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문화 전반에 걸쳐 깊은 통찰을 보여주는 존 버거(John Berger)의 에세이 모음집이다. 총 세 개의 장에 걸쳐 23편의 글이 실렸다.
19세기 산업사회를 거치면서 인간과 동물의 관계가 어떻게 변해 왔는지 고찰한 첫번째 에세이는 단독으로 한 장을 차지하고 있다(‘왜 동물들을 구경하는가?’). 자연과 단절되고 심지어 그것을 도구화하는 인간의 모습은 저자에게 깊은 상처를 준 주제이며, 아마도 그가 산 속으로 들어가 농사를 지으며 살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 주제는 이어지는 몇 편의 글에서도 반복된다.
다음 네 개의 에세이는 현대 사회에서 사진이 갖는 미적/사회적 가치들을 논하고 있다. 이 글들은 사진이 특정한 사건을 현실로부터 분리시켜 비현실적인 것처럼 만드는 전략을 알려주며, 사진을 비판적으로 읽어야 할 지점들을 일깨운다. 궁극적으로는 인간 본연의 진실한 순간들을 담아내는 사진의 순기능에 우리가 동참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마지막 장인 ‘체험된 순간들’은 존 버거가 주목한 작가들과 작품들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들을 모은 것이다. 여러 시점에 작성된 다양한 글들을 엮은 것이니만큼,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찾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그가 대표작인 「다른 방식으로 보기(Ways of Seeing, 1972)」에서 밝힌 관점들은 여전히 그 저변에 두텁게 깔려 있다. 그는 일관되면서도 진실한 작가를 존중한다. 그가 추구하는 진실이란 인간성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며, 거대 자본에 잠식되어 혼탁해진 시각 문화 속에서 우리를 구원해 줄 그 무언가이다. 존 버거의 부질없는 희망 속에서, 진실한 예술가들의 작업은 인간과 자연 사이의 단절된 다리를 다시금 이어줄 것이다. 반면, 작품에 대한 낭만적인 해석과 무분별한 신비화는 타락한 자본가들의 정통성을 확립하는데 일조하는 것이므로 철저히 배격해야 할 대상이다.
그러한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때로 저자의 작품 해석은 터무니 없을 정도로 장황해서 거부감을 일으킨다. 특히, 별로 그렇지 않아 보이는 작품을 억지로 인본주의나 인간조건의 회복과 연결시킬때 더욱 거부감이 든다. ‘쿠르베와 쥐라 지방’이 그러한 예이다. 쿠르베(Gustave Courbet)가 암석과 물이 많은 시골에서 유년기를 보낸 것과 그의 그림 속에 나타나는 진솔한 휴머니즘이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차라리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나 루오(Georges Henri Rouault)에 대한 에세이처럼 무리하게 사회적 메시지와 연관짓지 않고, 작가의 개인적 경험에 국한하여 간과하기 쉬운 미적 가치들을 끄집어내는 서술은 읽기도 편하고 수긍하기도 쉽다. 이러한 대목에서 존 버거의 서술적 장점, 즉 소소한 시각성에서 발견한 의미를 인생의 다양한 가치들에 설득력 있게 연결시키는 능력이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난다. 특히 할스(Frans Hals)의 생애를 연극적 구성으로 따라가는 서술은 인상적이다(‘할스와 파산’). 로댕의 성충동이 그의 인물상들을 뒤덮고 있는 강력한 압축적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해석도 흥미를 일으키며 묘한 설득력을 갖는다(‘로댕과 성의 지배’).
이처럼 시각 문화의 영역에서 가장 급진적이면서도 대중적인 저술활동을 펼쳤던 존 버거의 아트라이팅은 우리에게 ‘중도의 미’를 가르쳐 준다. 즉, 아무리 타당한 사회적 메시지라도 설득력과 아름다움을 덧입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동시에, 아무리 아름답고 설득력 있는 문장이라도 그 중심에서 인간을 배제해서는 안된다.
“쿠르베가 시골에서 유년기를 보냈기에 작품에서 진솔한 휴머니즘이 나타난다”라는 주장에 있어 근거가 설득력이 부족했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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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과 작품 간의 연결고리가 좀 빈약했던거죠. 또 모르죠. 제가 거기 가보면 수긍할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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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글이 전개되었기에 그런 평가를 내리셨는지 궁금하기도 해요~
직접 읽어보는게 호기심을 해결하기에 제일 좋긴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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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설명하기가 힘들어요. ㅎㅎ 그냥 연결고리가 없고 찬양 위주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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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비평에 있어 주례사적 비평과 비슷한 느낌일 것 같아요. 궁금하니 나중에 그부분만 읽어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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