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코르미에의 「체 게바라 평전」

Jean Cormier, Che Guevara

그가 증명한 인간의 조건

체 게바라(Ernesto Rafael Guevara de la Serna, “Che” Guevara)의 삶을 마주하고서 느끼는 먹먹한 감정이 정확히 누구의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적어도 혁명가는 아니다. 방관자도 아니다. 제국주의자는 더더욱 아니다. 인정하기 싫지만, 아무래도 변절자에 가깝다. 나는 1956년 11월 25일에 그란마 호에 승선했던 82명의 몽상가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호기롭게 상륙한 시에라 마에스트라(Sierra Maestra)에서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탈영병이 되었다. 내가 정부군에게 붙잡혀 게릴라의 실상을 낱낱이 밀고했는지까지는 모르겠다. 그 전에 죽었기를 바랄뿐.

우리에게는 저마다 체 게바라의 마음이 조금씩은 있다. 아픈 사람을 보면 안타깝고, 굶주린 사람을 보면 밥을 떠먹여 주고 싶고, 약자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일삼는 사람의 뒤통수를 갈기고 싶고, 이 사회의 명백한 구조적 모순을 극복하는데 있어서 미력이나마 기여할 수 있다면 기꺼이 팔을 걷어붙일 수 있는 그런 마음이다. 이런 마음은 순전히 그 쓸모에 의해 인류의 태곳적부터 DNA에 각인되었는데, 생물학적으로 미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 유례없이 번성하는 과정에서 크나큰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체 게바라가 위대한 점이 있다면, 다만 그 마음이 보통 사람들 보다 더 크고, 촘촘하고, 강력하게 응집되어 있었다는 정도다. 그의 삶 전체에 걸쳐 그 마음은 단 한순간도 퇴색되거나 떨어져 나간 적이 없다. 어떤 의지를 지닌 사람과 그 의지를 실천한 사람 사이에는 태양계 이상의 거리가 있다. 우리가 그에게 닿지 못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내가 하나의 기회를 얻으면 누군가는 반드시 하나의 기회를 박탈당한다. 나눌수록 커진다는 말은 공익광고에나 등장하는 레토릭인지라, 실생활에서 실례를 대기란 무척이나 어렵다. 우리는 무한경쟁으로 치닫는 신자유주의 체제가 얼마나 많은 부작용을 가져왔는지 잘 알고 있으나 거스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자들은 그저 침묵할 따름이다. 우리 뇌리에는 혁명의 확신 보다는 실패자들의 전례만이 더 강한 잔상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체념이 1968년 이후 두 세대를 거치는 동안 완전히 내면화되었고, 이제는 지각하는 것조차 거의 불가능해졌다. 지금 우리는 우리를 이용해먹는 자들의 욕망을 나 자신의 것인 양 착각하며 그럭저럭 안락하게 살아가고 있다. 게릴라전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적들은 빈대를 잡기 위해서 초가삼간뿐만 아니라 한 국가나 대륙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 각오가 되어 있다.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게릴라들이 서로, 그리고 자기 내면에다 대고 총질하는 상황이다. “오늘날에는 대안이 없다. 세상은 하나의 단위이며, 그 세상이 용납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존 버거).”

체 게바라는 어떻게 혁명가가 되었을까? 한 인간의 내면에는 우주가 깃들어 있는 만큼, 그에 대한 선형적인 인과관계 분석은 부질없다. 다만, 그가 부르주아 집안 출신의 천식환자라는 배경은 의미심장해 보인다. 스스로 아픈 사람은 아픈 사람들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 와중에 럭비선수로 뛰어다니며 스스로의 육체적 한계를 절감했던 시간들은 오히려 스스로를 단련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라는 영화로 잘 알려진 젊은 날의 무전여행도 분명 중요한 터닝포인트였다. 젊고, 잘생기고, 똑똑하고, 당찬 청년 게바라에게는 누구나 쉽게 마음을 열었으며, 거기서부터 진실한 소통이 시작되었다. 그는 의사였기에 모두를 어루만질 수 있었다. 육체를 어루만지는 것은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과 거의 동일하며, 가장 진실한 소통의 방법이다. “모든 진실된 인간은 다른 사람의 뺨이 자신의 뺨에 닿는 것을 느껴야 한다.”

이상과 현실, 정신과 육체, 혁명과 변화, 원칙과 실리, 철학과 정치… 이렇게 대비되는 가치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도 어려운 것인지를 체 게바라의 삶을 통해 배운다. 그는 언젠가 이 땅의 모든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를 모두 몰아 낼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민중들에게는 자유주의적 가치가 일말의 도움도 주지 못하리라 여겼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단순한 이분법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농민, 노동자, 민중’이라는 대상마저도 단일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들은 복합적이며 그저 독자적인 개인들을 싸잡아 부르는 말일 뿐이다. 그들 중 누군가에게 자유주의는 독이었으나,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볼리비아 혁명은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지지를 얻지 못한 혁명가는 그저 몽상가로 기억될 뿐이다.

현실정치는 또 어떠한가? 혁명의 영광은 찬란했지만, 그 영광을 현실정치 속에서 이어 나가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정치, 특히 국제관계라는 영역은 무수한 세력과 변수들의 역학 관계 속에서 마치 체세포처럼 분화하고, 융합하고, 변형된다. 어떤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때로는 철천지원수와도 손을 잡아야 하고, 반대로 십년지기 친구와도 과감히 의절해야 한다. 결벽증은 단기적으로 개인위생에 도움을 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유익균마저 죽이는 우를 범하듯이, 오늘날 강박적으로 지키고자 했던 정치적 신념들이 장기적으로 민중 전체의 삶에 위해를 가져올 수도 있다. 체 게바라는 쿠바 민중에 대한 진실한 애정으로 혁명정부의 중책들을 떠안았지만, 그가 내세운 정의와 원칙들이 장기적으로 그가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현실정치에서 게바라의 실패는 ‘몽상가적 혁명가’라는 부당한 이미지만을 굳혔다. 하지만 그 실패는 완벽한 인간은 없다는 명제의 예시가 될 수는 있을지언정, 몽상가의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 체 게바라는 매 순간 굳건한 토대 위에 그의 거친 두 발을 견고히 딛고 있었다. 그 발은 아르헨티나, 쿠바, 콩고를 거쳐 볼리비아로 향했다. 방향이 다소 어긋났다고 해서 그 고결한 정신과 실천력까지 폄훼할 수는 없다.

체 게바라의 평전으로서 가장 유명하고 충실한 이 책을 요약하고 또 요약하면 아마도 512~519쪽의 마지막 편지들만 남을 것 같다. 위대한 혁명가로서 보장된 삶을 버리고 콩고로 떠나기 전, 죽음을 예감한 게바라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남긴 글이다. 여기에는 게바라 사상의 정수, 나아가 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상위 수준의 인류애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결국 이 책은 체 게바라가 남긴 마지막 편지에 붙이는 기나긴 주석에 불과하다.

“이제 예술가의 희열로서 연마한 제 의지가 무뎌진 다리와 지친 폐를 지탱해 줄 것으로 믿습니다. 그리고 저는 마지막까지 나아가겠습니다.”

514p

나는 이 문장을 존 버거의 ‘제국주의 이미지’라는 글에서 처음 접했는데, 당시에는 자세한 맥락도 모르면서 일단 기록해 두었다. 여기서는 이렇게 번역되어 있다.

“이제 예술가처럼 집중해서 다듬어낸 나의 의지력이, 나의 연약한 팔다리와 지쳐 버린 허파를 지탱해 줄 것입니다. 해내겠습니다.”

30p

도대체 그가 말하는 예술가의 희열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한 인간이 가족은 물론 자신의 육체마저 버리면서 어떤 대의에 투신하게 만드는 동인은 무엇인가? 만약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을 찾아야 한다면, 번식기 없이 짝짓기를 할 수 있다든가, 아무런 실용적 가치가 없는 철학책을 쓸 수 있다든가,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심지어 변기를 예술작품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에서가 아니라, 본적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정신에서 찾아야 한다. 그 정신의 대표적인 사례로 체 게바라를 꼽는데 있어서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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