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전국 논증적 글쓰기 대회(에 자신만만하게 도전했다가 탈락한 이야기)

쥐뿔도 없이 태어나 논증적 글쓰기와 말하기 능력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이 대회 소식을 들었을 때 참 좋은 기회라고 여겼다. 무조건 참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만 16세 이상 전 국민을 대상으로 3,000명을 모집해 양일에 거쳐 온라인 예선을 치렀다. 나는 1차 시험일에 접속해 1시간 3분 만에 1,200자 답안을 작성해 제출했다. 두 개의 질문 중 하나를 택하는 방식이었는데, 그중에서 비대면 진료 관련 질문이 내가 평소에 생각을 정리해 두었던 주제라 행운이라고까지 생각하며 술술 써 내려갔다. 예선 참가자 중 100명은 본선에 진출하여 국립중앙박물관에 모여 시험을 치르게 되는데, 이 정도 답안이면 당연히 본선에는 들어가리라 생각했다. 20여 년간 논증하는 말과 글로 먹고 살아온 내가, 그간 숱한 논문과 보고서를 통해 논리의 칼날을 벼려온 내가, 약 10년간 독보적인 문화예술서평 전문 블로그인 juilkim.com의 수석 에디터로서 400편의 글을 발표하며 세상과 소통해 온 내가 100명 안에도 들지 못하리라는 생각은 도저히 들지 않았다.

오만방자함에 대한 벌이었을까, 본선 진출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채점표를 받아 보니 45점 만점에 42.0점(백분위 기준 93.3점), 상위 4.8%에 해당하는 점수였다. 3,000명 중 상위 4.8%면 144명 수준이니, 확실히 본선 진출선인 100명에는 못 미친다. 충격이다. 굴욕이다. 수치심을 감출 길이 없다.

도대체 어디서 감점된 것일까? 채점표를 자세히 살펴봤다. ‘다른 입장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단다. “다른 입장을 제시하고 있으나, 비판적 검토나 대응이 다소 간략하여 논의의 깊이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단다(3.0/5.0). ‘문장과 어휘’도 부족하단다. “문장이 대체로 자연스럽고 어휘 사용도 대부분 적절하나, 일부 논증에 어울리지 않은 어색한 문장과 어휘가 나타”난단다(4.0/5.0). 이렇게 부끄러울 수가. 다른 항목들은 모두 만점이었다.

오호통재라, 채점의 3대 영역 및 9개 세부 기준 중에서 딱 두 군데의 감점이 본선 진출의 당락을 갈랐다. 국립국어원이 발주하고 서울대학교 국어교육연구소가 개발한 엄정한 채점 기준을 따른 결과이니 받아들여야겠지.

그렇게 자책으로 잠 못 이루며 뒤척이던 차에 연구소 측에서 이메일 한 통을 보내왔다. 상위 200명에 해당하는 참가자를 대상으로 추가 채점을 진행해서 100명을 선발해야 하는데, 시스템 재접속 기록을 오인한 연구소 측에서 나를 부정 접속자로 간주하여 추가 채점 대상에서 배제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본선 진출 기회를 부당하게 박탈한 셈이 되었다며 사과의 뜻과 함께 본선 진출자에게 제공하는 기념품을 보내 줄 터이니, 그거라도 받고 다친 마음을 달래라는 것이다. 마음은 이미 다쳐 회복할 길이 없고, 연구소 측 실책을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평생 몰랐을 텐데 이제 와서 왜 알려주는 것인지 의문스럽고, 이렇듯 복잡한 심경 속에 또 기념품은 도대체 무엇인가 궁금하기도 하여 주소를 적어 보냈다. 비굴한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아 주소를 적어 보내는 이메일에 그 어떤 원망도 감사도 표명하지 않은 채 건조하게 주소만을 적어 보냈다. 이쯤 되니 이 연구소가 착한 건지 나쁜 건지, 유능한 건지 무능한 건지 진심으로 헛갈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중요한 건 나의 수상 여부가 아니다. 이 채점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글이 어떤 매력과 생명력을 지니게 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1,200자의 한도 안에서 9개 기준을 모두 충족하여 만점을 받은 글은 정말로 논증적 글쓰기의 성좌에 우뚝 솟아올라 영생복락을 누리게 될 것인가?

일단 올해 대회가 전국 단위의 첫 대회인지라 과거의 수상작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올해 대회의 수상작이 공개될 예정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만점을 받은 수상작이 어떤 모습일지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한다. 어쨌든 탄탄한 짜임새를 지닌 대단한 작품이리라 예상된다. 그런데 논리적 짜임새를 차치하고, 그 글이 어떤 매력을 지녔을까를 예상해 본다면, 그다지 기대감이 고조되지는 않는다. 제한된 지면 안에 9개 세부 기준을 완벽한 균형성으로 충족한 작품이라면, 그건 마치 최첨단 AI 기술로 생성한 3D 아바타 같은 존재가 아닐까. 도자기처럼 매끄러운 피부와 흠잡을 데 없는 비례로 무장했으되, 그 어떤 생명력도, 흡입력도, 교감의 여지도 존재하지 않는 차가운 데드마스크 같은 아름다움이 아닐까.

물론 이 대회의 취지는 오직 논증적 글쓰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공인된 평가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표준화된 채점 기준을 마련해야 하고, 그것을 검증하거나 고도화하기 위해서는 논증적 글쓰기의 다양한 예시들이 필요하다. 여러 글을 쌓아 놓고 세부 기준에 맞추어 평가하다 보면, 기준의 항목이나 가중치에 미세 조정이 일어날 수 있고, 그 과정을 반복하면 보편적 합의에 가까운 ‘궁극의’ 기준과 채점 방법론이 개발될 것이다. 이 과정의 기초 자료 수집을 위해 막대한 연구비를 투입해 이런 대회를 추진할 필요성이야 충분하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매력적인 글이 무엇인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읽고 싶은 글은 정형화된 구성요소에 옴짝달싹 못 하게 속박된 글이 아니라, 살아 숨 쉬며 생동하고 꿈틀거리면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글이다. 활자를 인터페이스로 삼아 완벽과는 거리가 먼 다중의 인격체가 서로 뒤섞이며 교감하는 글이다. 이런 생명력 넘치는 글이 표준화된 글의 이데아와 나란히 맞물려 교육과정 전반에 녹아들어야 한다. 논증적인 글이라도 불완전한 생명력이 결부되어야 오랜 시간에 걸쳐 파급력과 흡입력을 갖출 수 있다. 매력 없는 차가운 논증은 한순간 반짝 점멸하다 이내 사라진다.

생성형 AI의 역량이 날이 갈수록 눈부시게 발전하는 오늘날, 인간만이 쓸 수 있는, 아니 써야만 하는 글이란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교과서적인 규준에 정확히 짜맞춘 글은 지금도 이미 AI가 더 잘 쓴다. AI가 가장 잘하는 일이 평균에 수렴하는 것이다. AI는 매순간 통계적으로 가장 타당한 구성과 어휘를 선택한다. 그렇게 알고리즘이 써 내려간 글은 수천수만 건의 논증적 글쓰기 무더기 가운데서 가장 이상적인 요소들만을 추출해 재결합한 글쓰기의 이데아에 가까워진다. 최고의 미남미녀 신체 각부에서 가장 이상적인 요소들을 추출해 평균값으로 환원해 붙여 놓은 형상과도 같다. 그것은 분명 아름답지만, 평균 회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조화와 비례 속에서 어딘지 모르게 살짝 어긋나고 모난, 그래서 더 보고 싶고 기대감이 부풀게 하는 예측 불가의 매력을 전혀 제공하지 못한다.

평균 회귀의 함정에서 벗어나 예측하지 못한 미지의 샛길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글, 그래서 순간 마음이 불편해져도 도저히 시선을 뗄 수 없는 그런 글은 오직 인간만이 쓸 수 있다. 논증적 글쓰기 대회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지점, 즉 글 쓰는 능력에 대한 평가가 객관식 중심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대체하는 그런 세상이 오게 하려면, 교과서적 기준에 정확히 짜맞춘 글을 쓰는 능력을 함양해야겠지만, 동시에 오직 인간만이 쓸 수 있는 매력적인 글이 무엇인지에 관해 풍부한 사례를 제공하고, 각자 장점과 매력을 살려 자유롭게 훈련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 각각 고유한 매력을 지닌 아름다운 인격체 한 사람 한 사람을 망치와 정으로 애써 다듬고 깎아 평균 회귀 일변도로만 치닫게 하는 교육은 절대로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다. 그럴 바에는 그냥 지금처럼 객관식 수능을 치르게 두는 편이 더 낫다. 오직 인간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위해 풍성하고 다채로운 글의 열린 생태계를 촉진해야 한다.


코로나19 당시 K-방역 성과가 보여주듯 우리나라는 세계적 의료 선진국으로 성장하였으나, 이러한 성장의 이면에 어두운 그림자도 감지된다. 지역 인구소멸과 의료진 수급 불균형으로 평균적 의료 접근성 수준의 저하와 더불어 지역 간 접근성 격차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 정부는 의사 수를 충원하고 지역의료 현장으로 재배치하는 대안을 제시하였으나, 의사단체의 반발에 가로막혀 개혁이 멈춘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할 대안으로 비대면 진료의 확대가 거론되고 있다. 비대면 진료는 ICT를 활용하여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원격으로 진단 및 처방함으로써 실제 대면 진료와 동일한 효력의 치료 효과를 창출하는 의료 행위를 말한다. 비대면 진료는 편리성, 접근성, 효율성 측면에서 이점이 명확하나, 오진 및 과잉 처방 우려, 의사 단체의 반대 등에 가로막혀 관련 제도 개선은 더딘 상황이다. 비대면 진료를 확대해야 할 필요성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지역 의료 접근성을 개선할 수 있다. 현재 비수도권 대다수 지역은 인구소멸의 위기를 겪고 있으며, 의사들도 비수도권 근무를 기피함에 따라 비수도권 주민들은 적절한 의료 조치를 받을 기본권을 침해받고 있다. 이들에게 비대면 진료는 경미한 질병이나 만성질환에 대한 일상적 처방의 접근 효율성을 높이는 실효적 조치로서 가치가 크다.

둘째, 의료 비용 부담을 경감할 수 있다. 비대면 진료는 환자가 병원을 오가는 시간이나 교통비 등 부대 경비를 실질적으로 절감해 줌으로써 의료비 지출을 실질적으로 낮추는 효과가 있다. 또한, 비대면 진료는 도입 초기에 경증 및 만성질환 중심으로 허용될 가능성이 큰데, 관련 진단이 비대면으로 신속하게 처리된다면, 병원 내에서 대기, 안내, 접객 등에 소요되는 비용의 절감을 통해 건보료 수가를 낮추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셋째, 의료 연관 산업을 지역 곳곳으로 확산함으로써 지역균형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지역 의료가 붕괴함에 따라 처방과 연관된 약국, 의료기기, 숙식 등 파생 산업도 대형 병원 인근에만 밀집되어 발전하는 양상이다. 비대면 진료로 의료행위와 파생산업 간의 지리적 밀접성에 제약이 완화된다면 지역 전반의 의료 연관 산업 생태계도 균형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이상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비대면 진료가 불러올 부작용에 대한 우려는 나름의 설득력이 있다. 따라서 주요국 사례를 철저히 분석하여 비대면 진료에 적합한 진료 항목 및 병증을 중심으로 시범 도입한 이후 성과 평가를 거쳐 점진적으로 확산하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최첨단 ICT 인프라 및 활용도를 자랑하며, 의료 체계가 충분히 성숙한 우리나라가 민관 및 의료계의 역량을 모아 비대면 진료를 준비한다면, 의료 접근성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소하고 국민 건강 증진을 뒷받침할 값진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것이다.


No Day But Today에서 더 알아보기

구독을 신청하면 최신 게시물을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

답글 남기기

워드프레스닷컴에서 웹사이트 또는 블로그 만들기

위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