 출연은 인식론적 문제뿐만 아니라 기호 이론과도 연결되었다. ‘미적인 것’의 해체와 관련된 기호학적 환경 내의 변환 양상을 이해하기 위하여 데리다를 살펴봐야 한다.

데리다의 ‘이코노미메시스’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예술의 충성을 보여준다. ‘파레르곤’은 칸트 미학에서 구분짓기의 모순와 한계를 보여준다(대상-주체, 자연-정신, 외연-본질, 외부-내부, 감각적-선험적, 자연적 개념 또는 이해-자유 개념 또는 이성). 모든 미적 판단은 언어로 직조될 수 밖에 없고 이는 로고스의 힘으로 귀결된다. 미적 판단의 기원이 주관적, 개인적, 비개념적일 때, 보편적 합의와 소통 가능성이라는 칸트의 주장은 납득하기 힘들다. 칸트의 구분짓기식 대립항들은 인간과 동물, 순수 예술가와 상업 공예가, 예술 이용자와 예술 제작자 등 계급구조를 재생산한다. 칸트에게 순수 예술은 아직 자연처럼 보이지만 예술로 인지할 수 있는 경우에 한한다. 순수 예술은 천재의 예술이며, 타고난 재능이며, 자연의 선물이며, 상상의 산물이다.

시는 모작을 가장 급진적으로 거부하므로 최고의 표현 형식이다. 시인은 가장 자유롭고 인간성에 상상의 자유를 부여하므로 신과 가장 비슷하다. 여기서 데리다는 로고스 중심주의를 발견한다. 로고스 중심주의는 순수 예술의 경계와 서열을 조직하는 것을 확실시한다. 시가 상상력을 자유롭게 하여 정신을 확장하기 때문에 가장 높은 지위를 차지하며, 그 다음으로 회화, 음악의 순서이다.

칸트의 분석적 틀은 파레르곤으로 기능하며, 의미의 내면성과 물음을 얼버무리는 모든 비본질적 경험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한계로서 기능한다. 칸트 미학에서 예술 분야 간 계급적 대립은 레싱이나 헤겔처럼 명확하지는 않으나, 시 만큼은 로고스 중심주의에 의거하여 특권이 부여된다. 이를 통해 칸트는 18세기 사유 속에서 발생한 구술적인 것과 시각적인 것 사이의 구분을 구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시에서 상상력의 현시가 중요하다면 회화보다 음악에 더 높은 순위를 부여했어야 하나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자기모순이며, 이는 로고스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조형적인 것, 음악적인 예술에 대한 성찰이 시급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데리다는 철학 내에 시각 예술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주려 한 것이 아니라 계급 체계를 전복하고자 하였다.

현재는 경제가 미학을 완전히 점유한 시대이다. 이는 미적 이데올로기가 자본주의 정치 경제학에 의해 태어나고 길러졌기 때문이며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신보수주의자들은 경제에 귀속된 미적 이데올로기에 대해 이해하기를 거부하면서도 칸트식의 전통적 미학으로 돌아가기 원하는 모순을 보인다. 그래서 그들이 자본주의의 승리를 축하할수록,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문화적 무덤을 파게 된다.

윌리엄 피에츠 – 페티시

페티시즘 이론은 종교적 미신에 대한 계몽주의적 비판의 일부로 출발하였다. 페티시 숭배는 ‘계몽된’ 유럽인의 관점에서 아프리카의 주물숭배를 바라보는 태도, 즉 ‘아직 예술이 아닌 것’, 문명화되지 못한 원시의 문화적 인공물을 바라보는 태도였다. 페티시즘 이론의 선구자인 샤를 드 브로스는 페티시즘을 기독교 신학이나 플라톤 철학이 지닌 보편적 진리에 도달하지 못한 원시적 단계로 보았다. 칸트, 헤겔, 그리고 노예 무역 시대 유럽의 일반적 지적 문화 풍토에서 물신숭배자는 정신의 미적 분별력, 도덕적 자율성, 진정한 자유가 결여된 무능력자이다.

반면 실증주의자 콩트는 신학, 형이상학의 위선을 꼬집고, 정신보다 경험적인 의문 상태를 중요시하면서 ‘순수한 패티시즘’의 복원을 통한 유토피아의 이룩을 주장했다. 이는 과학과 종교, 미적 경험과 물신숭배의 강박관념 사이에 놓인 경계를 전복시키는 것이었다. 19세기 말에 토테미즘이 발견되면서, 페티시즘은 고유하고 독특한 개인이라고 스스로 믿고 있는 자들의 환상을 일깨우며 주어진 형태의 삶을 살고 있는 개인들의 집합적 삶의 제도화된 구조를 보여준다. 여기서 주관적 행동의 자족적인 영역은 기각되며 ‘예술 그 자체가 페티시’라는 개념이 등장하는데, 이는 지속된 신념이 제도적으로 구성된 사물을 뜻하며, 모든 것이 예술과 같다는 신념이 생산되는 과정을 분석하는 것이다.

3. 형식, 내용, 양식

하인리히 뵐플린 – 미술사의 기초개념

지역과 시대에 따라 형식은 다르다. 질적인 측면의 진화란 없다. 그저 다를 뿐이다. 16세기와 17세기를 비교할 것이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있으며 완결된 형식이 아니라 계속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이라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이 시기의 미술 형식은 선적인 것에서 회화적인 것으로, 평면에서 깊이로, 닫힌 형식에서 열린 형식으로, 다양성에서 단일성으로, 주제의 절대적 명료함에서 상대적 명료함으로 발전했다. 이 개념들은 내적 필연성에 의해 변화한 것을 반영하여 합리적인 심리적 과정을 내포한다. 물리적 변화처럼 인간 심리의 발전에도 일정한 법칙이 작동한다. 이 법칙을 찾아내서 설명하는 것이 미술사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 그를 위한 변명: 16세기에서 17세기로 이행했을 뿐인데, 사회/경제적 변동이나 권력구조의 개편도 없이 형식이 변화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특히, 그 변인이 내적 필연성이라는 것은 헤겔의 절대이념 만큼이나 모호하다. 시대의 이단아들을 아우르지 못한다는 점도 비판할만하다. 하지만 대표적 경향성들을 짚어내는 감각은 지금 봐도 섬세하다. 그림을 보면서 그의 글을 읽다보면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가? 그거면 충분하다. 양식에 관한 무수한 논쟁의 시발점이라는 것만으로도 탁월한 성취이다. 다름이 다름일 뿐, 위계는 아니라는 것을 잊지 않았다는 점도 언급해야 한다.

에른스트 곰브릭(aka 곰브리치) – 양식

‘양식(style)’은 매우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표현력에 관한 전체 이론의 중심축은 ‘선택’이라는 개념이다. 대체로 미술사에서 양식은 고전주의적 이상에 가까운 것이었다. 양식의 변화를 이끄는 주된 위력은 기술의 향상과 사회적 경쟁이다. 하지만 기술과 사회적 우월성은 엄밀히 구분되지 않고 서로를 수반한다. 특정 민족의 전통적(정신적) 양식이 종교와 결부될 때, 사실적인 이민족의 양식이 침입하더라도 쉽게 바뀌지 않고 전통이 고수된다. 서양에서 미술 비평의 주요 원칙은 수단과 목적의 조화였으며, 목적에 미치지 못하는 수단은 원시로, 수단이 과시로 흐르는 것은 변질로 보았다.

양식의 발전과 붕괴에 대한 판단은 상대적이다. 어떤 양식의 최고 지점은 새로운 양식의 시작으로 볼 수도 있다. 양식의 선택은 불가피한 결정론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 분석결과가 명료해보이는 까닭은 예민한 비평가들 덕분이다. 정신에 종속된 양식의 흐름을 추적하는 방식은 헤겔 이후로 일반화되었고, 개별 단서들을 통해 공통의 정신을 우추하거나, 예외되는 정황들을 배제하고 공식적/보편적 언어로 전체를 아우르려는 방식이 힘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하나를 보고 전체를 판단할 수 있다는 이런 문화 전체주의는 역사학과 인류학에서 그 약점이 빈번히 노출되었다.

한 양식에 대한 동시대 여러 집단의 가치충돌은 한 시대의 복잡한 양상을 보여준다. 보수적 우익과 진보적 좌익으로의 사회적 계층 분화와 예술 취향의 분화가 동시에 나타난 것은 프랑스 혁명 이후이다. 소비에트 러시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헤겔 철학의 암묵적 신봉자들이 득세하는 상황 속에서 예술의 사회적 의미를 묻는 질문을 피할 수는 없으며, 누구도 여기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아직은 양식의 원칙이나 형태론적 분석은 감정가의 직관에 의한 분석에 비하여 불리한 경우가 많다.

데이비드 섬머스 – 형식, 19세기 형이상학과 미술사 기술의 문제

벤야민은 현재를 과거에 비하여 진보한 결과로 보는 역사주의적 관점이 현 상황 유지를 합리화시킨다는 이유로 거부하였다. 비연속성이 유물론적이라면 연속성은 관념론적이다. 유물론적 사학자들른 통시성에 비해 공시성을 선호한다. 관념론과 유물론의 상반된 주장이 횡행하는 이유는 서로가 서로의 증거를 은폐해서 최고의 보편성을 향해 나아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관념론적 역사가는 후원자, 이미지의 활용을 무시하고, 유물론적 역사가는 문화사, 미술 전통, 테크닉의 역사를 무시한다. 마르크스 조차 헤겔의 도식을 전복하면서 절대적 총체성(history’s absolute totality)은 유지하였다. 이러한 총체성은 일반적인 본질주의를 토대로 하며, 역사해석의 여지를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데이비드 섬머스 – 양식

양식은 테크놀로지(회화 안료), 매체(달걀 혹은 기름), 테크닉(두껍게, 선명하게, 밝게 등)이 정한 한계 내에서 임의성과 권위의 결과이다. 르네상스 이후의 근대 미술은 시대 양식 속에서 나름의 개인 양식을 모색한 결과물이다. 즉, 똑같은 아이디어의 의미 있는 변주이다. 기술적 차이는 인류 역사의 시대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지만, 미술의 역사는 테크놀로지만으로 설명할 수 없으며, 오히려 이에 대한 순응과 저항을 동시에 분명히 보여준다.

때로 이미지의 신성함을 구현하기 위한 노력은 기존 기술의 일반적인 활용의 차원을 뛰어넘어 새로운 기술적 발명을 탄생시키기까지 했다(피라미드, 올멕 석상). 고대 문명의 거대 석상은 종교와 정치 권력의 연관을 보여주며 테크놀로지와 테크닉 모두에서 한계를 거부했던 인류의 명백한 흔적이라는 점에서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경외감을 선사한다.

4. 인류학과 미술사

알로이 리글 – 후기 로마 예술의욕의 주요 특징

고대 예술의 주요 특징은 평면 속에서 동일한 모양의 정렬된 반복을 통한 리듬감이다. 후기 로마에서는 거기에 더해 개별 형태가 삼차원적 공간으로 옮겨간다는 특징이 있다. 미술사 연구에 있어서 문헌으로 드러난, 혹은 우리가 유추한 ‘예술의욕’을 읽어내고 비교하려는 시도가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간과되어 왔다.

3~5세기 당대 로마 미술의 예술의욕을 밝혀내려면 이교도 쪽은 플라티노스를 연구하던 신플라톤주의자들을, 기독교 쪽은 아우구스티누스을 살펴보면 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의 독보적인 아름다움과 신이 창조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모두 인정하였고, 미술 창조의 목표로서 통일과 리듬을 강조하였다. 당대 예술의욕은 임의의 사용 목적과 원료를 예술 목적에 종속시키고, 의도한 예술 목적에 가장 적합한 기술을 선택하는 것이다. 조형적 예술의욕은 인간이 어떻게 각 사물을 형상화하고 색칠하려고 하는지 표현 방식을 결정하며, 세계관, 종교, 철학, 과학, 국가와 법 등에 의하여 영향을 받는다.

아비 워버그(aka 바르부르크) – 북아메리카, 푸에블로 인디언 지역의 이미지

[연구문제] 북미 인디언들의 삶에 남아 있는 이교적인 세계관은, 원시적인 이교도의 세계에서 고대의 고전적인 이교도의 세계를 거쳐 현대인에 이르는 모습을 통해 발전상을 재는 기준의 잣대를 우리에게 안겨줄 것인가?

워버그는 북미 인디언들이 창조한 도상에서 종교적, 제의적 의미들을 발견한다. 인디언들의 제의, 복장, 도상은 대부분 수렵, 기상현상(특히, 강우), 농경 등에서의 기원을 담고 있는데, 이는 약 이천 년 전 그리스에서도 볼 수 있는 경향이다. 예를 들어 새는 지상과 하늘을 오간다는 점에서 매개자로서 지위를 가지며(토템), 새의 깃털 또한 그 능력을 나눠 갖는 대리물로 제의와 일상생활에서 널리 활용된다. 특히 뱀은 허물을 벗어 재생산된다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고, 특유의 은밀하고 신비로운 특성을 지닌 탓에 동서양의 고대 이교도적 전설들은 물론 심지어 중세 신학에서도 중요한 미신적 상징으로 등장하였다(마이나데스, 에덴동산, 에리니에스, 라오콘, 아스클레피오스, 히스기야, 모세, 책형도 등). 뱀은 세상의 기원에서부터 존재하던 파괴와 죽음, 고통이 어디에서부터 오는가에 대한 대답으로서 국제적 상징으로 통용되고 있다.

오늘날 과학적 논리에 의거한 해명들이 뒷받침되고, 기술을 통한 난제의 극복이 이루어지며 뱀의 신화는 힘을 잃었다. 또한 국가주도의 합리주의적 교육이 시행되어 신화를 믿는 인디언 아이들은 없다. 이것이 바람직한 방향인지는 답할 수 없다. 전기는 자연을 통제할 수 있는 인간의 힘을 대변하며, 고도의 정신적 원시사회에서 진보한 결과를 보여준다. 하지만 전기로 대표되는 기계문명은 그것이 기원한 예배와 성찰의 공간들을 파괴하고 있다. “세계는 다시 혼돈 속에 빠지게 될 것이다.”

에드가 빈트 – 워버그의 문화학 개념과 미학적 의미에 대하여

최근 각광 받는 리글과 뵐플린의 연구 경향을 살펴보면, 부르크하르트와 워버그의 문화사로부터 미술사를 독립시키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처럼 보편적 형식의 법칙을 논의하는 것은 뾰족구두와 고딕 성당의 양식을 비교하는 것처럼 장르 간 차별적 특성을 무시할 우려가 있다.

워버그의 방식은 대상을 만드는 데 익숙한 기술의 성질이 그 대상을 조건 짓다는 전제 하에 있다. 즉, 양식의 구성 작용을 조건 짓는 요소들을 찾는 것이었다. 워버그는 부르크하르트의 문화 연구를 계승하였지만, 그가 르네상스의 전체적인 맥락을 다룬 것이 아니라 분절적으로 나누어 연구했다는 점은 분명히 비판했다. 종교와 시, 신화와 과학, 사회와 국가 등 문화의 다른 요소들을 기능적으로 연결하는 것이 필요하다. 더구나 뵐플린과 리글은 정신이 형태에 미치는 영향만을 바라보고, 그 반대의 관계는 살펴보지 않았다.

역사적 비평의 방법은 이미지와 연결될 수 있는 모든 기록물들을 연구하고, 개별적으로 증명되어야 하는 관념들의 전체적인 복합체가 이미지의 구성 작용에 공헌했다는 것을 상황적인 증거로 증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워버그가 구축한 도서관에서는 전문적인 미술사가들이 대체로 싫어하는 경향의 영역인 종교적 숭배의 역사, 축제의식의 역사, 주술과 점성술의 역사까지 다루고 있다.

클레어 파라고 – 조용한 움직임: 미술사 담론에서 민족지학적 주체를 배제하는 것에 관하여

독실한 진화론자인 워버그는 호피족 상징주의에 관한 연구에서 뉴멕시코 원주민들의 제의와 고대 그리스의 이교 신앙을 동일한 문명 단계로 설정하는 인종 차별적 기반을 보여주었다. 이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많은 학자들이 여기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여 염려스럽다. 워버그의 진화론적 관점은 19세기 인종학에 속하는 문화 인류학에서 파생되었다는 것을 염두해야 한다. 워버그가 연구 과정에서 호피족의 사생활을 침해하였고, 그들의 신성한 물질들을 유럽에 상업적으로 전달하는 자들과 접촉했었던 사실은 묵과되고 있다. 푸에블로족 관점에서는 워버그가 본래 저지른 위반, 그리고 그의 관념을 장려하는 동시대 학문의 위반이 모두 문제가 된다.

지식에 모두가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서구식 가정 자체가 문제다. 푸에블로족에게 있어 지식은 책임이 따르는 것이다. 언어는 한 세계의 관점을 담고 있으므로 지배 문화의 용어로 번역하는 것은 불가피하게도 오직 근사치일 뿐이다. 워버그가 찍은 민족지학적 주체들과의 사진은 당대 독일에서 불었던 ‘서부’ 유행과도 관련이 있다. 민족지학의 인식론적 관심사들은 인종주의로부터 해방되어 ‘순수하게’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문맥들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디까지나 학자들의 분석 수단과 그들이 속한 제도 사이에는 역사적 연합이 있다는 것을 염두해야 한다.

장 드 레리의 브라질 여행기 삽화들은 인물과 요소들의 배치와 그것의 설명에 이르기까지 실제를 그린 것이라기 보다는 의식적으로 조작된 결과물이다. 드 레리는 베살리우스의 과학적 인체 삽화를 모방하여 해부학적인 이미지를 창출하였으며, 수사적 전략을 구사하는 상대 세력을 효과적으로 비판하였다. 이는 과학적 이미지와 텍스트의 결합이 가져오는 효과를 그가 잘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5. 의미의 메커니즘

에르빈 파노프스키 – 도상학과 도상해석학: 르네상스 미술 연구

미술 작품의 주제나 의미는 세 가지 층위로 구분된다. (1) 일차적인 주제 또는 자연적인 주제, (2) 이차적인 또는 관습적인 주제 (3) 본래 의미 또는 함의 내용이 그것이다. 이 각각의 분석 단계를 전 도상학, 도상학, 도상해석학적 단계로 본다. 도상해석학은 분석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종합하여 해석하는 방법이다. 전 도상학적 분석에서는 우리 경험의 불확실성과 작품 표현의 부정확성을 경계해야 한다. 도상학적 분석에서는 문헌적 지식이 일관적이지 않다는 것과, 보편성에서 벗어나는 표현이 성립되는 원인에 대해 고려해야 한다. 즉, 개별 화가의 독특한 표현의도나 당대의 관습까지 고려해야 한다. 도상해석학적 해석에서는 문헌을 초월한 연구자의 직관이 요구된다. 이것을 ‘종합 직관’이라고 할 수 있는데, 통상 유식한 학자 보다는 재능 있는 보통 사람에게 더 잘 계발된다.

고대의 재발견과 부흥은 르네상스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미 샤를마뉴 대제 시절부터 고대 연구는 왕성했고, 중세 내내 고대 신들에 대한 격하와 기독교적 교훈으로의 재해석이 병행해서 나타났다. 지역적으로 북유럽에서는 고대 주제에 대한 관심이, 이탈리아와 프로방스에서는 고대 모티브에 대한 관심이 나타났다. 중세는 고대 모티브와 주제를 함께 계승하기를 꺼려했다. 중세는 고유한 표현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고대 모티브와 주제를 결합할 능력도, 필요성도 없었다. 르네상스의 진정한 의미는 중세에 하지 못했던 고대 주제와 모티브의 재결합이며, 이는 인문학적이며 인간적인 사건이다.

위베르 다미쉬 – 기호학과 도상학

도상학은 기호학에 종속된 것인가? 도상학이 발전할수록 이성-중심적인 모델은 견고해졌다. 도상학은 그림의 분석 속으로 텍스트의 권위를 도입한 것이다. 도상학적인 방법은 예술적 이미지가 기호화하는 발화표현을 완수한다는 가정 하에 성립되었다. 현대미술에서 도상이 반드시 기호는 아니다. 현대 예술가들은 하이포아이콘(종속된-도상)에 저항하지 않더라도 형상의 ‘편에서’ 그들의 작품을 수행한다. 기호의 질서에서 벗어난 것에 대한 인식은 인상주의자들에게서 이미 시작되었다. 이 지점이 도상학의 이성-중심적인 출발점을 넘어서 예술의 기호학이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내재된 영역이다.

미크 발 & 노먼 브라이슨 – 기호학과 미술사: 컨텍스트와 전송자에 관한 논의

[연구문제] 기호학이 어떻게 전통적인 미술사에 도전하는가? 미술사가가 추구하는 분석들을 기호학자들이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는가?

기호학은 기호 제작과 해석과정에 관련된 요인들을 정의하는 것으로 미술 연구에 상당히 기여해왔으나, 최근 미술계의 다양한 변화들은 기호학과 미술사의 접점에서 새롭고 독특한 논쟁들을 야기하고 있다. 미술사는 실증적 지식에 대한 희망을 아직 놓지 않고 있는 반면, 기호학은 이론적 회의주의로 거기에 충돌하고 있다. 미술사의 실증적 탐구와 사회사 영역은 회의주의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이는데, 사회사 영역에서는 컨텍스트의 모호성이 문제가 된다. 컨텍스트의 의미는 사건들에 의해, 그리고 해석자의 전략에 의해 결정된다. 즉, 해석적 위상을 공정하게 해야 한다. 기호학은 모든 학제에 우선하는 이론으로, 학문 간 위계질서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기호학적 관점이 미술사에 편익을 준 영역이 ‘컨텍스트’에 대한 논의였다.

구조주의 시대에는 컨텍스트가 선형적으로 텍스트에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이 가능했지만 포스트 구조주의에서 그 관계의 예외들이 확인되면서 고정된 기호의 의미에 대한 신화는 사라졌다. 컨텍스트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해석자(미술사가)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 포스트 구조주의자에 따르면, 어떤 의미도 컨텍스트를 벗어나 성립될 수는 없지만, 어떤 컨텍스트도 텍스트를 만들어내는 완전한 전체가 될 수는 없다. 사회사적 미술사가는 작품의 결정인자를 발견하기 위하여 컨텍스트를 ‘예상’한다. 이것은 현상에서 원인을 찾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연대기적 역전(by 니체)’이다. 이는 작품이 컨텍스트를 생성하는 위험성을 내포한다. 컨텍스트에서 텍스트를 분리하는 것은 미술사에서 근본적인 자기 구조화의 수사적 움직임이다. 기호학의 컨텍스트는 이중적인 것으로, 즉 작품 생산의 컨텍스트와 그 해석의 컨텍스트이다. 기호학자들은 역사적 결정 개념에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들의 컨텍스트 개념이 전통 미술사학자들의 것과 다름을 설명하며,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노력하는것이 그들의 과제이다.

작가는 컨텍스트에 비해 확고해 보인다. 그가 살아있는, 혹은 살아 있던 사실만큼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술 담론 속에서 작가의 이름은 지칭되는 것과 묘사되는 것 사이에서 오락가락한다. ‘컨텍스트’처럼 ‘작가성’은 틀 만들기(framing)의 정교한 작업이며,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해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작가성의 담론은 작가의 모든 흔적을 작품의 원인이라고, 혹은 작품 그 자체라고 하지 않도록 정교한 규칙들을 만들어낸다. 잡지의 그래픽 아트에 서명이 있을때와 없을때, 사진이 갤러리에 걸릴때와 신문에 실릴때, 작가성은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경계에 들어선다. 작가성은 자연스러운 배경 설명이라기 보다 컨텍스트에 불과하다. 작가성은 주어진 것이 아니고 만들어지는 것이다. 바르트 이전까지 미술사적 서사에서 전체 목적은 권위 있는 작품과 그 생산자를 단일한 속성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완전한 창조적 주체가 존재한다는 그러한 의견은 낭만적 신화학일지도 모른다. 남성, 천재, 주체, 단일성을 강조하며 ‘인간-그리고-그의-작품’의 형식을 취하는 작가/주체적 비평의 영향력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에 작용하는 전략적 한계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티븐 반 – 의미/해석

의미의 탐구, 즉 해석에는 사실상 한계가 없으며, 그것은 개별 주체의 알고자 하는 욕망이 약화될 때에만 종결될 수 있다. 미적 대상을 해석한다는 것은 그것이 집합적 의식을 지배하는 다중적 코드들에 참여하는 것을 불가피하게 측정하는 것이다. 파노프스키의 도상학이 사회적, 역사적 세계로 향하는 작품 밖으로의 움직임이라면, 도상해석학은 다시 예술가의 주관성으로 향하는 움직임으로서 균형을 이룬다.

파노프스키는 <신중함의 알레고리(티치아노)>에 대한 해석에서 원작가(authorship)의 안정된 개념에 너무나 의존하면서 많은 중요한 문제들을 지나치게 속단했다. 스티븐 반의 <아폴론과 코로니스(막달레나 드 파세)> 해석은 원작가의 복잡하고 넓은 이해관계와 도상학적 의미의 층들, 회화에서 판화로 재해석되면서 발생되는 원본의미의 파괴, 제목과 명시적 설명(문헌)으로 인한 오해의 가능성 등 해석상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준다. 이는 작품의 이해 측면에서 한 사람의 사적인 역사 대신, 서구 전통에 있어서 예술의 더 넓은 사회적/문화적 역사로 나아갈 필요성을 암시한다.

6. 해체와 해석의 한계

스티븐 멜빌 – 새로운 관점의 유혹

고흐의 부츠 그림에 대한 하이데거, 샤피로, 데리다의 논쟁이 있었다. 멜빌은 여기에 다시 뛰어들면서 이론, 포스트모더니티, 미술사의 개념을 함께 묶을 수 있는 관계를 그리려한다. 해체가 미술 담론에 참여하게된 계기는, (1)포스트모던한 작품을 설명하는 적절한 도구로 인정되어, (2)시각적 대상에 관한 문학이론을 설명하는 일반적인 방법론으로, (3)미술사 자체의 텍스트 읽기 방법으로서 등이다. 이 세 영역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미술사는 문학 이론과 달리 근본성 및 근본 텍스트(리글, 뵐플린, 파노프스키 등)에 의존해왔는데, 이 근본 텍스트들은 헤겔식의 철학적 과거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헤겔식 전통은 역사성을 신봉하는 예술 제도론을 낳았으며, 예술의 조건을 정의하는 모더니즘적 사고에 토대를 둔다. 또한 헤겔적 관점은 모든 존재와 현상에 역사적 해석을 강요한다. 미술사와 미술의 역사적인 생성을 분리시킬 수 없다면, 적어도 그 해석들에서 해겔식의 도식화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피해야 한다. 리글과 뵐플린의 형식주의는 헤겔식 변증법의 모델을 교묘하게 따르면서, 시각 역사의 대상을 발견하고 분리하는 것을 뒷받침할 분석적인 어휘와 방법론 같은 것을 획득했다. 헤겔에서 벗어난 미술사의 성취는 미술사 자체와 그 대상에 대한 망각으로 생각할 수 있으며, 반드시 그렇게 생각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과거로의 접근을 위한 “관점”을 생각하는 방식에 대해 새롭게 사고하도록 한다. 지금은 그 관점, 틀, 시각의 의미를 생각해야 할 때이다.

마틴 하이데거 – 예술 작품의 근원

예술, 예술가, 예술작품은 서로가 서로의 근원이다. 순환논리이다. 예술 작품은 사물적 측면과 다른 무언가의 결합으로 형성되는데, 이것이 알레고리와 심벌이다. 예술의 본질이 사물 외적인 것에서 발생한다면, 먼저 사물이 무엇인지를 충분하고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광의적 사물은 무가 아닌 모든 것이지만, 통상 신, 인간, 동물 같은 것을 사물로 부르기는 꺼려한다. 사물의 주변적인 특징들이 사물을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사물은 자신의 둘레에 속성들을 모아놓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어를 라틴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사물의 의미에 손실이 가해졌고 이것이 서구 사상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사물을 설명하는 문장 구조가 사물에 선행하나, 아니면 사물 구조가 설명에 선행하나? 여기에 대한 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근본적으로는 둘 다 아니다. 사물 해석은 사물의 본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피상적인 것이며, 사물의 사물적 측면에 어떤 폭력을 가한다. 이것은 사유를 통해서 사물을 습격하는 것이다. 이 습격을 피하고 싶다면, 첫째, 사물과 나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제거하고 사물을 육체의 감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둘째, 사물로부터 벗어난 순수한 감각(예: 대상 없는 소음)(추상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 두 가지는 어느 한 쪽에 편향되지 않고 균형잡혀야 한다. 셋째, 질료-형식이라는 개념틀을 재고려해야한다. 자연적 사물은 질료가 형식을 결정하나, 만들어진 사물은 형식이 질료를 결정한다. 또 용도성이 질료-형식의 근거가 된다. 용도성을 위한 사물은 도구이다. 반면 예술 작품은 도구와 유사성이 있으나 실용성을 지향하는 도구와 달리 자족적인 현존 가운데 머문다. 도구는 반쪽짜리 예술 작품이거나 그보다 못하다. 예술 작품이 갖는 자족성이 없기 때문이다. 질료-형식 개념틀은 도구 존재를 규정하는데 유용하다. 인간과 신의 창조활동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에서, 질료-형식 개념틀은 기독교 신앙에 바탕을 둔 철학에 의해 강한 추진력을 얻었다.

이쯤에서 농부의 구두를 생각한다. 반 고흐가 그린 구두는 농부 아낙네의 구두이다. 이 구두의 용도성은 도구의 본질적 존재의 충만함, 즉 세계와 대자에의 보존된 귀속성 가운데 깃들어있다. 용도성은 신뢰성에 기반하며, 시간이 흘러 신뢰성이 소멸하면 일상성을 얻는다. 예술 작품은 구두가 진실로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었다. 작품을 통해서 구두라는 도구의 존재가 두드러지게 드러났다. 고흐의 그림을 통해 촌 아낙네의 구두가 작품 가운데서 자신의 존재의 빛 가운데로 들어섰다.

예술의 본성은 존재자의 진리의 작품 가운데로의 자기 정립이다. 이것은 미적인 측면에 가려져 간과되었던 진리와의 관계 고찰이다. 작품의 사물적 현실성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사물을 통해 작품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통해 사물에 이르러야 한다.

마이어 샤피로 – 개인적 사물로서의 정물화: 하이데거와 반 고흐에 관한 소고

하이데거가 기술한 구두는 사실 도시나 시내에 살고 있었던 고흐의 신발이었다. 고흐의 그림 속에 농부와 토양의 감동은 없으며, 원초적이고 소박한 것에 대한 강한 파토스를 지닌 하이데거가 자신의 사회적 관점을 투사한 것이다. 하이데거는 고흐의 개인적인 것과 인상학적인 것을 간과했다. 고흐가 그린 신발은 사용 도구로서 신발이 아닌 ‘자신의 일부분’으로서의 신발이다. 고갱의 전언에 따르면 고흐에게 신발은 노동, 봉사, 예술로 점철되었던 그의 삶의 일부분이었음이 명백하다.

자크 데리다 – 지시에 있어서 진리의 귀속

샤피로는 하이데거를 잘못 이해했다. 독일어의 ‘도해’가 영어의 ‘설명’이 되면서 의미들이 제거되었다. ‘제품’은 사물과 작품의 중간쯤에 위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중간 유형은 다른 두 가지 사이에 위치하며 그 자체로 사물과 작품을 합치고 나눈다. 제품은 사물성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사물의 반쪽이며 사물 그이상이고, 동시에 예술 작품의 반쪽이며 예술 작품보다는 못한 것이다.

하이데거는 이유도 없이 신발에 여성을 부여했다(농촌 아낙내). 하이데거와 샤피로 모두 성의 재귀속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농부’의 세계로 평가절하하는 모든 것은 하이데거의 감정적, 환상적, 이데올로기적, 정치적인 가담에 대한 응답일뿐이다. 샤피로가 그려진 신발이 누군가의 특정한 주체(고흐)가 소유한 특정한 신발이라고 생각한 것은 독단이다. 명확하지도, 자명하지도, 적합하지도 않다. 발을 신체로부터 분리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독단이다. 그림 속 신발이 누군가에게 귀속된 실제의 모사라는 생각 자체가 문제이다. 사실 하이데거가 하려고 했던 제품, 사물, 예술에 대한 논의에서 고흐의 그림은 필요 없었다. 그저 제품-존재에 대해 이야기 했을 뿐이다.

7. 작가성과 정체성

미셸 푸코 – 작가란 무엇인가?

텍스트의 외부에 위치하며, 텍스트에 선행하는 것 같은 저자를 텍스트가 어떻게 가르키고 있는가? 현대 글쓰기는 의미하는 것의 성격에 따라 배치된 기호들의 유희이고, 글 쓰는 주체가 끊임없이 사라지는 공간의 열림이다. 과거, 죽음을 면하기 위해 이어졌던 이야기(아라비안 나이트)는 이제 죽일 권리, 즉 저자 살해의 권리가 되었다.

비평은 작품과 저자의 관계를 이끌어내거나, 저자의 사상과 경험을 재구성하는 것이 아닌 작품의 내적 구조와 형식을 분석하는 것이어야 한다. 저자가 아닌 개인이 남긴 것은 작품인가? 저자가 남긴 모든 것은 작품인가? 이 질문들은 저자로부터 출발한 분석의 모순을 드러낸다.

글쓰기에 본래의 지위를 준다는 것은 글쓰기의 신성한 성격이라는 신학적 확신을, 창조적 성격이라는 비평적 확신을 공고히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의 이름은 다른 이름들과 달리 단순한 고유명사가 아니다. 작품의 귀속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이 발견되거나 기존 정보가 정정되면 저자 이름의 변화가 나타난다. 저자의 이름은 분류적 기능을 담당한다. 한 저자의 이름 아래 여러 텍스트를 놓는 것은 그 텍스트들간에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한 담론이 저자의 이름을 갖는다면그 담론은 일상의 흘려져버릴 말이 아닌, 양식과 문화에 의하여 어떤 위치를 차지해야 할 말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마르크스나 프로이트 같은 사람은 담론적 실천의 창설자들인데, 갈릴레오나 뉴튼 같은 과학 설립자들과는 다르다. 그들은 형식적 일반성을 부여하지 않고 단지 응용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들은 기원으로 회귀하는데, 이것은 담론적 실천이 과학의 설립과 다른 가장 큰 특징이자 구성요소이다. 회귀는 일차적이고 꾸밈없는 그대로의 텍스트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과학의 재발견이 기존의 견고한 이론적 틀을 변화시킬 가능성은 거의 없는 반면, 담론의 창설에서 회귀는 이론적 영역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다. 이처럼 담론적 실천에서 회귀는 기본 저자와 간접적 저자 사이의 어떤 관계성을 보여준다. 주체의 특권들을 재검토해야 한다. 주체 혹은 그의 대체물로부터 창조자로서의 역할을 제거하고 담론의 가변적, 복합적인 하나의 기능으로서 주체를 분석해야 한다.

실제 저자가 누구인지, 진본인지, 자기 표현적인지에 대한 질문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담론의 존재방식은 무엇인지, 어디서 비롯되는지, 어떻게 순환하는지, 누구에 의해 향유되고 수행되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궁극적으로는 “누가 말하건 무슨 상관인가?”로.

로잘린드 크라우스 – 확장된 장에서의 조각

오늘날 전혀 새로운 것들이 조각으로 불리고 있다. 비평의 드러나지 않는 메시지로서 역사주의 이데올로기는 조각의 외연을 확장시켰다. 역사주의는 새로운 것과 다른 것에 작용하여, 새로움을 약화시키고 차이를 완화시킨다. 전혀 새로운 것이 등장하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과거의 전범을 찾아서 끌어오는 전략이 시도되었다. 이러한 역사화의 강박관념이 모든 차이점들을 완전히 무시해버렸다. 이것이 모더니즘의 단선적, 계보학적 역사주의의 폐혜이다.

전통적으로 조각은 기념비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발전해왔다. 하지만 로댕의 <지옥문>과 <발자크>를 기점으로 기념비의 논리는 와해되었다. 원래 기념비가 있어야 할 장소의 절대적 상실로서 무장소성, 무거처성과 같은 부정적 상태는 모더니즘을 설명해준다. 즉, 모더니즘 조각은 무장소적이며 자기 지시적이다. 또한 비건축에 비풍경을 더한 것이다. 조각기 비건축과 비풍경의 복합체라면, 건축과 풍경의 복합체도 있을 것이다. 르네상스 이후 서구 문화는 미술의 완결성 획득을 위해 이러한 복합체를 배제하여 왔다. 그러다가 1968년과 1970년 사이에 복합체라는 확장된 장이 급격히 대두되기 시작했다. 풍경과 건축의 가운데에 장소구축물(site-construction)이 있으며, 풍경과 비풍경의 가운데에 표시된 장소(marked sites)가, 건축과 비건축의 가운데에 자명한 구조물(axiomatic structure)이 있다. 이 역사적으로 단절되고 확장된 장이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전문화를 중요시하는 모더니스트들은 확장된 장의 예술가들이 절충적이라며 여전히 의심한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스트는 어떤 매체(사진, 책, 벽 위의 선, 거울, 조각 자체)에도 국한되지 않고, 논리적 작동에 의해 문화적 조건들을 정의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명백한 단절의 수용을 전제로 하며, 정교한 계보도를 구축하는 모더니스트들의 역사주의 비평과는 다른 것이다.

크레이그 오웬스 – 타자들의 담론: 페미니스트들과 포스트모더니즘

타자를 자각하고 다양성을 발견하는 것이 포스트모던이다. 근대 예술 작품의 권위는 독창성과 유일성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미학이 형식들에 부가한 보편성에 기반을 둔 것이다. 그 보편성은 남성적인 재현의 주체를 상정하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작품은 그러한 권위를 약화 또는 해체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재현을 비난하지만, 탈재현 자체가 법칙이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의 임무는 ‘전적으로 다르게 생각하기’가 되어야 한다. 서구의 재현에서 주체로서 여성은 자리가 없다. 오직 재현의 대상일 뿐이다. 그간 포스트모더니즘 논의는 성차의 문제를 발견하고 선언하는데 있어서 실패했다. 아니, 오히려 급부상한 페미니스트 운동을 무시하거나 억압했다. 포스트모던적 사고는 이분법적 사고가 아니며, 이항 대립 없이 차이를 생각하는 방법이다. 일례로 마르크스주의에는 근본적으로 가부장적 편견이 내재되어 있는데다가, 담론 자체의 억압성 보다는 그 담론을 총체화하려는 야망, 즉 모든 사회적 경혐의 형태를 설명하려는 노력에 문제가 있다. 이는 모든 ‘이론’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포스트모더니즘적 페미니즘의 실천은 이러한 이론들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모든 사회적 관계와 정치적 실천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이론적 담론을 없다. 모더니즘 서사는 거대 서사, 지배 서사이며, 모던은 재현의 시대이다. 재현은 서구인(남성)이 세상을 손에 넣어 움켜쥐고 대상화시키는 방식이며, 이를 통해 인간은 존재하는 모든 것을 위해 기준과 지침을 세우는 특별한 존재가 된다.

모던의 지배력 상실의 징후는 오늘날 문화 전반에 드러나며, 시각 예술 분야가 가장 두드러진다. 가부장제 질서 하에서 시각은 다른 감각보다 우선하며, 그에 따라 시각 예술에서 여성에게 가해진 재현의 위협은 남성적 특권의 영역이 된다. 오늘날 수많은 페미니스트(바바라 크루거, 신디 셔먼, 셰리 레빈, 마사 로슬러 등)들의 작업에 의하여 시각 예술에서의 근본적인 구분들이 사라지고 불확정성이 대두되었다. 여성은 이렇듯 차이를 인식하는 방법을 배워 왔고, 그들은 아마도 언제나 그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메리 켈리 – 모더니즘 비평에 대한 재고찰

예술 비평은 사회적 맥락에 주목하면서도 작품의 제도적인 측면은 배제하는 면이 있다. 전시로 대변되는 예술 제도에 있어서 글과 인쇄물은 실제의 작품보다도 중요하게 다뤄질 때가 있다. 심지어 인쇄물이 작품의 방향을 결정하기도 한다. 글은 주체의 역할을 결정하고 여러 모호한 요소들에 질서를 부여한다. 작품은 인용한 텍스트와 도판 이미지는 작품을 단순화시키는 모더니즘의 전략을 강화한다.

회화의 진실은, 기표와 같이 앎의 불가능성이다. 이제 예술 텍스트의 기호 체계에 있어서 진술의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의미 있는 것들이 발생하고 증가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주디스 버틀러 – 수행적 행위와 젠더 구성체

젠더는 행위의 양식화된 반복을 통해 제도화된 것이다. 젠더 정체성은 사회적 제재와 터부에 의해 강요된 수행적 성취이다. 공유된 사회 구조에 의해 조건 지워진 것만큼 개인적인 것은 암묵적으로 정치적인 것이다. 여성의 범주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것을 간과한 정치적 프로그램은 무용하다. 이항 범주를 유지하는 여성 정체성의 구축은 개별 여성의 구체적 삶을 재현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항 범주를 유지하는 젠더 정체성을 검증하지 않은 채 재생산하는 것은 억압 조건의 문제를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다.

신체가 문화적 관계의 생명력 없는 수취인은 아니다. 다만 젠더화된 신체는 문화적으로 제약된 신체 공간 안에서 그것의 역할을 행하고 이미 존재하는 지시의 한계 속에 이해된 것을 재연한다. 양극단의 젠더 수행에 실패한 자들은 처벌 받거나 하찮은 존재로 취급받는데, 사실 이들은 젠더의 진실이나 허위가 단지 강요된 것 뿐이라는 사회적 지식에 대한 기호가 되어야 한다.

나의 이론은 정치적 프로그램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다. 젠더 구성체에 대한 철저한 비판 없이 설정된 페미니스트 이론은 젠더의 구조적 억압 방식을 살펴보는데 실패했다. 정치적 프로그램을 위해 여성의 거짓된 존재론을 보편적인 것으로 상정하는 전략은 효과적이지 못했다. 성차를 강조하는 담론은 결국 성차의 구성 방법과 기원을 알지 못하게 한다. 중요한 것은 기존의 젠더 정체성을 재기술하고 젠더 현실의 종류에 대한 규범적인 견해를 제공하는 것이다. 남성을 기준으로 설정한 보편적 이론 체계에 대항하는 것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구체화 과정에 대한 치밀하고, 집요하고, 광범위한 조사가 더 중요하다.

레이 초우 – 포스트모던 오토마톤

모더니즘은 인식적 경계에 대한 구분이며, 포스트모더니즘은 무너지는 경계에 관한 이야기다. 무엇이든 허용하는 포스트모더니즘 맥락에서 소외 계층들의 부상이 페미니스트의 개입을 불러왔지만, 실상 포스트모더니즘과 페미니즘의 관계는 단순하지 않다. 포스트모더니즘이 경계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반면, 페미니즘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불평등을 명확한 수평선으로 구분하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등가, 무관심, 교체 가능성으로 대표되지만, 페미니즘은 이러한 무관심을 거부한다. 시각성은 주체와 대상을 지성과 볼거리로 양분하는 논리에 의해 여성 억압의 원인이 되어왔다. 제1세계 페미니스트는 ‘남성-인간-주체-VS-여성-오토마톤’의 대립을 거부함으로써 프로이트적 모더니즘을 극복하였다. 하지만 제3세계 페미니스트는 여성만의 단언적 권위에 대한 것이 아닌, 문화적 억압과 절충에도 대응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띈다. 따라서 제3세계 페미니스트의 임무는 자국 문화 내의 억압받는 여성들에게 생기를 불어 넣는 동시에, 제1세계와의 연루를 인식하면서 문화와 경계를 넘어선 발언에 까지 이르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은 차이를 무력화시킨다. 하지만 제3세계 페미니스트에게 지역은 절대 ‘하나’일 수 없으며, 구조, 차이, 오토마톤으로서 자신의 ‘지역성’은 본질적으로 연합적인 어떤 형태의 존재를 요청하는 것이다.

오늘날 페미니스트들은 차이의 ‘유기’를 거부하면서도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치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유기에 대한 거부 속에서도 성적 차이가 여성 뿐만 아니라 다른 종류의 지배와 맞물리는 방법들을 찾은 것이다. 이것은 페미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접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성과이다.

아멜리아 존스 – ‘어디에서 어떻게 아름다움이 즐거움을 주는지 모든 사람은 알고 있다.’

이 글은 시각 문화에 대한 미학적 접근, 즉 권위주의적인 효과를 영속화하고 감정가로서의 전통을 고수하고 있는 태도에 대한 비판이다.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비평이 존재한다는 것은 미학사에서 가장 오래된 속임수이다. 그간 미학적 판단에 대한 담론은 아름답지 않은 것과 무감각하다는 꼬리표가 붙은 독자(관람객)를 배제하는 제도가 되었다. 이러한 미학의 기본 기능에 대한 의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백인 여성의 누드는 서양 미술사에서 아름다움의 대표적 대용물이며, 작가, 후원자, 관람자로 대표되는 남성들 사이의 교환물이다. 미학은 가부장제 유지를 위한 성공적인 이데올로기이면서, 동시에 내부적 모순으로 인해 실패를 경험하기도 한다. 칸트 미학에서 취미 판단의 무관심성은 육체적 즐거움, 관능적 정서의 제거를 요구한다. 그런 의미에서 부셰의 관능적인 퐁파두르는 칸트식 경계에서 배제된다. 디드로 등 계몽주의자들은 ‘아름다운’ 것이 아닌 ‘예쁜’ 여성의 힘을 비판하며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내비쳤다.

칸트와 그의 후배들이 만들어 온 18, 19세기 미학은 인간과 자연, 안과 밖, 주체와 대상 사이의 좁힐 수 없는 간격을 좁히려는 은밀한 신학적 시도였다. 천재 예술가를 인정하는 비평가라는 신성한 목적론을 생각해 보면, 미학적 모델은 가부장적 특권 체계를 공고히 하는 것이 분명하다. 관능미를 표상하는 후원자로서 퐁파두르는 이러한 권위에 위협을 가하는 존재였다. 앵그르의 오달리스크와 마네의 올랭피아는 계급과 민족, 인종의 차이를 반복적으로 강조함으로써 욕망의 대상을 담아내고, 피부색을 통한 인물들의 계층화를 통해 백인 남성 주체의 도취를 실현하였다.

히키가 말하는 불변의 진정성은 ‘정치적 올바름’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나는 판단 주체성에 책임감을 융합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움은 결국 초월적인 존재에 의해서가 아니라 보는 사람의 눈에 의해 좌우된다.

제니퍼 도일 – 퀴어 벽지

시각 문화에서 ‘퀴어’는 단순히 게이, 레즈비언의 작품 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적 정체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것들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미술 전반에 대한 시각을 달리 하는 것이다.

동성애자 문화에서 이성애자가 느끼는 기분을, 미술관을 찾은 보통 사람들이 느끼게 된다. 앤디 워홀이 아무리 퀴어하다 한들 포스트모더니즘의 신전은 그 퀴어함을 철저히 회피해왔다. 동성애자들의 섹슈얼리티 연구는 미술사의 범주 밖으로 인식되어 왔으며, 이 분야에서 뛰어난 퀴어 연구들은 저명한 외부자들에 의해 수행되어왔다.

1945년 이후 위대한 게이 예술가들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시작된 퀴어에 대한 관심은 1980년대 에이즈 위기와 맞물려 보다 본격화/첨예화 되었다. 80년대 후반에는 퀴어 자신의 목소리를 담은 퀴어 비평이 대두되며 퀴어 예술의 방향을 제시하게 된다.

주류 문화에 대한 퀴어한 독해가 우리의 쾌를 소멸시킬때, 예술은 우리가 쾌락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도 역할을 한다. 퀴어 예술과 퀴어 예술사는 이렇듯 즐거움을 추구하면서 압제에 저항하려는 열정과 헌신에 의해 활기를 찾곤 했다.

미술관이 앤디 워홀을 비게이화 할때 사용하는 방식 중 하나는 그의 작품을 무(無)에 대한 실존주의적 수행으로 보는 관점이다. 퀴어를 묵인하는 주류 미술계에서 전시와 후원이 필요한 예술가들은 자포자기의 심정을 품을 수 밖에 없고 결국은 생존의 고민을 해야 한다. 퀴어 예술의 핵심은 생생히 살아 숨쉬는 생활 속으로 미술의 통합에 있다.

8. 세계화와 그로 인한 불만

티모시 미첼 – 오리엔탈리즘과 전시 질서

오리엔탈리즘은 서양이 동양을 본질주의, 타자성, 부재로 바라보는 구성된 이미지와 전문 지식의 합의이다. 1889 파리 만국박람회를 경유한 오리엔탈리스트학회 이집트 대표단은 그곳에서 자신의 타자적 표상을 마주하고 그에 대한 설명을 남겨 놓았다. 이것을 검토한 결과, 그들이 서양에서 발견한 것은 세계를 전시하고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자체가 하나의 끝없는 전시로 구성되어 가고 있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당대 유럽인의 삶의 방식은 ‘시야의 구성’에 대한 집착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오만하게 내려다 보는 서구적 시선은 세계의 표상들을 한 곳에 일사분란하게 모아놓고, 모든 것은 그 전에 무언가의 모형이나 그림이었던 것처럼 설정하였다. 유럽의 전시로서 세계(world-as-exhibition)는, 세계의 전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하나의 전시인 것처럼 구성되고 이해되는 세계를 의미한다.

유럽인이 처음으로 동양에 당도하였을때, 그들은 실재를 그림으로 파악하려고 했다. 또한 창작자들은 사진사처럼 동양의 실재를 그림으로 다시 만들어내길 원했다. 하지만 그 사진가나 작가는 동양의 정확한 그림을 만든 것이 아니라, 동양을 일종의 그림으로 설정했다. 그들의 방식은 대상과 나 사이를 분리시켜 거리를 두는 것이었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응시(invisible gaze)는 권력의 위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이처럼 거리두기를 통해 실재를 그림으로 만들면서도, 동시에 그 세계를 실재인 것처럼 경험하고 싶어하는 모순을 지녔다.

세계를 둘로 바라보는 방식은 너무나 일반화되어 있는데, ‘실재’의 본질적 영역과 이에 상반되는 ‘단순한’ 표상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관점이 그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표상을 통해 실재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실재에 대한 개념이나 진리 체계가 계속해서 우리를 설득시킨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오리엔탈리즘은 단지 역사 인식이나 식민 지배의 측면이 아니라, 근대 세계 특유의 속성에는 필수적이라 할 수 있는 진리와 질서를 부가하는 방식의 일부로 보아야 한다.

캐롤 던컨 – 의례로서의 미술관

근대 미술관은 외견상 궁전이나 신전을 닮았다. 하지만 닮은 것은 외견일 뿐이다. 계몽주의는 신과 세속을 구분하는 이원론을 성공적으로 정착시켰고, 미술관은 세속적인 지식 영역에 결정적으로 귀속된다. 미술관을 통제한다는 것은 공동체가 재현한 것, 가치있다고 여기는 것, 그리고 진리를 통제한다는 의미이다.

대표적인 근대 미술관들은 외형상 고대-그리스의 의례적 공간을 닮아 계몽주의자들의 이상을 외형적으로 대변하는 동시에, 실제로 의례를 위한 무대로 기능한다. 거기에는 엄숙하게 해야하는 것과 해서는 안되는 것이 지정되어 있다. 외부에 배치되는 조각, 인도로부터 괴리된 접근성 등이 미술관에 들어가는 행위가 일상과 무언가 다른 것임을 암시한다. 이처럼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전이 상태를 리미널리티(liminality)라고 한다. 미술관은 시간이 유예된 사원이며, 종교의 대체물이다.

미술관은 의례를 행하도록 계획된 장소인데, 그 의례를 행하는 자는 관객들이다. 미술관의 증가는 철학적 창안, 즉 예술 오브제를 둘러싼 미학과 도덕적인 영향력의 당연한 결과였다. 예술 오브제는 예술로서 관조될 때 가장 적절하게 사용되는 것인데, 미술관은 그 이외의 용도에는 쓸 수 없도록 무용지물로 만듦으로써 예술 오브제의 가장 적절한 무대가 된다. 그럼에도 18세기의 몇몇 지성인(괴테-루브르)은 오브제 무대로서 미술관의 기능을 비난했는데, 미술관은 그 오브제가 존재했고 이해되었던 조건들을 강압적으로 바꾸기 때문이다.

19세기 미술관은 계몽적, 윤리적, 사회적 공공 미술관이었으나, 20세기 들어서는 미학적인 미술관이 더 우세하게 되었고 그 중심에 미국이 있었다. 작품 간의 넓은 간격과 여백, 개별적인 조명은 오브제를 미학적으로 도드라지게 하는 전략이다. 이를 통해 작품의 의례적 성격이 강화된다.

미술관에 있는 작품은 물론, 소화기, 습도계, 온도계 등도 작품이 될 수 있는데,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리미널리티와 더불어 ‘미학화하는 눈(aesthetizing lens)’이다.

발터 벤야민 –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

생산 조건이 변화함에 따라, 동시대 생산 조건 하에서 예술의 발전 경향들을 규정하는 논의가 필요하다. 창조성, 천재, 영원성 등 전통적인 가치들은 파시즘적 의도에 따라 사실들을 조작할 우려가 있다. 여기서 제시할 새로운 개념들은 파시즘적 목적에 반하며, 오히려 예술 정치의 혁명적 요건을 형성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판화, 사진, 영화를 거치면서 기술적 복제는 보다 정교화되었고, 전통적인 ‘손’에 의한 복제는 의미를 잃게 되었다. 하지만 완벽한 복제라고 하더라도 ‘지금, 여기’라는 일회성만큼은 결여하고 있다. 기술적 복제는 원본이 보여주지 못하는 것까지 보여줄 수 있고, 원본이 주지 못하는 새로운 가치를 줄 수 있다. 그래서 기술적 복제품은 원본의 ‘지금, 여기’ 가치를 하락시킨다. 이처럼 복제로 인해 사라진 요소를 ‘아우라’로 정의할 수 있다. 복제품은 원본을 대량 생산된 존재로 만들고, 현실적인 것으로 만든다. 이것은 전통적인 사물 영역에 대규모 변혁을 가져온다. 이같은 변혁의 대표자가 영화인데, 영화는 관람자들을 카타르시스적인 경험의 세계로 이끈다.

오늘날 아우라의 붕괴는 일반 대중의 중요성이 점차 커지는 것과 관련 있다. 그들은 복제물을 통해 개별 사물의 일회성을 극복한다. 인류에게 가장 오래된 예술은 마술적 수단이었고 이후 종교적 수단으로 기능했다. 그리고 예술 작품의 아우라적 존재 양상은 한 번도 자신의 제외적 기능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적이 없다. 하지만 가장 혁명적인 복제 수단인 사진의 출현으로 인해 변화가 시작되었다. 순수 예술, 부정 신학, 재현의 거부가 도래한 것이다. 즉, 기술적 복제 가능성은 역사상 처음으로 예술 작품을 제의에 기생해 온 방식으로부터 해방시킨다.

원본에 대한 물음은 의미를 상실했다. 이제 예술은 제의에 기반하기 보다는 정치라는 실천을 바탕으로 한다. 예술의 수용은 제의 가치, 혹은 전시 가치를 중요시할 수 있다. 두 가치는 현존성을 강조하느냐, 보여지는 것을 강조하느냐를 결정짓는다. 오늘날 예술의 제의 가치는 전시 가치 쪽으로 이동한 상태다. 사진과 영화는 이러한 현상의 이해에 가장 적절한 매체이다. 사진에서 제의 가치는 거의 상실되었지만 마지막 보루는 남아 있는데, 그것은 인간의 얼굴 표정이다. 인간 얼굴의 순간적인 인상은 아우라의 마지막 신호이다. 앗제는 인간이 배제된 거리를 찍었는데, 이 사진들은 범죄 현장 기록물을 연상케 하며, 이것을 일종의 기록으로 볼 때, 사진이 역사적 사건의 경과를 담을 수 있다는 정치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이제 막연한 관조는 적합하지 않게 되었다. 현대 사회에서 대중(프롤레타리아)은 표현의 권리를 가지게 되었지만 소유 관계는 여전히 갖지 못하고 있다. 파시즘은 소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정치적 삶의 미학화’를 추구하며 제의 가치에 여전히 봉사하기를 강요한다. 그러한 ‘정치의 미학화’의 정점이 전쟁이다. 제국주의 전쟁은 막대한 생산량과 미미한 수요량의 간극에서 발생한다는 점에서 소름끼친다.

파시즘은 미래주의 선언처럼 전쟁의 예술화, 예술의 전쟁화를 꿈꾸며 예술 지상주의의 끝을 달린다. 자기 파괴를 최상의 미적 유희로 체험할 수 있는 지경에 다다른 것이다. 이러한 파시즘적 ‘정치의 미학화’에 공산주의적 ‘예술의 정치화’로 답해야 할 차례이다.

사티야 모핸티 – 우리의 가치는 객관적인가?

객관성이란 결코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포스트모터니스트 사상가들에 의해 지지되었다. 실증주의적 객관성 개념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실증주의자들의 절대적인 중립성은 사고하는 이의 주관성이 완전히 박탈된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실증주의자의 시각을 넘어서서 미묘한 차이를 간직하는 객관성이 필요하다. 이 객관성은 오류에 대한 수많은 맥락의 깊은 이해에 의존한다.

객관성은 불가능하다는 포스트모더니스트의 입장과 달리, 필자는 객관성이 실현될 수 있는 목표가 된다고 믿는다. 우리는 오류를 통해 배워나가는데, 포스트모더니스트의 선험적 회의론은 오류의 다양한 양상을 고민하는 일을 중요하지 않은 일로 만든다. 푸코는 사회, 문화와 괴리된 인간 본성을 믿지 않으며, 인간의 본성이 무엇이라는 것을 정확히 말하기란 어렵다고 하였다. 반면 촘스키는 인간 본성에 대해 이해 가능한 결과를 도출하기 어렵다는 것을 부정하는 입장이다. 푸코에게 인간 본성은 이데올로기적이기 때문에 본성은 객관적이지 않거나 의존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프롤레타리아 혹은 부르주아로 속한 계급의 시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 푸코는 프롤레타리아의 계급 투쟁을 지지하지만 그것이 상대적인 정의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즉, 객관적인 정의란 없다. 부르주아의 정의와 프롤레타리아의 정의가 각각 존재할 뿐이다. 우리의 비판적 개념은 문화권 내의 이데올로기, 철학, 정치적 한계 내에서 형성되기 때문에 어느 쪽의 입장도 정당화가 불가능하다. 푸코가 생각하는 객관성은 실증주의의 객관성이며, 이것을 절대적 중립성으로 가정한다. 절대적 중립성은 너무나 급진적/추상적이기 때문에 회의적일 수 밖에 없다. 촘스키는 현재 보다 나은 상태, 즉 정의를 판단의 근거로 내세우지만, 푸코는 우리가 현재의 정의 개념과 더 나은 개념 사이의 차이 조차 구분할 수 없다고 본다. 투쟁에서 정의가 결부된다면 정의는 권력의 도구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편견과 이데올로기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롭지 못한 정의의 개념은 그저 또 다른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푸코는 인식론적 전체성(holism)을 지지하는데, 이는 반실증주의의 논지를 합법화하는 불필요한 급진적인 버전이다. 푸코의 인식론적 전체성은 지식의 유형과 철학의 형식을 급진적으로 복잡하게 연결시켜 그것이 생산한 어떠한 왜곡도 분석하기 어렵게 한다. 그래서 이 전체성은 세계에서나 존재하는 비사회적인 객관성에 근거하게 한다. 반면 촘스키는 우리에게 더 나은 가치가 필요하며 그것을 통해 사회적 충돌을 정의롭고 인본적으로 극복해 나갈 수 있다고 본다.

가치는 사회적으로 결정될 뿐만 아니라 종종 인간 본성 깊게 자리하는 특질을 따르기도 한다. 우리가 평가에서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한 이유는 평가의 대상이 되는 복잡한 대상이 이데올로기적인 구성으로 환원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류로 생각하고 객관적인 지식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경험적이면서 이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들이다. 간단한 판단마저도 우리 문화의 이데올로기와 사회적 실천과 연결된다. 우리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극히 현실주의적인 시각으로 부르주아나 프롤레타리아에 얽매이지 않고 이데올로기를 초월하는 방법들을 찾아야 한다.

마커드 스미스 – 시각 문화 연구: 역사, 이론, 그리고 실천의 문제

대부분의 시각 문화 서적들은 미술사, 미술 이론, 미학, 인류학, 사회학 등 다양한 섹션에 흩어져 있다. 이들은 주로 여러 이론을 기반으로 다양한 해석 방식들을 제공하는 방법론적인 연구들이다. 시각 문화의 정확한 개념과 범위는 합의되지 않았고, 매우 폭넓은 용도로 사용된다. 시각 문화가 시각적인 모든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시각 문화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특별한 목적을 이해해야 한다.

시각 문화가 학문으로서 정립된 계보에 대한 관점들을 살펴보면, (1) 기원(최초의 주창자)의 탐색으로부터, (2) ‘선조(위대한 초기 연구자)’들의 귀환으로부터, (3) 교수법의 실천으로부터, (4) 학과성의 한계에 대한 극복으로서, (5) 학제간의 이론화로부터, (6) 결정적인 학술대회와 프로그램에 의해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 시각 문화 연구가 학문 분야로서 위상을 갖는지에 대한 질문은 그것이 나름대로의 복잡한 계보를 가지고 있으며, 사유에 대한 새로운 방식을 제공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더불어 시각 문화 연구가 점차 견고해 지더라도, 하나의 비학과로서 지니는 자체의 격렬함, 비일관성, 혼란, 경이를 잃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시각 문화 연구는 기본적으로 모든 시각적 사물을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시각 문화 연구는 연구의 새로운 대상들을 창조해낼 가능성이 있으며, 그 대상들을 미리 결정하지 않음으로써 그 대상을 창조해낸다. 구체적으로, (1) 사물의 특수성에 주의를 기울이는 방법을 모색하고, (2) ‘보는 장치들(viewing apparatuses)’을 설명하며, (3) 그 시각 장치들을 비판적으로 대면하는 과정에서 대상이 등장한다. 궁극적으로 대상의 의미보다는 그것이 무엇을 하는가, 즉 작동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

시각 문화 연구가 구체화되는 것은 논쟁과 협력, 자기 반성적인 실천, 그리고 제 방법론들, 아카이브, 만남, 대상, 주제, 미디어, 환경들 간의 융합을 통해서, 그리고 보는 방식과 행동하는 방식을 통해서이다. 그러한 접촉을 통해 중대한 질문들이 던져지고, 불확실성과 이해, 그리고 지식이 생성되며 예기치 않은 통찰력이 부각되고 시각 문화의 새로운 대상들이 알려지게 된다.

마리아 페르난데스 – ‘유사 생명’: 디지털 아트에서의 과정과 반응성의 역사화

최근 세상 모든 물질을 하나의 유기적 생명체 개념으로 간주하는 이론적 견해들이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예술 작품은 더 이상 고정된 자율적 개체들이 아닌 진화 중인 과정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예술가는 어떤 과정의 창안자이지만 그 결과를 제어하지는 못한다. 이같은 과정 기반 예술을 가능하게 하는 것 중 하나가 컴퓨터이다. 그간 예술과 기술의 접점에서의 여러가지 실험들은 유기체적 연결성과 과정성을 기반으로 비디오 아트, 텔레마틱스, 상호 작용 설치, 인공 생명 예술 등을 탄생시켰다. 최근의 이론들은 오늘날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분석하는데 도움을 주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며, 기술과 예술의 역사적 지식이 반드시 연계되어야 한다.

도널드 프레지오시 – 예술 비평의 실천을 위하여

이 글은 미술사와 미술관학의 역사적 혁성의 기저를 이루는 구조에 관한 것이다. 이제는 미술사를 다르게 생각할 필요가 있는데, 첫째는 역사 기술(기록학)으로부터, 둘째는 실질적인 대안 없이 기존 규범과 교리들을 확장시키는 태도로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홀바인의 <대사들>에 들장하는 왜상의 방식으로 읽는 것이다.

근대 민족 국가는 상상의 총체로서 소설과 미술관 같은 문화적 허구에 의존했다. 미술관은 오브제들을 실제 역사들의 대체물로 읽기 위한 규범적 모델들을 확립했다. 근대 미술관이라는 계몽주의의 발명품은 르네상스 시기의 단일 시점 원근법 사용만큼이나 심오하고 지대한 영향을 가져온 사건이었다.

미술관학과 전시학은 무엇인까? (1) 미술관은 과거를 단순히 수동적으로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구별된 타자성의 관점으로 계보를 재구성한다. (2) 전시와 미술사는 마치 미스테리 소설처럼 자연스러워 보이도록 구성된 상상적 허구의 장르에 속한다. (3) 미술관은 주체와 객체 사이의 구별이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타협되는 영속적인 불안정한 장소이다. (4) 사물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사람에 대해 말한다는 것이며, 오브제는 역사 회고의 도구가 된다. 동시에 예술 작품과 행위들은 우리 삶의 모범이 된다. (5) 예술은 역사주의와 본질주의의 매커니즘, 그리고 유럽 헤게모니로서 중심을 차지하게 되었고, 그 결과 우리 모두를 식민의 주체들로 만든다. 미술사는 계몽주의적 미학을 근거로 유럽을 최정점에, 원시 부족들의 페티시를 맨 하단에 위치시키는 위계화를 시도한다. 예술 오브제는 그 위계화의 도구이다. (6) 미술관은 시각성 측면에서 모더니티의 본질을 보여주는데, 모더니티 자체는 정체성 정치의 가장 지배적인 형태이다. (7) 미술관의 오브제는 그것의 의도성(인과 관계)을 읽는 것을 편안하고, 자연스럽고, 즐겁게 느끼도록 한다. (8) 미술관은 젠더화된 주체를 생산하는 하나의 도구이다.

200년전 근대 민족 국가 형성에 있어서 시민의 조직을 위해 필요했던 도구 중 하나가 미술사의 규범(canon)이다. 계몽주의 미학은 유럽의 현존을 위해 대비적 존재인 타자를 만들어내어 주체와 대상의 대립구도를 형성했다. 전시학과 미슬사학의 아카이브는 이러한 대응 관계의 표본들인데, 실상 수동적 아카이브란 없다. 아카이브 자체가 비평적 도구이며 역동적 장치인 까닭이다. 미술관학과 전시학은 사람들, 정신들, 민족들의 발전적인 역사들을 위한 대리물이나 그 역사들의 시물라크르로서 오브제-역사들을 조작했다. 유럽 시점에서 미술사는 보편적인 인간 현상으로서, 대상이 되는 견본들을 분류, 분석, 해석하는 보편적 경험 과학으로 이해(구축)된다. 보편적 인간 현상으로서의 예술이라는 가설은 전체 기획에 있어서 명백히 필수적인 것이다. 이것은 이뉴잇족, 프랑스, 그리스, 중국 간의 차이들을 ‘예술적 형식으로의 다른 접근들’ 쯤으로 축소시켜버린다. 이같은 미술사의 정치적, 실용주의적, 체계적 조작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사진의 발명이다.

전시학의 영역은 3중의 축이 중첩되면서 구축되었다. (1) 빙켈만의 축: 대상을 성적인 매개체로 놓고, 주체가 대상을 바라보는 욕망을 전개한다. (2) 칸트의 축: 성애학과 윤리학이 결합되면서 상위(미학)와 하위(페티시즘)의 위계가 생겨난다. (3) 헤겔의 축: 윤리적으로 에로틱해진 대상에 목적론적인 시간의 위계화가 적용되며 드디어 서사, 진보가 드러난다. 궁극적으로 전시학은 근대 민족 국가를 작동시키는 엔진의 핵심 요소로서, 윤리적으로 에로틱해진 대상들을 체계적으로 역사화하는 일을 진행시켰다. 이제는 미술사를 단순한 계보학, 역사학적 실천으로 바라보는 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미술사는 순수 예술로부터 세계 예술과 시각 문화에 이르는 모든 학문적인 대상-영역들이다. 이제 비평의 실천은 더 완벽하게 미술사를 기억해내기 위해 다른 방식으로 생각할 것을 요구한다.

도널드 프레지오시 – 플라톤의 딜레마와 오늘날 예술사가의 임무

플라톤의 시대는 재현적 예술에 ‘신성한 공포’, ‘성스러운 두려움’이 있다고 믿던 언캐니성(uncanniess)의 시대였다. 재현의 힘은 지배층의 주장에 대한 복종을 문제로 쟁점화시킬 수 있다. 예술은 단순한 모방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을 창조하고, 열어두고, 계속 존재하게 한다. 이것이 모방의 역설(플라톤의 딜레마)이다.

본질적으로 예술은 어떤 이상이나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창의적인 인간의 작품이다. 미술사는 의미와 재현에 대한 양가적 입장으로 전개되어 왔으며, 2500년 전 플라톤이 제기한 딜레마에 여전히 빠져 있다. 미학은 종교와 예술의 분리, 나아가 종교의 대체 과정에서 대두되었다. 여기서 주체와 객체의 상호 관계성은 제한되고, 억제되고, 길들여졌다.

종교는 세계나 특정 커뮤니티에 이미 존재했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것이 재현과 의미의 독단성이다. 종교는 그들의 책략을 영적인 존재, 선재하는 창조자의 작품으로 보면서 날조를 부정한다. 플라톤은 평범한 시민들의 상상력에 미치는 재현의 힘 때문에 모방 예술을 몰아냈다. 이같은 책략에 대해 어떻게, 왜, 무엇을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각성이 요구된다.

오늘날 예술사가는 의미와 재현에 결부된 예술적 조작의 허구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다른 지식 생산의 영역들에 연관시키면서 비평을 실천해야 한다.

도널드 프레지오시(편저)의 「꼭 읽어야 할 예술이론과 비평 40선」”에 대한 답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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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책읽다가 아서단토 “예술의 종말 그 이후”로 빠져서 유야무야되었는데 요약을 목표로 읽어야겠어요 ㅠ 그래야 학습효율이 좋을 것같아요!

    Liked by 1명

    1. 요약을 하면 그나마 머리에 좀 들어와요. 이 책은 어려운 논문 투성이라… 그냥 읽고 지나가면 모래를 쥔 것처럼 다 사라져버리죠.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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