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나뎃 머피의 「반 고흐의 귀: 미스터리를 풀기 위한 7년의 여정(2017)」

수많은 ‘반 고흐 미디어’들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그의 본질을 제대로 보고 있기는 한 것일까? 오늘날 엽서, 책, 영화, 뮤지컬, 우산, 휴대폰케이스, 올드팝으로 승화된 고흐는 그야말로 낭만의 아이콘, 그 자체이다. 현대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 개인에게 헌정된 미술관으로는 유일한 세계 10대 미술관을 보유한 화가(방문객 수 기준), 가장 많은 미디어가 다루고 있는 화가, 가장 비싼 화가 등의 수식어로 점철된 그의 이름은 ‘광기와 죽음’이라는 신화에 빚을 지고 있다. 먹고 살기 위해, 손가락질 받지 않기 위해 사회적 규준이라는 비좁은 상자에 억지로 몸과 마음을 끼워 맞추어가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은 ‘요절한 천재 예술가’, ‘광기에 휩싸인 아방가르드’와 같이 스스로와 180도 대척점에 존재하는 이들에게 과도할 정도로 열광한다. 심지어 ‘요절한 그냥 예술가’도 알고 보니 천재였더라, 식의 이야기로 귀결되는 것을 보면 씁쓸하기까지 하다. 여전히 아폴론의 서구식 합리주의가 공고한 세상 속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디오니소스를 꿈꾸지만, 진짜 그것을 실행하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 가로막힌 무수한 욕망들이 반 고흐 같은 낭만의 투사들에게 투영되어 대리만족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고흐 관련 컨텐츠를 의도적으로 회피해왔다. 고흐에 관한 지식은 너무나 많이 퍼져있고, 치기 어린 전문가들도 여기저기 판치는 지라, 그 무리 속에 숟가락을 얹고 싶지 않다는 막연한 저항의식이 발동했다. 보쉬나 엘 그레코에 대해서 공부하는 편이 차라리 더 가치있어 보였다. 하지만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른 그날 밤 사건에 대해 무려 454페이지를 할애한 이 책은 뭔가 달랐다. 뭔가 좀 더 깊고 풍부한 통찰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 같았고, 그 기대는 무너지지 않았다.

저자 버나뎃 머피가 반 고흐에 관한 진실에 접근하는 방식은 마치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제작진을 연상케 한다. 하나의 작은 실마리를 놓치지 않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어느덧 최적의 합리적인 추론이 가능한 지점에 도달한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제작진이 최종 판정을 내리지 않고, 가장 합리적인 추정 단계에서 시청자에게 최종 판단을 유보하듯, 이 책의 저자도 다양한 관점과 지식을 폭넓게 검토하고 반 고흐의 광기어린 그 사건에 대한 가장 믿음직한 사실을 독자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다.

고흐가 자른 귀는 오른쪽인가, 왼쪽인가? 귀를 자른 칼은 어떤 칼인가? 귀를 받은 그녀는 정말 ‘창녀’인가? 등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질문에 답변하는 저자의 성실한 자세는 모든 지식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자크 데리다의 해체에 견줄만 하다. 관성을 거스르는 것은 정말로 어렵다. 이유를 댈 필요도 없이 관성에 따르는 것이 너무나 편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머피는 고흐에 관하여 알려진 수천종의 문헌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며 지적 관성을 거스르는 모험을 택했다. 그렇기에 이 책을 통해서 고흐의 그날 밤 사건에 대해 새롭게 드러난 사실들은 미술사적 가치는 말할 것도 없고, 인류학적/정신병리학적/문헌정보학적/연구방법론적 가치를 획득한다.

고흐가 귀를 준 그녀, ‘라셸’을 추적하는 과정, 1888년의 아를 거주 주민 거의 대부분을 데이터베이스화하고 거기서 유력한 후보들을 발굴하는 과정, 각종 관공서 및 미술관의 문서고를 뒤져서 먼지 쌓인 진실을 건져올리는 과정을 지켜보며 저자와 함께 퍼즐을 맞춰나가는 시간은 한 편의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고흐의 이야기와 저자의 진실 추적기가 ‘액자 속 액자’ 구성으로 펼쳐지며 흥미를 유발한다. 특히 그저 아를에서 식당이나 카페를 운영하던 사람들, 심지어 지나가던 목동이나 관련 인물의 사촌들까지도 생몰연도가 표시되는 대목에서는 저자의 정보 수집 성과에 대한 감탄과 존경이 절로 일어난다. 이 사람들은 고흐가 1년도 채 안되는 기간 동안 거주한 그 지역에 그저 공존했다는 이유만으로도 마치 위인의 반열에 오른 듯 영원히 역사에 남게 된 것이다! (나도 누가 그렇게 기록해줬으면…)

저자의 치밀한 연구 흔적은 주(註)에서 또렷하게 확인할 수 있는데, 모든 주가 미주로 처리되었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단순한 출처는 미주로, 보다 풍부한 부가정보는 각주로 처리하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마도 이 책을 ‘학술적인 문헌’ 보다는 ‘감성적인 미술책’ 쪽으로 포지셔닝하여 보다 많은 독자층에 소구하는 것이 출판사의 의도였을 것이다(원서 디자인은 못봤기 때문에 어느 출판사의 의도인지 식별하는 것은 불가능함). 고흐의 얼굴이 클로즈업된 자화상과 분홍/하양이 면과 면으로 병치된 표지 디자인도 그러한 의도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그러한 마케팅 의도에 의하여 보석같은 저자의 보충설명들이 미주로 쫒겨나 계속 앞뒤를 왔다갔다해야 하는 불편이 야기되었다. 실제로 이 책을 읽는 동안 본문과 주에 각각 하나씩, 총 두 개의 책갈피를 사용해야 했다.

이 책에서 새롭게 밝혀진 사실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지만, 적절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이 책이 하나의 반전에 기둥뿌리가 흔들릴 스릴러 소설은 아니다. 다만 신화에 점철된 고흐가 아닌, 위태로운 한 인간으로서 고흐의 심연에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다가갈 예비 독자들을 위한 즐거움은 남겨놓고 싶다. 크리스천 무리에 피터슨(Christian Mourier-Petersen) 같이 간과된 동료화가를 끄집어내었고, 닥터 펠릭스 레의 고흐 귀 스케치(240p)와 고흐의 추방에 관한 아를 주민들의 진정서(295p)를 다루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정가 24,000원의 가치는 충분히 보전되었다고만 기록하기로 한다.

어떤 사람을 대충 알면 전형적인 어떤 유형의 사람으로 보이지만, 깊게 알면 알수록 그 내면에 우주와 같이 무한한 심연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은 고흐의 그 무한한 심연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게 인도해주는 좋은 동반자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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