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켄드(The Weeknd) 내한공연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28 고척스카이돔)

트렌디한 R&B에 섬세한 미성과 몽롱한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절묘하게 뒤섞으며 단숨에 대세로 떠오른 위켄드(The Weeknd)가 내한했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보이즈투맨(Boyz II Men)에 빠져 흑인음악을 엄청 즐겨들었으면서도 정작 내한공연은 거르곤 했는데, 아마도 흑인음악은 굳이 현장성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편견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는 위켄드의 음악에 대한 동경 반, 대세에 대한 편승욕구 반이 더해져 오랜만에 고척스카이돔을 찾게 되었다. 과연 내 편견은 사라졌을까?

공연은 DJ. PNDA의 오프닝으로 시작했다. 이 공연은 당초 계획에 없었는데, 위켄드의 요청에 의하여 다급하게 결정된 모양이고, 예매자들은 공연 전날에 문자로 그 사실을 통보받게 되었다. 있던 순서가 사라지는 공지는 종종 받은 적이 있었지만, 없던 순서가 생긴다는 공지는 처음이라 당황스러우면서도 작은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살짝 검색을 해보니 위켄드는 작년부터 투어에서 이 DJ에게 오프닝을 맡기고 있었다. 판다에서 이름을 따온 이 DJ는 일반적인 믹스테이블이 아닌 전자드럼 형태의 장비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내 자리가 너무나 멀어서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DJ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턴테이블이 배제된 간소한 형태의 믹스테이블에 입식 전자드럼과 전자퍼커션을 조합한 형태로 보였다. 그래서 그의 공연은 디제잉이라기 보다는 드러밍에 더 가까웠다. 믹스셋을 틀면서 그 위에 드럼 연주를 얹어 특정 구간을 강조하는 형태의 즉흥적인 편곡 퍼포먼스라고 볼 수 있다. 내가 클럽 음악에 무지한 탓인지 별로 재미는 없었다. 디제잉과 드러밍의 하이브리드를 시도한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는 이도저도 아닌 느낌이 컸다. 기본적으로 꽉 짜여져 있는 EDM 사운드에 드러밍을 얹어봤자 별로 티가 안 난다. 술자리에서 젓가락으로 장단 맞추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차라리 위켄드의 본 공연 때 간간히 화면에 비춰진 파워풀한 드럼 연주가 훨씬 감동적이었다.

위켄드는 예정 시간을 조금 (많이) 넘겨 19시 50분쯤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첫 곡부터 느낄 수 있었다. ‘와 녀석, 오늘 컨디션 끝내주는데?’ 마이클 잭슨을 계승하는 명불허전의 미성이 일체의 경계구간도 없이 하늘 끝까지 쫙쫙 올라갔다. 성량도 기대이상이었는데, 아마 돔 구장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초반에는 10곡 정도의 히트곡을 부분적으로 추출하여 자연스럽게 짜깁기했는데, 물 한모금 안마시고 방방 뛰면서도 최상의 보컬 컨디션을 보여주었다. 사실 주요 팝 시상식에서 그의 축하공연을 볼때는 음원에 비하여 라이브가 다소 밋밋하지 않은가하는 우려를 품었는데, 그러한 의구심을 충분히 날릴 만한 생동감 있는 공연이었다.

하지만 내게 있어서 전반적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운 공연은 아니었다. 그 이유들로는 첫째, 나는 웅장하고 화성이 풍부하며 기승전결이 분명한 곡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분명해졌다. 나도 위켄드의 2, 3집을 꽤 많이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공연장에서 느끼기에 1/4 정도는 생소한 곡이었다. 사실 나는 ‘I Feel It Coming’ 외에는 그의 음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다. 둘째, 맨 앞이긴 했지만 아무래도 지정석이다보니 그루브를 타기가 어려웠다. 공교롭게도 내 주변 모두 위켄드의 광팬들이 아니셨던지라, 다들 수동적인 감상자 역할에 그쳤고 나도 그 영향을 받았다. 셋째, 위켄드의 노래들은 빈틈없이 꽉 짜인 전자음향의 복합체로서 관객 참여적 성격보다는 ‘감상형 음악’에 가깝다는 느낌이다. 사실상 대한민국의 전통문화가 되어버린 ‘떼창’ 포인트도 거의 없고 위켄드 본인도 관객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장치들을 많이 마련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지정석이라는 지정학적 위치와 맞물려 공연의 흐름에 동기화되지 못했다.

다소 아쉬움은 있었지만 어쨌든 ‘I Feel It Coming’을 라이브로 들은 것은 가장 큰 성과이다. 2016년 겨울에 이 노래를 듣자마자 이 곡이 나만의 ‘올해의 노래’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몽글몽글하게 서서히 고조되는 몽환적인 레트로 사운드와 중저음의 비트가 심장박동과 맞물리면서 눈앞에 펼쳐지는 모든 풍경들을 슬로우비디오의 뮤직비디오처럼 바꿔준다. 혼란스러운 도시의 그 어떠한 시청각적 공해 속에서도 이 노래는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BGM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요즘 그의 노래가 점점 쌔지는 것 같은데, 부디 이런 감성을 버리지 말아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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