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m Kean, The Icepick Surgeon
피로 쓴 풍요와 번영의 역사
나도 과학계 변두리에 발을 붙이곤 있지만, 내 연구는 어디까지나 과학기술에 관한 사회과학적 연구이므로 실제 연구 대상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일은 거의 없다. 연구의 주장을 통해 대상자의 삶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순 있겠지만, 연구 자체의 영향력이나 파급력을 생각해 보면 ‘간접적’이라는 표현조차 과대평가되었다고 느낀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내 연구의 초라한 한계가 갑자기 감사함으로 다가온다. 동식물이든 사람이든, 실제로 살아 숨 쉬며 실존하는 누군가에게 직접적으로 실험적 처치를 하는 것이 직업적 숙명이라면, 너무나 많은 것들을 사전에 고려해 가며 세심하게 접근해야 한다. 실험 설계나 방법론 자체의 과학적 엄정성뿐만 아니라 윤리성까지 충분히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진리를 얻었는가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어떠한 희생이 초래되거나 유발될 가능성이 있는가까지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과학계가 대중의 신뢰를 잃어버린 일련의 사태들을 거치며 연구 윤리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 여러 경로로 의무 교육이 강화되어 연구자들은 귀에 인이 박이도록 윤리성을 강요받고 있지만, 그러한 의무 교육이 강화될수록 오히려 핵심 메시지는 상투화되고 진부화되기 십상이다. 과학과 의학의 발전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범죄와 희생이 뒤따랐는지를 흥미롭게 조명한 이 책은 연구 윤리의 중요성에 관한 생생한 사례 모음집으로서 스토리텔링의 힘을 보여준다. 어지간한 연구 윤리 의무 교육 10편보다는 이 한 권의 책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연구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는 과학자는 아무래도 시야가 좁을 수밖에 없다. 남들보다 빠르게 성과에 도달해야 하고, 그 성과를 통해 명성을 쌓으려 한다. 내가 확인하려는 지식이 내 인생과 나아가 인류의 삶까지 바꿔 놓을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면, 그 연구가 불러올 부가적 효과들에 대해서는 충분히 성찰하기 어렵다. 관찰과 실험에 목을 매다 보면 윤리적 지침이나 절차들은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사소한 장애물쯤으로 여기기 쉽다. 오직 목표 지점만을 바라보며 달려가는 과정에서 누군가 입을 수 있는 잠재적인 피해들에 대해서는 크게 고려하지 않거나, 그 가능성을 인식하더라도 애써 무시하려 한다. 그러한 외골수적 몰입은 분명 일정 부분 성과를 향한 원동력이 될 수 있으나, 저자가 주목한 과학사의 일례들은 대체로 윤리성에 문제가 있는 접근이 좋은 연구 결과로 이어지는 일이 드물다고 말한다.
문제가 있는 접근을 채택한 과학자들은 그것이 문제가 있고 지탄받을 만한 방식이라는 점을 스스로 분명히 인식한다. 그렇기에 구체적인 설계와 방법론에 대해서 밝히는 것을 꺼리거나 실제와 다르게 조작해 설명하는데, 그렇게 되면 재현성과 신뢰성에 문제가 생긴다. 그러니 가치 있는 결과가 나오기 힘들다는 것이다. 과정과 결과를 숨기지 않고 검증받는 체계, 그것이 바로 오늘날 학계의 표준으로 자리 잡은 동료 평가 체계다. 이는 집단지성을 동원해 연구의 신뢰성과 재현성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학계의 공인된 지식을 가늠하는 최소한의 기준이다. 이 체계가 아무도 몰랐던 전혀 새로운 지식을 창안하는 데 있어서 최적의 방식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을 수 있겠으나, 오늘날 생성되는 지식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조건에 관해서만큼은 이보다 더 나은 대안을 생각하기 어렵다.
책은 17세기 제국주의 시대로부터 2000년대 애니 두컨(Annie Dookhan) 사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윤리성을 저버린 과학적 발견의 역사를 추적한다. 계몽주의 시대에 구성된 박물학적 지식은 종교적 세계관에 갇혔던 앎의 범위를 비약적으로 넓힌 지식의 혁명이었으나, 그 배경에는 수많은 해적질과 수탈과 노예제도가 원동력을 제공했음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 헨리 스미스먼(Henry Smeathman)은 노예제도를 극도로 혐오했음에도 불구하고 노예 거점들과 노예 운송 관계자들을 이용해 새롭게 발견한 대륙의 표본을 수집하고 운송했다. 당시 그가 선택할 수 있었던 연구 거점과 물자 운송 체계는 그것이 전부였기에 마땅히 다른 대안이 없었다. 그럼에도 이율배반을 통해 비윤리적 경로로 습득한 지식이 진정한 의미에서 가치중립적일 수 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과학자 본인이 어떤 윤리적 입장을 견지하고자 하더라도, 당대 사회경제적 구조가 그 입장을 온전히 뒷받침해 줄 수 없다면, 과학자는 결국 자기 입장에 반대되는 어떤 경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통해 획득된 지식이 사회 전체 차원에서 긍정적 가치를 유발한다면, 그 가치의 수혜자인 대중은 어떤 윤리적 판단을 내려야 하는지 명확한 답을 내리기 어렵다.
해부용 시신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던 19세기에 시신 공급을 위해 불법 도굴이 만연했던 사태는 제도가 과학적 발전을 뒷받침해 주지 못한다면 예기치 못한 비극적 결과가 초래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시신은 부족한데 해부 수요는 넘쳐나니 불법적 도굴이 암암리에 조장되었고, 급기야 시신 공급을 위한 살인까지 유발되었다. 물론 현실적 한계를 핑계 삼더라도 살인이 용인될 수는 없으며, 모든 시신 공급책이 살인이라는 극단적 대안에 이른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해부용 시신을 원활하게 공급할 합법적 대안이 부재한 구조적 한계가 불법을 유도한 측면에 대해서는 분명 생각해 볼 측면이 있다.
얼음송곳으로 전두엽을 뭉개는 수술을 개발한 의사, 심리학 실험을 빙자해 심리 고문 기술을 발전시켜 한 사람의 인생을 파멸시킨 심리학자, 인정 욕구에 눈이 멀어 마구잡이로 증거를 조작한 분석관 등 책에 등장하는 문제적 과학자들이 단지 개인적으로 악한 성향을 타고나 악의 길로 걸어 들어간 것이 아니었다. 개인적, 사회적, 제도적 동기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정신병자로 낙인찍힌 환자들을 무분별하게 가두어 격리하는 의료 체계가 수용 능력의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에 환자들을 잠재울 극단적 묘책이 각광을 받게 되었다. 악마화된 공산주의 세력에 대한 근거 없는 두려움이 심리 고문 기술을 개발하는 목표와 방법에 대한 비윤리성을 묵인하게 했다. 마약 검사 수요는 급증하는데 인력과 예산은 제자리걸음이고, 의심스러울 정도로 이례적인 실적에 대해서도 안일하게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해석하려는 리더십이 분석 과정의 지침을 어기고 실적만 챙기려는 동기를 유발했다. 부도덕한 과학자의 주변에는 반드시 그 행위를 부추기거나 최소한 묵인하는 제도가 있게 마련이다.
오늘날 모든 연구 윤리 교육이 귀에 인이 박이도록 일관되게 가르치듯, 지침은 상식적이며 명확하다. 모든 연구를 추진하기에 앞서 책임성과 윤리성을 충분히 숙지시키고 명문화된 약속을 체결하라. 앞으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우발적 사태에 대해 충분히 사전 시뮬레이션을 거쳐 방지책을 마련하라. 유관 일탈 사례들을 폭넓게 공유하고, 그 사례들이 특정한 사례 및 개인에게만 벌어지는 일이 아닌,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일임을 충분히 주지하라. 역시나 이 모든 지침에 선행해야 하는 것은 깨어 있는 리더십과 조직문화를 확립하는 일이다.

500쪽을 촘촘히 채운 희생자들의 사연은 가슴 아프지만, 그런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번영과 안락함도 없었으리라는 생각이 먹먹한 딜레마로 다가온다. 단지 내가 희생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최첨단 과학기술의 열매들을 잘 따 먹고 살아가면 그만인 걸까? 내가 현재 누리고 있는 어떤 과학기술의 산물에 묻은 피를 아무렇지도 않게 소비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며 나홀로 무인도에 들어가 살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렇게 회피한다면, 피로 써 내려간 숭고한 희생의 역사를 오히려 무가치한 죽음으로 격하시켜 버리는 것이 아닐까? 앞으로 벌어질 일은 막아야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에는 모른척하거나 오히려 대놓고 감사해하며 누리는 것이 정당할까? 딜레마는 증폭되지만, 저자도 이 지점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는다. 나치의 천인공노할 인체 실험을 통해 획득한 데이터를 활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던지지만, 양측의 상반된 주장이 존재한다는 선에서 답을 유보한다. 일단 현재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기록하고, 기억하고, 전파함으로써 악의 부활을 막을 적절한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는 것 정도가 아닐까.
끝으로 저술 방식에 대해 몇 가지 언급하자면, 자료에 기반한 엄정한 역사적 고찰과 가까스로 적정선을 넘어서지 않는 대중 영합적 선정주의가 적절히 결합된 수작임이 틀림없다. 자칫 딱딱할 수 있는 소재임에도 소설 같은 상황 묘사와 영화 같은 역동적 타임라인을 결합해 흥미와 몰입감을 극대화한 점이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책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뒷이야기들을 주석에서 살짝 흘린 후에 작가의 홈페이지와 팟캐스트로 유도하는 홍보 방식이 놀랍다. 역시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들의 수완과 근면 성실함에는 분명 배울만한 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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