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푸코의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콜레주드프랑스 강의 1975~76년」

“역사란 권력의 담론이며, 권력이 사람들을 복종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의무의 담론입니다.” 91

사상계의 거인에게는 추종자들이 많게 마련이고, 그들에 의해서 끊임없는 말꼬리잡기가 이어지기 마련이다. 2015년에 정식으로 번역 소개된 이 책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에 대한 말꼬리잡기의 흔적이다.

앞뒤로 붙어 있는 소소한 말꼬리잡기를 감안해도 이 책은 결국 강의록이다. 기술적인 한계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부분부분 누락과 추정이 개입되어 있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푸코가 대중 앞에서 강의한 녹취록을 풀어 쓴 활자가 중심을 이룬다. 오늘날 우리는 소크라테스나 아리스토텔레스가 광장에서 무엇이라고 외치고 다녔는지 알지 못한다. 대화록 따위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얼마나 윤색되었는지는 알턱이 없다. 시대가 흘러 인류에게 있어서 푸코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에 비해서 어느 정도의 중요성을 갖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에게는 후대에 물려줄 푸코의 강의록이 있다. 이 강의록은 실제의 그곳, 그때의 강의를 100% 재현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거의 90%에 가깝게 재현한다. 아, 물론 번역 이슈는 논외로 하고.

어쨋든 우리에게 푸코의 강의록이 있다는 사실은 ‘말’의 중요성 때문에 언급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나는 데리다(Jacques Derrida)가 학을 뗄만한 ‘로고스 중심주의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위대한 사상가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라면 글 보다 말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은 글에 비하여 덜 정제되지 않던가? 자기검열의 기제가 더 완화되지 않던가? 좀 더 사고의 흐름에 가깝지 않던가? 이 책에서도 그러한 말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푸코는 콜레주드프랑스에 앉아 있는 학생과 청강생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을을 마주한채로 신이나서 산에 오르다가 갑자기 골짜기에 빠지기도 하고, 방향을 선회하기도 하고, 길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그러다 문득 출발점으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그 모든 과정이 이 사상가의 사고의 흐름을 보여준다. 단순한 아카데미의 강의를 넘어, 혼탁한 시대에 방향을 제시하는 이 기념비적인 강의 프로그램을 위하여 치밀한 강의록이 사전에 준비되어 있기는 했지만, 본 서의 프랑스어판 편집자들이 별로 도움이 안된다며 내팽개치고 싶어했을 정도로 푸코는 자기 멋대로 역사, 철학, 전쟁, 정치, 문화를 버무리며 활공했다. 그에 따라 정제된 지적 구조물로서 이 책의 가치는 그의 저서들에 미치지 못할지 모르겠지만, ‘인간 푸코’에 다가가고 싶은 우리의 마음에는 선명한 등대의 역할을 하고 있다.

푸코는 이 강의에서 전쟁에 주목한다. 클라우제비츠의 오래된 경구인 “정치란 다른 수단에 의해 계속되는 전쟁이다”를 뒤집고 전쟁과 힘관계로 권력의 작용을 재해석한다. 이 지점에서 정치가 전쟁의 수단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고, 그간 역사 속에서 배제되었던 존재들에게 은밀하게 작용했던 권력의 움직임을 가장 말단에서부터 되짚어 올라간다. 그 과정에서 왕, 귀족, 그리고 ‘제3신분’이 각자의 생존과 타자의 죽음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어떻게 역사를 무기화했는지가 드러난다. 민족 간, 그리고 국가 간의 전쟁의 논리로 자신들의 권력이 정당함을 주장했던 세력들은 적이 없는 시대를 두려워하며 새로운 적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바로 민족 내, 국가 경계 내에서 인종 간 전쟁을 선포하는 ‘생명정치’가 그것이다. 강의가 이루어졌던 시대에 가까웠던 파시즘, 그리고 동시대의 베트남 전쟁에서 강하게 자극받은 생명정치에 대한 관심은 푸코의 명저 「성의 역사」로 이어진다. 푸코가 관심을 가지고 규명하려고 애썼던 생명의 규제, 조절, 촉진 메카니즘은 오늘날에도 큰 변화 없이 우리가 호흡하는 대기 곳곳에 묻어 있다.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며 전쟁을 일으키던 작자들은 아직도 똑같은 핑계를 대며 우리의 몸 구석구석에 매스와 줄자를 들이대며 이간질을 획책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요약/정리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 핑계는 이 책 앞뒤에 붙어 있는 서문, 요지, 정황, 그리고 옮긴이 해제의 탓으로 돌리고 싶다. 잭슨 폴락도 피카소가 이미 다 해버려서 자기는 할게 없다고 쌍욕을 날리지 않았던가? 다만 푸코가 대중 앞에서 육성으로 토해낸 생생한 문장들은 널리 나누고 함께 생각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여행용 책’으로 선정했던 것은 참으로 바람직한 결정이었다. 2주라는 긴 시간 동안 단 한 권의 책만 들고다니면 되니까 여행짐이 단촐해졌다. 통상 여행용 책으로는 소설책을 들곤하는데, 이번에도 그랬다면 이미 삼일 안에 읽을꺼리가 바닥나서 난감했을 것이다. 이 책과 함께라면 사실상 세계일주도 문제 없다. 그만큼 끈질긴 탐독을 요구하는 책이다.

20180928_121949.jpg


명언 나누기

“이론이 총체성의 용어로 재파악됐을 때에는 반드시 억제 효과로 귀착됐습니다.” 23

여러분, 누군가 ‘통일하자’고 말하면, 그 속 뜻은 당신을 어떤 형태로든 규제하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저는 대한민국의 통일을 염원합니다.

“의학의 발전, 행동/행태/담론/욕망 등의 일반적 의료화는 규율과 주권이라는 두 개의 이질적인 층들이 마주치는 전선에서 일어납니다.” 58

프로이트가 무덤에서 일어나서 봐야할 문장이네요. 이미 늦었지만.

“절대 군주는 권력의 군사적 형태와 규율이 시민법을 조직하기 시작한 순간에 탄생한 것입니다.” 192

절대 군주는 스스로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시민들이 필요로 해서 옹립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지배 당하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위협적인 존재가 눈 앞에 있으면 그 존재보다 강한 자에게 지배를 갈구합니다.

“파편화하는 것, 생명권력이 겨냥하는 생물학적 연속체의 내부에 휴지기를 만드는 것, 바로 이것이 인종주의의 첫 번째 기능입니다.” 305

카테고리를 만들고, 개체들을 분류하고, 꼬리표를 붙이는 작업은 논문을 쓰는데는 전적으로 요긴한 재주인지는 몰라도 오늘날 사회에 있어서는 악기능이 더 많습니다. 개체들을 분류하는 습관은 거의 본능인 것처럼 우리 DNA 속에 내재되어 있는데, 실상은 학습된 계몽주의적 산물입니다. 인류의 평화를 위해서는 가급적 분절 없는 연속체로 이 세상을 바라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정부의 독점을 날마다 조금씩 탈취해야만 합니다.” 394

이 말은 전적으로 미셸 푸코가 한 말이며, 본 홈페이지 소유자의 의견과는 다소 상이할 수 있습니다.

“인식적 씨실이 매우 촘촘하다는 것은, 모두가 똑같은 방식으로 생각한다는 뜻이 전혀 아닙니다. 이와 반대로 이것은 똑같은 방식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을 가능케 하는 조건, 다른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게 하고 이 다름(다른 생각)이 정치적으로 적실한 것일 수 있기 위한 조건입니다.” 253

역사적 태제들과 이것에 결부된 정치적 목적을 꼼꼼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결국 치밀하게 공부해야 다르면서도 옳은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는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이런 방식으로 공부했습니다.

사실 우리가 이름을 익히 들어 알고 있는 ‘포스트모던한’ 사상가 대부분이 이런 방식으로 공부했습니다. 가끔 어떤 이들은 그 사상가들의 이름을 떠올리면서 “에효, 그 반대만 할 줄 아는 인간” 이런 식으로 말하기도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데리다, 푸코, 바르트 모두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공부했고, 각자 나름의 대안이 있었고, 사회참여적이기도 했죠. 원래 똑똑한 사람이 열심히까지 할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는 그들을 통해 보게 되는 겁니다.

20181005_185132.jpg


학습노트

1강

총괄적인 담론의 전제가 제거되어야만 ‘예속된 앎’의 봉기가 일어날 수 있다. 예속된 앎은 박식한 앎과 서민적 앎의 짝짓기로 구성된다. 박식한 앎은 은폐되어 있는 사소하고 구체적이고 파편적인 것들에 대한 역사적 내용들이다. 서민적 앎은 중심에서 벗어난 자들의 앎이다. 이 두 종류의 앎을 결합하는 것이 계보학이다. 계보학은 실증주의나 경험주의가 아니라 위계질서화에 대응하는 반과학이다. 과학적 담론을 제도화하려는 권력의 효과에 맞서는 봉기이다. 계보학에 연속적이고 견고한 이론적 지반을 제공하려는 것을 목표로 삼아서는 안된다. 계보학이 대항하는 것은 권력이다. 권력은 억압이므로 우리는 억압의 메커니즘을 분석해야 한다. 또 권력은 투쟁, 대결, 전쟁이기도 하다. 전쟁은 일정한 힘관계를 정박해 놓는 역할을 수행했다. 따라서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이 정치의 수단이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반대로 정치가 전쟁의 수단에 가깝다. 올해의 강의에서는 억압 개념을 간단하게 재검토하고 전쟁으로서 정치권력을 분석하는데 집중할 것이다.

2강

전쟁에 앞서 권력의 “어떻게”를 알아야 한다. 권력/법/진실 사이의 관계는 특별하게 조직되어 있다. 권력은 진실의 생산을 강요하면서 그것에 기댄다. 특히 법과 권력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서구에서 중세 이래로 법은 왕권의 정당성 및 한계에 연관된 문제였다. 그간 법담론은 지배의 사실을 축소하거나 은폐해 왔으나 나는 그것을 드러내려고 노력해왔다. 권력의 거대하고 일반적인 흐름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연역하는 것은 너무나 쉽지만 무용하다. 반대의 결론도 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은 모세혈관의 말단에서, 간과된 실제의 현장에서 사소한 단서들을 역으로 추적해가는 것이다. 예를들어 부르주아지는 광인과 소아성애를 배제하는 것 자체로 아무런 이익을 얻지 못했다. 대신에 그것을 억압하는 권력(메커니즘, 기구, 절차)에서 경제적 이익과 정치적 유용성을 획득했다. 근대 사회에서는 주권의 위임과 관련한 법적 담론과 인간과학으로 대표되는 규율매커니즘이 동시에 발전했고 이 두 가지 권력은 영향을 주고 받으며 서로를 정당화시키거나 강화시켰다. 결국 억압 개념이란 법적-규율적 개념인데, 양측에서 서로 참조하는 과정에서 애초부터 변질되어버렸으므로 이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4강

16세기부터 로마적 역사는 성서적 역사로 점차 대체되었다. 이로써 권력의 계보학적 정당성 보다는 국가인종주의가 더 지배적인 담론이 되었다. 국가 경계에서의 인종적 대립과 이원화는 국가 내에서의 계층화로 변질되기도 했다.

5강

홉스는 전쟁을 은폐하고 주권자에 의한 정복을 정당화하며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영국의 사례를 보면, 식민지화가 유럽의 모델을 다른 대륙에 이식한 것이 분명하나, 이러한 식민지 모델이 서구에 되돌아왔음도 확인된다. 서구 자신의, 내부의 식민주의가 실행된 것이다. 영국의 사례가 중요한 까닭은 이항도식이 민족성 및 법제도와 결합한 최초의 사례이기 때문이다. 이제 반란은 역사적 당위성을 얻게 되었고 홉스가 종용했던 침묵에 적수가 되었다. 이 반란이 정치적 역사주의이며 내가 연구(찬미)하고자 하는 것이다.

6강

조국 창건의 전설은 역사가마다 다른 해석을 불러왔다. 더러는 동일 민족에 의한 해방으로 풀이했고, 더러는 이민족에 의한 침략으로 해석했다. 민족의 이질성 혹은 동질성은 역사교육을 통해 선택되고 파급되는 것이다. 역사 교과서는 사실상 공법 교과서이다. 이러한 법과 역사의 긴밀한 관계가 루이 14세의 후계자에게 행했던 정치교육에서 나타난다. 방대한 보고서들은 귀족들에 의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재가공됐다. 이들이 내세운 역사적 앎은 왕에게 귀속된 법적 앎에 대항한다. 하지만 이내 이 귀족들이 왕에게 겨누었던 ‘파토스적’ 역사는 다시 왕의 손에 들어간다. 왕은 이 역사를 식민화하면서 절대군주와 행정 사이를 연결하려 한다.

7강

프랑크족이 로마 갈리아를 침략했을때만 하더라도 왕은 절대적이지 않았고 전리품 배분의 우선권 조차 없었다. 왕권은 전쟁을 위해서만 의미가 있었다. 왕은 전쟁 유지를 위해 갈리아 시민과 결탁했고 프랑크 귀족은 그 사이에서 옴짝달싹 못하게 되었다. 절대 군주는 권력의 군사적 형태와 규율이 시민법을 조직하기 시작한 순간에 탄생했다. 또 왕은 교회로 피신한 옛 갈리아 귀족들과도 결탁하여 그들의 종교적 영향력을 활용하였다. 이로써 라틴어, 로마법, 교회가 절대 군주제의 거대한 동맹자가 되었다. 불랭빌리에가 전쟁을 일반화한 방식은 힘관계가 법/제도를 통해서 종교, 정치, 관습, 기질 등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전쟁이 사실상 역사적 담론의 진실의 모체였다.”

8강

불랭빌리에가 중요한 까닭은 그가 역사적 서술을 시작해서가 아니라, 그가 처음으로 역사적-정치적 연속체를 구성했기 때문이다. 18세기는 앎들의 규율화가 이성의 진보라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던 시기이다. 테크놀로지적 앎은 정통교리를 몰아내고 권력의 규율적 테크닉이 되어 개인의 신체 영역에 관한 앎에 까지 관여했다. 국가와 테크놀로지적 앎은 상호 결탁하여 앎의 선별, 동질화, 위계화, 중앙집중화를 시도하였다. 이것들이 경제적 이유에서였다면, 역사적 앎의 역할은 다른 것이었다. 바로 투쟁과 정치의 이유에서였다. 18세기 말에 역사부가 창설되면서부터 이제 역사는 영원히 두 개의 수준을 갖게되었는데, 한편은 국가에 의해 규율화된 역사, 한 편은 투쟁과 연결된 역사이다.

9강

불랭빌리에는 왕국의 구성 순간을 엄정하게 복원하고자 했다. 이 말은 헌법을 복원하기 위해 역사를 연구했다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 그가 대적한 것은 자연인인데, 자연인 중에서도 야만인은 상호호혜적이며 거래적인 미개인과 구별된다. 야만인들의 폭력적/특권적 성격은 그들의 후손인 귀족계급의 특권을 정당화 한다. 하지만 불랑빌리에의 후속 역사가들은 귀족을 야만인들과 연결시키는 이러한 논리를 거부한다. 귀족은 야만인이 아니라 허상, 일종의 정치적 사기꾼이라는 것이다.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기 위해서는 촘촘한 인식적 씨실을 충분히 짚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반역사주의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제3신분은 사실상 역사를 자기 위주로 끌어다 놓지 않는 유일한 집단이었는데, 그들에게 있어서는 근원으로 볼만한 전례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재구성이 아닌 구성이 중요했고, 봉건제의 폐기만이 중요했다.

10강

전쟁은 어떻게 역사를 구성하는 역할이 아니라 사회를 보호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는가? 하나의 민족은 하나의 법을 필요로 한다. 각계를 위한 법이 별도로 존재한다면 거기에는 민족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귀족은 자신들만을 위한 특별한 법을 원한다. 하지만 제3신분은 하나의 법을 구성하려 했다. 이제 국가는 다른 국가와의 관계에서가 아니라 국가와 그 민족 간의 수직적 관계로 정의된다. 계층이 아닌 보편성이 문제가 되자 이제 전쟁은 투쟁에게 자리를 내준다. 19세기 전반의 역사 담론은 지배와 보편성 사이의 합리화 시도로 양분되었다. 프랑스 혁명은 도시에서 국가의 모든 기능을 장악하고 있던 제3신분이 귀족에게 제안했던 새로운 사회계약이 먹혀들지 않자 최종적으로 벌이게 된 폭력적 전쟁의 마지막 에피소드이다. 이로써 세 신분체제는 소멸되고 유일한 민족이 국가를 모조리 떠맡게 되었다. 역사철학은 느닷없이 탄생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 담론 내부에서 이미 기능하고 있었다. 18세기의 역사철학은 그저 역사의 일반법칙에 대한 사변에 불과했다. 19세기에 시작된 진정한 역사철학은 현재에 있어서 보편적인 것의 진실을 묻는 변증법이다.

11강

전쟁이라는 개념은 민족적 보편성의 원리에 의해 역사적 분석에서 삭제되었었다. 하지만 이제는 국가인종주의가 생겨났다. 주권이 가진 생살여탈권은 처음에는 죽게 만들거나 살게 내버려두는 것이었지만, 19세기의 변화는 이것을 살게 만들거나 죽게 내버려두는 권리로 바꾸었다. 이러한 권력의 권리는 17~18세기에 신체에 대한 규율적 테크놀로지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18세기 후반에는 생명의 고유한 과정 전체에 있어서 다양성을 규제하기까지 한다. 이것이 ‘생명정치’이다. 권력이 포괄적 생명 개념에 개입하게 되자 죽음은 점차 천대받기 시작했다. 신체는 제도및 국가의 규율메커니즘과 조절메커니즘에 의해 개입의 대상이 되었다. 섹슈얼리티는 항상적 감시라는 규율 측면과, 재생산 기능이라는 조절 측면에서 담론의 중심이 된다. 그러다 원자력 시대에 들어서면, 생명권력이 도리어 주권을 집어삼킨다. 이러한 역전 현상에서 인종주의가 국가의 메커니즘 안에 개입한다. 인종주의는 전쟁관계가 아니라 생물학적 관계에서 기능한다. 이것은 죽일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해주는 조건이다. 우리는 나치를 통해 가장 규율적이고, 가장 인종주의적이며, 가장 많은 인명을 빼앗은 국가를 보았다.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

WordPress.com.

위로 ↑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