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스코프 & 오신 바타니안 편저, 「신경미학」

알파고와의 대국 이후 인공지능의 대혁명이 우리 눈앞에 곧 펼쳐지기라도 할 것처럼 온 세상이 호들갑을 떨었었는데, 4년이 흐른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또한 거품이었음이 자명해 보인다. 시리, 빅스비로 대표되는 인공지능 비서라는 녀석들은 여전히 문맥을 짚어내지 못한 채 검색 대행사무소 노릇만 하고 있다. 인공지능에 의하여 잠식된 일자리도 딱히 꼽기 힘들다. 패스트푸드점의 알바 자리를 날려버린 키오스크가 인공지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알파고 자체도 결국은 그저 특정 영역에 특화된 고성능 계산기일 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당연한 결론이다. 인공지능을 너끈히 품는 상위 개념인 ‘4차 산업혁명’이라는 패러다임도 실상은 부유한 지배계층의 성공적인 책 장사를 위한 그럴싸한 마케팅 표어였음이 드러나고 있다. 연구자가 느끼는 가장 위험하고도 달콤한 충동 중 하나는 이미 고정된 것으로 보였던 진화론적 로드맵의 다음 단계에 자신의 이름을 영구적으로 박아 넣는 것이다.

터미네이터 1편에서 스카이넷이 고심 끝에 핵전쟁을 일으키는 시점이 1997년인데, 23년이 흐른 지금의 인공지능 기술은 사진 속 동물을 개 혹은 고양이로 분류하는 것조차 버거워한다. 기술진보에 관한 우리의 낙관주의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에 미치지 못하나, 그래도 현재의 인공지능 기술 수준은 확실히 기대 이하다. 그럼에도 불철주야 연구에 매진하는 인공지능 공학자들을 마냥 폄훼할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이 따라잡고자 하는 인간의 뇌가 ‘앎의 불가능성’,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에는 은하계의 별 만큼 많은 1,000억 개의 뉴런이 존재하며, 이 뉴런은 다시 다시 150조 개 이상의 시냅스로 연결되어 있다. 뇌의 각 부위는 역할에 따라 국재화되어 있을 것으로 판단되나, 상호 간에 매우 유기적이면서도 유연하게 협력하는 까닭에 그 기제를 명확하게 단정 지을 수 없다. 뇌가 하나의 자극에 대하여 의식적/무의식적 차원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정보를 처리하고 신체 각부에 신호를 하달하는 속도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거기다 적절한 5대 영양소와 더불어 약간의 카페인만 섭취하면 심장이 뛰는 한 영구적으로 작동시킬 수 있으므로 경제적이기까지 하다. 뇌는 다른 장기에 비하여 단위 면적 대비 가장 많은 열량을 소비하지만, 투입 대비 산출로 보면 압도적인 성능을 자랑한다. 물리학자 미치오 카쿠(Michio Kaku)는 뇌를 슈퍼컴퓨터로 구현할 경우 핵발전소 한 개의 전체 발전량에 달하는 10억W의 전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뇌는 모든 감각의 종합처리센터이다. 우리는 예술 작품에서 받은 감동에 대하여 ‘마음이 움직였다.’고 수사할 수 있지만, 실제로 감동을 판정하고 신체로 그 감동의 신호를 보내는 것은 뇌의 역할이다. 따라서 뇌의 기제에 대하여 경험적으로 입증하는 신경과학이 미학에도 손을 뻗는 현상은 당연한 수순이다. 미학은 그것에 기여한 사람들이 속한 전통에 따라 철학의 하위 분과로 여겨지나, 비침습적 실험설계를 통해 뇌의 비밀에 조금이나마 접근할 수 있게 된 오늘날에는 신경과학적 접근이 미학이라는 학문 자체의 비약적 진보를 견인할 수 있다. 미적 경험 전반에 걸친 엄정한 관찰과 실험은 기존의 철학적 접근과 조화를 이루며 예술의 창조와 수용에 얽힌 유구한 역사의 비밀을 밝혀줄지 모른다.

마르틴 스코프(Martin Skov)와 오신 바타니안(Oshin Vartanian)이 엮은 「신경미학(Neuroaesthetics)」은 이 분야의 보기 드문 종합적 학술서적이다. 하나의 주제에 관한 연구 여러 편을 엮은 전형적인 핸드북 형태의 학술서가 이렇게 통째로 번역되어 우리나라에 출간되는 일은 드문 편인데, 비교적 생소한 분야인 신경미학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반갑다. 현지에서 2009년에 출간된 책이 2019년에야 번역되었다는 점은 아쉬우나, 편저자들은 한국어판 후기를 통해 그 10년 사이에 이 신생분야에서 무엇을 새롭게 발견했는지를 알려주는 친절함을 베풀며 아쉬움을 달래준다.

이 책을 다 읽더라도 예술 경험의 신경과학적 비밀에 결정적으로 도달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뇌에 관한 ‘앎의 불가능성’만이 더욱 또렷하게 도드라진다. 발간된 시점 자체가 이 학문이 막 주목을 받기 시작하던 당시인지라 널리 합의된 결론이 거의 도출되지 않았다. 책에 실린 원고들은 개별적인 연구들을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고찰해 놓은 ‘메타’적 접근을 취하고 있고, 그 자체가 새로운 실험적 진리들을 밝혀내지는 못하고 있다. 결국 저자들은 신경미학이라는 생소한 분야의 개념과 범위를 설정하고, 지금까지 뗀 첫 걸음마가 얼마나 불안정한 수준인지를 밝혀내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했는데, 그것만으로도 앞으로의 노정에 유용한 이정표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왜 신경미학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근대 미학이 체계화된 이후, 미적 창조와 경험의 기제에 관해서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방법론이라고는 그저 철저히 숙고하는 것밖에 없었다. 어떤 대상을 보고 미를 판단하게 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고, 뭔가 이유를 깨달았다면 논증을 거치는 것이 전부였다. 그중에서 보편적인 다수의 동의를 얻은 논증은 그 권위를 인정받고 미학의 정전이 된 데 반해, 그렇지 못한 경우는 한낱 헛소리나 개똥철학으로 치부될 수 밖에 없다. 물론 ‘보편적인 다수의 동의’라는 대목에서 발화자의 사회정치적 권위와 동의자들의 준거적 입장과도 같은 역학관계는 뗄 수 없는 변수가 된다. 칸트의 무관심적 쾌가 상정하고 있는 보편적 예술 수용자 집단에 여성과 비서구인도 포함되어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철학적 논증에 기반한 미학이 편협한 토대에 뿌리를 내릴 가능성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다. 반면, 신경미학은 비침습적 실험을 중심으로 미적 창조와 경험의 과학적 기제를 밝혀냄으로써 미학의 객관화와 보편화에 기여할 수 있다. 뇌와 신경기제에 이상이 있는 특이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엄격한 실험설계에 입각한 관찰결과는 보편적 인류 다수에게 적용할 수 있는 법칙이 된다. 미적 감수성의 원리가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할 때, 우리는 중개자 없이 작품을 마주할 수 있다. 위대한 작품을 만드는 것은 창조자나 매개자의 권위가 아니라 내면의 요청임을 확신할 수 있다.

마르틴 스코프 & 오신 바타니안 편저, 「신경미학」”에 대한 답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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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뇌과학. 나의 일부임에도 미지의 세계인 기관을 연구하는 학문이죠. 신경’미’학의 미가 아름다움과 세미함을 동시에 의미하는 것처럼 다가오는군요.
    오랫만에 들러 좋은 글 읽게되었습니다. 소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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