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S. 넬슨, 리처드 시프(편저)의 「꼭 읽어야 할 예술 비평용어 31선」

Critical Terms for Art History

편저자들이 내어 놓은 두 개의 서문에서부터 이미 형식주의를 배격하면서 신미술사를 지향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다. 동시대 미술 비평과 이론 텍스트에서 흔히 사용되지만 누구도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는 31개의 용어들을 각기 하나의 주제로 삼아서 서로 다른 배경과 개성을 지닌 저자들이 에세이를 썼다. 이 저자들은 현재 미술사와 미술비평이라는 유사과학 분야에서 누구보다도 이 용어들을 자신의 텍스트 속에 자주, 효과적으로 녹여냈던 사람들이기에 적임자들이다. 하지만 이 설명들이 발휘하는 힘의 원천은 저자들이 유명한 대학에서 학위를 마치고, 저명한 이론서를 출간했었다는 피상적인 사실들에서 기인하지 않는다. 진짜 힘은 저자들이 주로 그 개념의 옹호자이기 보다는 비판자이기를 자임한다는데서 비롯된다.

이 책은 「꼭 읽어야 할 예술이론과 비평 40선」과 번역서 제목이 유사하고, 책임 번역자가 동일하며, 번역 출판사가 같다는 점에서 마치 연장선상에 있는 연작처럼 보이지만 사실 두 책은 전혀 다른 기획이다. 일단 원서 출판사가 다르기도 하지만, 「비평 40선」은 기존에 발간되었던 문헌들을 엮은 선집인 반면, 「비평용어 31선」은 아예 하나의 목적으로 기획된 의도를 따라 저자들이 새롭게 원고를 준비한 것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하나의 에세이, 스티븐 반의 “의미 / 해석”은 두 서적에 공통적으로 게재되어 있는데, 애초에 「비평용어 31선」에 수록된 것을 「비평 40선」이 끌어온 결과이다. 또한 몇몇 저자들은 두 서적에 공통적으로 글을 기고하고 있다(도널드 프레지오시, 휘트니 데이비스, 데이비드 서머스, 아멜리아 존스 등). 이들은 아마도 예술, 비평, 역사가 교차하는 동시대 학계에서 모종의 공감대를 나누고 있는 학자들일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가고자 하는 방향은 분명하다. 그 방향은 선대의 학자들이 세워놓은 공식을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더 많은 인류 구성원들의 삶을 품어줄 수 있는 예술의 가능성에 기대를 거는 것이다.

처음에는 단지 용어 31개를 풀어서 설명하는 것만으로 어떻게 564페이지의 선집이 나올 수 있는지 의아했다. 하지만 저자들의 의도는 용어들을 단지 풀어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음이 이내 드러났다. 그들은 역사적 흐름과 동시대적 다양성을 각기 씨줄과 날줄로 삼아 복잡다기한 이론의 생태계 지도를 구성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이 생태계 지도는 서로가 서로를 참조하는 탓에 선형적인 일독에는 자신을 쉽사리 드러내지 않는다. 시각 예술에서 ‘응시’의 문제는 ‘젠더’와 ‘포스트식민주의’의 이슈를 건드리고, ‘생산’의 논리는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을 피할 수 없는 탓에 ‘상품’으로서 미술에 대한 숙고를 요청한다. 아마도 그 숙고의 끝에는 ‘시뮬라크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기억/기념비’로서 미술의 기능은 미학적 ‘의례’의 조건을 상기시키며, 동시에 ‘수집/박물관’ 분야의 실천적 방향을 암시한다. 이처럼 여기 드러난 31개의 에세이는 서로를 암묵적/명시적으로 순환참조하면서 다층적인 지식과 관점을 빚어내고, 결국 우리가 진짜로 듣기를 소망하는 이야기는 묵직한 564페이지 안에서도 끝을 맺지 못 한 채 해소되지 않는 갈증으로 서고(書庫) 너머를 맴돌게 된다. 그럼에도 이 에세이들을 반복적/순환적으로 읽는 과정은 그 너머로 향하는 우리의 시야를 조금이나마 넓혀 줄 것이 확실하다.

31명의 저자가 각기 다른 배경과 관점을 지니므로 전체를 관통하는 평은 할 수 없다. 다만, 이 책을 기초적인 학술입문서라고 볼 수 없는 지점은 ‘생산’이나 ‘포스트모더니즘/포스트식민주의’에서 발견되는데, 전자는 독자와의 공감대를 전제로 논의를 전개하고 있으나, 우리에게는 서구사회의 비물질적 가치체계 차원의 공감대가 체화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이해하기 어렵다. 후자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그야말로 포스트모더니즘적 글쓰기를 시도하고 있는데, 그 방법론적 실험성은 가뜩이나 손에 잡히지 않는 주제의 난해함을 더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에게는 저자 자신의 적극적인 개입이나 실례를 토대로 미시적인 논의가 전개되는 편이 훨씬 이해하기 쉽고 흥미롭다. 예를 들어 ‘전용’은 아버지 묘소에서 발견한 베네치아 말 석상의 모각에서부터 논의가 전개되면서 전용의 단계가 얼마나 복잡한지를 자연스럽게 알려준다. ‘미’는 대안적 유미주의자로서 저자의 입장을 분명하게 드러내며 찬반의 입장을 갖게 하는데, 요즘처럼 유미주의자를 보기 힘든 세상에서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의례’는 아프리카 문화 연구에 나섰던 연구자의 경험담을 통해 의례의 상대성에 대하여 다시 상기시킨다.

「비평 40선」의 편저자이기도한 도널드 프레지오시(Donald Preziosi)는 「비평용어 31선」에서도 근대 미술관의 수집전략과 박물관학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유감없이 표명하였는데, 그의 글은 언제나 명쾌하면서 대안적이어서 생각의 도로가 확장되는 느낌을 준다. 사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무엇’이 아닌 ‘어떻게’인데, 이 책에 수록된 ‘수집/박물관’에서는 역사-미술-주체-무대를 거쳐 다시 무대-주체-미술-역사로 빠져나오는 순환적이고도 점진적인 전략을 통해서 그 ‘어떻게’의 변증법을 섬세하게 드러냈다. 아직 선집 외에 그가 저술한 단독 연구서는 우리글로 번역되지 않았는데, 누군가 속히 작업에 임해 주시길!

가장 멋진 글은 의외로 마지막 후기인 리처드 시프(Richard Shiff)의 ‘형상화’였다. 이 글은 수록된 다른 글들과 달리 일반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예술, 비평(이론), 역사의 관계에 대하여 말 그대로 일반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 고찰은 참으로 명징한 것이어서, 이 바닥에서 어지간히 굴러먹지 않고서는 나오기 힘든 통찰이다. 시각 예술의 세계를 사랑하고 그 담론에 참여하고자 하는 우리 모두는 사실상 예술가, 비평가, 역사가의 정체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이들 정체성은 서로를 견제하면서 균형을 맞추기도 하고, 때로 어느 한쪽이 무너지면서 다른 한쪽으로 쏠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 중심에 예술, 그리고 그것의 제작자에 대한 사랑이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으며, 때로는 우리 스스로가 그 제작자가 되기도 한다. 이 정체성이 교차/중첩하는 지점에 ‘내’가 있고, 이 책이 있다. “저자/제작자는 매체를 사용함으로써, 매체 그 자체를 변화시”키므로, 우리가 한낱 딜레땅뜨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미술 담론에 발가락이라도 담기를 원한다면, 사랑에 뒤따르는 책임을 절대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될 일이다.

학습노트

(제목 옆의 별표는 중요도 내지 흥미도입니다. 내 멋대로, 내 언어로, 오직 나를 위해 요약한 학습노트이므로 중요한 과제나 연구에 참고할시 결과에 대한 책임은 당신이 지십시오.)

재현

재현에 대한 인식은 관념론적 세계관과 유물론적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변화해왔다. 궁극적으로 재현은 인간의 의도된 표상이고, 소통 방식이므로 인간 자체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이미지의 이해는 공간의 문맥과 조건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미술사는 표상주의의 문제가 얽힌 서양의 전통에 다름 아니었다. 이제 그 해석의 초점은 신체, 개인적, 사회적, 정치적 공간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데올로기로서 표상은 제도적인 개혁을 위한 기회를 제공한다.

기호

미술에서 기호는 ‘기표-기의’의 닫힌 이중구조 보다 ‘기호-대상-해석소’를 아우르는 퍼스의 삼항 논리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여기서 해석소가 개입되는 역동적 의미화 과정이 더욱 잘 설명되기 때문이다. 기호로서 미술은 주체의 관심을 잡아 끌고 자신의 정체에 대해 지속적으로 말을 건낸다. 일차적 외양과 문화적 관습이 결부된 이 의미화는 어떤 의미에서는 다분히 유물론적인데, 이것은 한때 구조주의와 형식주의의 저항 속에서도 건재해왔으며, 앞으로도 제 역할을 해낼 것이다.

시뮬라크럼☆

애초에 시뮬라크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제작자가 아니라 그것을 보는 사람이다. 플라톤으로부터 시작된 시뮬라크럼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는 들뢰즈에 이르러 전복됐다. 이제 시뮬라크럼은 대상과 복제의 관계 자체를 와해시켰다. 1960년대 이후 ‘허위’의 미학은 미술사의 지도를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옮겨왔다. 하지만 그 미술에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 것은 프랑스 철학자들이다. 특히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은 새로운 미디어 시대의 특징을 정확히 짚어냈다. 하지만 미디어가 현실에 가면을 씌우고 이내 다시 현실을 잠식한다는 그의 우려는 플라톤으로 되돌아간 느낌을 준다. 보드리야르는 미디어를 오히려 활용하여 대안적 관점을 제시하는 오늘날의 예술가들을 간과하고 있다. 만약 미술사를 환영/재현의 역사가 아닌 시뮬라크라/허상의 역사로 쓴다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분석이 나올 것이다. 시뮬라크라의 미술사는 실재를 정복하는 역사가 아닌 상상과 공상으로 자유롭게 탈주하는 역사가 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시뮬라크라 과잉의 시대를 살고 있는데, 이 과잉이 넘쳐날수록 오히려 자연과 몸을 그리워하게 된다. 미래의 예술가들은 시뮬라크라의 시대에 홀로 실재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말과 이미지

몇몇 이미지는 언어가 있기 때문에 이해가 가능하다. 또한 언어가 있기에 미술사 서술이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미술사의 영역에 텍스트 연구가 개입되는 것을 방어할 필요가 없다. 말과 이미지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교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모더니즘 미학은 말과 이미지를 분리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오늘날 실패한 것이 확실하고, 둘 사이의 관계는 오히려 더욱 복잡하고 변덕스러워졌다. 말과 이미지의 차이는 이항대립으로 안정화되지 않을 것이다. 둘의 차이는 오히려 변증법적 비유 속에서 다름과 같음의 왕복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역사적으로 말과 이미지 중 한쪽의 승리를 위한 투쟁은 성공적이지 않았다(레싱, 그린버그 등). 둘 사이의 경계가 희미해질 때 말이 우위에 있던 기존의 진부한 질서도 와해될 수 있다. 미술사가 말을 취하면 이미지가 희미해지고, 말을 거부하면 목소리를 잃는 딜레마에 빠질 것이다. 결국 말과 이미지를 넘어서는 이상적인 유토피아는 없다. 다만 그 긴장 관계는 계속 존속되면서 사회 속에서 무수히 많은 담론의 가능성을 제공해줄 것이다.

서사

서사는 국제적이고 초역사적이며 초문화적이다(바르트). 서사는 대게 변환, 욕망, 결핍을 중심에 둔다. 서사는 그 자체로서, 그리고 발화자에 의해, 청자를 위해 존재한다. 이 세 가지 성격은 오랫동안 연구되었으나 이들간의 대화에 대한 관심은 최근 25년 동안에 등장했다. 서사는 참여자들이 참여하는 일종의 거래다. 그러므로 의사소통과 수용 미학을 고려하여 이해하여야 한다. 과거에는 주제가 소통보다 중요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모세가 신성한 소명을 받는 과정의 모든 단계에서 증인이 되었다. 서사의 주제는 주체인데, 그 주체가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은 우리가 겪은, 혹은 겪을 그 과정과 유사하다.

퍼포먼스☆

퍼포먼스는 무관심한 미학에 고착된 가정들을 비판하며 예술과 자연의 편협한 구분에 문제를 제기한다. 퍼포먼스는 초개인적인 시각 미학이고, 주체와 주체 사이의 사이 연속체로 기능하며, 이음매로 작용한다. 이음매는 결합하다, 연결하다, 위임하다, 신탁하다, 저지른다는 의미로 파생되는데, 이것이 퍼포먼스 아트의 구조적 특성이다. 역사적으로 퍼포먼스는 물질에서 신체로, 오브제에서 창작자로, 결과에서 과정으로, 영속성에서 일회성으로, 상품에서 사건으로 시선을 돌리게 했다는 점에서 태생부터 전복적이다. 특히 전통적 매체와 달리 퍼포먼스 분야에서 여성의 활약이 눈부시다는 점을 주목할만하다. 이들의 퍼포먼스는 재현의 대상이 아닌 사회적/정치적 주체로서 몸을 강조하고 있다. 퍼포먼스는 기록 매체와 상호발전했다. 처음에는 사진, 그 다음은 영상, 이제는 디지털기술이 퍼포먼스를 보존한다. 매체는 단지 퍼포먼스를 담는 기록이 아니라 퍼포먼스의 주제가 되기도 한다. 퍼포먼스는 현전과 재현을 하나의 시공간으로 묶으면서 미메시스의 인간 부정을 무력화한다. 격동의 현대사에서 퍼포먼스는 언제나 고통받는 자들의 편에 서서 유의한 목소리를 내왔다. 특히 퍼포먼스는 몸의 예술인 까닭에 성적 억압과 편견에 대해 효과를 발휘해왔다. 예술가가 퍼포먼스를 통해 관객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다름아닌 ‘책임감 있는 상호작용’이다.

양식☆

1960년대 이후 등장한 신미술사는 아예 양식이라는 단어 자체를 고려하지 않는 듯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과거의 향수가 떠오르고 섬세한 감각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동안 미술사에서 양식 분석은 쇠퇴나 진보를 설명하기 위한 무기로 활용되었다. 그간 양식 분석이 대단히 인기를 끌었던 까닭은 자세한 서술을 통해 역사적인 진보와 쇠락의 거대한 파노라마를 만들어내기가 용이했기 때문이다. 양식 논의는 때로 작품이 아닌 작가로, 장소로 관심을 돌린다. 또 계보학을 만들고 영향/전유 관계를 논하는데 유용하다. 신미술사는 양식 분석을 거부했음에도 여전히 그 영향의 언저리에 있다. 양식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은 스스로의 선이해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양식론의 저변에는 어김없이 작품을 맥락과 단절시키고 순수한 천재의 창조적 기원의 순간으로 몰아가는 이상적 낭만주의가 있다. 지금의 양식론은 ‘자의식 없음’을 강조함으로서 비평 도구로서 정당성을 지니고 있지만, 르네상스에 처음 대두된 양식론은 예술가들의 자의식적 표현이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어쩌면 양식은 예술가들에게 일종의 객관성(무관심성)을 주장하도록 허용해왔는지도 모른다. 권위있는 양식의 전통을 참조한다면 어떠한 내용이라도 정당화된다. 양식은 한 때 전부였고, 적이었고, 이제는 잊혀졌지만, 그럼에도 여기에는 미술사의 학문적 깊이가 집약되어 있다. 이것을 완전히 버린다면 큰 위험을 감수하게 될 것이다.

컨텍스트☆

카르트메르 드 갱시에 따르면, 작품을 원래의 컨텍스트에서 분리시킬 때 그 의미는 사라진다. 하지만 이는 분리를 통해 얻는 작품의 새로운 용도로서 자율성을 간과한 해석이다. 자율성은 작품들을 미술로, 전시가치로, 소유물로, 부의 상징으로, 독창적 창조물로 재구성했다. 자율성을 획득하기 전, 작품은 실용적 문맥에서 정의되었기에 언제든 덧칠되고, 분리되고, 변형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근대적 미술관에서 그것이 역사적 사료로 전시되기 시작하자, 신성함을 덧입게 되었다. 우리는 작품이 문맥에서 분리되었더라도 그 이전의 맥락을 지적으로나마 재구축할 필요가 있다. 하나의 작품에 관계된 모든 맥락을 미술사에 포섭할 필요가 있는데, 이때 유용한 것이 양식 분석이다. 하지만 형식분석의 대가 뵐플린과 그 반대편인 하우저의 예를 통해서 알 수 있듯, 순수한 미적 이해와 맥락적/역사적 이해 사이에서 균형잡힌 태도란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미술의 자율성과 미적 경험은 역사적 총체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간 MoMA는 몬드리안을 모더니즘적 자율성의 아이콘으로 제공했지만, 사실 몬드리안의 의도는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것이었다. 몬드리안은 자신의 추상화를 통해 노동자를 위한 새로운 미감을 제공할 수 있으리라 믿었지만 MoMA의 미술사적 배치 속에서 그 사회적 의도는 희석되었으며, 오히려 몬드리안이 시대상에 무심했다는 것, 그리고 젠더적으로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만 드러내 보여준다. 현재의 관심을 과거의 작품과 문맥에 투영하는 것은 한계가 아니라 비평적 조명으로서 가치를 지닌다.

의미/해석(재탕)☆

작품의 해석은 주체의 알고자 하는 욕망이 뒷받침되는 한 끝이 없는데, 이것은 끝없이 작품 안으로 수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품고 있는 세상을 향해 뻗어 나간다. 작품의 의미 분석에 평생을 바친 파노프스키의 저술은 의미의 끝이 작가의 내면을 향하기 때문에 오독의 여지를 많이 남긴다. 하지만 막달레나 드 파세의 사례는 한 작품에 얽힌 무수한 영향관계를 암시한다. 원작가라는 확고부동한 개념은 많은 중요한 문제들을 속단하게 한다. 작가들의 이해관계는 훨씬 복잡하고 서로의 참조 속에서 의미의 층들을 만든다. 한 사람의 내면에 국한된 해석 보다는 더 넓은 사회적, 문화적 역사를 조망할 필요가 있다.

독창성☆

예술에서 독창성은 아이러니를 품고 있고 저마다 견해가 다르다. 특히 고전과 모더니즘은 독창성에 대한 인식 차이 자체로 정의할 수도 있다. 고전주의자들은 전범의 영향 아래 얼마나 새롭게 재해석했는지, 얼마나 훌륭한 것을 모방해왔는지를 중요시했다. 여기서 전범은 주로 자연이 아닌 다른 재현인 경우가 점차 많아졌다. 반면 모더니스트들은 자신들이 아무것도 참조하지 않으며 오직 스스로만이 전범이 되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후기 구조주의자들의 영향으로 이제 역사의 중심이라는 것은 없다는 인식이 퍼졌고 낭만주의적 천재의 창조력과 모더니스트적 독창성의 개념도 의심을 받기 시작했다. 진정 독창적인 작품을 만든 예술가의 욕망도, 어쩌면 타인의 욕망에 의해 매개된 것일 수 있다. 원본과 그것의 재현이 있을 때, 원본이 앞서서 존재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의 독창성을 인정할 수 있나? 만약 그것이 독창적이라면 단지 누군가(예술가) 선택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가들은 자신의 관점을 따라 독창성의 원인을 찾아서 문맥 속에 정립하는 일을 한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일은 근원을 찾는 것이 아니라 독창성에 얽힌 가변적이고 다층적인 관계망을 연구하는 것이다.

전용☆

전용은 무심한 것이 아니라 능동적이도 주관적이며, 그 동기가 충만한 것이다. 미술사에서 영향과 전용은 수동태와 능동태 사이의 문법적 차이와 같다. 전용은 하나의 왜곡으로서 이전의 함축들을 유지하면서 교묘하게 변화시키며, 그 과정은 자연스럽고도 은밀하다. 기호는 다소 불완전하거나 은밀할 때 전용 가능하다. 의미가 완전하거나 가득차 있다면 전용할 수 없다. 포스트모더니즘 맥락에서 그 유명한 셰리 레빈이나 바바라 크루거 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물에 대한 현대 비평가들의 미학적 맥락화, 현대사회에서의 원시미술, 18~19세기 영국 풍경화, 국민국가에서의 기념물도 전용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베네치아의 4마리 청동 말은 2~3세기경 키오스에서 창조되어 이후 콘스탄티노플로, 베네치아로, 나폴레옹의 파리로, 그리고 텍사스의 조악한 공동묘지 모각으로 단계적인 전용을 거쳤다. 그 과정에서 일부 의미는 살아남고 일부는 덧붙여졌다. “전용을 연구하는 것은 기호학적 변천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며, 미술가 자체의 발생하는 변천에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다.” 전용에 대한 고민은 미술이 과거, 그리고 현재에 중요한 이유를 숙고하게 만든다.

미술사☆☆

미술사가는 역사의 일부로서 문화와 미술품 속에서 생산된 인공물이라는 작은 부분을 전문적으로 다룬다. 미술사가 역사의 일부라는 관점 못지 않게 그 둘이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의견도 존중할만하다. 역사적 사건의 해석과 기술에 비하여 미술사는 비교적 견고한 대상을 다룬다. 작품에 관한 사료들은 중요한 고려요소이기는 하나, 작품에 대한 신체적 경험에 비하면 부차적이다. 하나의 미술 작품은 더 큰 체계의 일부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워홀의 <브릴로 상자>가 흥미로운 까닭은 그것이 미술사에서 재현과 표현이라는 2×2 다이어그램의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가로지르며, 보여주기 때문이다. 단토는 이를 근거로 미술사가 끝났다고 했지만, “미술사에서 미술이라는 경기의 규칙은 전통을 제외하고는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전통은 미술품이 무수히 많은 배치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우리는 앞으로 미술사에 닥칠 변화들에 대해서 알 수 없고,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 미술사에는 미술 작품을 구조주의적으로 다루지 말고 물질 그 자체로 다루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러한 주장은 버나드 베런슨 같은 감정가들과 관련있다. 미술의 역사적 성격에 대한 선입견은 미적 특징을 고려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역사적 판단이 미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며, 미적 관조가 비평적/정치적 판단 가능성을 배제하지도 않는다. 즉, “미술사가의 임무는 구조주의와 유미주의의 양쪽 모두의 관심사를 정당하게 다루는 것이다.” 우리는 월터 페이퍼처럼, 유미주의자이자 원형-구조주의자이자 원형-해체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모더니즘

모더니즘을 검토한다는 것은 서구 세계의 현재 역사적 상황과 자의식의 원인을 총체적으로 검토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모더니즘은 크게 세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첫째는 산업화/도시화 되는 삶의 환경 속에서 자각하는 실존적 개인으로서의 인식, 둘째는 클레멘트 그린버그로 대표되는 자족적이면서도 매체의존적인 아방가르드로서의 고급 미술, 셋째는 모더니즘 미술의 근거를 마련하는 모더니즘 관점의 비평이다. 모더니즘이 리얼리즘과 양립할 수 있을까? <올랭피아>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그림이 아무리 평면회화라는 솔직함을 강조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림 속 일종의 역할 놀이에 충분히 이입할 수 있다. 하나의 그림 속 구상적 시나리오의 모더니티와 형식적 특성의 모더니즘은 양립할 수 있다.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비평을 이끌어낸 작품들은 그 양립을 이루었다. 문제는 모더니즘을 사실주의적 신념이 지닌 자들의 비판 수단으로만 인식하는 것이다. 또한 평면성을 추구하는 추상미술에서 사실주의가 완전히 결여되어있다는 성급한 일반화도 경계해야 한다. 아직 모더니즘의 종결을 선포하기에는 너무 이르거나, 그 판단이 너무 자의적일 수 있다.

아방가르드

‘아방가르드’는 원래 혁명적인 사회 정치적 경향과 예술적 목표의 결합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아방가르드에 관한 초기 이론은 포지올리와 뷔르거에 의해 드러났는데, 전자는 예술의 자율성을, 후자는 포괄적인 사회 제도적 견지를 강조하는 측면이 있다. 이들 이론은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양성과 사회참여적 성격이 대두되기 전, 혹은 대두 과정에서 동시에 나왔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페이스 링골드의 <피카소의 작업실>은 회화를 퀼트로 옮기며 아방가르드적 천재, 남성성, 백인, 예술의 자율성에 대한 모더니즘적 신화화를 전복한다. 한편으로는 그 전복이 결국 아방가르드를 받아들이는 결과로 보인다. 그럼에도 링골드의 작업은 페미니스트적, 후기 식민주의적 해체를 통해 아방가르드의 한계를 극복한다.

원시☆☆

원시는 본질적인 범주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관계를 예시할 뿐이다. 원시의 의미는 시간/공간, 젠더, 인종, 계급의 수준에서 상호 관련된 대립쌍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시간/공간 차원에서는 산업사회로 진입한 서구는 진보의 성과로, 원시는 퇴행과 정지의 상태로 대비시키는 관점이다. 여기서 원시미술의 개인 창조자는 상상력이 부재하고 영향을 주고 받지도 못한다. 젠더 측면에서는 여성은 자연에, 남성은 문명에 비유하며 생물학적 차이를 권력화한다. 여기서 단순히 실제 젠더관계뿐만 아니라 주변화된 남성, 원시적 공간도 ‘여성화’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인종 측면에서 ‘고귀한 야만(루소)’으로 일컬어지던 비서구인종은 점차 생물학적 미개인, 그리고 타자로 재규정되었다. 모더니스트들은 서구의 인종적 편견에 편승하다가 이내 그것에 맞서기 위해 원시적 도상을 채택했다. 어쨌든 결론은 비서구 세계를 타자화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끝으로 계급 측면에서는 고급과 저급의 이원화 속에서 서구 사회의 보수적 금기와 직면한 중간층 모더니스트들이 비서구의 민족지적 재료들을 보상적으로 약탈하는 상황과 연관된다. 여기서 원시주의는 타민족뿐만 아니라 농촌과 도시 노동자들의 토속성, 민속성, 전원성을 겨냥한다. 결론적으로 원시라는 용어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정치적 범주로 이해되어야 한다. 예술 문화에서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원시주의의 방식에 대한 관심은 앞으로 더욱 높아질 것이다.

기억/기념비☆

기념비에 대한 욕구는 억누를 수 없다. 근대 격변기에 기념비는 그 엄청난 변화를 반영해 왔고 이제는 양면적인 긴장으로 가득한 영역이 되었다. 20세기 중반에 전체주의가 막을 내리고 기념비의 시대는 끝난 것으로 여겨졌다. “기념비들은 오직 통합적인 의식과 통합적인 문화가 존재하는 시기에만 가능하다.”(세르, 레제, 기디온, 1958) 그런데 포스트모던 시대에 다시 기념비가 각광을 받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 기념비들은 파편화된 구성원을 공통의 기억이라는 일루전에 넣기 위한 것들이다. 기념비의 생명력은 대중의 신념에 의지한다. 시간은 기념비의 영속성에 대한 약속을 이내 부적절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새로운 ‘역’기념비는 과거의 기억이나 그 기억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영속성에 대한 일루전을 부정한다. 이제 새로운 기념비 연구는 과거의 역사를 조망하는 것에서 벗어나 동시대의 대중들의 입장을 반영한다. 기억이란 “우리가 기념화된 과거의 빛 속에 취하는 구체적인 행동 속에 존재”한다.

몸☆☆☆

신성한 정신과 비천한 몸을 분리시켜온 플라톤과 데카르트의 관념은 니체를 거쳐 끝났다. 20세기 서구 예술 담론은 로저 프라이가 내세운 육화로의 회귀와 그린버그 진영의 무관심성으로 대립되었다. 하지만 그린버그가 모더니즘의 완성이라고 생각했던 폴락이 로젠버그에 의해 이내 육화의 화신으로 재발견되었고 이것은 지금까지도 정설이 되었다. 시각문화의 모든 창조와 감상의 근원에는 몸에 대한 충족되지 못한 욕망이 숨어 있다. 사진은 태생부터 몸을 충실하게 옮겨 놓으려는 욕망이었다. 또한 투사의 촉매인데, 우리는 사진이나 자화상 속 몸을 통해 작가나 모델의 의도를 알려고 하고 아는 것이 가능하다 믿는다. 우리는 몸의 영속성을 위해 사진을 남긴다. 하지만 데스마스크가 암시하듯, 이미 기록으로 남은, 거기에 있었던 몸은 필멸성을 지시할 따름이다. 사진으로 촉발된 재현의 이슈 속에서 사실상 몸 외에 다른 단일한 근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메를로-퐁티의 현상학적 관점에서 몸은 하나의 기호나 정신을 담은 용기가 아니라 세상과 맞닿는 접합(인터페이스)이다. 우리는 몸과 예술 동시에 해석하려고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불가능으로 귀결될 뿐이다. 몸은 기본적으로 통제 불가능하며 가변적이기 때문이다. 몸은 물신으로도 존재한다. 물신화된 몸은 맥락에서 떨어져 나와 피상적인 대상으로 전락한다. 사진은 물신화된 몸의 영속성을 붙잡고 관람자에게 전이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늘 실패한다. 이러한 경향의 일환으로 동시대 미술에서는 몸의 순간성, 우연성, 우발성을 강조하는 시도들이 증가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몸의 재현을 생산하고 감상하면서 존재의 깊이를 사유한다. 영속성에 대한 욕망은 재현을 통해 단순화되고 탈맥락화되는데, 이는 커다란 역설이며,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미☆☆☆

예술과 아름다움은 사실상 서구 사유에서 가장 애매한 두 개념을 한데 묶은 것이다. 미술사가 시각문화론으로 변모함에 따라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평가는 더욱 애매해졌다. 오늘날 무언가를 아름답다고 평하는 것은 이론적 회피를 인정하거나 주제로부터 회피하는 것으로 여겨져 의심을 사게 된다. 일반적으로 미술사가의 미적 가치 판단은 서술의 대상을 선택할 때만 작용하고, 개별 작품에 대한 판단은 주로 비평가나 철학자의 몫으로 여겨진다. 미술사가는 ‘아름답다’는 표현을 회피함으로써 표준성과 주관성을 확보하려 한다. 하지만 아름답다는 언명을 통해 그렇지 않은 대상과의 차이를 학문적으로 명확히 규명하고자 할 때에는 차라리 가치평가 하는 편이 낫다. “은폐와 부인은 거의 언제나 이중성 혹은 자기기만의 소산이다.” 대다수 사용자들에게 아름답다고 인식된 대상은 그렇지 않은 대상에 비하여 미학 외적인 기능(정보전파, 찬영, 의례, 위안 등)을 더 잘 수행한다. 즉, 한 시대에 아름답다고 평가된 것들은 그 시대를 역사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모더니즘은 아름다움에서 비롯된 쾌를 부정했다. 사실상 “모더니즘은 아름다움의 추방을 이끄는 플라톤적 두려움의 최근 사례일 따름이다.” 이러한 모더니즘의 흐름은 포스트모더니즘을 만나 더욱 파편적, 사회참여적, 정치적인 것으로 바뀌었고 이제 아름다움은 아예 모호하고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미의 본성을 논하는 담론에서 진정한 문제는 미의 개념 자체가 거의 무의미하거나, 너무 광범위한 쾌 또는 긍정을 지칭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18세기의 기준대로 무관심적 쾌로 정의할 수도, 플라톤의 정치적 견해를 소생할 수도 없다. 이제 미에 대한 연구는 두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데, 첫째는 상대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고려하면서 미의 문맥에 대한 문화적 경계들을 탐구하는 것이다. 둘째는 지각 및 인지 측면에서 신경 생리학적 연구를 통해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원리를 발견하는 것이다. 이 원리를 문화적 경계에서 연구한 상대적 관점들에 접목할 때 더욱 엄밀한 미 개념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라는 단어는 더이상 터부시되지 않고 새로운 미술사적 실천으로 귀환할 것이다.

추☆

추 개념을 간단히 요약하면 미 입장에서의 ‘타자’다. 추는 반규범적인 모든 것, 미와 반대되는 모든 것을 가리킨다. “미와 추, 양자는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의미들을 분절한다.” 그래서 대중의 편에 섰던 학자들은 그로테스크를 저항과 전복으로 해석(전용)했다. 대체로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전까지 추는 억압과 추방의 대상이었다. 낭만주의와 근대성의 상징인 아방가르드는 추를 자신들의 전복적 언어로 발굴했다. 디드로는 추 개념의 상대성과 다양성을 인정했지만, 보들레르는 한 발 더 나아가 미-추 이항대립 자체를 거부하고 두 개념을 하나의 대상에 묶었다. 여기서는 수용자의 입장이 중요해진다. 현대미술에서는 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는데, 특히 앵포름(비정형)과 애브젝트(비천함)이 두드러진다. 앵포름은 저급하고 역겨운 물질성이다. 애브젝트는 역겨움과 외상을 환기하는 경험이다. 감동을 주고 경험을 중개하던 재현적 예술은 애브젝션으로 바뀌어 충격을 주려는 욕망이 되었다. 오물은 철저히 가려져왔지만 모두에게 공통된 요소이며, 모두의 출발점인 항문기를 연상시킨다. 애브젝션은 예술의 계급을 무너뜨리고 젠더, 인종, 국가의 지배 담론을 겨냥한다.

의례☆

“의례들은 삶의 표지들로서, 그 형식성과 상대적인 고정성을 통해서 세계 전반을 측정하고, 정복하며, 이해하는 수단을 제공한다.” 의례는 동일성(시간성, 구조, 원칙)과 차이(변화, 운동, 실천)로 구성된다. 의례 연구는 미술사, 인류학, 종교학, 역사 등을 연구하는 하나의 창문으로서 인식되어왔다. 최근 가장 각광을 받고 있는 주제는 권력 그 자체로서의 의례적 본성이다. 왕권을 위한 미술과 건축은 필멸의 존재인 통치자를 하나의 정치적 상징, 강력한 지배자로 재규정하는 의례로 바라볼 때 흥미롭다. 의례는 일상적인 것과 낯선 것 사이의 차이를 벌리는 동시에 둘 사이의 모순을 중재한다. 이러한 의례의 이중적 성격은 예술가들에 의해 새로운 자극제가 된다. 의례는 비이성적인 것을 이해 가능한 것처럼 납득하게 하는데, 예술은 의례의 이러한 기능을 전유하거나 공격한다.

페티시

페티시가 그저 하나의 취행이라면 문제될 것이 없지만 그것이 개인 혹은 문화적 집착에 의한 물질 이면의 논리들을 가리킨다면 이론화와 이해의 필요성이 있다. 미학과 페티시즘은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 거의 동시에 등장했다. 이는 정신에 집중한 부작용을 치유하고 감각적 경험과 감성을 설명하기 위한 시도였다. 당시 물신 숭배는 숭고미가 결여된 저급한 것, 원시적 문화로 치부되었다. 페티시즘은 도덕적 자율성을 결여한 무능력의 증거로 간주되었다. 그러한 견해는 콩트가 페티시즘을 과학적 실증주의와 연결시키기 시작하면서 변화하였다. 이후 부르디외 등에 의해 페티시즘이 관습과 제도의 영역으로 이해되기 시작하자 ‘예술 그 자체가 페티시’라는 폭넓은 규정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페티시즘은 모더니즘 시기에 세 가지 측면에서 폭발하였는데, 첫째는 성과학 담론에서, 둘째는 마르크스주의적 견지로 물신화된 경제적 대상물을 비판하면서, 셋째는 모더니즘 미술에서의 아프리카 모티브 차용에서 두드러졌다. 대체로 셋째 개념에서 페티시즘은 비서구 예술을 타자화하는 전략으로 이용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페티시적 유물론으로 기존 미학을 전복하려는 시도들이 나타났고 예술과 상품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조짐이 아도르노와 벤야민에 의해서 촉발되었다. 프로이트는 페티시즘을 부인된 어머니의 페니스를 대신하는 상징적 대체물로 해석했다. 프로이트와 라캉의 페티시는 유용하고 흥미로웠지만 페미니즘의 부상과 함께 표적이 되었다. 그것은 여성을 대상화로 격하하고 억압하는 기제로 전유되었다. 이제 페티시즘은 대상물을 문제시 하는 방식으로서, 정통적인 단어들에 만족할 수 없는 작가와 비평가들의 몫이 되었다.

응시

응시 담론에서 시각이 주체를 배제할 수는 없다. 응시는 단순한 시각성과 달라서, 형식과 사회를 동시에 포괄할 수 있다. 또한 응시는 보는 주체와 보여지는 대상의 관계를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영화 매체에서 응시는 대체로 보는 남성(카메라)에 대한 나르시즘적 자기동일시, 그리고 보여지는 여성에 대한 절시증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관객 스스로의 비판적 시선이 요구된다. 여성의 이미지가 다뤄지는 방식은 상품화와 소유로 요약할 수 있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풍경과 그것을 보는 주체로서 등장인물은 병치되는 화면을 통해 통합되고, 이것을 봉합이라고 한다. 우리는 봉합을 통해 익명성의 응시 권력을 누린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응시가 파괴이며 권력이라는 사실이다. 주체의 응시는 보여지는 대상이 스스로를 응시하는 방식으로 다시금 내면화된다. 남성이 여성을 보는 방식, 주류가 비주류를 보는 방식은 각각 여성과 비주류가 스스로를 보는 방식이 된다. 권력관계를 내포하는 응시를 탈피하기 위하여 주체에게로 다시 되돌아오는 응시, 즉 책임성 있는 응시가 요구된다. ‘나-그것’ 관계를 ‘나-너’ 관계로 바꾸어야 한다. 응시는 시대와 문맥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그 모든 “응시의 이론들은 바라보기의 중요성을 드러내려는 시도이다.” 진짜 중요한 것은 타자를 보고 있는 나 자신을 응시히는 것이다.

젠더

1세대 페미니즘은 ‘차이’의 차원에서 재현 안의 젠더를 다루었고, 2세대 페미니즘은 ‘일치’의 차원에서 재현의 젠더를 다루었다. 두 관점을 통합적으로 다뤄져야 하는데, 남성화된 표준(구조화) 내에서 차이의 체계를 보아야 한다. 체계나 형식이 중요한데, 재현이 실제를 반영하는지, 실제가 재현을 반영하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성적 차이를 표시하는 광범위한 ‘일치’의 규범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일치’는 ‘차이’를 지배한다. “젠더 차이의 표시는, 일치를 통해 확장되고 복잡해진 체계성에 의존하며, 그것은 다시 체계성을 생성한다.” “성적 차이에 대한 단순한 식별이 젠더의 일치에 의해 지배될 때, 성적 차이에 대한 젠더화가 완성된다.” 남녀 간 행동에 실제적 차이가 분명 있을 것이라는 전제는 매혹적이지만 타당하지 않다. 성적 차이에 대한 관심은 서열에 대한 관념으로, 곧이어 지배와 구속으로 나아간다. 일치 등급의 형성은 모든 젠더 이론에서 필수적으로 관찰해야 한다. 젠더 일치에 따른 상하위 등급 편성은 우리로 하여금 젠더 차이의 정신적/사회적 현실을 받아들이게 만든다. 재현 속 젠더 일치 등급은 이내 나이, 인종, 건강, 종교, 국적 등 다른 일치 등급을 수반한다. 젠더 일치는 제작자와 수용자 간의 합의에 의해 실현된다. 따라서 젠더 연구는 형식적 구조를 밝히는 것에 국한되지 않고 작품과 관객의 능동적 화합 혹은 불일치 과정을 분석해야 한다.

정체성☆

정체성은 사회적 범주에 대한 자각이었지만 점차 지배 문화/집단과의 대조를 통한 문제제기로 재맥락화되었다. 정체성 담론은 차이에 대한 긍정과 더 큰 문화 속으로의 포함이라는 양자 간의 긴장이 나타난다. 즉, 정체성 개념은 긍정의 효과와 거부의 효과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한 개인의 정체성은 스스로에게도 내적 분열의 대상이다. 따라서 “예술가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조형 형태 그대로 복사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작품 해석에서는 작가 뿐만 아니라 미술사가의 정체성 및 태도도 중요한 요소이다. 예를 들어 동성애자임이 명백한 미술가가 자신의 동성애적 정체성을 밝히지 않거나 부정하는 경우, 그 미술가의 동성애적 작품을 해석하는 것은 난해해진다. 정체성은 기존 기대에 어긋나거나 연결되지 않을 때 더 많은 관심이 요구된다. 정체성은 가시성이나 승인, 실재와 권한 부여 그 이상의 담론이다. 우리는 작가들이 정체성을 인정할 때 뿐만 아니라 그것을 뛰어 넘고 싶을 때의 욕구도 인정해야 한다.

생산

지금까지 생산 방식에 관한 담론은 많았지만 그 속에서 생산 원리는 빠져있었다. 생산의 의미를 단순화하면, 첫째는 물질의 가공과 그 결과물이고, 둘째는 표현과 전시이다. 마르크스에게 미술은 교환 가능한 상품이었고, 경제적 하부 구조가 변화될 때 변형될 무언가였다. 그리고 혁명의 수단이 될 수 있는 무언가였다. 이러한 예술에서의 생산 개념은 비록 퇴색되었지만 유물론자와 관념론자 사이에서 여전히 교차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미학은 쿠르베에 이르러 뿌리를 찾았고, 소비에트 사회주의 사실주의로 이어졌다. 1970년대 이후 예술의 사회사는 사회주의 사실주의와는 다른 길을 가면서 형식주의와 모더니즘에 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움직임도 결국은 남성우월주의라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쿠르베의 <돌 깨는 사람들>은 방종하는 천재를 사회적 실천가로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이 그림의 진정한 신화화는 그림을 둘러싼 논쟁 보다는 2차 대전에서 파괴되었다는 점에서 강화되었다.) <화가의 작업실>은 훨씬 의미심장하다. 이 작품은 생산의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보여주기 때문이다. 생산의 두 의미, 과정과 표현은 그림의 표면 밖에 더 큰 사회적 모더니티의 형성에서 참여의 중심축이 된다. 노동의 실제성을 상실한 미술은 제작 과정에 대한 흔적으로만 남을 것이다. 1920년대 대량 생산에서 대량 소비로의 이동은 과정으로서의 생산에서 표현으로서의 생산으로 이동이나 마찬가지이다. 하부 구조와 상부 구조 사이의 연결고리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너무도 복잡해서 분석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다만 이러한 시각적 생산 방식에서 신성 불가침의 영역이란 없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최근에는 가장 원시적인 것처럼 생각되는 문화권의 예술도 서구의 생산 개념을 포섭한 것 같다. “우리는 서구식 사고의 범주를 초월해서 생각해야만 한다.” 미술에 대한 저술 측면에서, 작품의 제작과 독해가 모두 노동이라면, “독자가 갖게 될 단어를 찾아서 독자를 사로잡을 수 있는 표현을 저작물에 고스란히 담아내려고 애쓰는 일보다 노동자와 미술 노동자 모두를 명예롭게 하는 더 좋은 방식이 어디 있겠는가?” 노동자, 미술가, 미술 저술가, 관람객의 최적 4중주는 하나의 환상으로만 남아 있다. 공산주의가 공식적으로 몰락하고 이제 자본주의의 영원한 축제만이 펼쳐질 것 같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이 체제 안에서도 여전히 굶주림과 핍박의 문제는 줄어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데리다가 주장했던 ‘마르크시즘의 확고한 정신’을 재생해야 한다. 이것은 끊임없는 차이의 생산이라는 관점으로 생산의 문제를 들여다보는 우리의 실천으로 지탱될 수 있다.

상품

미술 실천은 결과와 과정 양측에서 모두 상품화되었다. 그 결과는 현대 미술의 상징과 물질 양측에 영향을 미쳤다. 이는 현대 미술이 세계를 보는 바, 그리고 세계 안에서 미술이 존재하는 바가 모두 상품화되었다는 말과 같다. 미술의 상품화는 가시성에 반비례하여 증가하였다. 이는 묘사가 표현으로 전환되면서 상품화를 은닉한 결과로도 볼 수 있다. 모더니즘 미술의 자율성이 강조될 수록 상품화가 전제조건이라는 사실은 감춰진다. 그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상품화에 차라리 솔직했다. 오늘날 미술이 비판적인 기능과 상품으로서 역할을 동시에 갖는 현상은 아이러니해보인다. 하지만 실상 미술은 그 양자 간의 사이에 있으며, 중재자 역할도 맡아왔다. 상품의 경제학적 용어는 재화이다. 경제학에서 재화는 늘 욕망에 비하여 제한되어 있다. 상품은 시장과 교환 맥락에서 재화의 구체적인 버전으로, 문화적 담론에도 발을 걸친다. 상품은 인류 초기부터 존재했던 것이지만 선물과 차이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상품과 선물은 경제학의 보편적 개념인 재화를 비판하는 맥락에서 논의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상품의 비판적인 사용에 있어 최고조는 68혁명 즈음이다. 보드리야르는 상품의 허상을 지적하며 모더니즘에 대립했다. 마르크스는 상품의 사용 가치와 교환 가치를 구분했다. 사용 가치가 잠식되고, 교환 가치가 모든 것을 지배하며 인간 관계 마저도 상품의 논리로 바라보게 하는 ‘상품 물신주의’를 지적했다. 마네가 현대적인 첫 번째 화가인 이유는, 사회적 공간과 상품의 공간을 효과적으로 분리했기 때문이다. 마네와 드가는 상품화된 세계로의 접근과 이에 대한 비평적 거리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상품 물신주의에 대하여 모더니즘은 관념주의적으로 회피했는가, 아니면 미술의 자기인식이라는 효과적인 대안이 되었는가? 이 문제는 미술의 자기인식, 그리고 미술을 통한 자기인식이라는 두 갈래 길을 보여준다. 벤야민은 미술의 종교적 위선을 폭로했지만 그의 추종자들은 기술복제를 통한 민주화라는 이상에 도달하지 못했다. 미술의 이론과 실천 모두, 점차 투자 시장의 상승과 그것의 궁극적인 지배로 귀결되고 있다. 천문학적인 작품 가격이 인구에 회자되는 오늘날 아방가르드를 자처해 온 비평적 힘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미술의 초상품화는 상품화의 요구를 형식적 타당함으로 인정하게 했고, 키치와 아방가르드 간 차이를 약화시키게 했다. 키치를 화랑으로 가져온 가장 성공적인 인물인 쿤스는 포스트모더니즘 미술가들의 주체성 개념을 함정에 빠뜨렸다. 주체성마저 상품화되어버린 오늘, 상품 체계로부터 얼마나 비평적 거리를 유지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된다. 만약 상품화에 저항하기로 했다면, 이제 키치나 프로파간다 같은 개념이 아닌 실제 바이올린이나 수프 깡통 같은 것을 들고 와야 한다.

수집 / 박물관☆☆☆

박물관은 과거 사물과 이미지를 통해 역사의 진화론적 발전상을 가상화한다. 박물관학은 종교, 심리학, 역사 편찬, 그리고 개인적이고 집합적인 지배 사이의 일치점을 만드는 것이므로 일종의 이념적 도구이다. 오늘날 박물관은 무엇이든 전시할 수 있고, 또 무엇이든 박물관 자체가 될 수 있는데, 이 속성으로 인해 수집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 위계가 발생한다. 또한 그 모든 수집품 가운데 미술은 가장 성공적이다. 미술은 박물관 기획의 도구이며, 박물관의 실천 그 자체이다. 하지만 미술의 이 도구성은 대체로 감추어져 있다. 박물관은 주체와 매개(복제) 구조를 공고히했다. 이 구조는 관람자를 특정한 모델로 이끌거나, 누군가를 찬양하도록 기획되었다. 새로운 인터랙티브 미디어는 박물관 구조를 바꾼 것이 아니라 그것과 병합되었다. 이것이 야기하는 박물관학과 미술사의 동시대적인 붕괴는 TV, 전화, 팩스, 컴퓨터가 점차 단일한 플랫폼으로 통합되는 경향을 닮았다. “박물관학적 공간에서는 오직 ‘환영’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어떤 ‘환영’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박물관은 주체(관람자)와 대상 사이의 차이가 대면하면서 끊임없이 절충을 이루는 불안정한 장소이고, 둘 사이의 타당화를 위한 극장이다. 그게 바로 박물관의 성공요인이다. “가장 폭넓은 의미에서 미술은 바로 서구 지배권의 세계 공통어 자체이다.” 서구 외로 간다는 의미는 과거, 즉 프롤로그로 간다는 의미이다. 오늘날 박물관학은 주차장 낙서를 포함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통약성의 종합적 도식으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세계를 유럽화하는 필수불가결한 도구로 자리매김했다. 박물관학은 단일 국가, 단일 민족 신화를 자연스럽게 훈육하면서 모든 개별적 정체성을 물질적 미적 특질로 정의할 수 있다고 전제한다.

가치☆

가치를 평가하는 비평/평론의 근간은 근대 철학에서 비롯되었지만, 비평은 절대적 믿음의 영향을 받지 않는 주관적 판단이라는 가치를 철학에게 물려주었다. 비평의 성역이 없어지자 비평마저 비평의 대상이 되었다. 가치는 대상이 아닌 주체에 있다. 근대 미술사에서 가치는 자아 비판적으로 사용되며, 상대주의 속에서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요즘 평가는 예술가 보다 오히려 다른 미술사가를 향한다. 가치는 객관적 대상이 아닌 상대적 주관들에 있다는 것이 이미 확인되었다. 따라서 가치의 문제는 상대적인 평가 속에서도 어째서 특정 예술 작품의 위대성에 대한 합의가 존재하는지를 밝히는데 있다. 부르디외는 개인에 의해 자유롭게 생성된 판단 내에 작용하는 권력의 사회적 협의를 간파했다. 니체는 선과 악의 구분이 지니는 허상을 간파했지만 예술의 사회학이 아닌 사회의 미학화를 꿈꿨다. 칸트는 무관심한 만족을 강조하며 자아와 세계, 윤리와 이성, 개인과 집합 간의 간극을 줄이는 미학의 가치를 발견했다. 이처럼 다른 방향들 속에서 무관심적 만족의 가치는 이것이 다른 사람들이 보고 평가하는 방식에 대한 함의를 줄 수 있다는데 있다. 미술사학은 가치의 역사성을 입증하였다. ‘문맥 속 예술’이라는 지역적 역사성을 재구축하는 일이 19세기 초기 미술사의 첫 번째 과업이었다. 이 과업의 전제는, 가치 확실성 측면에서 현재에 대해서는 알 수 없고, 진정한 예술은 모두 과거의 것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이같은 향수에서 벗어난 관점은 예술 경제학인데, 개인 수집가들은 값을 매길 수 없는 예술을 찬양하면서도 그 작품은 상속세의 메커니즘을 통해 상업성을 옹호한다. 프로이트의 페티시즘이 오늘날 미술사에 잘 부합하는 까닭은 페티시즘의 발현 자체가 눈, 시각 산물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페티시즘은 가치를 미술사를 위한 것이 아닌, 미술사에 반대하는 비평적 용어로 정의했다.” 가치에 대한 무수한 가설들은 예술 연구에서 피할 수 없다.

포스트모더니즘 / 포스트식민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은 표상 속의 표상 불가능한 것을 논한다. 서구 국립 미술관들이 앞다투어 전시한 제3세계 미술들은 오히려 그것을 전시하기에 가장 적합한 자로서 서양 주류 미술관들의 위치를 확고히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열린 물음, 열정 그리고 자유를 통해 미래의 가능성를 환대하는 역할을 한다.

시각문화 / 시각연구☆☆

시각문화는 공인된 예술을 넘어 모든 시각적 산물을 논하기 의하여 등장하였는데, 이는 단순한 수집벽을 넘어서 위계에 대한 역사적/사회적 분석으로 이어질 때 의미가 있다. 시각 연구는 예술의 특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시각 산물 공동체를 민주화한다. 시각 연구는 시각 산물에 대한 범위를 전 세계로 확장한다. 인류학은 미술을 도구로 인간을 이해하려 하고, 미술사는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인간 사회 활동을 분석한다. 시각 연구는 미술사와 인류학 양자 간의 사이 어딘가에 위치하는 분석적인 균형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시각 문화 연구는 보이는 대상에서 보는 과정으로 분석의 초점을 옮겼다. 또한 물질화 되지 않는 이미지로 관점을 확장했다. 어떤 의미에서 시각 연구의 ‘비물질화’는 ‘상업화’와 동의어이다. 현대사회에서 거대 기업에 의해 상업화로 장악되지 않은 구경 거리는 없다시피한데, 이를 전복하거나 문제제기하려는 시도가 시각 연구 분야에서 제기되고 있다. 전통적 미술사가는 학문적 권위에 사로잡혀 서구에 물든 비서구를 외면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렇게 되면 대중의 문화적 활동 대부분을 연구 주제로서 포기하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시각 연구는 비서구를 전근대에 고정시키려는 전략에 반기를 든다. 사실상 시각 연구의 최대 문제점은 모든 것을 위계 없이 다루고 있다는 광범위성에서 온다. 그럼에도 시각 연구에는 초점을 맞출 주제들이 산재한데, 새로운 라스베이거스 쇼나 소외된 자들의 문화적 풍경들이 예가 될 수 있다. 아마도 성조기는 시각 연구의 모든 주제를 다 건드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례일 것이다. 시각 연구는 미술사가가 예술 단독의 비유적 능력에 맞추었던 스포트라이트를 문맥을 구성하는 사물을 향해 돌려 놓는다. 중요한 것은 분석 방법/도구에 집착하지 않고 분석 대상이 되는 산물의 범위를 넓히는 것이다. “시각 연구는 우리가 즉흥성과 놀라움에 스스로를 열어 두기를 제안한다.”

예술의 사회사

예술 사회사의 조망은 외설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으며, 고립된 예술에 대한 환상이 깨진 오늘날 피할 수 없는 방법론이다. 사실상 조르조 바사리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미술사 서술에서 사회사를 포함하지 않는 경우는 없는 듯 하다. 간혹 사회사를 마르크스주의와 연결시키는 오해도 존재하는데 좌파와 우파를 가리지 않는 예술 사회사도 존재했다. 시선이 나타나는 지점은 제각각 다르지만 시선의 대상, 응시가 향하는 곳은 대체로 동일하게 유지된다(마네의 <폴리베르제르의 바>). 아르놀트 하우저도 그의 예술 사회사에서 너무나 관습적인 작품 선택으로 지적을 받았다. 이제 특권적 지위를 차지한 예술의 사회사는 시각 문화 연구와 겨루는 양상인데, 이는 과거 감식안과 예술 사회사 간 전쟁의 2차전 같은 양상이다. 예술 사회사와 시각 문화의 대결은 대상에 전념하는 것과 하나의 주제에 전념하는 것 사이의 격돌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둘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칸트의 무관심적 관조와 맞선다는 것이다. 예술의 사회사라는 관념을 가장 확고하게 지지했던 것은 19세기 유럽 학자들이었는데, 이는 당대 유럽의 영향력이 사회적, 역사적, 예술적으로 성취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작품들은 필연적이지만 한결같지 않다.” 예술의 사회사에서 모든 곳은 이제 ‘다른 곳’이며, 다른 곳이 되는 특별한 ‘거기’란 존재하지 않는다.

형상화☆☆☆

형상화는 물질적인 형태나 대상, 혹은 정확한 해석적 컨텍스트가 있다는 전제하에 우리가 실제적이라고 믿는 속성이다. 하지만 사실상 불변의 개념은 없고 대부분은 사회적 임의적 생산물, 즉 신화에 불과하다. 개념에 대한 서술은 각자의 차이점과 개인적 해석 사이에서 벌어지며, 서술자 마다의 차이는 개인적이고도 정치적이다. 시각 예술에 대해 대체로 우리는 예술, 비평, 역사라는 세가지 방식을 취한다. 예술은 믿음, 헌신, 그리고 명시적인 표현의 방식이다. 비평(이론)은 의구심과 역설의 방식이다. 역사는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냉정한 판단과 관찰의 방식이다. 우리는 이 중 하나를 선택하거나, 혼용하거나, 동시에 작동하거나, 어쨌든 상호 연결시킨다. 이를 혼용한다는 것 자체가 전임자들과 다른 우리 세대만의 집단적인 정체성의 일부가 된다. 이것이 우리가 경험주의적, 실증주의적, 객관적 등의 꼬리표에 찬사를 보내지 않는 이유이다. 이제는 예술가도, 역사가도 나름의 방식으로 비평한다. 또한 비평가도, 역사가도 나름의 방식으로 예술가가 된다. 담론을 만드는 사람은 스스로 연구 대상과 컨텍스트를 구성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저자/제작자는 매체를 사용함으로써, 매체 그 자체를 변화시킨다.” 그 결과는 실질적이므로 책임감을 지님이 마땅하다.

명언 수집

이데올로기로서의 모든 표상은 본래의 가치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어떤 ‘혐의’가 있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데이비드 서머스

그림에 대해서 기술하는 것은 그림을 재현하기 보다는 그림에 대한 사유를 재현하는 것이다.

마이클 박산달

서사는 바로 인간의 역사로부터 시작했고, 서사 없이는 사람들이 존재하지도 못한다.

롤랑 바르트

모든 회화는 몸의 회화이다.

제임스 엘킨스

양식은 엄격하게 논리적인 방식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그리고 양식은 완벽하게 구분되는 특정 집단들로 체계적으로 분류되는 일에 저항한다.

마이어 샤피로

미술품을 수집하여 본래 용도의 무효화를 선언하는 것보다 미술품의 무용성을 주장하기 더 쉬운 방법은 없다. 미술품을 사회적 목적과 구별하지 않은 채 옮겨 놓고는 사회는 그것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런 일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앙투안 크리스조스톰 카트르메르 드 캥시

무에서는 어떠한 것도 얻지 못한다.

앵그르

이상하고 비합리적인 대중은 화가로부터 가능한 최고의 독창성을 요구하지만, 그들은 화가가 다른 모든 이들을 닮지 않는다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고갱

미술사에서 미술이라는 경기의 규칙은 전통을 제외하고는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전통은 미술품이 무수히 많은 배치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데이비드 캐리어

개별 회화를 하나의 자족적 대상이라고 말하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있는 관행이다.

데이비드 캐리어

현대 미술관 안에서 화려하게 고립되어 있는 그 대상은 미술사학자의 서사 속에서 기술된, 더 큰 전체의 한 파편일 뿐이다.

데이비드 캐리어

하나의 미술품을 미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이 다른 방식으로 바라본다는 것을 결코 배제하지는 않는다.

데이비드 캐리어

미술사가의 임무는 구조주의와 유미주의의 양쪽 모두의 관심사를 정당하게 다루는 것이다.

데이비드 캐리어

현대 생활의 가장 심층적인 문제는, 압도적인 사회의 힘과 대면해서 개인의 실존이 갖는 개별성과 자율성을 보존하려는 욕구로부터 나온다.

게오르그 짐멜

돌은 지속성에 대한 헛된 인식, 생명에의 거짓 확신을 준다.

루이스 멈포드

몸의 재현이 표면에 부상하는 방식이야말로 시각 이미지와 오브제를 제작하고 지켜보는 우리 욕망의 배후에 자리한 가장 기초적인 동인이다.

아멜리아 존스

내가 몸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내가 대상으로서 보일 수 있으며, 반대로 내가 주체로 보일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다고 말하는 방식이다.

모리스 메를로-퐁티

몸과 예술 작품은 앎의 불가능성을 드러낸다.

아멜리아 존스

우리는 몸의 재현을 만들거나 바라보는데, 왜냐하면 어떤 층위에서 우리는 존재의 깊이를 간직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아멜리아 존스

우리는 미가 선이나 정의와 충돌할 때조차도 이 개념에 대한 사랑을 멈출 수가 없다. 그러한 충돌 앞에서 일종의 자기혐오를 느낄 때조차도 말이다.

이반 캐스켈

모더니즘은 아름다움의 추방을 이끄는 플라톤적 두려움의 최근 사례일 따름이다.

이반 캐스켈

미는 오로지 하나의 유형만 가지고 있다. 그러나 추는 무수히 많은 유형을 가지고 있다.

빅토르 위고

미와 추, 양자는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의미들을 분절한다.

니나 아탄소글로우-칼미에르

예술가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조형 형태 그대로 복사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리처드 마이어

현실은 변화하므로, 현실을 재현하기 위해서 재현의 방식 또한 변화해야 한다.

베르톨 브레히트

미술 작품의 교환 가치는 수프 깡통 같은 것의 가격보다 주가의 등락과 훨씬 더 가깝고 비슷하다.

마이클 카터

박물관학적 공간에서는 오직 ‘환영’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어떤 ‘환영’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도널드 프레지오시

가장 폭넓은 의미에서 미술은 바로 서구 지배권의 세계 공통어 자체이다.

도널드 프레지오시

미술을 넘어서는 길을 생각하는 일은 인간을 넘어서서 생각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도널드 프레지오시

작품들은 필연적이지만 한결같지 않다.

크레이그 클뤼나스

비평가로 행동하는 것은 정체성의 안정성을 의심하는 것이며, 추론과 결말에 질문을 던지면서 연구 대상을 향해 역설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리처드 시프

저자/제작자는 매체를 사용함으로써, 매체 그 자체를 변화시킨다.

리처드 시프

로버트 S. 넬슨, 리처드 시프(편저)의 「꼭 읽어야 할 예술 비평용어 31선」”에 대한 답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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