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에서 세잔까지: 예루살렘 이스라엘 박물관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걸작展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지난 여름에 「그리스 보물전」을 보고 반년 만에 다시 예술의전당을 찾았다. 초입부터 액자 세 개를 안아 들고, 그것으로 집을 예쁘게 꾸밀 기대에 부푼 한 가족이 눈에 띄었다. 얼핏 봐도 이번 인상주의 전시를 보고 나서며 구입한 기념품이다. 전시를 보고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액자 중 하나는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의 <꽃병의 장미(Roses in a Vase, ca.1880)>였다. 그 광경을 보자니 예술의전당이 추구하는 전시의 목적이 제대로 달성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의전당은 미술의 새로운 의제를 발굴하여 제시하거나 대중의 미감을 확장하는 곳이 아니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다고 믿)는 미술사적 주요 사조를 중심으로, 보편적인 대중의 미감에 적절히 조응하는 작품을 선보이며, 저명한 대가의 이름을 전면에 내걸고, 관객들로 하여금 고급 예술문화 활동에서 아직은 배제되지 않고 있다는 안도감을 누리게 만드는 것이 이 공공미술관의 존재 이유다. 미술관의 4대 주요 기능 중에서 수집, 보존, 연구 기능을 배제한 이 대관 전용 미술관은 서초구의 금싸라기 땅에서 재정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안간힘을 쓰고 있고, 그 노력의 결과는 언제나 저명한 거장이나 닳고 닳은 인상주의자, 그리고 수 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 고대 이집트나 그리스로마 등 믿음직한 키워드들로 귀착된다. 2018년 결산 기준 60억 원의 당기 순손실 규모를 보자면, 이러한 경향은 앞으로도 당분간 이어지리라고 짐작된다.

이번 「모네에서 세잔까지」 展도 예술의전당의 흥행 공식을 충실히 따른다. 전시 제목에 저명한 대가를 넣고, 부제에는 사조를 두 개로 쪼개서 넣었으며, 의심 많은 관람객을 위하여 출처까지 명기했다. 결국, 전시 제목에 새겨진 ‘모네’, ‘세잔’, ‘인상파’, ‘후기 인상파’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것이라고 강요되는 거의 모든 것을 아우른다. 그러나 그 안에서 정말 자신에게 의미 있는 발견을 할 수 있을지는 관람객 스스로에 달려 있다. 그래도 이번 전시는 이름값 하나에 목매고 나머지 전부를 들러리 세우지는 않으니 다행이다.

전시는 수경과 반사, 자연과 풍경화, 도시풍경, 초상화, 정물화 등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다섯 개의 주제로 구분되어 있고, 주제 내에서는 작가별로 묶어 놓았다. 최대한 단순명료하게 구성했고 불필요한 설명도 많지 않아서 작품에 집중하기에는 무리가 없다. 다만 몇몇 작품들만 별도로 좌대에 올려놓는 특별대우를 받는 점이 눈에 띄는데, 기획자는 특별대우의 기준으로 화가의 이름값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것 같다. 어떠한 그림이 어떠한 기준으로 특별대우를 받고 있는지 유추해보는 것도 이번 전시를 재미있게 보는 방법의 하나가 될 것이다. 물론 좌대의 유무가 작품의 품질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면서.

아무래도 ‘수경과 반사’, ‘자연과 풍경화’에 훌륭한 작품들이 대거 포진되어 있었고, 정물화의 비중은 미미한 편이다. 드로잉, 수채화, 판화 등이 생각보다 많은데, 이들은 독립적인 주제의 지위를 부여받지 못했고, 출구 직전의 서비스 영역처럼 취급된다. 그래도 이들 작품은 대표적인 인상주의 회화 작품들이 구상되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가 있으므로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폴 시냑(Paul Signac)의 흑연 및 수채화 습작들은 그가 자연을 바라보고 대상을 구성해 나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흥미를 끌었다. 아무래도 인상주의 회화의 가장 큰 매력은 단순히 하나의 완성된 풍경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그리고 있는 사람의 시지각적 흐름과 그려내는 과정의 움직임, 심지어는 화가의 세세한 동작이나 표정까지도 떠올리게 하는 거친 미완성의 화면에 있을 터인데, 시냑의 습작들은 주로 점묘법으로만 기억되기 쉬운 대가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열쇠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모네에서 세잔까지」라는 전시 제목에 부합하기 위해서인지, 모네에게 헌정된 공간이 있는데, 이 공간은 이번 전시에서 가장 압도적인 키치를 담당하고 있다. 여기서는 전체 벽면의 크기에 비하여 작은 크기의 화면에 <모네의 수련: 비전과 디자인>이라는 제목의 30분짜리 영상이 투사되고 있는데, 이 영상은 모네가 생의 마지막 순간에 수련 연작을 남겼던 투혼을 기리고 있다. 그런데 번역의 질이 구글 번역기를 그대로 돌린 수준에 불과하여 여기가 나름대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공공전시공간이 맞는지 의구심을 자아낸다. 원본 동영상의 영어 자막 위에 그 어설픈 직역투의 한글 자막을 덧입혀 놨는데, 한국인의 평균 토익점수를 감안한다면 차라리 원본의 영어 자막을 그대로 보여주는 편이 전달력 면에서 더 유리했으리라고 본다. 기본적으로 다큐멘터리 번역에 있어서 나레이션과 인터뷰는 서로 다른 어조로 번역되어야 자연스러울 텐데, 이 영상의 자막에서는 나레이터나 인터뷰이나 똑같이 시청자에게 반말로 이야기한다. 모네의 수련을 실사출력한 이미지로 이 조그마한 화이트큐브를 래핑한 대목은 더 웃긴다. 유수검지장치실 문까지 포함하여 양측 벽면에 조악하게 둘러 붙인 수련 이미지와 영상 속 오랑주리 미술관의 실제 수련 연작을 대비해보면, 이 구성적 키치가 더욱 깊은 아이러니로 다가온다. 요지는 이렇다. 한국인 관람객이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이스라엘박물관 전을 보는 와중에, 프랑스의 오랑주리 미술관에 소장된 모네의 수련 영상이 상영되고 있고, 그 영상의 자막은 외국어고등학교 재학생이 만든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허접쓰레기에 가깝다….

프랑스 인상주의자들이야 워낙 유명하고 그동안 여기저기서 작품을 볼 기회도 많았기 때문에 오히려 독일 화가들의 작품에 눈길이 갔다. 막스 리베르만(Max Lieberman)과 레세르 우리(Lesser Ury)의 작품들이 다수 출품되었는데, 이들은 유대계 독일 화가로, 한때 나치에게 작품을 빼앗겼었고, 유대인이라는 태생적 배경으로 이스라엘박물관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번 전시의 소장처를 염두 한다면, 이들의 작품이야말로 가장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레세르 우리, <포츠담 광장의 밤>

레세르 우리의 <포츠담 광장의 밤(Potsdam Square by Night, 1920년대 중반)>은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었고, 그 앞을 지나는 관람객들의 수군거리는 목소리를 듣자니,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은 아닌 모양이다. 어스름한 저녁, 광장은 서서히 어둠에 잠기고, 잦아든 빗줄기에 촉촉해진 지표면은 푸른 밤하늘과 건물에서 새어 나오는 가스등을 반사하며 달밤의 호수처럼 반짝거린다. 유희를 찾아 나선 사람들은 삼삼오오 우산을 받쳐 들고 거리를 누비는데, 도시의 산책자는 화려한 밤의 조명과 속내를 알 길 없는 공허한 눈빛의 틈바구니에서 자신이 진정 속할 곳이 어디인지를 알지 못한 채, 다소간 혼란에 찬 눈빛으로 배회한다.

화가는 수많은 사무실, 극장, 피카디리 카페, 철도역에 둘러싸인 포츠담 광장과 그 사이를 배회하던 군중을 사랑했고, 전쟁을 앞둔 아름다운 시절의 마지막 정점을 여러 차례 그림으로 남겼다. 화가 사후에 이 그림은 베를린 유대인공동체(Jewish Community of Berlin)가 관리했으나, 유대인미술관이 강제로 문을 닫게 된 1938년에 나치의 약탈 품목 중 하나가 되어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1945년에 나치 제국문화국의 지하 저장고에서 발견된 이 작품은 결국 미국에 거점을 둔 유대인배상승계단체(Jewish Restitution Successor Organization)의 노력으로 예루살렘에 안착할 수 있었다.

레세르 우리, <베를린의 겨울날>

<베를린의 겨울날(Winter Day in Berlin, 1920년대 중반)>도 그 우편에 걸린 <포츠담 광장의 밤>에 못지않게 인상적이다. 가로로 길쭉하게 늘어난 전체적인 구도 속에서 쌀쌀한 날씨에 옷깃을 여미는 행인들의 앙상한 고독감이 강조된다. 앙상한 나무, 표정을 잃은 도시인, 그리고 무표정하게 우리를 응시하는 듯한 새까만 자동차 한 대가 살짝 얼어붙은 지표면에 반사됨으로써 도시의 겨울 풍경이 줄 수 있는 차가운 질감을 극대화한다. 이 화면에서 보이는 도시적 감수성은 오늘날 어지간한 럭셔리 패션잡지의 그것을 가뿐히 넘어선다. <베를린의 겨울날>은 레세르 우리가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신중하게 찍은 초상사진에서 뒷배경에 당당히 배치할 정도로 그의 생전에 아꼈던 작품 중 하나다.


  • 작품에 대한 정보는 이스라엘박물관 홈페이지(www.imj.org.il)를 참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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