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프강 카이저의 「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Wolfgang Kayser, Das Groteske: seine Gestaltung in Malerei und Dichtung

앎의 경계를 확장하는 그로테스크

초중반부터 이 책의 제목이 왜 “미술과 문학”인지 의문스러웠다. 미술보다는 문학의 비중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문학도들보다는 미술 애호가가 더 많을 터이니, 그 시장 규모에 편승하려 “미술”을 앞세운 것일까? 역자와 번역 출판사의 농간인가? 그들의 농간 탓에 이 책이 공공 도서관의 미술 코너에 꽂히게 되었고, 양질의 미술책을 찾아 벌건 눈으로 책장 사이를 누비던 내가 낚인 것인가? 그렇지 않다. 원제를 번역해 보니, 원제도 역시 “미술과 문학(Malerei und Dichtung)”이었다.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은 저자에게 있었다.

인문학의 쓸모를 제대로 보여주는 책이다. 인문학은 이렇게 실생활에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개념을 저 깊은 연옥에서 길어 올려다가 지지고 볶고 조리고 튀겨 낱낱이 해체해 가루로 빻았다가 다시금 반죽해 식탁에 올리곤 한다. 그로테스크의 어원, 의미, 용례 따위를 전혀 숙고해 보지 않아도 한 세기 남짓의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으며, 심지어 지적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에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 우리는 이미 본능적으로 그 용어의 쓰임을 잘 알고 있다. 어떤 대상을 보며, ‘와, 저거 진짜 그로테스크하지 않아?’라고 말하면, 누구라도 ‘와, 진짜 그렇네’라며 대꾸해 줄 것이다. 발화자나 청자나 그 용어 사용의 적절성에 대해 굳이 토를 달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인문학자는 그 개념을 열쇠와 나침반으로 삼아 숱한 텍스트의 지면을 주저함 없이 항해해 나간다. 어수룩하게 뭉뚱그려진 그로테스크의 유형을 세분화하고, 유형에 맞는 판단 기준을 세우며, 각 텍스트가 어느 칸막이에 들어가는지, 아니면 아예 용어의 세계관 밖에 위치하는 것인지를 분별해 낸다. 분류 작업의 논리를 세우고, 독자를 설득하며, 설득되지 않는 독자와는 장외에서 2차전 3차전을 벌인다. 그렇게 오가는 핑퐁 속에 어수룩했던 용어는 서서히 가다듬어지고 어느덧 추상적이었던 모호한 관념들을 담아내기에 부족함이 없는 적실한 그릇이 된다. 관념이 텍스트를 통해 용어를 낳고, 용어가 텍스트가 되어 관념을 추스른다. 이러한 순환 속에 사고의 폭이 넓어지며, 소통의 가능성도 확장된다. 이것이 인문학의 쓸모다.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문학비평가 볼프강 카어저(Wolfgang Kayser)는 숱한 문학 용어 중에서도 그로테스크에 집중했다. 어원은 동굴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그로타(grotta)였다. 15세기 말에 로마를 비롯한 이탈리아 대륙 곳곳에서 기원 전후 무렵에 제작된 기괴한 장식미술이 다수 발견되었는데, 그것들을 발굴했던 장소가 주로 동굴이었기에 ‘라 그로테스카(La grottesca)’, ‘그로테스코(grottesco)’ 등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 장식은 기괴하게 뒤엉킨 넝쿨이나 잎사귀와 같은 식물을 도식적 문양으로 표현한 형태가 이루었고, 자연에서 일상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동물이나 인물이 상상 속 괴수와 결합된 듯한 기괴한 존재도 듬성듬성 나타났다. 고대 그리스-로마의 미적 규범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근대적 사고가 한참 무르익으려 하던 차에, 이렇듯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환상의 형체가 고대부터 활발히 표현되었다는 사실은 당시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자연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관찰하여 실증적으로 표현하는 것만이 고대의 미적 이상에 다가가는 일이라고 여겼는데, 기괴하면서도 시선을 사로잡는 환상적인 미의 세계가 견고한 규범적 미와 병치되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혼란을 안겼다. 그 충격을 일컫는 용어가 그로테스크가 되었고, 이 개념은 미술, 문학, 연극 등 다양한 매체에 적용되며 유럽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그로테스크와의 조우는 지진을 경험하는 것과도 같다. 나는 진도4 정도의 지진을 30km 떨어져서 경험해 본 것이 전부라 지진의 감각을 설명할 재간이 없지만, 강한 지진을 몸소 경험한 사람들의 진술에 따르면, 그것은 생존의 근간을 뒤흔드는 사건이라고 한다. 3차원의 현상계를 살아가는 우리는 견고하게 발을 딛고 선 대지의 존재를 좀처럼 의심하지 않는다. 아무리 강한 비바람이 불어닥치고, 공간을 구성하는 물질들이 주변을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감정을 총체적으로 뒤흔드는 일생일대의 사건이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내가 발을 딛고 있는 대지는 최후의 보루가 되어 견고하게 나를 지지하고 있기에, 이 세계에 대한 총체적 신뢰는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된다. 그 믿음을 기반으로 정신 줄을 놓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강한 지진을 경험하게 되면 그 최후의 보루가 무너져 내린다. 이 세상에서 나를 지탱하던 견고한 근거가 한순간에 푹 꺼져버리거나, 갈라지거나, 심지어 나를 집어삼킬 수도 있다는 공포가 싹트게 된다. 그것은 한순간 스치고 지나가는 말초적 공포가 아닌, 존재의 존립 기반 자체를 뒤흔드는 총체적 공포다.

그 정도로 생경한 감정을 유발하는 것이 그로테스크다. 기괴하고, 기이하고, 뒤틀리고, 왜곡되고, 뒤섞이고, 우스꽝스러운 것을 우리는 그로테스크라 부른다. 그것은 시각예술 부문에서 그로테크스를 하나의 완성된 장르로 옹립한 히에로니무스 보쉬(Hieronymus Bosch)와 소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hel the Younger)이 보여준 현기증 나는 환상과 묵시록의 세계다. 거기에는 분명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세계와 개체가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시각적 정보들을 익히 알고 있던 사전 지식과 결합해 어떠한 맥락에서 배치된 것인지를 빠르게 파악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 익숙한 인물과 동식물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괴물들과 결합했거나,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상황적 맥락과 결부되어 있다. 아니면 자기들끼리 융합되어 제3의 존재가 되었다. 이러한 이질성으로 인해 회화 속 세계관에 대한 이해의 가능성은 일순간 차단되며, 감정적으로도 분리된다. 익숙했던 세계가 단박에 생경해지며, 아득한 상상과 미지의 세계로 급격히 내던져진다. 지진이 신체에 가하는 충격만큼이나 강한 자극으로 인해 이성적 판단이 정지한다.

이 대목에서 누군가는 예술 작품을 통해 전달되는 그로테스크가 그 정도의 생경함과 충격을 가져올 수 있다는 장황한 설명 자체가 심각한 과장법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아마 이렇게 반박하는 사람은 ‘스탕달 효과’라는 말에 대해서도 비웃을 것이다. 물론 과장법일 수 있다. 하지만 그로테스크의 효과를 이해하려면, 몇 가지 상대성을 충분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선, 작품을 수용하는 감각적 섬세함에 개인차가 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동일 문화권의 구성원이라도 특정한 작품에서 같은 수준의 반응을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는 타고난 기질, 고유한 경험, 선입견이나 가치관 등에 따라 같은 작품이라도 완전히 다르게 반응한다. 그로테스크를 받아들이는 충격의 개인차는 거기서 비롯된다.

둘째, 시대와 문화권의 차이에 따라 그로테스크 수용에 상대성이 존재한다. 초고속 정보통신 네트워크에 의존해 고품질의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즐기는 오늘날, 우리가 감지할 수 있는 그로테스크의 역치는 이미 대기권을 뚫고 저 먼 은하계까지 뻗어 올라가고 있다. 최근에는 생성형 AI까지 무차별적으로 기성 이미지를 조합해 싸구려 포스터 따위를 대거 양산해 내면서 그로테스크 자체가 시각문화의 일상적 장르가 되어 가는 모양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보쉬니 브뤼헐이니 하며 그로테스크의 선구자들에 대해 침을 튀겨 가며 설명해 봤자 감각적으로 체감하는 생경함과 기이함의 수준은 현저히 낮을 수밖에 없다. 에일리언의 주둥이 속 주둥이가 사람의 뒤통수를 뚫어 버린다던가 가면 쓴 싸이코가 전기톱으로 신체를 갈가리 찢는 장면을 4K 화질과 돌비 서라운드로 감상하던 감각계가 보쉬의 지옥도 속 괴물을 본다면, 당연히 충격은커녕 오히려 귀여운 캐릭터쯤으로 인식할 수도 있다. 보쉬의 괴물은 사시사철 해 뜨면 밭일하고, 해 지면 하릴없이 잠자리에 들던 15세기 말 농부의 시선으로 보아야만 그로테스크로 체험할 수 있다.

그로테스크의 개념과 용례 자체가 이러한 상대성을 여실히 증명한다. 17세기 프랑스의 아카데미 사전은 그로테스크를 오직 기이하고 괴상한 것으로만, 즉 부정적 개념으로만 정의했다(33p). 하지만 18세기 캐리커처 붐이 그로테스크를 미학적 범주로 진입시켰고, 특정한 대상이 지닌 세부적 성향이나 특성을 강조하는 그로테스크의 순기능에 주목했다. 또한, 그로테스크를 통해 현실을 색다른 관점에서 조명하고, 나아가 권력 및 권위의 완고함을 완충하면서 자유로운 표현의 공간을 확보하는 데 기여하는 민주적 역할에 주목하기도 하였다. 물론 캐리커처가 일상화된 오늘날에는 그것을 그로테스크의 범주에 넣기 어려울 것이다. 이 또한 시간의 흐름에 따른 개념의 상대성을 보여준다.

이성적 합리주의가 득세하면 그 반대급부로 그로테스크가 부상한다. 중세 말에 견고했던 가톨릭의 권위가 누그러지면서 대중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요한계시록의 시각적 이미지들이 회화의 주요 소재로 자리를 잡게 되었고, 여기서 분출하는 시각적 비전이 그로테스크 회화에 풍성한 재료를 제공하였다. 18세기 신고전주의의 득세는 합리성과 이성을 예술 창작의 중심적 가치로 끌고 왔지만, 그 반대급부로 감정과 본능에 충실한 낭만주의가 부상하게 되었으며, 그 주재료는 그로테스크였다. 그로테스크가 창조한 비이성적 세계는 합리적 이성을 중요시한 아카데미와 대립하며 시대의 미적 생태계에 균형을 맞추었다. 이처럼 그로테스크는 디오니소스적인 일탈의 감각이 소진될 때마다 부활하며 시대의 미감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그 어느 시대에도 한쪽으로만 완전히 치우친 미감으로는 구성될 수 없으며, 어떠한 권위를 지닌 제도 기관도 어스름한 꿈결에 불현듯 솟아오르는 그로테스크를 완전히 억압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로테스크는 어떻게 그 효과를 발휘하는가? 우선, 냉담해야 한다. 기괴함 속에 감정을 배제한 채 해석의 방향을 시사하지 않아야 하며, 이를 통해 독자는 해석할 수 없는 심연과 모순을 맞닥뜨려야 한다. 또한, 구체적 서사와 인과관계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 그로테스크를 예측할 수 있거나 패턴이 읽힐 정도로 만성화된다면 효과가 떨어지게 된다. 그로테스크는 불현듯 찾아와야 한다.

결론적으로 그로테스크는 우리 이해 범위 밖의 이름 없는 허상이다. 그것은 생경해진 세계이므로 우리는 그 앞에서 할 말을 잃고, 그저 기이함의 감각에 몸을 맡기게 된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인간은 생경함에 영구히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는 어떻게든 그 기이한 대상에 이름을 붙이고, 인과관계를 추적하고, 삶의 일상적 순간들에 접붙인다. 그것은 대단히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판명된 생존 본능이다. 앎의 동굴 밖에는 오직 이름 모를 포식자들만 득실거리므로, 미지의 대상에는 어떻게든 이름을 붙여 앎의 지도에 표시해 두어야 한다. 그것이 그로테스크의 쓸모이다. 기이한 무언가에 그로테스크를 명명함으로써 우리는 그 기이함을 이해하는 첫발을 내딛게 된다. 이름을 붙이는 그 순간이 우리의 인지 범위가 확장되는 출발점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 대상을 온전히 이해하게 되면, 그로테스크의 이름표는 떼어져 언젠가 도래할 새로운 미지의 대상을 기다린다. 즉, “그로테스크의 창작은 현세에 깃들어 있는 악마적인 무언가를 불러내고 그것을 정복하는 일이다(280p).” 앎의 욕망이 심해와 우주까지 팽창하고, AI가 기하급수적으로 새로운 발견을 부추기고, 두뇌의 작동 원리가 한 꺼풀씩 베일을 벗는 오늘날, 오직 인간만이 창조해 낼 수 있는 그로테스크의 쓸모는 더욱 주목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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