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만의 하프마라톤 도전기: 2026 금산인삼축제 마라톤(26.9.19.)

무려 15년 만에 다시 도전하는 하프마라톤이다. 2011년에 여성지 퀸이 주관하는 ‘제6회 퀸 가족마라톤대회’에서 처음으로 도전했었다. 자발적인 도전은 절대 아니었다. 당시 회사 대표의 반강압에 못 이겨 여러 직원과 함께 단체로 도전했었다. 도전의 미끼로 계열사 스포츠 브랜드에서 판매하던 티셔츠, 반바지, 러닝화를 받았다. 그 러닝화는 올여름까지 신다가 폐기했고, 반바지는 이번 대회에서도 입었다. 매일 같이 습관적으로 야근을 했었고, 토요일에도 출근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체계적인 연습은 불가능했다. 대회 전에 네다섯 번 정도 동네를 몇 바퀴 뛴 것이 전부였다. 몇 분 정도 페이스로 어느 정도 거리를 뛰었는지도 모른다. 스마트워치도 없던 시절이었다.

첫 마라톤이었지만 무모하게도 하프코스에 도전했다. 당연히 완주할 것이라는 20대다운 막연한 자신감이었다. 전역한 지 1년 정도 지난 시점이라 객기도 충만했다. 어찌어찌 완주는 했다. 당시 문자메시지도 소실되었고, 소셜미디어 어느 귀퉁이에 올려 뒀을 법한 기록도 찾을 길이 없고, 메달 각인 서비스도 없던 시절이라 정확한 기록은 기억나지 않지만, 1시간 53~58분 정도의 기록으로 기억한다. 단체로 출전한 직원 중에서 코치 역할을 했던 동호인 출신 세 분을 제외하면, 일반 직원들 가운데 최고 수준의 기록이었다. 내 인생을 통틀어 신체 활동에 관한 무용담은 매우 드문데, 그 완주가 아마 거의 유일한 성취의 기록인 듯하다.

15년 만에 하프마라톤 재도전에 나서게 된 경위는 놀랍도록 유치하다. 7월의 어느 날, 운전을 하던 중 땡볕에서 마라톤 훈련에 매진하던 강인한 한 남자를 목격했다. 새들도 지쳐 쉬어가는 계절에 홀로 운동에 매진하는 한 남자가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자연스럽게 하프마라톤에 도전했던 15년 전의 이야기가 나왔고, 다시 도전한다고 하더라도 완주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도 내비쳤다. 그런데 아내에게서 돌아온 답은, 현재 나의 연령과 건강 상태를 종합해 볼 때, 절대 완주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부정적 의견이었다. 그 확고한 추정이 나의 자존심에 불을 붙였다. 그 대목에서 할 수 있네 없네 하는 입씨름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행동으로 직접 보여줘야 했다. 곧바로 마라톤 목록을 뒤졌다. 최근의 러닝 열풍을 반영하듯, 가까운 거리에서 열리는 대회들은 거의 다 신청 접수가 마감된 상태였다. 그나마 집에서 가깝고 접수가 마감되지 않은 유일한 대회가 금산인삼축제 마라톤 대회였다. 이로써 15년 만의 두 번째 하프마라톤 도전이 시작되었다.

민첩성, 유연성, 근력, 순발력 등 거의 모든 운동 영역에서 영 젬병인 인생이지만, 그나마 남들과 조금이라도 경쟁해 볼 수 있는 영역이 오래달리기였다. 공을 드리블한다든가 장애물을 넘는 등 그 어떠한 부가적 임무도 없이 오직 무식하게 오래달리기만 해도 된다면, 그것이 내가 운동 영역에서 유일하게 평균 이상의 성취를 낼 수 있는 종목이었다. ROTC와 장교 복무 시절, 정기적으로 치루던 체력 검정은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그리고 오래달리기로 구성되었는데, 늘 과락의 경계선을 가까스로 오갔던 두 종목과 달리 오래달리기만큼은 별다른 연습 없이도 1등급을 줄곧 유지했다. 종목 간 점수 격차가 너무 크다 보니 다른 동기들도 나에게 한 바퀴 덜 돈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길을 보내곤 했다. 왜 그런 차이가 존재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다행히도 오래달리기에 최적화된 최소한의 신체적 구성 요소들─가벼운 체중, 긴 팔다리, 그리고 타고난 심폐지구력─을 갖췄기 때문이 아닐까 추정할 뿐이다.

7월 중순부터 훈련을 시작했다. 15년의 세월만큼 신체는 녹슬었겠지만, 이제는 스마트워치와 AI 비서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대략 격일제로 뛰었고, 모든 훈련 기록은 AI와 함께 분석했다. 최근까지도 계단 오르기, 플랭크, 철봉, 실내 자전거 등 기본적인 저강도 운동은 매일 했지만, 본격적으로 뛴 적은 거의 없어서 처음에는 금방 알이 배기고 근육 마디마디가 뻐근했다. 다행히 훈련을 거듭할수록 근육통은 점점 사라졌고, 몸이 달리는 행위에 서서히 익숙해짐을 느꼈다.

처음에는 6분 초반대 페이스로 뛰다 보니 숨이 금방 찼으나, AI의 조언에 따라 7분대로 낮췄더니 훨씬 오랜 시간을 힘들이지 않고 뛸 수 있었다. 나중에는 6분 40초대 페이스에 익숙해지도록 훈련했다. 하루 평균 7~10킬로미터 정도를 뛰었고, 주말에 날 잡고 길게 뛸 때는 최대 13킬로미터까지 뛰었다. 대회 전에 실전으로 21킬로미터를 뛰어 봐야 하나 고민도 했으나, 무릎 통증이 걱정되어 주저했다. AI 코치도 실전에서는 보급이나 현장 분위기의 도움을 받아 연습 거리보다 더 뛸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무리해서 전체 거리를 다 뛰어 볼 필요는 없다고 조언해 주었다. 결국 13킬로미터가 최대 훈련 거리였다. 무릎 컨디션이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규정 시간인 3시간 안에 완주를 못 하리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대회 당일 5시에 일어나 떡과 커피로 아침을 해결하고 일찍부터 금산으로 향했다. 전날 10시에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으나 중간에 두 번이나 깨 최상의 컨디션은 아니었다. 평소보다 일찍 잠들어 수면 패턴이 바뀐 데다가 큰 행사를 앞둔 흥분 탓에 숙면이 힘들었다. 너무 일찍 잠드는 것도 능사는 아닌 듯하다. 대회장 근처에 도착하자 갓길에 불법주차 후 운동복 차림으로 대회장을 향하는 마라토너들이 목격됐다. 아니나 다를까, 집결지에는 주차 공간이 없어 우리도 차를 돌려 갓길에 주차해야 했다. 대회장에 가깝게 차를 대려면 더 빨리 나왔어야 했다.

꾸역꾸역 줄을 서 화장실을 이용하고 광장에 집합하니 축하공연과 귀빈 소개가 이어졌고, 준비운동이 시작됐다. 그래도 전국마라톤협회 주관 대회이니, 준비운동은 당연히 스포츠 지도사나 러닝 코치가 지도하리라 예상했다. 예상과 달리 스포츠 지식이 의심스러운 초대 가수가 댄스 음악과 함께 흥겹게 몸을 흔들어 재끼라는 식으로 리드하는 것이 아닌가. 몸 푸는 순서나 방법에 대한 체계성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리드와 무관하게 그냥 평소 나의 루틴대로 스트레칭 했다.

08:30분에 맞추어 하프 출전자들부터 드디어 내달리기 시작했다. 금산세계인삼엑스포광장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봉황천을 따라 쭉 남쪽으로 뛰다가 상동교를 지나 북쪽으로 올라가고, 반환점을 돌아 그대로 돌아오는 코스였다. 시작부터 뻐근한 느낌이 들었으나, 몸 상태가 서서히 올라올 것이라는 낙관을 품은 채 군중에 뒤섞여 달렸다. 페이스 메이커들이 잇달아 앞으로 치고 나갔고, 그들과 속도를 맞추려는 일단의 참가자들도 군집을 형성해 추월해 나갔다. 3킬로미터까지도 몸이 뻐근하고 피로한 느낌은 가시지 않았다. 5킬로미터를 넘어서면서부터 서서히 몸이 달아오르면서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어폰을 꽂지 않고 주변 소리와 풍경을 온전히 느끼며 달렸다. 오직 달리는 심장박동과 반복적 신체 움직임에만 집중했다. 진도가 안 나가는 느낌이 들 때마다 얼마나 왔는지를 상기하며 진도를 점검했다. 2킬로미터를 돌파하면 아, 1/10을 지났구나, 3킬로미터를 돌파하면 벌써 1/7이 지났네, 5킬로미터를 돌파하면 벌써 1/4니까 조금만 더 힘내자, 이런 식이었다. 진도를 점검하는 것이 확실히 도움이 됐다. 지나간 거리는 생각보다 빠르게 남은 거리를 잡아먹었다.

전반부는 6분 40초대 페이스를 유지하려 애썼지만, 의식하지 않으면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혼자 훈련할 때 특별히 의식하지 않고 가장 편안한 리듬으로 뛸 수 있는 페이스가 딱 그 정도였다. 그보다 빠르면 숨이 찼고, 그보다 느리면 너무 느슨해져서 재미가 없었다. 그런데 확실히 인파와 함께 뒤섞여 달리니 내 페이스를 유지하려면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했다. 대열의 후반부에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참가자가 나를 초반부터 추월하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누군가를 추월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계속 추월을 당하다 보니, 이 대회에서 입상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괜히 조바심이 느껴졌다. 뒤처져서는 안 되고, 더 속도를 내야 할 것만 같은 강박이 생겼다. 그래서 의식하지 않으면 6분 10초대의 페이스까지 올라갔고, 시계를 중간중간 확인하고 나서야 다시 의식적으로 페이스를 낮추는 일이 반복됐다.

달리는 마음 자세가 그 사람의 기본적인 생활 습관이나 사고방식과 무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독하게 어두웠던 밑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한 단계씩 밟아 공적 지식인의 영역에서 겨우 한 귀퉁이나마 간신히 붙잡고 있는 나에게 조만간 누군가 나를 추월해 저만치 달아나리라는 전망은 잠재적 공포로 다가온다. 이런 공포를 품은 사람은 늘 자기 존재가치를 증명해야 하고, 늘 뒤처지지 않기 위해 부단히 물 갈퀴질을 해야 한다. 저마다 다른 목적과 신체적 조건으로 이 대회 참가한 사람들은 저마다의 페이스로 달리기 마련이고, 컨디션과 신체 조건이 좋은 누군가는 나를 추월해 앞서 나가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그 당연함에 대한 인식과 뒤로 밀리고 싶지 않다는 본능적 신체 반응은 별개다. 본능적 신체 반응을 억제하며 완주하려면, 주기적으로 페이스를 확인하며 속도를 늦춰야 했다.

코스의 1/4쯤을 지나자, 개인 간격이 확실히 넓어졌고, 순위의 변동도 드물었다. 그때쯤부터 주변 풍경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달릴 수 있었다. 푸른 하늘을 품은 봉황천에 물새들이 유유자적하는 풍경을 즐겼다. 공기는 맑았고, 바람도 선선했다. 하늘을 푸르렀지만 해는 구름에 적당히 가려져 달리기에 최적이었다. 무엇보다 오르막 구간이 없이 전체적으로 평이한 코스여서 일관되게 체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반환점을 막 돌아선 구간에서 도로 표지병에 살짝 걸려 넘어질 뻔한 일 외에는 크게 위기 없이 일관된 페이스로 달렸다. 코스에 대한 유일한 불만은 집결지 외 달리는 구간에는 간이 화장실이 하나도 없다는 것뿐이었다.

5~7킬로미터 정도 남은 후반부에서는 속도가 떨어진 참가자들을 다수 추월했다. 그때부터는 자연스럽게 페이스를 올려 5분 후반대를 유지했다. 초반부터 오버페이스 했거나, 다리 통증 등 기타 컨디션 난조를 호소하는 참가자들을 자연스럽게 추월했다. 순위 경쟁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추월하는 것에 재미가 느껴졌고, 그 묘한 쾌감을 동력으로 삼아 마지막까지 더 페이스를 끌어 올렸다. 초반에 몇몇 참가자들이 나를 추월하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며 그들의 복장을 기억해 두었었는데, 그들을 내가 다시금 추월할 때 특별히 유치한 뿌듯함을 느꼈다. 전문적인 마라톤 복장이나 화려한 동호회 운동복을 갖춰 입은 사람들을 추월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당신은 훈련된 마라토너군요, 당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만큼은 제가 앞서갑니다!’ 그들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는, 오로지 내 마음속에서만 존재하는 경쟁의 국면이었을지라도, 그러한 추월의 쾌감은 분명 지루한 레이스를 버티게 해주는 심리적 놀이의 일종으로서 의미가 있었다. 이런 무언의 상호작용을 느끼기 위해, 우리는 동네에서 혼자 뛰는 대신 자발적으로 돈을 내고 새벽부터 여기까지 꾸역꾸역 모여든 것이 아닐까.

15년 전 첫 번째 하프마라톤 때도 느꼈지만, 마지막 2킬로미터 구간이 가장 힘들다. 마지막 2킬로미터의 고통은 나머지 19킬로미터에서 얻은 고통의 합보다 크다. 이제 거의 다 끝났다는 때 이른 안도감이 신체를 지배하기 시작한 순간, 종착지는 갑자기 아득히 먼 곳까지 달아나며 가혹한 술래잡기를 제안한다. 그러니 이제 다 끝났다는 때 이른 안도감에 사로잡히지 않아야 하지만, 그러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2킬로미터 남았다는 팻말은 너무도 선명하게 시선을 사로잡고, 저 멀리서 요란한 팡파르가 귓가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1킬로미터 정도 남은 순간, 내가 달리는 코스 양옆으로 이미 달리기를 마친 참가자들이 기념품까지 야무지게 받아 들고 여유 넘치는 표정으로 귀가하는 대조적 풍경이 펼쳐졌다. 마지막 힘을 짜내는 동안 이미 모든 과업을 마친 이들을 바라보는 것은 더 큰 인내심을 요구했다. 중반부부터 서서히 올라오기 시작한 사타구니의 통증이 더욱 선명해졌다.

역시 버티다 보면 언젠가 끝은 반드시 찾아온다. 2시간 13분이라는 기록은 내 기억 속 15년 전의 기록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지만, 중년의 문턱으로 들어서기 시작한 비루한 신체와 두 달 남짓한 훈련 기간을 생각해 보면 완주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유치한 객기로 시작한 도전이었지만, 그 덕에 달리는 감각이 무엇인지를 정말 오랜만에 다시금 일깨웠고, 달리기가 선사하는 강제적인 사색의 시간을 충분히 누릴 수 있었다. 무릎 건강을 생각할 때 너무 잦은 도전도 바람직하지는 않겠으나 그래도 1년에 2~3번 정도는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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