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버거의 「G」

정말 이해하기 어려워서 자괴감마저 드는 소설이다. ‘콜라주 소설’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앞뒤 문단이 서로 분절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하나의 이야기를 하다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다른 이야기로 급속히 선회한다. 두 개의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짧은 문단 단위로 계속 병치되기도 한다. 인물들이 망상에 빠져들기도 하는데, 문맥상 필요도 없는 그러한 망상을 왜 그렇게 정성스럽게 묘사하는지 의문이다. 혹여 나중에 어떤 상황과 연결되나 싶었는데 그렇지도 않다. 배경 설명도 마찬가지다. 인물들이 걷고 있는 숲속의 풍경과 냄새 같은 것들을 장황하고 집요하게 묘사하는데, 단순히 정서를 전달하기 위한 것인지 중요한 상징을 내포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가장 당황스러운 것은 시점이다. 1인칭 화자가 등장하나, 그 ‘나’는 소설 속 등장인물이 아니다. ‘나’는 등장인물의 내면을 속속들이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전지적 작가이다. 다시 말해서 이 작품은 ‘1인칭 전지적 작가’라는 독특한 시점을 채택하고 있다. 만약 이 작품이 우리나라 구술문학이었다면 판소리의 화자가 정서적으로 개입했던 장면들을 떠올리며 그러려니 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이 작품에서는 괄호 지문에 담긴 상황이나 정서에 대한 부연설명이 자주 등장하며 판소리를 연상케 한다. 그런데 나는 이미 ‘존 버거(John Berger)’의 이름을 앞세워 이 책을 읽었고, 그래서 설마 1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일 것이라고는 예측할 수도 없었다. 459페이지 분량의 이 소설을 거의 중간쯤 읽고 나서야 비로소 ‘아, 여기서 ‘나’는 그냥 존 버거 자신이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니 그 전까지는 이 ‘나’가 언젠가 등장하게 될 이 소설의 진짜 주인공이나 적어도 핵심적인 인물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했던 것이다.

작품은 G라는 익명으로 처리된 한 남자가 19세기 후반, 20세기 초반 격동의 시대에 유럽을 살아가면서 겪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G라는 익명조차도 3분의 1쯤 읽어야 등장하고, 그 전까지는 ‘소년’으로 등장한다. 대체로 이처럼 인물에게 이름을 붙이지 않는 작법은 그것이 우리 모두의 이야기임을 강조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 작품에서도 그렇다. 부르주아 가문의 사생아이자 유일한 후계자로 태어난 G는 태생적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마찬가지의 욕망, 자의식, 성장과정을 보여준다. 존 버거는 G의 눈으로 역사, 철학, 그리고 인간 자체를 인식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무언가를 묘사하고 거기에 이름을 붙여 준다는 것은, 그것을 당신 자신으로부터 분리시킨다는 의미다. 236

 

작품에는 크게 두 개의 축이 있다. 역사의 축과 욕망의 축이 그것이다. 역사의 축에는 자본주의, 사회주의, 정신, 혁명, 노예, 아프리카, 식민통치, 차베스, 2차 대전, 트리에스테가 위치한다. 욕망의 축에는 로라, 움베르토, 베아트리스, 미스 헬렌, 근친상간, 그리고 온갖 냄새들이 걸려 있다. 이 두 축이 접하는 지점에 G가 서있다. 유년기에서부터 부모로부터 격리되어 어머니의 사촌에게 맡겨진 G는 부도덕과 방종에 노출되어 내면으로 침전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가지게 된 듯하다. 그가 성을 통해서 자아를 발견했던 과정이 얼마나 특수한지, 혹은 일반적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가 유년기에 가정교사를 보면서 이른 나이부터 성적 욕정을 자각하게 되었던 순간, 그리고 근친상간이 자행되는 집안에서 스스럼없이 자신도 그 ‘의식’에 동참하게 되었던 상황들은 충분히 납득이 간다. 작품에서도 강조하고 있듯, 처음의 경험은 오직 처음이라는 이유만으로 나중의 모든 경험들을 합친 것보다 훨씬 더 큰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섹스는 스스로가 성장했다는 것, 그리고 팔딱팔딱 뛰는 피와 살을 가진 실존적 인격체라는 것을 자각하는 가장 직접적이면서도 폭발적인 경험이다.

처음에는 존 버거가 이렇게 호색한으로 보이는 인물을 창조하고 그를 전면에 내세워 세상을 바라보았다는 사실이 다소 의아스러웠다. 존 버거는 대표작인 「다른 방식으로 보기」에서 강조하고 있듯, 여성을 도구화하는 기성 고급예술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던 인물이기 때문이다(실제로 당대 여성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217페이지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이 대목은 「다른 방식으로 보기」에서도 동일하게 등장한다). 스스로를 돈 후안이라고 스스럼 없이 밝히는 G는 당대 부르주아 여성들의 취약함을 공략하여 욕망을 실현하고 그것을 통해서 자신의 목적을 관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G에게 있어 여성은 성적 욕망을 채워주는 존재, 나아가 원치 않았으나 결과적으로 주어진 생(生)에 그나마 존재의 의미를 부여해 주는 존재로 느껴진다. 물론 존 버거가 당대에 흔치 않았던 진취적인 여성이나 여성인권신장에 앞장선 남성을 앞세워서 우리가 가진 젠더 관점과 정면으로 대치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정녕 원했던 것은 역사의 격동 속에서 한 인간이 스스로의 욕망을 실현하거나 타협해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성취감과 좌절감을 가급적 진실에 가깝게 전달해 주는 것이었으리라 짐작해 본다. 그것이 진실에 가까워야 한다는 전제 하에 작가는 자신이 직접 완전한 형태로 촘촘하게 짜인 내러티브를 제시하지 않고 오히려 분절된 순간들을 느슨하게 펼쳐 놓았다. 왜냐하면 우리의 인생, 사고, 욕망 자체가 원래 합리적이지 않으며, 그 짜임세도 대단히 엉성하기 때문이다.

 

끝을 보려는 작가의 욕망은 진실에는 치명적인 것이 된다. 결말은 모든 것을 통일시킨다. 통일성은 다른 방법으로 세워져야 한다. 117

 

그러한 ‘애매함’에 대한 존 버거의 존중은 글과 단어에 대한 생각에서도 묻어난다. 그는 하나의 단어를 통해 정서나 특징을 묘사해야 하는 상황에 당혹감을 느낀다. 그 당혹감은 글을 써서 먹고사는 그의 입장을 고려해 볼 때 참으로 아이러니 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이해되는 것이기도 하다. 누구나 어떤 길에 본격적으로 들어서기 전에는 너무나 쉽고 당연해 보였던 것들이 일단 그 길에 들어서고 나면 시간이 흐를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나. 이런 당혹감에 대하여 존 버거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내가 인식하거나 상상하는 것들은 그 독창적 특징 대문에 나를 혼란에 빠트린다. (중략) 나는 각각의 사건이 가지는 독창성에 깊은 충격을 받는다. 거기서부터 작가로서 내가 겪는 어려움이 생긴다. 어떻게 그런 독창성을 전달할 수 있을까? 확실한 방법은 그 독창성을 차근차근 전개하고 발전시켜 가는 것이다. (중략) 나는 시간의 흐름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다. 내가 인식하는 사물들 사이의 관계는 내 머릿속에서 복잡한 동시적 패턴으로 기록된다. 다른 작가들이 차례차례 이어진 장을 보는 곳에서 나는 평원을 보는 셈이다. (중략) 시간 속에서 인과관계에 따라서가 아니라 공간 속에서 포괄적으로 좌표를 찾는 방법. 나는 기하학자의 정신으로 글을 쓴다. 199

 

마치 책을 쓰고 난 후에 유력 문예지와 인터뷰하면서 발언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소설 한 가운데 버젓이 자리를 잡고 있는 이 문장에는 존 버거가 「G」를 쓰면서 느꼈던 감정과 작품 구성의 계기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선형적으로 사건과 인물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마치 (막걸리 한잔 하고) 멀리서 숲을 보듯 분절적으로 세상을 바라본 후, 그것을 스냅사진으로 인화해서 마구 뒤섞은 뒤에 독자에게 던져준 것이다. 그가 모든 분절적인 장면들에서 고유성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섬세한 눈과 감성을 지닌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 그를 만난 대가로 지금의 우리에게는 이 사진들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조합할 권리와 책임이 주어졌다.

이런 존 버거의 의도를 생각해 볼 때, 이 작품을 주류 문학비평의 잣대로 더욱 철저하게 해체해보려는 노력은 부질없을 뿐만 아니라 온당치 않다(절대로 나의 능력이 부족해서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 작품의 구성만큼이나 뜬금없이, 오늘날 우리나라가 직면한 저출산 문제의 원인을 찾을 수 있는 문장을 하나만 더 인용하고 이 글을 마치려 한다.

 

“이런 시대착오적인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날이 올거야. 우리는 자유롭게 될 거고, 그러고 나면 결혼도 하고 아이도 가질 수 있을 거야. 그 아이들은 조국의 자유로운 아들딸이 되겠지. 하지만 지금 아이를 낳는다면, 그 아이들은 세계의 압제자들을 위해 일하는 군인과 노예밖에 안 될 거야.” 336-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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