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크 W. 베르트람의 「철학이 본 예술」

예술은 아름답지만 엄청난 수고를 요한다.

칼 발렌틴

예술이 대체 무엇이관대 이토록 많은 언설을 낳는가?

역사적으로 예술이 무엇인지 정의하려고 했던 시도들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하나의 정의가 세워지면 이내 그 정의를 무력화시키는 전복이 이루어졌다. 한때는 종교였던 것이 2000년쯤 지나자 예술로 포장됐다. 누군가에게는 숭고한 예술이었던 것이 누군가에게는 저열한 공예품으로 받아들여졌다. 신의 예술관을 추정하는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예술 작품들이 파괴되거나 불구덩이에 들어갔다. 지금에 와서는 만화 캐릭터나 공산품을 모방한 물건들이 고고한 미술관의 한복판에서 칭송을 받고 있다. 예술을 품은 궤적은 결국 예술을 정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게오르크 W. 베르트람(Georg W. Bertram)은 예술에 관한 또 하나의 언설을 덧붙인다. 「철학이 본 예술」은 예술로 철학하려는 자들을 위한 입문서로 기획됐다. 이 책에는 철학자들의 이론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 예술철학의 역사를 되새기지도 않는다. 헤겔, 흄, 칸트, 아도르노 같은 낯익은 이름들이 보이지만, 이 대가들은 저자의 논증을 뒷받침하기 위한 최소한의 실마리만을 제공할 뿐이다. 결국 이 책은 지식을 다루고 있지 않다. 자세와 관점을 다룰뿐이다. 그래서 이 책의 보다 정확한 제목은 ‘예술로 철학하기 위한 기본 자세’ 쯤 될 것이다.

저자는 예술을 접하고 이해하는 전 과정에 걸쳐 대립할 수 있는 개념들을 보여주고 그 사이에서 균형잡힌 관점을 가질 것을 요청한다. 물론 처음에는 ‘무엇이 예술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시작한다. 예술은 본질주의적 기준에 입각하여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주관의 경험에 의해서만 규정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예술은 미적 자기소통이라는 사건을 야기하는 대상이다. 주관적 경험과 객관적 세계가 맞물린 장력장에서 예술이 어떠한 가치를 지니는지 숙고하는 것이 예술철학의 첫 단계이다.

작품이 의미를 내포한 기호인지, 그저 관람하는 주체의 경험으로서만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동일한 관점으로 접근한다. 기호와 경험은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다. 어떠한 예술 작품은 기호로서 예술가가 부여한 의미를 내포하지만, 그 작품을 감관으로 인식한 관람자는 자신만의 경험과 직관을 통해 독창적인 통찰에 도달할 수 있다. 이처럼 고유한 미적 자기소통 사건도 공동체 속에서 예술에 대한 성숙한 토론 과정을 거쳐 해당 작품의 새로운 의미로 수용될 수 있다. 작가, 작품, 관람자는 지금 이 순간에도 유기적으로 소통하면서 살아 숨쉬는 의미들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결국 생동감 있는 예술계를 만드는 과업은 역시 예술비평에게 맡겨진다. 하지만 이 책의 초판(2005년)에는 마지막 장인 ‘VII. 취미판단과 예술비평’이 없었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철학은 예술비평을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있다. 저자도 이 책을 처음 썼던 10년 전에는 예술비평을 다룰 생각에 이르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이제 예술비평이 단순히 작품의 외적인 가치 평가에만 머물 것이라는 판단, 그리고 다양한 논쟁이 예술작품에 해악을 끼칠 것이라는 판단이 모두 틀렸음을 선언한다.

예술비평은 언제나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이고자 하는가?’라는 질문을 겨냥한다. 301

예술비평은 주관적 경험들이 모이고 쌓여서 더욱 풍부한 의미를 만들어내는 생산적인 활동이며, 그 자체로 예술이 된다. 스스로를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공동체를 이해하기 위하여 동시대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모든 주체에게 예술비평은 더욱 왕성하게 촉진되어야 한다. 그것이 미적 자기소통의 진정한 가치인 ‘문제제기’, ‘확증’, 그리고 ‘변경’을 공동체 차원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대안이다.


예술이라는 하나의 사건이 있다면 언제나 여기에는 하나의 성찰이, 예술을 둘러싼 논쟁이 동반된다. 50

예술철학을 낳는 것은 철학이 아니라 예술이다. 48

게오르크 W. 베르트람의 「철학이 본 예술」”에 대한 답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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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과학영역과도 공통된 질문이네요.
    ‘어떤 행성에서 지적생물이 성숙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생물이 자기의 존재 이유를 처음으로 알아냈을 때이다.’
    리처드 도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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